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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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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크
나시크 위치

나시크(마라티어: नाशिक, 영어: Nashik)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264.23km², 인구는 220만 명으로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나시크는 힌두교 순례지 중 하나다.[1]

개요[편집]

나시크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북쪽 나시크 지구에 있는 도시이다. 서고츠산맥이 지나고, 뭄바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170km 지점의 고다바리강 유역에 위치한다. 평균해발고도는 약 570m이며, 서쪽은 서고츠산맥에 이어진 사히아드리 구릉과 경계를 이룬다. 기후는 사바나기후에 해당하고 연평균 기온은 약 20.6°C, 연평균 강수량은 약 2,564mm이다. 옛 지명은 굴샤나바드(Gulshanabad)이다. 고다바리강과 기르나강(Girna) 유역의 비옥한 농지에 위치하여 도시 근교에서 포도 재배가 활발하다. 인도 생산의 와인 90%는 나시크 계곡에서 나온다. 주 농산물인 토마토, 양파, 사탕수수, 땅콩, 밀 등의 거래가 발달하였다. 20세기 중후반에 들어 산업화되었으며 주요 산업은 착유, 견직, 면방직, 제당 등이다. 전통적인 수공업 분야에서는 구리, 황동 등의 금속 세공이 성하다. 바라나시와 함께 힌두교의 주요 성지이며 또한 불교의 성지로서 매년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찾는다. 고대도시인 판차바티(Panchavati)는 산스크리트어 대서사인 라마야나에 영웅 라마 왕자가 살았던 도시로 등장하는 힌두교 성지로 고다바리강 좌안에 있으며 여러 사원이 위치한다. 대표적인 힌두 사원으로 시에서 약 22km 거리의 트리암바크시바르(Tryambakeshvar)에 시바파의 죠티르링가 사원이 있다. 12년마다 열리는 힌두교 축제인 쿰브멜라 시기에는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한다. 시내에서 8km 거리 떨어진 고다바리 강변에 기원전 1~ 기원후 2세기에 만들어진 소승불교 동굴사원이 있으며 판다블레나 동굴(Pandavleni Caves), 옛 이름으로는 트리라슈미 레니(Trirashmi Leni)로 불린다. 이곳은 약 24개의 사원군(寺院群)으로, 당시 대상로를 따라 암산을 이용해서 건조한 사원군의 하나로서 유명하며 서부 인도의 대표적인 불교유적이다. 최고의 소규모 제19굴에는 사타바하나 왕조 제2대왕 크리슈나(기원전 1세기 말기) 때 조영되었다는 각문이 있는데 125~150년경의 제3굴은 난순모양을 조각한 요벽을 정면랑 전면에 파서 남기고, 열주의 주두는 정성스럽게 마무리된 다양한 동물상으로 장식되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나시크는 마하라슈트라주 북부에 위치하고 평균 해수면에서 584m 높이에 있어 특히 겨울에 이상적인 온도 변화가 나타난다. 나시크는 고대 화산 지층인 데칸고원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다. 고다바리강은 나시크에서 약 24km 떨어진 트림바케슈와르(Trimbakeshwar)의 브라마기리 산(Brahmagiri Mountain)에서 발원하여 현재 도시 중심부에 있는 오래된 주거 정착지를 통과하여 흐른다. 도시 인근의 공장에서 발생하는 높은 오염으로 인해 강물은 놀라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었으나 이후 성공적으로 청소되었다. 트림바케슈와르는 도시에서 약 30km 떨어져 있으며 고다바리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도시의 땅 면적은 약 259.13km²이다.

도시의 열대 위치와 높은 고도가 결합되어 상대적으로 온화한 열대 습윤 및 건조 기후( Köppen Aw)를 제공한다. 10월에는 기온이 약간 올라가지만 11월부터 2월까지는 시원한 계절이 이어진다. 서늘한 계절에는 낮 동안 약 28°C의 따뜻한 기온을 보이지만, 서늘한 밤에는 평균 10°C의 최저 기온과 극도로 건조한 공기가 있다.[3]

역사[편집]

나시크는 많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힌두교의 전통에 따르면, 그것은 사티아 유가(Satya Yuga) 기간 동안에는 파드마나가르(Padmanagar), 트레타 유가(Treta Yuga) 기간 동안에는 트리칸탁(Trikantak), 드바파라 유가(Dvapara Yuga) 기간 동안에는 야나스타나(Janasthana), 마지막으로 칼리 유가(Kali Yuga) 기간 동안에는 나바시크(Navashikh) 또는 나시크(Nashik)로 알려졌다. 나시크는 신화, 역사, 사회생활, 문화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 도시는 고다바리강 유역에 위치해 있어 전 세계 힌두교도들의 성지가 되었다. 아요디아(Ayodhya)의 왕 라마(Rama)는 아요디아(Ayodhya)에서 14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나시크)를 자신의 집으로 삼았다고 한다.

나시크 트램은 1889년경 나시크 로드 기차역으로 가는 주요 도로에 있는 구 시립 건물에서 시작되었다. 트램은 거의 44년 동안 나시크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트램 정류장은 메인 로드(Main Road)에 있었고, 전차역은 현재의 메인 로드(Main Road), 바드라칼리 시장(Bhadrakali Market), 가스바자르(Ghasbazar), 팔케 로드(Palke Road)를 거쳐 나식 로드(Nashik Road) 기차역에 도달했다. 거리는 약 8~10km에 달했고 당시에는 울창한 정글로 뒤덮여 있었다. 시인 쿠수마그라즈(Kusumagraj)는 나식-그때(Nashik-then)라는 글에서 트램에 관해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1900년대에 바나야크 사바르카르(Vinayak Savarkar)는 그의 형과 함께 마하라슈트라의 많은 단체 중 하나인 나식 미트라 메라(Nasik Mitra Mela)에 비밀 단체 아비나브 바라트(Abhinav Bharat)를 설립했다. 1909년 12월 21일, 아비나브 바라트의 일원인 아우랑가바드 출신의 학생 카네헤르(Kanhere)는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있던 나식의 주지사 A. M. T. 잭슨을 암살했다. 카네헤르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수사 경찰은 비나야크 사바르카르 등을 무장 반란 선동을 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건은 "나식 음모 사건 - 1910"으로 알려졌다. 봄베이에서 열린 법정 재판에서 경찰은 사바르카르를 수년에 걸쳐 음모의 두뇌, 움직이는 정신 및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봄베이 법원은 그에게 종신형, 악명 높은 안다만의 세포 감옥으로 이송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바르카르의 형 바바라오 사바르카르도 같은 형벌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양한 정도의 징역형을 받았다. ICS 장교 작슨의 암살은 푸나, 나식, 봄베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 후 사바르카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1931년 봄베이 지방 참카르 패리샤드의 회의가 나시크에서 조직되어 바바셰브가 참가하려고 했던 제2라운드 테이블 회의와 관련하여 참바르족의 입장을 정리했다. 1932년 바바사헵은 나시크에서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위한 사원 진입 운동을 조직했다.[4]

판다블레니동굴[편집]

판다블레니동굴(Pandavleni Caves)은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 나시크지역(Nashik District)의 나시크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는 동굴이다. 판다블레니동굴은 약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24개의 히나야나(Hinayana)사원동굴들이 모여 있는 동굴군이다. 이 동굴들은 1~2세기에 자이나교 왕들이 자이나교 성인들의 사당으로 지은 것이다.

동굴에는 불상과 보살상, 자이나교 티르탕카라 브리샤브데오(Teerthankara Vrishabhdeo)와 비르 마니바드라지(Veer Manibhadraji), 암비카데비(Ambikadevi)의 우상이 있다. 동굴이 판다블레니산(山)의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산과 똑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일부 동굴은 돌을 깎아 만든 사다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언덕의 기슭에서 사다리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동굴에 이른다. 판다블레니산 정상 역시 20분 정도의 짧은 도보로 도달할 수 있지만 그 길이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몇몇 동굴은 공간이 넓어서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고 설교를 듣는 비하라나 사찰로 사용되는데, 그 안에는 흥미를 끄는 조각들이 있다. 비하라 동굴들 가운데 한 동굴은 다른 곳보다 더 오래 되었고 조각의 세세함도 더욱 정교하며, 로나발라 인근에 있는 칼라동굴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동굴로 칼라동굴과 거의 연대가 비슷하며 특히 외관이 정교한 차이티야가 있다. 동굴은 입지 조건이 좋아 물 관리를 잘 할 수 있으며, 단단한 암석을 끌로 조각하여 멋진 물탱크로 쓰고 있다.

유일한 차이티야(사당)굴인 제18굴은 비교적 소형으로 높은 기단을 가진 스투파를 모시고 있으며 기원 전후에 개굴하였다. B.C.1세기의 제 19굴은 나시크 최고의 굴로 넓은 방 삼면에 두개 씩의 방이 있다. 2세기 전반의 제3굴은 기단 전면에 괴이한 인물 흉상을 조각하고, 난순무늬(欄楯模樣)가 있는 벽에 열주가 있는 정면랑이 외계를 격리하며, 열주의 주두(柱頭)는 여러 가지 동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후면 벽 중앙의 스투파에 있는 부조는 비하라(승원)의 불전화로 방향을 바꾼 것이라 생각된다.[5]

지도[편집]

인도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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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나시크〉, 《위키백과》
  2. 나시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Nashik", Wikipedia
  4. 나식〉, 《요다위키》
  5. 판다블레니동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국가
인도 도시
남아시아 도시
남아시아 지리
남아시아 문화
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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