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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섬]](Puerto Rico)은 [[카리브해]] 북동부에 있는 [[섬]]이자 [[미국]]의 속령이다. 히스파니올라섬 옆에 있으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km 떨어져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대앤틸리스제도]]의 도미니카 공화국과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본섬과 수많은 작은 섬들을 포함하는 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비에케스섬, 쿨레브라섬, 모나섬 등이 있다. 푸에르토 리코의 본섬은 쿠바, 히스파니올라섬, 자메이카를 포함하는 4개의 대앤틸리스 제도 가운데 땅 면적이 가장 작으며, 인구는 두 번째로 적다. '푸에르토 리코'의 뜻은 '부유한 항구'라는 뜻이며 수도는 산 후안이다. 면적은 9,104km², 인구는 2019년 추정치 기준으로 3,193,694명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영어이지만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인다. 푸에르토리코는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인 타이노가 살던 곳이다. 14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면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식민지 가운데 한 곳이 됐다. 그 뒤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400여 년 동안 스페인 제국령으로 남았다. 그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및 카나리아 제도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온 이주민들이 들어오고, 원주민들이 쫓겨나거나 동화되면서 문화와 인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푸에르토리코는 페루 부왕령이나 누에바에스파냐와는 달리 부차적이면서도 전략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스페인 제국의 통치는 19세기까지 이어졌고, 이는 원주민 및 아프리카, 유럽의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낳았다.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미국은 파리 조약으로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했다. 푸에르토 리코인들은 1917년부터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섬과 미국 본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주가 아니므로 미국 의회에서 표결권은 없고, 대신 미국 하원 상주대표를 보내고 있다. 푸에르토 리코에 사는 미국 시민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고, 단지 일부만 연방소득세를 낸다. 푸에르토 리코는 다른 속령 및 워싱턴 D.C.와 마찬가지로 미국 상원 의석이 없다. 1952년에 공포된 푸에르토 리코의 헌법은 푸에르토 리코의 미국 시민들이 행정관을 뽑도록 규정했다. 앞으로 푸에르토 리코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항상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1%B8%EC%97%90%EB%A5%B4%ED%86%A0%EB%A6%AC%EC%BD%94 푸에르토리코]〉,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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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섬]](Puerto Rico)은 [[카리브해]] 북동부에 있는 [[섬]]이자 [[미국]]의 속령이다. 히스파니올라섬 옆에 있으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km 떨어져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대앤틸리스제도의 [[도미니카공화국]]과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본섬과 수많은 작은 섬들을 포함하는 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비에케스섬, 쿨레브라섬, 모나섬 등이 있다. 푸에르토 리코의 본섬은 쿠바, 히스파니올라섬, 자메이카를 포함하는 4개의 대앤틸리스 제도 가운데 땅 면적이 가장 작으며, 인구는 두 번째로 적다. '푸에르토 리코'의 뜻은 '부유한 항구'라는 뜻이며 수도는 산 후안이다. 면적은 9,104km², 인구는 2019년 추정치 기준으로 3,193,694명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영어이지만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인다. 푸에르토리코는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인 타이노가 살던 곳이다. 14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면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식민지 가운데 한 곳이 됐다. 그 뒤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400여 년 동안 스페인 제국령으로 남았다. 그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및 카나리아 제도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온 이주민들이 들어오고, 원주민들이 쫓겨나거나 동화되면서 문화와 인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푸에르토리코는 페루 부왕령이나 누에바에스파냐와는 달리 부차적이면서도 전략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스페인 제국의 통치는 19세기까지 이어졌고, 이는 원주민 및 아프리카, 유럽의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낳았다.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미국은 파리 조약으로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했다. 푸에르토 리코인들은 1917년부터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섬과 미국 본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주가 아니므로 미국 의회에서 표결권은 없고, 대신 미국 하원 상주대표를 보내고 있다. 푸에르토 리코에 사는 미국 시민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고, 단지 일부만 연방소득세를 낸다. 푸에르토 리코는 다른 속령 및 워싱턴 D.C.와 마찬가지로 미국 상원 의석이 없다. 1952년에 공포된 푸에르토 리코의 헌법은 푸에르토 리코의 미국 시민들이 행정관을 뽑도록 규정했다. 앞으로 푸에르토 리코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항상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91%B8%EC%97%90%EB%A5%B4%ED%86%A0%EB%A6%AC%EC%BD%94 푸에르토리코]〉, 《위키백과》</ref>
  
 
===자메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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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3일 (목) 01:46 판

대앤틸리스제도 위치
대앤틸리스제도 지도

대앤틸리스제도(영어: Greater Antilles, 프랑스어: Grandes Antilles, 스페인어: Antillas Mayores, 문화어: 대안띨제도)는 카리브제도(서인도 제도)에서 소앤틸리스제도와 함께 앤틸리스제도를 이룬다. 대앤틸리스제도는 쿠바,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영국령 케이맨제도가 속해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1]

개요

대앤틸리스제도는 쿠바섬, 히스파니올라섬(아이티, 도미니카), 자메이카섬, 푸에르토리코섬 등 4개의 큰 섬과 그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대앤틸리스제도의 섬은 대부분 독립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영토인 반면 케이맨제도영국의 해외 영토이다. 면적으로 가장 큰 섬은 쿠바섬으로 서쪽 끝까지 뻗어 있다. 동쪽 끝에는 푸에르토리코가 있고 가운데에는 인구가 가장 큰 섬인 히스파니올라 섬이 있다. 자메이카섬은 쿠바의 남쪽에 있고 케이맨제도는 서쪽에 위치해 있다. 플로리다주는 미국 본토에서 대앤틸리스제도에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지질학적으로 대앤틸리스제도는 대륙판에 속한 안정된 섬들이고 소앤틸리스제도는 화산섬이나 산호섬이 대부분이다. 앤틸리스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서쪽 대서양 저편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가상의 섬 안티이아(스페인어: antill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 지도에서는 카나리아 제도와 인도 사이에 존재한다고 그려졌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한 후로, 카리브해멕시코만에 걸쳐 존재하는 여러 섬들을 앤틸리스제도라 부르게 되었다.[2]

구성

쿠바

쿠바(스페인어: Cuba)는 북아메리카의 카리브제도에 있는 가장 큰 쿠바섬과 인근 섬들로 이루어진 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이며 수도는 아바나이다. 쿠바섬은 대앤틸리스제도에서 가장 큰 으로서, 쿠바 공화국 영토의 94.6%를 차지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섬 북쪽 해안에 있다. 남동부 해안에는 미국이 관리하는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가 있으며, 이 지역은 섬 전체의 0.1%를 차지한다. 쿠바섬은 윈드워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히스파니올라섬에 있는 아이티도미니카 공화국이, 케이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케이만제도와 자메이카가,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미국 플로리다주가 있다. 쿠바는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포함되지만, 광의의 중앙아메리카에도 포함된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뒷마당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뒷마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럽라틴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요로에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성립한 공산주의 정권을 기념하여 ‘카리브에 떠오르는 붉은 섬’이라고 형용되기도 한다. 체 게바라가 참여한 쿠바 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이래 현재까지 공산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 봉쇄로 경제의 어려움을 자립 경제체제로 버티면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었으나 2014년 12월 18일 국교정상화 선언을 했다. 1961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산주의 체제로 바뀌었으며, 냉전 시기인 1991년까지 중남미의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주요 지원 국가였다. 쿠바섬은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면서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진 곳이다.[3]

히스파니올라섬

히스파니올라섬(영어: Hispaniola, 프랑스어: Hispaniola 이스파니올라섬, 스페인어: La Española 에스파뇰라섬, 아이티어: Ispayola)은 서인도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쿠바섬 동쪽에 있다. 히스파니올라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스페인(히스파니아)의 섬이라는 의미이다. 면적은 76,480km²로 남한보다 조금 좁고 인구는 2,100만 명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과밀한 지역 중 하나로, 과거에는 섬 서부가 비옥하여 인구 부양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부속 섬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섬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있었던 1차 항해, 1493년에 있었던 2차 항해에서 들러 스페인의 첫 식민지를 건설한 곳이기도 하다. 섬 서부에서는 과거 프랑스령 생도맹그 식민지로 노예 노동에 의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운영으로 프랑스 국부의 4분의 1 정도가 이 지역에서 조성되었다. 사탕수수 외에도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 지역 주민들의 주식은 이다. 섬 동부는 과거에는 비교적 척박하고 인구 밀도가 희박했던 지역으로 스페인 식민지로 유지되었으며 주로 목축업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섬 서부에서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섬 동부에서는 스페인어가 사용된다. 인구 구성도 다른데 섬 서부에서는 아이티 혁명 당시 유혈 사태의 영향으로 인구 절대다수가 흑인이지만, 동부는 인구 대부분이 흑백혼혈이다.

섬의 서쪽 1/3은 아이티의 영토이고, 동쪽 2/3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영토이다. 같은 섬이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아이티 국경을 두고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개발도상국이지만 섬 환경이 잘 관리되는데 반해, 아이티는 일인당 GDP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1/12 수준인 데다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정도의 헬게이트이기 때문이다.[4]

푸에르토리코

푸에르토리코섬(Puerto Rico)은 카리브해 북동부에 있는 이자 미국의 속령이다. 히스파니올라섬 옆에 있으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km 떨어져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대앤틸리스제도의 도미니카공화국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본섬과 수많은 작은 섬들을 포함하는 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비에케스섬, 쿨레브라섬, 모나섬 등이 있다. 푸에르토 리코의 본섬은 쿠바, 히스파니올라섬, 자메이카를 포함하는 4개의 대앤틸리스 제도 가운데 땅 면적이 가장 작으며, 인구는 두 번째로 적다. '푸에르토 리코'의 뜻은 '부유한 항구'라는 뜻이며 수도는 산 후안이다. 면적은 9,104km², 인구는 2019년 추정치 기준으로 3,193,694명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영어이지만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인다. 푸에르토리코는 본래 아메리카 원주민인 타이노가 살던 곳이다. 14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면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식민지 가운데 한 곳이 됐다. 그 뒤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400여 년 동안 스페인 제국령으로 남았다. 그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 및 카나리아 제도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온 이주민들이 들어오고, 원주민들이 쫓겨나거나 동화되면서 문화와 인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푸에르토리코는 페루 부왕령이나 누에바에스파냐와는 달리 부차적이면서도 전략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스페인 제국의 통치는 19세기까지 이어졌고, 이는 원주민 및 아프리카, 유럽의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낳았다.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미국은 파리 조약으로 푸에르토리코를 획득했다. 푸에르토 리코인들은 1917년부터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섬과 미국 본토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주가 아니므로 미국 의회에서 표결권은 없고, 대신 미국 하원 상주대표를 보내고 있다. 푸에르토 리코에 사는 미국 시민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고, 단지 일부만 연방소득세를 낸다. 푸에르토 리코는 다른 속령 및 워싱턴 D.C.와 마찬가지로 미국 상원 의석이 없다. 1952년에 공포된 푸에르토 리코의 헌법은 푸에르토 리코의 미국 시민들이 행정관을 뽑도록 규정했다. 앞으로 푸에르토 리코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항상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5]

자메이카

자메이카섬중앙아메리카에 있으며 카리브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고 영어를 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자메이카는 블루 산맥의 본산지이며 좁은 평원으로 둘려싸여 있다. 모든 주요 도시와 마을이 해안에 있다. 주요 도시로는 킹스턴, 포트모어, 만데빌, 오초 리오스, 포트 안토니오 등이 있다. 남아메리카 출신의 아라왁과 타이노 토착민들이 기원전 4,000년과 1,000년 사이 자메이카에 정착을 했다. 149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때 특히 현재 구 항구로서 알려진 가장 인구가 많이 형성된 자메이카의 남 해안과 함께, 추장이 다스리는 200여개 이상의 마을이 있었다. 타이노족들은 영국이 섬을 접수할 때까지 자메이카에 살고 있었다. 1494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 스페인과 영국의 지배하에 노예 매매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프리카 노예 수입은 계속되었으며, 1651년 영국이 스페인과 싸워 이 섬을 획득하면서 1655년에 영국의 지배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정착자들은 산 속에 사는 탈출 노예들과 계속 싸워야 하였다. 1670년대에 영국의 해적들은 자메이카를 카리브해 지역에 있는 스페인의 항구와 배들을 공격하는데 기지로 사용하였다. 1700년대에는 사탕수수가 주요 생산물이 되었고, 서반구에서 가장 중요한 노예 매매의 중심지가 되었다. 1783년에 영국은 탈출 노예들과 화평을 맺었으며, 100년 후에 영국 의회는 섬의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많은 해방 노예들은 독립적인 농부들이 되었다. 1865년에는 농장 지주들과 고용인 사이의 나쁜 관계가 일어나 반란이 일어나자, 영국 정부가 자메이카를 왕실의 식민지로 삼았다. 1930년대에 자메이카의 노동 지도자들은 더 많은 정치적 권력을 승인하기를 영국에 강력히 권하였다. 1944년 새 헌법이 자메이카에 어떤 자치 정부를 주었고, 1962년에 독립하여 영국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6]

케이맨제도

케이맨제도(Cayman Islands)는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 영토이다. 수도는 조지타운이고 공용어는 영어이나 스페인어도 사용된다. 스쿠버 다이빙으로도 유명한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케이맨제도는 웨스트 인디즈에 있는 영국령으로 그랜드케이맨, 케이맨브랙, 리틀케이맨으로 이루어져 있다. 1503년 5월 10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세계로 가는 네 번째 항해 중 최초로 닿았다. 자메이카의 일부였으나 1670년 마드리드 협정에 의해 영국에 귀속되었다. 케이맨제도의 생활 수준은 서인도 지역에서 가장 높고, 영국 신교도, 아프리카 후손들, 그리고 기타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다. 군도 자치 정부가 통치하고 18세부터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제도의 주지사는 영국 여왕이 임명한다.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들'에서 보듯이 해적 검은수염(Blackbeard)의 전설이 이 부근에서 나왔다. 케이맨 제도에는 외국 은행이나 기업들이 많고, 조세 피난처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1503년 5월 10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네 번째 항해 도중에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는 무인도였으며, 바위로 착각할 만한 많은 거북이가 있었는데 스페인어로 바다 거북을 의미하는 '라스 토르투가스'(Las Tortugas)라는 이름으로 명명된다. 그러나 발견 당시 미국 악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카리브 인디언들의 말로 악어를 의미하는 '케이마나스'(Caymanas)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것이 현재의 '케이맨'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되었다. 1655년 올리버 크롬웰이 이끈 영국 해군이 스페인령이었던 자메이카를 빼앗고, 1670년 마드리드 조약에서 자메이카와 함께 영국령이 되었다. 케이맨 제도의 최초 주민은 크롬웰이 이끄는 해군의 해병이었던 윌리엄 보덴이다. 보덴은 보덴 타운이라고 명명한 이주지를 건설하였는데, 20세기 초기에 케이맨 제도의 주 도시가 조지 타운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케이맨 제도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그 다음의 최초 이주민은 난파선의 선원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해적이 케이맨 제도에 침입하여 케이만 블랙 섬에 있는 동굴에 보물을 숨긴 일이 있는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보물섬이라는 소설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1961년 서인도 연방이 결성되었는데, 1962년 자메이카가 독립하기 전까지 자메이카와 케이맨 제도는 하나의 식민지로 통치되었다.[7]

대앤틸리스제도 지도

대앤틸리스제도 주변 지도

카리브해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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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앤틸리스제도 국가 지도

동영상

각주

  1. 대앤틸리스 제도〉, 《위키백과》
  2. 대앤틸리스 제도〉, 《요다위키》
  3. 쿠바섬〉, 《위키백과》
  4. 히스파니올라〉, 《나무위키》
  5. 푸에르토리코〉, 《위키백과》
  6. 자메이카〉, 《위키백과》
  7. 케이맨 제도〉,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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