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피아트

위키원
sosodam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9월 11일 (금) 17:56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피아트(Fiat)
피아트(Fiat)

피아트(Fiat)는 피아트 크라이슬러(Fiat Chrysler) 회사에 소속된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2014년 미국의 크라이슬러 회사를 인수하여, 피아트 크라이슬러 회사가 되었다.

개요

피아트는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1899년 조반니 아넬리(Giovanni Agnelli)를 포함하는 투자자들의 무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피아트의 계열사로는 페라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 4월 아시아자동차에 의해 소형차 124가 시판되어 1973년까지 생산되었고, 이후 1979년 기아자동차에 의해 중형차 132도 시판되었지만,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어 단종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 피아트 판다, 란치아 브랜드 등이 런칭하였지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크라이슬러를 완전히 인수한 이후, 2013년 1월 크라이슬러의 네트워크를 통해 피아트가 대한민국에 다시 진출하였다. 하지만 2017년 9월 지프의 인기와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다. 미국에서는 전륜구동 소형 해치백인 피아트 500 시리즈만 판매 중이다. 대한민국에는 피아트 500 시리즈와 크라이슬러 산하 닷지 브랜드의 크로스오버인 닷지 저니를 피아트 버전으로 출시한 프리몬트도 대한민국에 출시되었으나, 2014년에 판매 부진으로 수입이 중단되었고, 대신 2016년에 피아트 500X가 들어왔다. 이후 크라이슬러를 자본 제휴하기 시작하여 자회사로 편입하였다.[1] 피아트 브랜드 자동차는 세계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가장 큰 생산국은 브라질이다. 아르헨티나, 폴란드, 멕시코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다른 국가에서 자사 제품의 라이센스 제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피아트는 9개의 '올해의 유럽 자동차 상'을 비롯해 많은 국제적인 상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일산화탄소(CO) 최하위권에 랭크되었다.[2]

역사

1899년 7월 11일, 조반니 아넬리는 피아트 S.p.A의 창립 멤버 일원이 되었다. 최초의 피아트 공장은 1900년에 35명의 직원이 24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문을 열었다. 1903년 피아트는 첫 트럭을 생산하고, 적은 이익을 내고 135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리고 1906년에는 생산량이 1,149대로 늘어나게 되었다. 1908년 피아트 자동차가 최초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같은 해 최초의 피아트 항공기 엔진이 생산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피아트 택시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게 된다. 피아트는 1908년 미국에 피아트 오토모빌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뒤 승용차는 물론 상용차, 선박, 엔진, 트럭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갔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피아트는 모든 공장을 연합군의 항공기, 엔진, 기관총, 트럭, 구급차를 공급하는 데 바쳐야 했다. 1917년 미국의 전쟁 진입과 동시에 미국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공장이 폐쇄됐다. 전쟁 후, 피아트는 첫 번째 트랙터인 702를 선보였다. 1920년대 초까지 피아트는 이탈리아에서 80%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2] 1922년에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로 레이싱카도 시험 주행 할 수 있는 링고토 공장이 문을 열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1939년 피아트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육군과 레지아 항공, 그리고 후에 독일군을 위해 군용 기계와 차량을 만들었다. 또한 사보이아-마르체티스(Savoia-Marchettis)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항공기 중 하나였던 피아트 CR.42와 경전차, 장갑차를 만들었다. 1950년대 자동차 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피아트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농기계, 항공기 등 사업 영역을 무한 확장해 나갔다. 1951년 이탈리아 첫 제트기인 G80을 만들어낸 것도 피아트이다. 1984년 알파로메오, 1993년 마세라티를 인수하며 대중차에서 슈퍼카를 아우르는 라인업을 보유하게 되었다. 질주하던 피아트는 1990년대 위기를 맞는다. 장기 불황으로 경영이 악화됐고, 급기야 2003년 아넬리 가문 경영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2004년에는 부도 위기까지 내몰리게 된다. 현재 회장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가 등장하며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강력한 구조 조정으로 불과 2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했다. 이후 신진 디자이너를 대거 영입해 신차 푼토를 출시하고 2007년에는 브라보를 선보이며 다시 부활했다. 2009년에는 크라이슬러의 우량 자산을 인수하며 기존 이탈리아 감성이 깃든 소형차에 고성능 SUV까지 완벽한 라인업을 완비하며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다.[3] 2014년 1월 29일, 피아트 그룹(Fiat Group)의 전 소유주였던 피아트 S.p.A.가 2014년 말 이전에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새로운 지주회사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FCA)에 합병될 예정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동차가 피아트 그룹의 새로운 소유주가 되었다. 2014년 8월 1일, 피아트 S.p.A.는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주주 승인을 받았으며, 이는 2014년 10월 12일 시행되었다.

주요 인물

조반니 아넬리

조반니 아넬리

생애

1866년 피에몬트주 피네롤로 부근의 작은 마을 빌라 페로사(Villar Perosa)에서 태어났다, 아직도 아넬리 가문의 주요 거처와 매장지가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빌라 페로사의 시장이었는데, 조반니가 겨우 다섯 살이었을 때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반니는 토리노의 콜레지오 산 주세페에서 공부한 후 1893년까지 군 생활을 시작했고, 빌라 페로사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95년에 시장이 되었다. 아그넬리는 당시 말 없는 마차의 발명 소식을 듣고 즉시 그의 공학과 기업가적 기술을 이용할 기회를 보았다. 1898년, 그는 말 없는 마차 프로젝트를 위해 투자자들을 찾고 있던 브리케라시오의 이매뉴얼 카케라노 백작을 만나게 된다.[4]

각주

참고 자료

같이 보기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피아트 문서는 자동차 회사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