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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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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물(飜譯物).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세계지리서. 1889년에 한글본으로 초판이 나왔고, 1895년에 학부에서 백남규, 이명상 등에게 명하여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했다. 규장각도서.

번역물(飜譯物)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겨 놓은 작품이나 출판물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번역문, 번역서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번역은 어떤 언어에 의한 저작물을 다른 언어로 된 상응하는 저작물로 대치하는 일이다.

이 때 전자의 언어를 소재언어(素材言語, source language), 그 저작물을 원전이라 하고, 후자의 언어를 목표언어(目標言語, target language), 그 저작물을 번역물(번역이라고도 한다)이라 한다.

언어가 음운·어휘·문법의 3요소로 성립되므로, 번역은 이론상 이 요소 하나하나에 따라서 행하여진 음운번역·어휘번역·문법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음운번역은 동양에서 예로부터 음역(音譯)이라 하여 불교의 다라니(陀羅尼)를 한자로 전사하는 것을 가리켜 왔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글창제 이후 한글로 다라니를 전사한 1485년(성종 16)의 ≪오대진언 五大眞言≫ 등 각종 진언집(眞言集)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번역은 소재언어의 어휘·문법 요소를 합치고 부분적으로 음운 요소를 고려하여 행해지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제되는 번역은 국어가 목표언어인 경우이지만, 간혹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번역의 목적은 소재언어의 독자가 원전에서 받은 인상과 의미내용을 목표언어의 독자가 똑같이 받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두 언어 사이에는 문화적 배경에 따른 어휘의 의미에 차이가 있고, 문법의 구조가 다르며 운율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되지 못한다. 내용 뿐 아니라 운율 등 언어의 형식미까지 추구하는 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므로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도 말한다.

컴퓨터에 의한 기계번역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지만, 현단계에서는 자연과학의 보고서와 같이 간단한 언어구조로 된 저작물에 대하여 가능할 뿐이다.

번역은 외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요구된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번역은 중국어나 한문을 통한 중국문화와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특히 한문을 받아들인 초기부터 그것을 읽고 이해하려 하였을 것이므로 번역이 행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8세기의 설총이 9경(九經)을 우리말로 읽었다는 것(삼국사기 권46)이 최초의 일이다. 이 기록의 해석에는 문제가 있으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한문의 번역과 관련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존하는 최초의 번역서는 이두로 번역된 1395년(태조 4)의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이다. 그 밖에 이두에 의한 번역으로는 1415년(태종 15)의 ≪양잠경험촬요 養蠶經驗撮要≫, 1541년(중종 36)의 ≪우마양저염역치료방 牛馬羊猪染疫治療方≫ 등이 있다.

한글에 의한 번역은 '역해(譯解)·번역(15세기에는 '反譯'이라 쓰이기도 하나 독음은 '飜譯'과 같다.)·번서(翻書)·언역(諺譯)·석(釋)'이라고도 하였으나, 보통 '언해(諺解)'라 불리었다.

언해는 ≪석보상절 釋譜詳節≫(1447)이 가장 빠르지만, 다른 언해와는 달리 원전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훈민정음언해 訓民正音諺解≫·≪능엄경언해 楞嚴經諺解≫를 그 효시로 삼는다.

이 책들은 한 대문씩 한문의 원전을 보이고 번역을 대조하여 실었다. 번역문은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였는데, 후대의 언해서에서는 한글만 사용하는 일도 있었으나 원전과 번역의 대조는 그대로 따랐다.

이러한 언해는 개화기까지 유교·불교·의약 등 각종 문헌을 대상으로 행하여졌다. 고대소설·가사·시조 등 문학작품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한글 문헌은 거의 언해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한글에 의한 번역은 한문이 아닌 동양의 외국어, 즉 몽고어·만주어·일본어의 학습서에 대하여도 행하여졌다. 중국어 학습서의 번역은 간혹 '번역'이라고 하는 일도 있으나 주로 '언해'라 하였는데, 몽고어 등의 번역은 '번역·신석(新釋)·첩해(捷解)'라 하여 언해라 하지 않았다.

19세기에 서양의 문물과 예수교가 수입되면서 번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 전까지 번역의 대상은 한문서적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 때부터 서양어 서적으로 바뀌게 된다. ≪텬쥬셩교공과 天主聖敎工課≫(1862) 등 예수교의 서적과 ≪imagefont민필지 士民必知≫(1895) 등 계몽서를 비롯한 각종 번역서가 잇따라 간행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서양의 학술서와 예술작품 등 다방면에 걸친 번역이 행하여졌는데, 처음에는 중국어나 일본어의 번역을 다시 국어로 번역하는, 이른바 이중역(二重譯)이었으나 차차 서양어로부터 직접 번역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서양어의 번역은 언해서의 체재와는 달리 번역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뜻에서의 번역은 서양문물이 들어온 뒤에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언해라 할 수 없는 ≪석보상절≫은 한문으로 된 원전이 전하지 않으나 국어 번역의 가장 빠른 시도라 해야 할 것이다.

번역 양식은 전통적으로 직역(直譯) 또는 축자역(逐字譯)과 의역(意譯) 또는 자유역(自由譯)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기는 어렵지만, 직역이 원전의 형식에 충실한 데 대하여 의역은 그 내용에 충실한 것이라는 정도의 상대성을 통해 구별된다.

이러한 뜻의 직역과 의역은 한 원전에 대한 번역물이 둘 이상일 때 쉽게 대응시킬 수 있다. 예컨대, ≪소학 小學≫은 먼저 ≪번역소학 翻譯小學≫(1518, 중종 13)으로 번역, 출판된 지 약 60년 만에 ≪소학언해 小學諺解≫(1587, 선조 20)로 다시 번역되었는데, 전자가 의역이고 후자가 직역이다.

≪소학언해≫의 범례에 의하면, ≪번역소학≫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주석까지 본문에 넣어 번역한 결과로 글이 산만하여졌으므로, ≪소학언해≫는 전적으로 원전에 의거하여 축자역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직해(直解)로 뜻이 통하지 않을 경우는 협주(夾註)를 한다고 하였는데, 이 협주는 현대의 각주(脚註)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각주는 서양의 직역 번역물에 나타나는 한 특징이다.

그 밖에 직역으로 된 ≪소학언해≫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① 번역문에 한자어가 많고 고유어가 줄어들며, ② 단어와 어구의 품사적 성격을 되도록 원전과 같게 하며, ③ 문맥을 분명하게 하여 주는 단어, 이른바 전이어(轉移語) ‘imagefont, 시러곰’ 등을 의역보다 많이 사용하며, ④ 경어법의 사용을 상당히 억제하는 일이 그것이다.

따라서 의역인 ≪번역소학≫에는 고유어가 많고 명사적 어구가 동사적 어구로 바뀌기도 하며, 전이어 등을 사용하지 않고, 또한 경어법을 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번역을 구어에 상당히 근접시켜 놓았다. 이들 두 책이 보이는 특징이 곧 직역과 의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번역양식을 역사적으로 보면 이두에 의한 번역은 내용상 의역이지만 언해서의 번역은 거의 직역이었다. 한 원전에 대한 언해서가 둘인 경우에는 앞선 번역이 의역이었고 뒤의 번역이 직역이었으며, 언해서가 하나뿐인 경우에는 대체로 직역이었다. 한편, 개화기 이후에 행하여진 번역은 언해서보다 의역이라 할 것이다.[1]

번역물 저작권[편집]

번역물에도 저자권은 있다. 번역물이 창작물일 경우 단순 해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번역자의 개성과 창작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창작물에 인정되는 권리이다. 번역문은 원작은 아니지마 번역을 하는 과정에 번역자의 창작성이 투영되기 때문에 저작권이 인정된다. 다만 원작자가 있으므로 원작자와 번역자 사이에 관계가 문제된다. 즉 번역자가 원작자의 허락없이 번역을 하면 저작권 위반이 된다.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번역을 할 때에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번역을 해야 한다. 허락이란 단순이 '번역해도 좋다'는 말이 될 수 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저작권사용료를 지급하여 허락을 받게 된다. 모든 일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다. 해외 사이트를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그 해외 사이트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약간의 저직권료를 지불하고 번역해야 저작권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

번역물 저작권 성립조건

번역이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라기 보다는 원저작물에 담겨진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해석하는 것이다. 번역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변형으로써 창작적 행위이며 그 결과물은 창작물이 된다. 저작권법에서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 즉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다. 번역가의 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저작물의 창작적 표현의 번역을 넘어서는 번역가의 창작적인 표현이 부가되어야 한다.

번역이 2차적 저작물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창작과 마찬가지로 번역가창작성이 요구된다. 창작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번역과정에서 번역가의 창작적 기여, 즉 문맥과 흐름에 맞는 어휘의 선택과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계번역은 번역과정에서 어휘의 선택이나 표현을 다르게 만들어내는 행위가 들어가지 않는다. 즉, 기계번역 그 자체에 창작적 기여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2차적 저작물이 되기 어렵다.

저작권법 제5조(2차적 저작물)
①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하 "2차적저작물"이라 한다)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② 2차적 저작물의 보호는 그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번역물은 '저작권법 제5조 (2차적저작물) ①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하 "2차적저작물"이라 한다)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에 의거하여 2차적 저작물이다. 그리고 동법 '(2차적저작물작성권) 저작자는 그의 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에 의해 2차적저작물은 원작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2][3]

논쟁[편집]

학계에서 지명도가 있던 어느 교수가 돌연 "나도 표절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글을 일간지에 발표하여 충격을 주었다(문화일보 1994년 8월 9일자). 내용인 즉슨 자신이 1986년 3월 어떤 책을 출판하였는데 동경대 출판부가 1976년 8월 펴낸 책을 번역·첨삭하고 한국 것을 추가하여 저서처럼 펴냈다는 것이다.

그 책 서문 말미에도 "본서는 주로 일본 동경대학에서 가르치는…(제호 생략)…교과서와 저자가 발표한 논문들을 정리하여 꾸며 보았다"고 씌어 있다. 만일 그 책에서 일본책을 번역한 부분(5/8 분량)의 집필자 6명 이름을 표시하고 새로 추가한 부분(3/8 분량)에만 자신의 이름을 썼더라면, 그리고 아무개 '편역서'로 출판하였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사안이다.

하지만 그 책은 아무개 '저서'로 둔갑하여 출판되었고 실제 집필자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당시의 느슨한 기준을 감안하더라도 명백한 표절이고 연구윤리 위반이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법학에서도 번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저작자와 번역자를 구분하여 표시해야 한다는 '철칙'을 전제로 한다. 위 사안처럼 번역서를 저서로 뒤바꾸는 변신술을 펼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저작권법상 원저작자에게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있다.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번역하여 출판하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속하는 번역권 침해 책임을 져야 한다.

1957년 저작권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행된 경우가 아닌 한 외국인의 저작물을 보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전면 개정한 1986년 저작권법은 한국이 당시 가입한 세계저작권협약(UCC)의 '불소급 보호원칙'에 따라 UCC의 국내 효력발생일(1987년 10월 1일) 전에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종전처럼 보호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만을 보호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 효력발생일 전에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에 대해 '소급 보호원칙'을 규정한 WTO/TRIPs 협정과 베른협약에 가입하면서 1987년 10월 1일 전에 공표된 외국인의 저작물도 1996년 7월 1일부터는 보호하게 되었다('회복저작물'의 '소급 보호' 문제).

이러한 외국인의 저작물 보호 변천사에 따르면, 앞서 소개한 사안은 원저작물에 해당하는 일본책이 1976년 공표되었고 번역물은 1986년 3월 출판되었으므로 그 당시의 저작권법에 따르면 그 일본책은 한국에서 보호되는 외국인의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표절에는 해당하더라도 원저작자의 번역권 침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한국이 저작권 보호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던 그 무렵에도 원저작자로부터 번역권 허락을 받고자 애쓴 모범적 사례가 없지는 않다.

칼 슈미트가 1928년 발표한 <헌법이론>을 번역하여 1976년 출판한 헌법학자 김기범 선생의 경우이다. 당초 연락이 여의치 못해 번역출판부터 감행하였으나 출판 직후에 당시 90세의 고령이던 슈미트와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번역권에 대해 추인을 받았다(프라이부르그법대 유학인회 엮음, <회상의 프라이부르그>, 1993년, 125~127면 참조).

번역에는 오역 논쟁도 뒤따른다. 번역상의 오류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오역의 혐의가 짙은 것들을 선별하여 펴낸 번역비평서도 있고 단어별로 정리한 오역 사전까지 존재한다. 문학이나 철학처럼 치열하지는 않지만 법학에서도 특히 로마법 분야에서는 번역 오류를 둘러싼 논쟁이 간혹 벌어진다. 감정적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모든 논쟁은 바람직하다.[4]

각주[편집]

  1.  〈번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Spike Lee, 〈번역자의 저작권〉, 《저작권스쿨》, 2019-11-18
  3. 김윤명 법무법인 원 전문위원, 〈기계번역은 2차적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는가?〉, THE AI, 2023-04-24
  4. 박성호 한양대 로스쿨 교수, 〈번역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 양상, 표절·저작권 침해·오역〉, 《법률신문》, 2023-12-2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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