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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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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scenario)는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쓴 각본으로 장면이나 그 순서, 배우의 행동이나 대사 따위를 상세하게 표현한다.

또 시나리오는 어떤 사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상적인 결과나 그 구체적인 과정을 말한다. 이 본문에서는 영화의 대본 시나리오에 대해서 다룬다.

시나리오는 영화 대본을 의미하며 글로 표현된 스토리를 영상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다른 표현으로 스크린플레이 또는 스크립트라고 한다. 시나리오는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위한 기본 지침서이자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여 제작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한다. 또한 시나리오 페이지 양과 제시된 장면들은 제작비 예산계획의 기초가 된다. 시나리오의 역할은 스토리의 뼈대를 만들어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정서를 영상을 통해 전달하여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시나리오의 개념[편집]

영화의 대본. 각본(screen play)이 영상의 묘사뿐만 아니라 카메라 위치, 조명, 사운드 따위에 관한 사항까지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데 비해 시나리오는 일반적으로 문학성을 강조한 것으로, 글로 된 대본을 말한다. 이런 구분이 분명치 않을 때도 많은데 실제로 시나리오는 각본의 토대가 되는 대본 혹은 각본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나리오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극적인 대사와 행위를 통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최종적으로 영화를 창조하는 데 구조적 뼈대로 기능할 선텍스트(pre-text)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시나리오는 영화 제작과 관련한 사람들에게 영화의 아이디어를 보여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연기자, 제작자, 감독 등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영화화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시나리오에는 영화의 주제와 이야기, 등장인물의 성격 등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시나리오의 이야기는 서두부와 중간부, 결말부로 구분되어 이 구조 속에 영화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담긴다.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scenario)라는 용어는 신(scene)이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신은 연극에서 한 장면 한 막을 가리키는 것인데 영화에서 한 단위의 시간과 한 단위의 공간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영화의 모든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모여 전체 영화를 이룬다. 이렇게 이야기에 따라 진행되는 영화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신으로 구분되는 장면들이고, 이 장면들에 대한 지시나 기록 내용들이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기본 토대가 된다. 시나리오는 무성영화 시대에는 단지 촬영용 메모로만 사용되었으나 1920년대 이후 영화가 장편이 되면서 그 형식과 포맷이 규격화되었다.

영화제작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배우에 의해 표현되는 대사와 행동을 알려 주고 지시하는 지문으로 구성된다. 인물 소개, 성격, 성장 환경, 습관,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도 시나리오로 전달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또한 촬영할 때에 지시하는 특정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앵글, 후반 작업 과정에서 다루게 될 특수 효과나 컴퓨터그래픽 처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시각 정보도 함께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영화제작의 설계도다. 이 정보들은 시각적으로 보여 줄 것들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진다.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영상으로 보여 줄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비유나 상징이 아닌 정확하고 객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시나리오를 읽을 때 독자나 영화제작에 관련된 이들은 묘사된 장면들을 시각적인 경험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사유, 세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표현한다. 작가는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통해 작가 자신의 자라온 환경, 가치관, 정서, 문화 등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독창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또한 시나리오는 개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만 거기엔 영화적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하나의 완결된 문학작품이자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설계도다.

하지만 영화는 극장에 걸리고 관객이 돈을 내고 보아야 하는 산업적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약 2시간이라는 산업적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이야기와 캐릭터의 심층 묘사는 물론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 요소들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배치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깔끔한 끝맺음 혹은 놀라운 반전 혹은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관객들에게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credit)가 올라가는 순간 만족감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구축에 굳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신이나 대사가 발견되기 시작하면 훌륭한 시나리오의 자격에서 멀어진다. 특히 시나리오에서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상당 부분 좌우한다.

시나리오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실제 제작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라면 감독이 직접 프로듀서나 제작자를 만나겠지만, 전문적인 시나리오작가는 감독을 먼저 설득하여 적절한 제작자를 만나는 기회를 앞당길 수도 있다. 만약 영화사가 주도하여 개발된 기획 영화의 시나리오라면 우선 프로듀서와 작가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나중에 감독을 찾기도 한다. 그런 때에는 제작사에서 시나리오 청탁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어쨌든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의 첫 번째 통과의례는 수많은 영화 관계자를 만나고 설득하는 것이다. 캐스팅도 영화제작이 실제 들어갈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하고 까다로운 단계이므로 시나리오로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가 제작 가능성에 대한 조건을 훌륭히 충족시킨다면 제작자나 투자자를 설득하여 영화가 실제 제작에 들어가게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시나리오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제작비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항목들은 제작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들이다.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늠하는 것은 프로듀서나 제작사, 투자사들이 제작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단 제작비가 산출되면 경험 많은 프로듀서들은 어렵지 않게 예산 편성 계획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문학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이뤄지는 이야기 전달과 캐릭터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제 촬영 현장에 대한 프로덕션 진행과 후반 작업에 대한 지시며, 이 과정에서 발생할 모든 예산의 견적서이기도 하다.

영화 시나리오의 고유한 특성[편집]

시나리오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한 영화는 연극이나 무용과 같이 청각과 시각을 모두 사용한다. 연극과 영화가 갖는 공통점은 둘 다 시청각을 모두 사용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이다. 음악은 청각으로, 미술은 시각으로, 문학은 글로 머릿속 상상의 공간으로 확대되며 텍스트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한편으론 영화는 연극과 달리 무대라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사막, 우주, 미래 시대 또는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벌어진 1000년 전의 전설 등 사실상 모든 이야기가 가능하다. 따라서 영화가 연극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매체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영화의 특징 중 소설과 닮은 이야기다.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캐릭터를 내세워 허구적인 사건을 개연성 있게 풀어낸 것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쇠퇴하면서 마지막에는 결말을 맞이하는 완결성을 갖는다. 소설은 문자라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는 영상, 즉 시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마음에는 한 편의 영화가 그려진다고 표현해도 무색할 만큼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이것은 시각적인 것으로 치환된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읽는 사람에게도 같은 연상 작용이 발생하며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발생한다. 왜냐하면 대사와 지문의 가시적인 성격 때문에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적어도 등장하는 하나의 신 안에서는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는 영화로 시각화할 것을 글로 미리 풀어 쓴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있다. 먼저 시나리오는 영화화 하는 것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물론 시나리오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완결된 예술 작품 요소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각적인 형상화를 위한 설계도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배우가 허구의 캐릭터를 구체적인 연기로 카메라에 담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허구적 상상력의 현실적 재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수하게 문자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작가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상세할지라도 여전히 허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며 문자에서 생성되는 추상적인 기호를 독자 스스로 직접 해독하고 시각적인 기호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 실체를 가질 수 없다.

이런 차별성 때문에 시나리오는 훨씬 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소설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명확하다. 한편 시나리오작가에게는 그만큼 집요할 정도로 디테일한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때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능력이 요구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스스로 말을 하며 행동하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건에 반응하며 언제 어디서 등장하여 언제 어디로 퇴장하며 어떤 옷을 입고 있으며 빠른 속도 아니면 느린 속도로 걷는지 등 섬세한 창조가 필요하다. 독특한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만큼 개별적 존재에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연극과 차별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연극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 위에서 펼치는 공연 형태의 예술이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무제한으로 비약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연극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와 영역까지 영화는 시각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을 마치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 힘이다.

더 나아가 영화의 시각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영화관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는 이미지의 장엄한 스펙터클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에서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가 프레임이다. 프레임 안과 밖의 공간들을 이용하여 감독은 이미지의 집중과 분산을 반복하며 관객이 화면과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한다.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의 의도가 관객에게 강제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로, 프레임이라는 사각 틀 안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반대로 화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관객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보여 주기와 숨기기를 위한 선택은 언제나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진행되며 언제나 우리에게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다음으로는 몽타주 표현이 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 서사성은 물론이고 연결된 숏들이 유추나 암시, 연상에 의해 다양한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편집을 이루는 기본 바탕이 된다.

영화 시나리오는 대사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서술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의 묘사보다는 사건이나 특정한 행위에 대한 시각적 묘사로 진행된다. 그런 면에서는 소설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상상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여전히 허구성을 갖고 있다.

시나리오 창작[편집]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시놉시스-트리트먼트-시나리오의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다. 시놉시스(약 A4 반 장에서 3장)가 트리트먼트(약 A4 10장에서 15장)를 거쳐 시나리오(약 A4 65장에서 120장)로 발전한다. 할리우드에서는 1장의 시나리오가 1분으로 정확히 계산되지만 국내는 시나리오의 상태에 따라 다소 변수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은 시나리오 작성 양식이 정해져 있어 양식에 맞추어 작성되지만 국내는 '어떤 내용이 어떻게 배치되어야 한다'라는 인식의 척도는 있으나 규격화되어 있지는 않다. 기본으로 한 페이지 또는 한 신 정도가 촬영 1분 정도의 시간에 맞추어 작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규격화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극영화와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 각 영화의 장르적 특성에 맞추어 시나리오 작성에서 다소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할리우드처럼 정확하게 양식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량을 정하자면 대략적으로 A4 3분의 2장 분량의 시나리오가 1분 정도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제작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로버트 앨트먼(Robert Altman) 감독의 <플레이어>에서 주인공인 그린핀 밀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찾아와 구상 중인 시나리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자 "25단어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 이것은 할리우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시나리오는 아이디어 선택이 중요하다. 만약 25단어로 요약이 안 되면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의 구성[편집]

영화 속 이야기를 보여 주기 위해 쓴 글이 시나리오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완성 이전 대강의 줄거리를 요약한 시놉시스와 시나리오 형식의 바로 전 단계인 좀 더 상세한 장면 묘사가 된 트리트먼트라는 단계를 거쳐 완성한다. 장편영화를 위한 시나리오에는 보통 신이 150~200개 있고 플롯의 구성이나 배우의 대사, 지문 그리고 화면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

신은 시나리오에서 가장 최소 단위인데 실제로 영화에서는 장소와 시간이 일정하게 진행되는 하나의 단위인 쌀보다 더 작은 단위인 숏이 존재한다. 이 숏은 카메라가 한 번 촬영하면서 컷되는 순간으로 구분된 가장 최소의 단위다. 이 숏들이 모여 벽돌이 하나의 큰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큰 단위의 영화가 구성된다. 카메라 움직임의 최소 단위인 컷(cut) 혹은 숏(shot)들은 영화에서 필름의 조각을 가리키는데 이런 숏들이 모여 시나리오의 최소 단위인 하나의 신을 이루게 된다. 신에는 시간과 장소라는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며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있게 되면 신도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신에서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사와 지문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들이 몇 개 모여 하나의 이야기 단위인 시퀀스(sequence)를 이루게 되는데 시나리오란 시퀀스들의 조합과 배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는 대부분의 영화와는 달리 이런 시퀀스들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합하여 과거의 사건들을 보여 준다. 소설가였던 감독이 직접 쓴 이 사니리오에는 첫사랑 순이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주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사회적인 메타포를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은 이전 작품인 <초록 물고기>에서도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 부서져 가는 가족사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의 선형 구조를 뒤집어 비극적 삶의 결과를 가져온 근원을 찾음으로써 결국 야학 시절의 가장 순수했던 마음을 잃고 한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점점 타락해 가며 어쩔 수 없이 운명에 휘말려 든 한 개인의 비극을 묘사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시간과 공간의 비약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달라진 배우의 얼굴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 주고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끌어내는 방식은 탁월하다. 예로 제시할 <박하사탕> 시나리오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기차와 커지는 영호의 얼굴 그리고 기차에 치이는 장면이 몽타주 기법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박하사탕 <시나리오>
9. 철교 아래(외부, 낮)
철교 아래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극단적으로 보인다.
이제는 기적소리가 아니라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까지 들린다.
남자1: <(철교 위를 쳐다보며) 야! 내려와>
남자6: <늦었어, 늦었어. 언제 내려와>
남자5: <저 친구 정말 죽을려는 거 아냐>
여자6: <엄마, 어떡해? 어떡해?>
기차 소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사태는 분명해졌다. 철교 한가운데에 있는 그가 이제는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시간이 늦:어 버린 것이다.
남자2: <뛰어내려!>
남자3: <야! 뛰어내려! 괜찮아! 뛰어내려!>
10. 철교 위(외부, 낮)
철교 한가운데 서 있는 영호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선 채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철교 아래에서 뭔가 아우성치는 친구들. 극단적인 부감.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
11. 철교 아래(외부, 낮)
경악한 사람들의 얼굴 위로 요란한 기적 소리와 열차의 바퀴 소리가 육박해온다.
12. 철교 위(외부, 낮)
영호의 얼굴 CLOSE UP. 그의 앞으로 검게 입을 벌리고 있는 터널 구멍이 보인다.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와 함께, 터널의 어둠 저쪽에서 다가오는 불빛이 보인다.
이윽고, 기관차의 앞머리가 나타난다. 영호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는다. 차츰 다가오는 열차. 영호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는다. 차츰 다가오는 열차.
영호, 다시 뭔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소리를 기차의 요란한 기적 소리가 덮어버린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점점 커지는 열차와,
들리지 않은 소리를 절규하는 그의 절박한 얼굴에서….
STOP.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기차 소리는 점차 낮아진다.
수초 동안의 암전 상태에서 기차 소리가 사라지며 맑고 잔잔하며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13. 달리는 열차(외부, 낮)
짧은 F.I와 함께,
달리는 열차의 정면에서 보는 시점 숏.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끝없는 철도 침목들과 선로 좌우의 풍경들.
자세히 보면 풍경 속의 움직임이 거꾸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하늘을 나는 새 떼들이 역동작으로 철로 옆 숲으로 내려앉아 마치 기차가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듯.
십 초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암전.
미리 말해두지만, 이제부터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과거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틀 전, 한 달 전, 또 이 년 :전, 오 년 전….
그리하여 마침내 20년이란 시간을 역류해서 마지막엔 20년 전의 어느 순간,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때의 모습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마치 사진첩의 맨 뒷장에서부터 거꾸로 펼쳐보듯, 한 남자의 20년 동안에 걸친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점점 젊어지고, 세월이 만든 오염과 타락의 때를 벗으며 젊음의 순수함을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두터운 녹을 벗겨낸 은(銀)식기가 조금씩, 조금씩 그 영롱하고 맑은 광택을 드러내듯이.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아름다움과 순수한 사랑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위 시나리오에서 보듯, 10신에서 철로 위에서 자살하려는 영호의 모습이 보이고 12신에서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와 터널의 불빛이 커지면서 다가오는 열차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영호를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열차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모든 것이 멈춰지고 기차 소리가 점차 낮아진다. 이 시나리오는 감독이 직접 자신이 연출할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라 구체적인 연출 기법이나 미학적 원칙들이 지문으로 표현되었는데, 13신에서는 기차 소리가 줄어들고 평화로운 음악이 등장하며 왜 작가가 시간을 역순으로 밟고 올라가 주인공의 잃어버린 순수를 드러내고자 하는지에 대한 주제 의식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나리오 양식[편집]

시나리오 양식 예시

시나리오의 묘사는 심플하고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써야 한다. 소설은 과거형 작법이지만 시나리오는 현재형 작법이다. 시나리오를 쓰려면 동기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시나리오 창작을 위한 정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력을 가지고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나리오는 소설, 시와 달리 양식이 있다. 시나리오는 작법 기술을 필요로 하는 창작 작업이다.

시나리오 양식은 헤드라인, 대지문, 소지문, 등장인물 이름, 대사, 장면전환으로 이루어진다. 헤드라인은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그리고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지를 알려 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대지문은 신의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헤드라인 다음에 설명된다. 등장인물은 대지문 다음에 나온다. 등장인물 괄호 안의 소지문은 인물이 대사하는 상황에서 특별하게 부각되는 행동이나 심리 상태를 표현한다. 매번 표현할 필요는 없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그다음은 대사를 표기한다. 마지막으로 장면전환을 표시한다. 장면전환은 신과 신을 연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장면전환 용어는 컷투(cut to), 페이드인·아웃(fade in·out), 디졸브(dissolve to), 플래시 백(flash back) 등이 주로 쓰인다. 그 밖에 오프 스크린(off screen)은 화면에 인물이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표현할 때 쓴다. 인물의 목소리는 화면 밖에서 들리는 TV, 라디오, 음악, 동물 소리들도 포함된다. 보이스 오버(voice over)는 화면에 인물이 보이지 않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 또는 인물이 보이지만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쓴다.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을 위한 연습과 습작[편집]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이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 흔히 연습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문학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시나리오 베껴 쓰기’다. 어느 장르든지 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는 언제나 선배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무작정 따라 베끼는 방법이 사용된다. 미술대학에 진학하는 입시생들이 석고상을 지겹도록 그려야 하는 교육 방식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래야만 하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쓰려면 훌륭한 시나리오를 베껴 쓰는 습작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출판된 시나리오 서적을 구입하여 그 시나리오를 손으로 옮겨 쓰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옮겨 써 본다. 이런 모사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를 읽을 때와는 다른 쓰기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고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형식과 친숙해질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구해 반복 재생해 보면서 그것을 시나리오 형태로 옮겨 적는 습작을 시도해 보자. 그리고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해 본다. 그러면 자신이 영화를 보고 이를 문자로 옮긴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유사한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습작 방법은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된 영화를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어떻게 대사와 지문을 구성해야 할지에 대한 도움을 실제로 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00편의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모범 교재로 삼을 만한 영화를 한 편 정해 놓고 그 영화를 100번 반복해 보는 편이 영화 시나리오 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 처음 영화를 보면 그에 대한 인상만 머릿속에 남지만 반복해 보면 이야기의 구조, 캐릭터 설정, 사소한 대사가 가진 의미와 상징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단조롭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습작의 단계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때로는 치밀하고 구체적이면서도 반복적인 학습도 필요하다. 시나리오작가는 예술가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면서 영감도 필요하지만 그 영감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술도 필요하다. 옛말에도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좋은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가 그려 낼 삶과 사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많이 써 봐야 언젠가 멋진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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