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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위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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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들의 사진 (1원과 5원은 현재 통용되지 않음)

대한민국 원(Korean Won) 또는 간략히 대한민국통화이다. 1902년에서 1910년 사이에 "원"이라는 이름으로 통화가 최초로 유통되었으며 대한민국의 통화로 등장하는 것은 1945년에서 1953년 무렵이다. 현재의 원화는 1962년에 도입되었다. 圓(원)이라는 한자 표기는 1953년 화폐 개혁 이전에 사용하던 표기로서, 지금은 예전의 원과 구별하기 위해 한자 없이 한글로만 표기한다. 원화의 하부 단위로 1/100의 가치를 지닌 "전"(錢)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회계용으로만 사용된다. ISO 4217 코드는 KRW이고 기호는 ₩을 사용한다. 영문 표기는 WON이다.

개요[편집]

대한민국 원은 대한민국의 통화이다. 긴급통화조치법에 따라 기존의 환을 대체하여 통용되어 오다가, 아예 한국은행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었다.

ISO 4217 국제표준화 화폐코드는 KRW이고, 약식 기호로는 ₩와 같이 나타낸다. 통념과는 달리 이 원(Won)에 대응하는 공식적인 한자는 없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圓을 썼지만 몇 차례의 화폐 개혁을 거치면서 공식 한자 표기를 없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元을, 대만에서는 圓을, 홍콩에서는 圜을[1] '원'의 한자 표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통화와 구별하기 위하여 '韓'을 앞에 붙여 '韩元' 또는 '韓圓', '韓圜' 등으로 표기한다. 대한민국 원이나 대한민국 환, 일본 엔, 중국 위안 등은 전부 기원이 같은 단위로, 과거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화폐가 주로 동그란 동전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데 실제로는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은화가 명에 들어오면서 국제적인 기준화폐로 사용되었는데 이 스페인 은화가 기존의 동아시아의 은화와달리 동그란 모양을 하고있어서 은원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원이라는 단위가 유래되었다.

보조단위로는 전(Jeon)이 있는데, 환율 계산 등에만 사용될 뿐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한국은행법 제47조의2(화폐단위)
①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
② 원은 계산의 단위가 되고 100전으로 분할된다.
③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④ 전은 영문으로 JEON으로 표기한다.
[본조신설 2012.3.21.]
단위 입력하기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므로 공식 서한 등에서는 통화 코드인 KRW를 사용하는 편이다.

역사와 권종[편집]

1기[편집]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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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권

(1950. 7. 22.)

경복궁 광화문 당초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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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권

(1950. 7. 22.)

이승만 당초 문양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들어낸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1달러 = 1,800원. 하지만 2주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전쟁 초반 북한군이 사흘 만에 수도 서울까지 점령하매 예상치 못하게 급히 피난을 가느라 겨우 금괴 1.1톤과 은괴 2.5톤만을 건지고 겨우 철수했고,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한국은행을 접수하고 나니 나머지 금괴 0.2톤과 은괴 16톤, 그리고 한국은행이 아직 미발행한 지폐 105억 원 어치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폐를 발행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장비를 다 방치하고 피란을 떠났기에 인민군은 105억원의 미발행권은 물론 앞으로도 무한히 조선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이 불법적으로 인쇄, 유통한 미발행 천원권

이걸 그대로 꿀꺽한 북한은 남한 정부의 경제를 마비시킬 작정으로 미친 듯이 미발행권을 뿌리고 그걸로도 부족해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설비를 이용해 미친듯이 조선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전시에 적군에 의해 아군의 화폐가 무참히 발권되는 상황이었으니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공식적 첫 은행권 출범은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이승만 한복 1000원권'과 '광화문 100원권'. 기존의 '조선은행 원'과 같이 사용이 가능한 통화였다. 당시 천원권의 경우에는 지폐의 판 번호 1번부터 500번까지는 일본에서 인쇄했고 판 번호 501번 이후는 한국에서 인쇄했다. 그래서 일본인쇄권과 한국인쇄권은 품질이 다르다. 판 번호 500번까지 일본에서 인쇄된 이유는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전시의 급박한 상황 덕분이다. 물론 기술력도 일본이 한국보다 낫긴 했지만, 중요한 건 상술했듯 적군이 아군 지폐를 무자비하게 조폐한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정부는 기존의 지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단시간 내에 새로운 도안을 만들고 대량인쇄를 해야 했는데, 상술했듯 인쇄설비는 다 서울에 두고 왔고 직원들은 한참 피란 중이라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인이 안 되었다.

때문에 6월 29일, 한국은행 구용서 총재는 도쿄지점에 전화를 걸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본 대장성을 통해 새 도안을 가진 100원권 및 1,000원권 지폐를 대량 인쇄, 그것도 보름 내로 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주었다. 도쿄 지점의 김진형 부총재는 지시를 받자마자 대장성이 아닌 GHQ에 쳐들어가 미군에 상황의 급박함을 읍소했고,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하고 있던 GHQ는 대장성에 최대한 빨리 새 도안을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는 일본 내에서도 사회주의자를 탄압하는 레드 퍼지가 극에 달하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 파업이 심하던 때라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에 대장성 인쇄청장 이지치 다쓰오(伊地知辰夫)는 이럴 때에 연합군에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일본이 살 길이라며 전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밤샘 특근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신도안은 단 이틀 만에 튀어나왔고[6] 도안이 확정된 후 지폐 인쇄작업이 시작되었는데 GHQ에서 급파한 미군 병력들이 인쇄소를 쳐들어가 노동자들에게 총을 겨누며 독촉할 지경이었다. 그 바람에 보통 6개월은 걸리는 작업이 열흘 만에 끝났고, 결국 7월 13일에 1차 인쇄분이 미군 수송기편으로 부산 수영비행장을 통해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부터 1950년 7월 20일까지 피난자금으로 조선은행권의 긴급인출(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하고, 적이 불법으로 유통시킨 조선은행 미발행 1000원권과 북조선중앙은행권은 무효로 간주한 다음 1950년 9월 15일부터 1950년 9월 22일까지 한국은행권의 긴급교환(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했다.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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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원권

(1952. 10. 10.)

이승만 파고다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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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천원권

(1952. 10. 10.)

이승만 파고다공원

1952년 완전히 서울을 되찾았을 때 10월 10일 긴급히 조선은행권을 이승만&파고다 공원 1,000원권/500원권 (국내 생산인 두 번째 시리즈)과 교체해주며 무마하려 했으나 이미 통화시스템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바람에 유명무실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5일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때 환율은 1달러=6000원.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 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에 따르면 도매물가지수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만 배만큼 폭등했다.

이 시기가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당대 생존인물인 이승만을 화폐도안에 올린 사례다. 환 시절에는 한창 집권기였으니 당연히 올라갔다.

2기[편집]

대한민국 환화폐개혁으로 폐지하고 난 뒤의 1962년부터 발행된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물론 역사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실제로 사용하려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외국 시중은행이나 환전소에서 구권, 현행 지폐 환전이 가능하지만 동남아에서는 현행권만 환전이 가능하다. "전(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지폐[편집]

1차 (영제권)[편집]

1962년 6월 10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내놓았다. 조선 엔과 달리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9] 조선 엔 및 대한민국 환과 교환하는 비율은 1000엔=10환=1원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10][11]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 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이다.

1차 시기 지폐는 영국과 프랑스의 조폐 회사에서 도안, 제작했다.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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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전권

(1962. 12. 1.)

당초 문양 액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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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전권

(1962. 12. 1.)

당초 문양 액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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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권

(1962. 6. 10.)

한국은행 휘장 액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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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권

(1962. 6. 10.)

한국은행 휘장 액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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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십원권

(1962. 6. 10.)

한국은행 휘장 액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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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십원권

(1962. 6. 10.)

총석정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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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백원권

(1962. 6. 10.)

독립문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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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백원권

(1962. 6. 10.)

숭례문 횃불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 글꼴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물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 (옛 10환단위 미만)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이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19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라면 1개 10원, 서울에 집 한채 혹은 고급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2차[편집]

1960년대를 주름잡던 권종들이다. 오백원권이 최고액권이었으며, 아직 10원, 50원, 100원 주화가 등장하기 전이다.

2차 시기의 지폐는 영국의 조폐 회사에서 도안, 제작했다. 세종대왕의 도안을 보면 서구형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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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십원권

(1962. 9. 21.)

첨성대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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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십원권

(1969. 5. 21.)

파고다공원 횃불,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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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백원권

(1962. 11. 1.)

독립문 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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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백원권

(1965. 8. 14.)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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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백원권

(1966. 8. 16.)

숭례문 거북선
  • 2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 → 나 백원권 → 다 백원권 → 나 오백원권 → 나 오십원권 순서이다.
3차[편집]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되고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여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오십원, 백원 주화가 발행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또한 이때 천원, 오천원, 만원권 지폐가 처음 나오면서 고액권 지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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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백원권

(1973. 9. 1.)

이순신, 거북선 현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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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천원권

(1975. 8. 14.)

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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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천원권

(1972. 7. 10.)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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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천원권

(1977. 6. 1.)

이이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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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만원권

(1973. 6. 12.)

세종대왕, 무궁화 경복궁 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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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만원권

(1979. 6. 15.)

세종대왕, 자격루 경복궁 경회루
  •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가 오천원권 → 가 만원권 → 다 오백원권 → 가 천원권 → 나 오천원권 → 나 만원권 순서이다.
박정희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만원권 시제품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수입산을 버리고 국내산을 쓰자는 운동이 크게 벌어지면서 적극 도입된 결과이며, 근본적인 도입 목적이기도 하다. 1966년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하면서 이전권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둘 다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이의 이목구비는 서양인에 가까운 모습이고, 그나마 세종대왕의 존안은 동양적인 외모로 그려졌다.

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지만, 양대 종교단체 모두의 반발을 감안하지 않은 탓에 무산되었다. 우선 기독교계는 '불교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면 불교계는 환영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양대 종교단체가 저마다의 이유로 각각 심하게 반발하여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되었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모종의 이유로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 오백원권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기호 2자리 + 숫자 8자리 일련번호를 사용한 지폐가 되었다. 이 지폐 이후에 나온 모든 지폐에는 기호 3자리 + 숫자 7자리의 일련번호만 사용하였다.

4차[편집]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현재의 화폐 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 체계가 되었다.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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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천원권

(1983. 6. 11.)

이황, 투호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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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천원권

(1983. 6. 11.)

이이, 벼루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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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오천원권

(2002. 6. 12.)

이이, 벼루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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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원권

(1983. 10. 8.)

세종대왕, 자격루 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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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만원권

(1994. 1. 20.)

세종대왕, 자격루 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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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만원권

(2000. 6. 19.)

세종대왕, 자격루 경복궁 경회루
  • 4 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천원권, 다 오천원권 → 다 만원권 → 라 만원권 → 마 만원권 → 라 오천원권 순서이다.

구권이긴 하지만 23년 간 쓰인 역사가 있어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간혹 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같이 포스기를 사용하며 현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운 좋으면 장롱 구석에 잠자고 있는 구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 본점이나 지역본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폐기된다. 일부 시민들은 구권이라는 가치와 1990~2000년대의 추억 때문에 은행에 예입, 교환하지 않고 소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 중 오천원권은 특히 보기가 힘든데, 77246 위조지폐 유통사건으로 오천원권 위폐가 창궐해 한국은행에서 빠르게 회수해서 폐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5차 (현행권)[편집]
화폐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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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천원권

(2007. 1. 22.)

이황, 명륜당, 매화 정선의 계상정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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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오천원권

(2006. 1. 2.)

이이, 오죽헌(몽룡실)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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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만원권

(2007. 1. 22.)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천체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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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만원권

(2009. 6. 23.)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 5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마 오천원권 → 다 천원권, 바 만원권 → 가 오만원권 순서이다.

2006년 1월 2일에 위조 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유로화처럼 밝고 시원시원해졌다. 이에 따라 각 권종을 상징하는 동물이 사라졌으며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되었다.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 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최초로 5만원권이 발행되어 1만원권을 밀어내고 최고액권 자리를 차지하였다.

신권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지폐의 밝고 선명해진 색상, 줄어든 장식성, 얇은 돋움체 글꼴, 비교적 작은 크기에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답지 못하며 장난감 같아 촌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이며 크기가 작아져 휴대가 편해진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만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일부의 반응도 존재한다.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 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틀어줘서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물론,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

5만원권 발행 당시에는 지하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는데, 2018년에는 5만원권의 회수율이 60%를 돌파했다. 2014년의 20%라는 낮은 회수율에 비하면 크게 오른 것이다. 이 문제로 골치를 앓는 화폐가 바로 유로화인데 500유로권 지폐가 한화로 70만원 상당이니 이 문제로 인해 유럽연합에서 마저 500유로권 지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발행은 2019년부터 이미 중단되었다. 정작 유로보다 값어치가 큰 스위스 1000프랑 (130만원)은 현지에서 계속 유통 중이다. 폐지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10만원대 초반까지는 폐지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위조율이 높은 5천원권1만원권,5만원권의 지폐에는 앞면에 홀로그램이 추가되었고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지도와 태극무늬, 사괘가 나타난다. 또한 일련번호도 해외에서의 위조지폐 발견 시 수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글+숫자에서 로마자+숫자 조합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한반도 지도를 보면 울릉도와 함께 독도도 그려져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홀로그램은 국산이 아니라 일본 회사가 만들었다. 12 국내에는 마땅한 홀로그램 기술이 없어서 외국 업체에 입찰 공고를 냈더니 일본 회사가 가장 싼 값을 불렀다고.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고액권인 5만원 보유가 급증해지면서 5만원권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한은 측에서도 5만원권 발주를 3배 늘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5만원권 부족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은 5만원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1월, 100원 주화, 5천원권 지폐, 1만원권 지폐, 5만원권 지폐의 도안이 바뀔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기존 지폐 도안인 표준영정을 그린 화가들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인해 표준영정이 해제되고 신규 표준영정이 제정되며 생긴 조치로, 100원 주화부터 우선적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 교체에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정된다. 물론 아직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2025년이나 그 이후에나 소식이 나올 듯 하다.

동전[편집]

대한민국의 주화
액면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
도안 무궁화 거북선 다보탑 벼 이삭 이순신

공식적으로는 여섯 종류이나, 현대에 들어서는 네 종류만 통용된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 일원 주화, 오원 주화: 1966년부터 발행. 현재 시중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은행 간 1원 단위 차액거래로만 사용된다.
  • 십원 주화: 1966년부터 발행. 현재 시중에 사용되는 최소 금액 주화이며 2006년부터 주화 재질과 디자인이 변경되어 1원 주화의 느낌이 난다.
  • 오십원 주화: 1972년부터 발행.
  • 백원 주화: 1970년부터 발행.
  • 오백원 주화: 1982년부터 발행. 주화 중 가장 늦게 등장했다. 주화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수표[편집]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사실상 화폐 취급된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국내 수표는 종류를 불문하고 환전이 불가능하다.

  • 자기앞수표 - 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한 수표. 한국에서는 주로 국책은행과 특수 은행을 포함한 제1금융권 시중은행 에서 발행한다. 물론, 제2금융권역에서 취급하는 곳들은 상호저축은행, 농·축협, 지역단위수협, 신협, MG새마을금고가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국의 우체국 금융창구를 통해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체국 자기앞수표는 이론적으로 정부가 「우체국예금ㆍ보험에 관한 법률」 제4조(국가의 지급 책임)에 의거하여 지급보증을 서주고 있기에 민영화를 하지 않는 한 제일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수표와는 별개로 취급중인 우편환도 마찬가지.
  • 십만원권 수표 (연보라색)
  • 오십만원권 수표 (초록색)
  • 백만원권 수표 (진파랑색)
  • 백지수표 - 약속어음과 당좌수표 모두 백지수표라고 부를 수 있다.

기념 화폐[편집]

2000원권 기념 지폐

구미권과 달리 대한민국의 원화는 유통목적의 2단위 지폐가 발행된 적이 없다. 하지만 2018 평창 올림픽의 개최를 기념하여 2000원권 기념 지폐를 발행한 역사가 있다.

위상[편집]

기축 통화미국 달러유로, 일본 엔, 파운드 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등의 핵심 금융 국가의 화폐와 비교한다면 지명도가 낮은 편이다. 남북분단 상황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세계 10위권이라는 거대한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원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

환율 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적은 편인데 미국 달러의 아성에 도전하는 유로화, 국제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일본 엔화, 금융, 무역 거래량이 많으며 안정적인 자산으로 분류되는 파운드 스털링과 같은 주요 통화 외에도 비슷한 체급의 경제 규모를 갖춘 캐나다 달러, 호주 달러와 비교해서도 그 위상과 거래량이 다소 낮은 편이다.

미국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적으며 미국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온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 뿐이었고 그 외 통화는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뤄왔다.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 - 위안화 간 직거래가 시작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는 저평가를 논하지만 대한민국의 원화도 나름의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 한국은행이 원론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달러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에 일시적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가기도 했다. 소위 BOK 쇼크로 불리는 사건으로, 이성태 당시 한국은행 부총재가 해당 발언을 한 다음날 바로 원론적인 선에서 말한 것이지 즉각적으로 정책으로 옮기겠단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을 했다. 경제규모가 상당하기에 한국 증시에 악영향이 올 경우 타국 증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2005년이었음에도 이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위상이 보기보다 높다. 한국에서 환전수수료가 높은 나라의 화폐는 시중은행에서 해당국 화폐로 직접 환전하기보다는 명동, 서면 등지의 사설 환전소를 찾아가거나, 은행에서 환전수수료가 매우 낮은 미국 달러로 환전하여 현지에서 미국 달러를 현지 화폐로 다시 환전하는 이중환전을 하고 있다[44].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는 아니나 역내(域內)에서의 입지는 상당하다는 뜻이다. 일단 미국달러를 큰 수수료 없이 언제든지 바꿀수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한국 화폐의 위상이 생각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필연적으로 북한 내에서는 취급이 되지 못한다. 사실상 휴지 조각인 북한 원에 비하면 대한민국 원은 비교가 불가한 압도적인 가치를 가졌음에도 남한과 교역이 사실상 단절되었고, 정치 및 군사적으로도 적대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다만 탈북민들이 고향의 가족, 친지들에게 보내는 금전(대북송금)은 한국 원화로 진행된다. 물론 국영상점에서는 쓸 수는 없지만 보위부 상납금, 장사 밑전, 장마당 등에서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띄게 되는 경우 비난을 받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모든 은행이 대한민국 원화를 취급하지만, 수수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또 외국에서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이나 환전소는 많지 않고, 대부분 상당한 환전수수료를 감당해야 한다.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를 제공하는 국내 은행의 경우 G8 통화에 홍콩 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거래만 유럽식 호가로 표기하며 일본 엔이나 다른 통화의 FX 마진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의 경우 일본 엔,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에 대해서는 미국식 호가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 마진 회사를 빼면 나머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 프랑의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 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액면 대비 가치[편집]

한국 시장에서 십원 미만의 액수는 사실상 소멸된 상태이며, 오십원 미만의 액수도 조세행정이나 회계상 필요에 의해 전산으로만 관리될 뿐이고, 시중에서 현금으로 통용되는 경우는 봉투 값이나 거스름돈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 시장 상품의 소매가격은 기본적으로 백의 자리 이상부터 시작한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화폐 개혁에 대한 얘기가 진지하게 논의되어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논의에만 그쳤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또한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20년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신규 발행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10년대 후반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조사에 반응은 반대가 52.6%, 찬성이 32%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 이유가 '갑작스러운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금 없는 사회에 이미 진입하여 고액이든 소액이든 결제를 할 때에는 현금이 거의 필요 없고,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외에서 발행한 비자카드, 마스터카드의 한국 사용도 대부분 문제 없어(설사 DCC가 적용될지라도)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니 부담 적을 때 해버리자는 주장이 죽지 않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이 없었던 것이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고액권 지폐인 만원권은 현재 물가의 수 배 내지는 수십 배 낮던 1970년대에도 이미 존재하던 생각보다 유서깊은 권종이다. 이 때의 화폐가치를 살펴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수 만원 선에서 월급을 받았으며, 짜장면 한 그릇이 100원 하고 세뱃돈은 수백 원 단위로 받았으며 마지막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루어질 적인 1960년대 초반 신문에는 각종 비리를 다룬 기사에서 뇌물의 단위가 수천 원 내지는 수만 원 정도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때의 만 원은 현재의 만 원과 액면가가 동일하지만 가치는 경제성장+물가상승으로 매우 폭락해 버렸다. 1970년대에 물가상승으로 골머리를 앓았을때나 1990년대에 여러차례 정치, 경제적인 격변기가 있었을때 화폐개혁을 할 기회는 있었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폭발적인 경제성장기 동안의 리디노미네이션 부재로 액면가 대비 가치가 낮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디노미네이션 문서의 한국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논의 문단을 참고할 것.

한편, 대한민국 원화의 액면가에 1000을 나누면 미국 달러나 스위스 프랑, 유로와 가치가 매우 비슷해지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국내 일부 관광지나 번화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메뉴판에 0 세 개를 떼고 대신 k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k, 비빔밥 6,500원 → 6.5k) 그리고 대부분은 여기서 k조차 안 붙인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48]) 또 그 이전부터 쓰인 줄임법으로 큰 액수를 말할 때 '만' 단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10만, 혹은 100만이 넘어가는 큰 금액을 이야기할 때 편의상 '만 원' 부분을 떼어버리는 것. 이런 줄임법은 특히 부동산 거래나 대규모 주식 거래 등에서 흔하며, 아예 이 쪽 바닥에서는 기본 호가 단위를 '만원'으로 정해놓고 5억 6천 700만원을 56,700이라고만 표기하는 식의 관행이 형성되어 있다.

달러, 유로 같은 서구권 메이저 통화 외에 이웃나라인 일본 엔과도 단위가 너무나 비슷하며 공교롭게도 원-엔 환율 계산도 굉장히 쉽다. 원화의 액면가에서 0 하나를 줄이면 엔화와 비슷한 가치가 된다. 이 때문에 한일 양국을 바삐 오가는 제3국인들은 출입국 전후로 식당이나 호텔 등지에서 자릿수를 헷갈려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한국인과 일본인 입장에선 굳이 복잡하게 계산할 것이 없어 해외 직구나 여행과 같은 교류에 있어 편리한 점이다.

대한민국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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