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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 *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 ||
*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공화국]]에 속하였다. | *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공화국]]에 속하였다. | ||
− | *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의 수도가 | + | *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
*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 *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 ||
*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 *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
2024년 6월 19일 (수) 10: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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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후미(조지아어: სოხუმი, 러시아어: Сухум, 압하스어: Аҟəа)는 압하지야의 수도이고 흑해와 마주하고 있다. 인구는 2018년 기준 65,439명이다. 소련 말기인 1989년에는 12만 시민 중 조지아인 41.5%, 러시아인 21.6%이고 압하스인은 12.5%에 불과했으나, 1992-93년의 압하스 전쟁을 거치고 난 2011년에는 주민의 67.3%가 압하스인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도 2011년 기준 주민의 9.8%를 차지하여 압하스인과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
개요
- 행정 단위: 압하지야의 수도
- 면적: 372km²
- 인구: 65,439명(2018년)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sukhumcity.ru/
연혁
- 고대 기원전 6세기 무렵 건설된 고도이다. 밀레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흑해 동부 연안에 건설한 식민도시 '디* 오스쿠리아스'(Διοσκουριάς)가 그 기원이다.
- 그리스 로마 시기 콜키스 지역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중 하나였다.
- 8세기 이슬람 세력이 침입 하면서 황폐화되었다.
- 12세기 압하지야 공국의 중심도시가 되어 조지아 지역과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로 다시 번성하였다.
- 중세 시대 이름은 '츠호미' 혹은 '츠후미'(ცხომი/ცხუმი)였는데, 이는 인근의 스반(Svan) 언어로 '서어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공화국에 속하였다.
-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 소련 붕괴 직전 1989년 수후미의 인구는 11만명으로 트빌리시, 쿠타이시, 루스타비, 바투미에 이은 조지아 제5의 도시였다.
- 압하지야 전쟁 이후 조지아인이 대규모로 추방되고 인구가 급감하여 2018년 기준 인구는 6만 5천명 수준이다.
지리
조지아의 북동해안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대(大)캅카스산맥이 솟아 있다. 가장 추운 달인 2월에도 평균기온이 4℃인데다 아름다운 해안, 과수원이 있는 구릉 등이 펼쳐지기 때문에 조지아 굴지의 휴양지로 꼽힌다. 교외에는 요양소나 휴양소가 산재해 있으며, 해안의 산책로, 과학아카데미 부속 식물원에 있는 아열대수(亞熱帶樹)의 컬렉션 등이 유명하다.
교통
수후미 기차역에서 시작해 소치를 거쳐 러시아로 갈 수 있는 기차편이 존재한다. 소련 시대에는 기차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캅카스 지역으로도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폐쇄되었다. 수후미 항구를 통해 러시아로 갈 수 있는 부정기 여객선 편도 존재한다. 1996년까지는 튀르키예 트라브존과 통하는 여객선 편도 존재했었다.
시가지에는 트롤리버스 노선가 존재한다.
교육
압하지야 주립대학, 수후미 공개 연구소, 약 6개의 직업 교육 대학을 포함한 수많은 연구 및 교육 기관이 있다. 1945년부터 1954년까지 이 도시의 전자 물리학 연구소는 소련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19세기까지 압하지야의 젊은이들은 대개 주로 종교 학교(마드라사에서는 무슬림, 신학교에서는 기독교인)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소수의 부유한 가정 출신의 어린이들은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최초의 현대 교육 기관(학교와 대학 모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설립되었으며 20세기 후반까지 급속히 성장했다. 예를 들어 대학생 수는 1920년대 수십 명에서 1980년대에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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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