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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위치
서포모제주 위치

서포모제주(폴란드어: Województwo zachodniopomorskie)는 폴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

개요[편집]

서포모제주의 면적은 22,896㎢이며 인구는 1,698,214명(2021년)이다. 16개의 주 중 크기로는 5번째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포모제주, 남동쪽으로는 비엘코폴스카주, 남쪽으로는 루부시주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독일,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접한다. 주도(州都)는 슈체친(Szczecin)이다. 3개 도시군과 18개 군, 114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1999년 1월 1일에 실시된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슈체친주, 코샬린주 등이 합쳐져 신설되었다.

주요 도시는 주도인 슈체친을 비롯해 코샬린(Koszalin)과 슈비누이쉬치에(Świnoujście) 등이며 모두 중세이후 상업항구로 번성하여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산재한다. 또한 이들 도시들은 독일과 인접한 발트해의 항구로 14세기 이후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으로 번성하였고, 현재도 산업기지이며 무역항으로 조선업이 발달하였다. 2차 대전으로 되찾은 폴란드는 독일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대대적으로 도시를 정비하였다. 14세기에 건축된 슈체친대성당(Szczecin Cathedral)과 1945년에 지어진 슈체친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in Szczecin) 등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2014년에 문을 연 미에치스와프 카를로비츠 필하모닉(Mieczyswaw Karłowicz Philharmonic) 콘서트홀은 독특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유럽연합(EU)에서 현대건축가상을 받은 명소이다.[2]

자연환경[편집]

서포모제주는 서쪽으로는 오데르강(Oder river)으로 독일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발트해와 슈체친 석호(Szczecin Lagoon)와 접하며 남쪽과 동쪽은 많은 호수와 울창한 을 이룬다.

주에는 드로우노 국립공원(Drawno National Park)과 월린 국립공원(Wolin National Park) 등 2개의 국립공원이 있으며, 수백여 개의 호수와 발트해의 백사장은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힌다. 북동부 발트해변의 윌린 국립공원은 93미터에 달하는 해안 절벽으로 유명하며, 발트해와 접하는 작은 마을 카미엔포모르스키(Kamień Pomorski)는 19세기부터 염수 온천이 발견되어 헬스리조트로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역사[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독일과 포모르스키에주(Pomeranian Voivodeship)의 일부였으며, 1999년 폴란드의 지방정부 개혁으로 인근 4개 주의 일부를 흡수하여 새롭게 구성되었다. 본 지역은 역사적으로 폴란드어로 '포모제(Pomorze)' 그리고 영어 명은 '포메라니아(Pomerania)'라고 불렸는데 동부에 포모르스키에주가 있어 현재의 지명이 붙여졌으며, 영어로는 서포메리안(West Pomeranian)으로 표기한다.

산업[편집]

산업기지이며 무역항으로 조선업이 발달하였다. 코샬린은 항구도시로 중세 이후 발트해의 주요 무역항이며 산업도시였으며 현재는 서유럽의 제조업 기업의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슈비누이쉬치에는 폴란드 해군기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하며, 2015년에 LNG터미널이 완공되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의존완화를 위한 에너지안보 측면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항구도시이다. 내륙의 스타가르드 슈체친스키(Stargard Szczecińsk)는 서부의 포즈난(Poznań)과 북부의 그단스크(Gdańsk)를 잇는 철도교통의 요충지이다.

주요 도시[편집]

슈체친[편집]

슈체친은 폴란드 북서쪽 끝의 오데르강 양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포모제주의 주도다. 국제무역항인 슈체친항은 폴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다. 도시 북동쪽 47km 거리에 국제공항인 슈체친 골레뉴프 공항이 있다. 슈체친은 습윤 대륙성 기후가 가미된 해양성 기후다. 연평균 기온 8.9℃, 가장 추운 1월 평균 10.2℃, 가장 더운 7월 평균 기온은 18.2℃이다.

슈체친에는 3개의 조선회사가 있으며, 이 중 슈체친 조선사는 폴란드 최대 규모다. 조선업 외에 수산 · 식품가공 · 맥주양조 · 제약 · 기계 · 석유정제 · 시멘트 · 제재업 등이 활발하며, 최근에는 정보통신(IT) 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슈체친 대학 · 포메라니아 의과대학 · 해양대학 등 다수 교육기관이 있다. 슈체친에는 1999년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다국적군의 동북부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대제(大帝)로 불리는 예카테리나 2세 여제(1729~1796)는 슈체친이 고향이다.

슈체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 왔다. 기원전 1300년~기원전 500년 사이 후기 청동기 및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기록에 나오는 본격적인 역사는 8세기 서슬라브족의 분파인 포메라니아 슬라브족이 현재의 두칼성(城) 자리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10세기에는 폴란드 최초의 왕조인 피아스트 왕조의 창시자 미에슈코 1세(930~992)가 슈체친을 포함한 포메라니아 지역을 점령해 폴란드령이 되었다. 12세기 들어 포메라니아 지역은 주변 강대국이 번갈아 지배했다. 1138년까지는 폴란드왕 볼레스와프 3세가 지배권을 행사했으나 1147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휘하에 들어갔다. 슈체친은 1181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지배 세력은 자주 바뀌었지만 슈체친이 속한 포메라니아 지역은 포메라니아 가문(그리핀 가문)이 대를 이어 통치했다. 항만을 낀 이점을 살려 무역과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던 슈체친은 1243년 자치권을 부여받은 도시가 되었으며, 1360년에는 한자동맹에 가입해 더욱 번영하였다.

포메라니아가의 가계가 끊긴 후인 1648년 스웨덴 왕국이 슈체친을 장악해 1720년까지 지배했다. 1720년부터는 옛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모태가 되어 1701년 성립한 프로이센 왕국이 슈체친을 영토에 편입했으며, 독일이 통일을 이룬 1871년에는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까지 슈체친은 ‘슈테틴(Stettin)’이라는 독일어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프로이센 영토이던 19세기 중반에 슈체친은 비약적인 산업화를 이루었다. 조선 · 화학 · 기계 · 식품공업이 발달하였고 독일 자동차회사 슈퇴버(Stoewer)가 공장을 건설해 1899년부터 1945년까지 자동차를 생산했다. 슈체친의 인구는 1813년 2만 7,000명에서 1900년 21만 명, 1925년에는 25만 5,500명으로 늘어났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슈체친도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인들을 끌고가 강제노동에 종사시켰다. 독일 경찰의 1940년 보고서는 강제노동 중인 폴란드인을 약 1만 5,000명으로 집계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슈체친에서는 독일군과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시가지의 65%가량이 파괴되었다. 특히 유서가 깊은 시 중심부와 항구는 100% 피해를 입었다. 소련군은 1945년 4월 26일 슈체친을 점령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폴란드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독일계 주민들은 그단스크에서 추방되거나 달아나야 했다. 폴란드의 동부 영토 일부가 소련에 편입됨에 따라 동부에 살던 폴란드계 주민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슈체친으로 대거 이주해왔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1946년 유명한 ‘철의 장막(Iron Curtain)’ 연설에서 ‘발트해의 슈테틴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이 쳐져 있다’고 말한 덕분에 슈체친은 냉전의 상징적인 도시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47년 폴란드에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44년간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존속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시가지는 설계도 등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복구되었다. 소련은 정책적으로 발트해 연안 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덕분에 슈체친은 폴란드 조선 · 해운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970년 슈체친 · 그단스크 등 폴란드 북부 도시들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반발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나 군대와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시위로 47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했다. 1980년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가 자유연대노조를 출범시키면서 폴란드에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슈체친에서는 1981년 내려진 계엄령에 대항해 부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총파업이 일어났다. 1989년 집권 인민공화국 정부와 민주화 세력 간에 개최된 원탁회의 결과 맺어진 ‘국민화해 협정’으로 민주화되어 폴란드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99년 단행된 폴란드 행정구역 개편으로 슈체친은 자호드니오포모르스키에(Zachodniopomorskie : 서포메라니아)주의 주도가 되었다.[3]

코샬린[편집]

코샬린은 폴란드 북서부의 도시로 자호드니오포모르스키에주에 속해 있다. 1998년까지는 코샬린주의 주도였다. 북독일 평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12km 북쪽에 발트해를 면하고 있다.

코샬린은 1107년 폴란드 왕 볼레스와프 3세가 정복한 포메라니아 지역 도시 중 하나이다. 1138년 폴란드 왕국이 분열된 후에는 그리핀 가문이 지배하는 포메라니아 공국 치하에 들어갔다. 1185년 덴마크의 속국이 되었으며 1227년부터 1806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다. 1266년 도시 특권을 인정받았다.

코샬린은 14세기 중반 발트해 연안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한자동맹에 가입해 번영을 누렸다. 종교개혁 시기인 1534년 포메라니아 · 덴마크 지역에 루터교를 전파하던 요하네스 부겐하겐(1485~1558)의 영향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루터파 개신교에 속하게 되었다.

코샬린은 1701년 프로이센 왕국 성립 후 프로이센의 도시가 되었다. 1718년에는 큰 화재가 발생해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이듬해 복구했다. 1764년에는 대형 제지공장이 건설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로이센, 러시아, 작센 왕국, 스웨덴, 영국 등이 결성한 제4차 대프랑스 동맹에 가입했다가 1807년 프랑스에 점령당했으나 나폴레옹 몰락 후 프로이센에 복귀했다. 1871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된 후 출범한 독일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1890년에는 독일 육군사관학교가 쿨름에서 코샬린으로 이전해왔다. 1920년대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던 시기에 도시의 독일어 명칭 철자가 종전의 Cöslin에서 Köslin으로 변경되었다.

코샬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3월 4일 소련군에 점령되었다. 전후 포츠담 회의의 결과로 폴란드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소련이 점령한 동부 폴란드 지역에 살던 폴란드인들이 대거 코샬린으로 이주했다.

코샬린의 볼거리로는 14세기 초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성모 마리아 성당, 포메라니아 공작 공원, 중세 성벽 등이 유명하다. 습윤 대륙성 기후가 가미된 해양성 기후로, 다른 폴란드 지역에 비해 온화한 곳이다. 연평균 기온은 7.6℃, 가장 추운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4℃, 가장 더운 7월은 평균기온이 16.5℃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704mm이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바르미아마주리주〉, 《위키백과》
  2. 두산백과: 재코디니오포모르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3.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슈체친〉,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코샬린〉,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국가
동유럽 도시
동유럽 지리
동유럽 문화
동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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