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산맥
카라코람산맥(중국어: 喀喇昆仑山脉, 우르두어: سلسلہ کوہ قراقرم)은 대 히말라야산맥의 일부분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중국 국경지대의 고산 지대를 통칭하기도 한다. 카라코람은 튀르키예어로 '검은 자갈밭'을 의미하는데, 지형이 험준하고 빙하와 잡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럽의 탐험대도 19세기 초에야 겨우 접근할 수 있었다.
카슈미르 지방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에는 인더스강을 사이에 끼고 서부 히말라야, 서쪽 및 서남쪽에는 []][파키스탄]]을 사이에 끼고 서부 힌두쿠시산맥이, 북쪽에는 투르크스탄, 동쪽에는 중국의 [[신장위그르자치구가 있다. 세계 제2의 K2를 비롯해서 가셔브룸 1봉, 가셔브룸 2봉, 브로드피크산 등 8,000m급의 준령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발토로, 비아포, 초골그마, 히스파 등 수십km 에 걸치는 대빙하가 있다.
1947년의 인도 ·파키스탄 분리에 따라 분쟁이 일어나서 카슈미르 지방이 양분되어(그 경계는 1949년의 停戰線), 카라코람산맥의 중심부는 파키스탄이 통치한다. 현재 카라코람에 들어가려면 예전과 같이 잠무카슈미르주의 주도(州都) 스리나가르를 거쳐서는 갈 수 없고, 파키스탄의 라왈핀디에서 비행기로 길기트 혹은 스카르두로 가서 들어간다.
1934년 오스트리아의 디렌푸르트 등산대가 시아캉리의 북봉(北峰:7,422m)을 처음으로 올랐고 1954년에는 A.데시오가 인솔한 이탈리아 탐험대가 K2봉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 후 미국·오스트리아·독일 등에서 많은 등산대가 원정하여 7,000m를 넘는 산들을 대부분 정복하였다.
빙하
카라코람은 인도-호주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인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지역중 하나에 있다. 히말라야의 8~12%, 알프스의 2.2%가 빙하로 덮혀 있는데, 카라코람산맥의 28~50% 사이인 상당 부분이 빙하로 덮여 있으며 면적은 15,000제곱킬로미터 또는 5,800제곱마일 이상이다. 산악 빙하는 기온과 강수량의 장기적인 변화에 따라 전진하거나 후퇴하는 기후 변화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 카라코람 빙하는 약간 후퇴하고 있다. 빙하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질량을 잃는 히말라야와 달리 많은 카라코람 빙하는 얼음을 태양의 따뜻함으로부터 보호하는 잔해층으로 덮여 있다. 이러한 절연이 없는 경우 후퇴 속도가 빠르다.
마지막 빙하기에는 연결된 일련의 빙하가 티베트 서부에서 낭가 파르바트까지, 타림분지에서 길기트 지구 까지 뻗어 있었다. 남쪽에서는 인더스 빙하가 주요 계곡 빙하였으며, 낭가 파르바트 산괴에서 120킬로미터(75마일)를 흘러 870미터(2,850피트)고도까지 내려갔다. 북쪽에서는 카라코람 빙하가 쿤룬산맥에서 온 빙하와 합류하여 타림분지에서 2,000미터(6,600피트)까지 흘러 내렸다.
카라코람의 현재 계곡 빙하는 최대 길이가 76km(47마일)에 달하지만 빙하기 계곡 빙하 지류와 주요 계곡 빙하중 일부는 길이가 최대 700km(430마일)에 달했다. 빙하기 동안 빙하 눈선은 오늘날보다 약 1,300m(4,300피트) 낮았다.
주민
카라코람의 산지 내부는 매우 건조하여 사막기후를 이룬다. 그러나 주민은 빙하의 융빙수(融氷水)를 이용하여 인공 오아시스를 만들어 생활한다. 주로 밀을 재배하나 과수도 많고 특히 살구는 건과(乾果)로 이용하며, 양 ·산양 등 목축도 활발하다. 인종 ·언어는 다양하며 혼혈이 현저하나 동부는 몽골 인종, 서부는 코카서스 인종의 특징이 눈에 띤다. 종교도 인도령은 라마교, 파키스탄령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카라코람고개 부근은 중국과 인도의 분쟁지대가 되어 있다.
주요 봉우리
최소 3800m 높이이고 지형적 돌출도가 최소 300m인 봉우리이다.
- K2(8,611m)
- 가셔브룸 1세8,080m)
- 브로드 피크8,051m)
- 브로드 피크8,051m)
- 가셔브룸 2세8,034m)
- 가셔브룸 3세7,952m)
- 가셔브룸 4세7,925m)
- 디스타길 사르7,885m)
- 쿤양취시7,852m)
- 마셰르브룸 1세7,821m)
- 바투라 1세7,795m)
- 라카포시7,788m)
- 바투라 2세7,762m)
- 칸주트 사르7,760m)
- 캉리 1세7,742m)
- 바투라 3세7,729m)
- 사세르 강리 1세7,672m)
- 초골리사7,665m)
- 쉬스파레 사르7,611m)
- 트리보르 사르7,577m)
- 스케양강리7,495m)
- 푸마리 치히시7,492m)
- 파수 사르7,478m)
육신 가르단 사르 7,469m) 테람 강리 1세 7,462m) 부정입체 7,458m) K12 7,428m) 시아캉리 7,422m) 모밀 사르 7,414m) 스킬 브룸 7,165m) 하라모시 산 7,409m) 겐트 캉리 7,401m) 울트라 피크 7,388m) 리모 1세 7,385m) 셰르피 캉리 7,380m) 보조하구르 두아나시르 7,329m) 야즈힐 돔 사우스 7,324m) 발토로캉리 7,312m) 크라운 피크 7,295m) 베인사 브라크 7,285m) 유트마루사르 7,283m) 발티스탄 봉 7,282m) 무즈타그 타워 7,273m) 디란 7,266m) 압사라사스 강리 1세 7,243m) 리모 3세 7,233m) 가셔브룸 5세 7,440m)
역사
자그로스산맥은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인류가 점령했다. 자그로스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화석은 네안데르탈인의이다. 약 65,000년에서 35,000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10명의 유해가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그 동굴에는 또한 두 개의 후기 "신석기시대"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약 1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35명의 개인이 살고 있었다. 후기 구석기 시대와 구석기 시대의 점령에서 나온 증거는 야프테 동굴, 호라마바드 근처의 칼다르 동굴, 와와시, 케르만샤 근처의 말라베르드, 쿠르디스탄의 케나체 동굴, 멀리 떨어진 부프 동굴, 그리고 많은 다른 동굴과 바위 대피소에서 나온 것이다.
초기 농업의 흔적은 산기슭에서 기원전 9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몇몇 정착촌은 나중에 도시로 성장했다. 자르모는 이 지역의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이다. 산에서 와인을 생산한 최초의 증거 중 일부가 발견되었고 하지 피루즈 테페와 고딘 테페는 둘 다 기원전 3500년에서 5400년 사이에 와인을 저장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고대 초기에, 자그로스족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와 아카드 도시를 주기적으로 침략한 후기의 카시테, 구티, 엘람, 그리고 미탄니와 같은 민족들의 고향이다. 그 산들은 이라크에 있는 메소포타미아평원과 이란고원사이에 지리적 장벽을 형성한다. 기원전 2천 년 초, 이 그룹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상세히 설명한 점토판의 작은 아카이브가 리틀 잽을 따라 텔 헴샤라에서 발견되었다.
자그로스산맥은 수천년 동안 쿠르드족이 거주해 왔고 쿠르드 문화와 역사가 발전했다. 자그로스산맥의 높은 고도는 일련의 초크 포인트와 계곡을 만들어 완벽한 농업과 인간 분양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또한 쿠르드족이 방어할 수 있는 천연 장벽 역할을 함으로써 오랫동안 전쟁 중에 쿠르드족을 지켜왔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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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참고자료
- 〈자그로스산맥〉, 《위키백과》
- 〈자그로스 산맥〉, 《요다위키》
- 〈Zagros Mountains〉, 《wikipedia》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