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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나케르트'''(아르메니아어: Ստեփանակերտ Stepanakert, 러시아어: Степанакерт) 또는 '''한캔디'''(아제르바이잔어: Xankəndi, 튀르키예어: Hankendi)는 원래 '''바라라큰'''(아르메니아어: Վարարակն)으로 불렸던 도시이다. 원래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후 [[남캅카스]]에 있는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서 사실상 아르메니아가 29년동안 지배하고 있었으나, 2023년 9월 28일부로 [[아제르바이잔]]이 탈환하였다. 도시의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55,200명으로, [[아르메니아인]]이 절대적 다수였으나, 아제르바이잔의 탈환 이후 주민들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본토로 돌아갔다. 해발 813m 고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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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나케르트'''(아르메니아어: Ստեփանակերտ Stepanakert, 러시아어: Степанакерт)는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원래 '''바라라큰'''(아르메니아어: Վարարակն)으로 불렸던 도시이다. '''한캔디'''(아제르바이잔어: Xankəndi, 튀르키예어: Hankendi)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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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나케르트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남캅카스]]에 있는 [[아르차흐]]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서 사실상 [[아르메니아]]가 29년 동안 지배하고 있었으나, 2023년 9월 28일부로 [[아제르바이잔]]이 [[탈환]]하였다. 도시의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55,200명으로, [[아르메니아인]]이 절대적 다수였으나, 아제르바이잔의 탈환 이후 주민들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본토로 돌아갔다. 해발 813m 고도에 있다.
  
 
== 개요 ==
 
== 개요 ==

2024년 6월 20일 (목) 00:42 기준 최신판

스테파나케르트의 거리

스테파나케르트(아르메니아어: Ստեփանակերտ Stepanakert, 러시아어: Степанакерт)는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원래 바라라큰(아르메니아어: Վարարակն)으로 불렸던 도시이다. 한캔디(아제르바이잔어: Xankəndi, 튀르키예어: Hankendi)라고도 부른다.

스테파나케르트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남캅카스에 있는 아르차흐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서 사실상 아르메니아가 29년 동안 지배하고 있었으나, 2023년 9월 28일부로 아제르바이잔탈환하였다. 도시의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55,200명으로, 아르메니아인이 절대적 다수였으나, 아제르바이잔의 탈환 이후 주민들의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본토로 돌아갔다. 해발 813m 고도에 있다.

개요[편집]

연혁[편집]

중세기 아르메니아의 자료에 따르면, 이 도시는 바라라큰(Վարարակն, '물살이 거센 개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며, 본래 18세기 후반에 존재했던 카라바흐 칸국의 칸들의 여름별궁이 세워진 곳으로 당시에는 별궁 외엔 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한캔디(Xankəndi, '칸이 사는 곳')라고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소련 성립 후 1923년에 도시의 지위를 얻었고, 아제르바이잔 SSR 산하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수도가 되었다. 아르메니아어 이름인 스테파나케르트는 '스테판이 세운 (도시)'라는 뜻으로 아르메니아인 공산주의자였던 '스테판 샤후먄(Ստեփան Շահումյան, 1878년 10월 13일 ~ 1918년 9월 20일)'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1923년에 소련 정부가 붙인 이름이다. 소련 시절 샤후먄은 26인의 바쿠 인민위원(26 бакинских комиссаров)이라는 이름으로 혁명 영웅화되어 일함 알리예프의 아버지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1978년 스테판 샤후먄을 캅카스의 영웅이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1991년 소련 해체를 전후하여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되고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하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 스테판 샤후만의 평가는 수직낙하하였다. 우선 아제르바이잔은 다시 도시 이름을 아제르바이잔어인 '한캔디'로 바꾸었다. 또한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전역에 세워진 스테판 샤후만의 동상들을 때려부수고 바쿠에 있던 그의 무덤까지 갈아엎었다.

아제르바이잔 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스테파니케르트는 아르메니아인 다수 지역으로써 아르메니아 편입 여론이 고조되었고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의 상호 폭력 사태도 잦았다. 아르메니아인 세력은 자체적인 군사력을 구축해 1991년에 결국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아르차흐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한캔디(스테파니케르트)를 수도로 삼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에 반발해 독립세력에 대한 무력 진압을 시도했고 이것이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현지 민심의 비협조와 열악한 형편, 아르메니아의 독립세력 지원이 겹쳐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에 연전연패했고, 오히려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에 점령지를 더 내준 상태에서 1994년에 휴전했다. 이로써 스테파니케르트에는 아제르바이잔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게 됐고, 도시 내 아제르바이잔인은 모두 추방되었다. 도시 이름도 다시 한캔디에서 스테파니케르트로 되돌아갔으나, 물론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사력을 키웠고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어 1994년 당시 잃어버린 영토 상당수를 되찾았다.

2022년 3월말에 아제르바이잔군이 전면적 침공을 가하여 파루흐(Farukh, 아르메니아어: Փառուխ, 아제르바이잔어: Fərrux)가 함락되었다. 그나마 인구 100명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기에 아제르바이잔군은 물러났다고 러시아 측이 주장했으나 고립되어 4월 10일까지도 아르메니아에선 파루흐에 대한 소식이 두절되어 통신도, 육로도 막혔다고 한다. 파루흐는 동쪽으로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닿은 곳이고 정반대쪽인 스테파나케르트는 거리가 있다.

2023년 9월 28일에 아르차흐 공화국이 2024년 1월 1일, 자진해산할 것을 밝혔고, 2023년 9월 29일에 아제르바이잔 경찰이 입성하면서 한캔디는 완전히 함락되었으며 이후 주민들이 대부분 아르메니아로 도피하면서 사실상 유령도시가 되었다.

이후 2023년 10월 15일,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한캔디에 도착해 아르차흐 대통령궁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고 아르차흐 의회, 정부청사 등을 살펴보면서 아르차흐는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2024년 3월 4일 아르차흐 공화국의 유산인 의회와 전몰자 기념관을 철거하였다.

지리[편집]

스테파나케르트는 해발 813m이며 카라바흐 고원 에 위치해 있다.

기후는 습한 아열대 해양성 기후이다. 1월에는 평균 기온이 1°C(34°F)로 내려 가며 7월 평균 기온은 약 23°C(73°F)이다. 극한 기온은 1974년 1월 8일 −15.0°C(5°F)에서 1978년 7월 11일 37.0°C(99°F)까지 다양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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