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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6일 (화) 16: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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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뉴기니 또는 이리안자야(Irian Jaya)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섬의 서반부를 가리킨다. 인도네시아 영토에 속한다. 이곳은 1938년 백인들에게 처음 알려졌다. 이 지역에는 다니족과 라니족, 얄리족 등이 있다. 뉴기니섬 서쪽 인도네시아 영토를 아리안자야라고 하는데 이곳은 오세아니아에 속한다. 그 외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은 모두 아시아에 속한다. 이리안은 인도네시아어로 뉴기니섬을 가리키며 바라트는 서쪽, 자야는 빛나는 또는 승리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리안자야는 「승리의 뜨거운 땅」 이라는 뜻이다.[1]
역사
4만여 년 전 멜라네시아인들이 뉴기니섬에 들어가 오랫동안 원시적인 부족 사회를 운영했다. 19세기에 네덜란드는 뉴기니섬의 서해안에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1885년 네덜란드와 영국·독일이 뉴기니섬을 분할해 네덜란드가 섬의 서반부를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에 병합하면서 서뉴기니가 성립하였다.
1949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을 종식시킨 헤이그 원탁 회의에서 이 지역의 귀속 문제는 난항을 겪었고, 네덜란드령 뉴기니(1949년-1962년)는 네덜란드에 남았다. 1952년 네덜란드는 파푸아인의 자치권과 자결권을 인정하고 독립 준비를 진행하였고, 국경선신성의 원칙(Uti possidetis juris)에 따라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도네시아와 대립하였다.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아 군비를 확장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0년 네덜란드와의 국교 단절 및 무력에 의한 해결의지를 밝히는 한편 이 지역 문제를 유엔에 제소했다. 1961년 말 네덜란드가 서뉴기니의 의회 선거를 진행하고 9년 뒤에 독립시킬 준비를 하였으며, 12월 1일 의원들이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국기(아침별기)와 국가 표어를 제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네덜란드는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은 당장 인정하지 않고 해당 깃발과 표어를 서뉴기니 지역의 깃발과 표어로 인정하였다. 이에 12월 18일 인도네시아가 서파푸아의 독립은 인정할 수 없으며 막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인도네시아군이 서파푸아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고, 1962년에 공격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군은 인도네시아의 공격을 방어하는데는 성공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이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양측을 중재해 뉴욕 협정이 체결되어 1969년까지 자유로운 성인의 참여로 독립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자유선택행동)으로 서파푸아는 1962년 10월 유엔의 관리하에 놓여졌고, 1963년 5월 인도네시아에 인도됐다.
1969년 인도네시아는 국가 주도로 선발된 원로들에 대해 조사한 의사를 근거로 서파푸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으며, 당시 80만 파푸아인들의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편입에 반대하는 원로들에게 강압이 가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서파푸아인 사이에서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자유 파푸아 운동이 벌어졌다. 인도네시아는 1970년 이 지역을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해 독립운동을 군사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120만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을 이주시켜 식민화하고 있다.
2000년 새 국가 서파푸아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는 서파푸아주민대회가 인도네시아 정국을 뒤흔드는 문제가 되었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2003년 2월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북서부('새의 머리'라고 불린다)를 이리안자야바랏 주로 분할하면서 독립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200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망명한 서파푸아 독립운동가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악화로도 이어졌다. 2019년에는 인니 경찰이 파푸아 학생을 원숭이라고 모욕한 것을 계기로 2019년 파푸아 시위가 발발하였다.[2]
경제
인도네시아에서 주별 GRDP 통계를 내면, 1인당 GRDP 기준으로 파푸아주는 중위권, 서파푸아주는 상위권이다. 2019년 인도네시아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인도네시아 전체의 1인당 GDP가 $4,242였고, 파푸아주의 1인당 GRDP는 $3,970, 서파푸아주의 1인당 GRDP는 $6,216이었다. 특히 서파푸아주의 1인당 GRDP는 동인도네시아(술라웨시, 소순다 열도, 말루쿠 제도, 서뉴기니) 전체에서 가장 높아 발리($4,119)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었다.
중심 도시 자야푸라, 마노콰리, 소롱 등을 제외하면 인프라가 인도네시아 기준으로도 지극히 열악한 수준이며, 주민들이 의료, 교육 등의 기본적인 서비스를 충분히 누리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GRDP가 아니라 주별 인간개발지수 통계를 보면 파푸아주, 서파푸아주가 저개발 지역 동누사틍가라, 서술라웨시와 함께 매번 인도네시아 최하위권이며, 중등교육 단계의 각종 전국 시험 성적 주별 통계를 보아도 파푸아주, 서파푸아주는 하위권이다.
파푸아(서뉴기니) 경제의 구조를 보면 파푸아 경제에서는 농업, 임업 등 1차 산업과 광업이 주를 이룬다. 파푸아에서는 금과 구리 등 각종 원자재가 채굴되며, 푼착 자야 인근에 있는 파푸아의 그라스버그(Grasberg, 흐라스베르흐) 광산은 세계 최대의 금광이자 세계 2위의 동광이다. 농업은 주로 영세 농민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이어가는 것이지만, 팜유나 커피를 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업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외부 기업들이 대규모로 산업적 벌목을 벌여 파푸아의 목재를 중국과 호주 등지로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서파푸아주의 라자암팟 등지를 중심으로 관광업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아직 그리 크지 않다. 즉, 수익성 있는 사업의 상당수는 파푸아의 원자재와 플랜테이션 농산물을 외지(자바 등 인도네시아 타 지역, 또는 미국, 호주, 동아시아 등 외국)의 대기업이 거두어들여 외부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파푸아의 '개발'은 인도네시아 민주화 이후 꾸준히 활황이어서 파푸아 2개 주의 GRDP가 빠르게 상승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파푸아 주민들의 삶은 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면 크게 나아지지 못했고, 파푸아의 빈부 격차는 인도네시아 기준에서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남아 있다. 제조업 기반이 매우 빈약한 파푸아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별로 없어 웬만한 상품은 자바, 술라웨시 등 타지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물류 비용이 많이 들므로 자야푸라 등 중심 도시의 생활 물가도 낮지 않다.
파푸아 개발에 뛰어든 기업 중에는 한국의 코린도(Korindo)도 있다. 코린도는 임업, 목재 가공업, 농업, 금융, 제조업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인도네시아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파푸아로 진출하며 소위 '오지' 개척을 홍보하면서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았고, 코로나19 국면에서 파푸아에 방호복과 마스크를 기증하는 등의 선행도 했다.[2][3] 그러나 코린도는 최근 팜유 생산을 위해 파푸아에서 3만~6만 헥타르 규모의 우림을 불태우고 불법 개간하였으며, 인도네시아 군부의 도움을 받아 파푸아 주민들의 전통과 인권, 이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정황이 드러나 인도네시아 국내외 NGO들과 BBC 등 메이저 언론들의 광범위한 질타를 받았다.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인증기관인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회원 자격도 박탈당했다.[3]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네덜란드는 서뉴기니를 인도네시아와는 별개로 독립시키려 하였으나 인도네시아의 요구로 1969년까지 원로에 의한 간접 주민투표로 인도네시아로 통합될지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통치권을 인도네시아로 넘겼다. 그러나 1969년에 인도네시아가 자기 맘대로 대표를 뽑고 반대하는 대표는 총칼로 찍어 누르는 바람에, 인도네시아로 합병되기는 했지만 동시에 독립 운동이 발발했다. 국제법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영토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구르나 체첸, 아체주보다 명분이 강한 상태이나 아직 많은 나라들은 서파푸아 독립파를 돕길 꺼리고 있다. 강대국들이 굳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이유도 있고, 자원에 대한 탐욕 때문인 이유도 있다.
많은 주민이 독립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이유는 언급된 이유도 있거니와, 서뉴기니 내부도 수많은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파푸아 권리 운동 내부에서 비독립 자치파의 비중도 상당한 등의 이유도 있다. 설령 운좋게 독립되더라도 독립 초반부터 내전이 나타난 남수단처럼 될 가능성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내분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그나마도 남수단은 어느 정도 알려지기라도 했으니 가능했지만 서파푸아를 비롯한 남태평양 일대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네이다 보니 더욱 더 힘든 상황이다. 또한 로힝야만 해도 국제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서뉴기니 역시 독립보다는 지금보다 폭넓은 자치를 인정받는 게 가능성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 차원에서 자바인 등을 이주시키며 지배를 공고히 하고 있다. 분쟁이 제일 심했던 2003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외국인들의 출입을 금하기도 했다. 원래부터 서뉴기니 지역은 멜라네시아계 원주민 인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종교도 토속신앙이었고, 네덜란드로부터 기독교(특히 개신교)를 받아들이는 등 인도네시아와는 문화가 다른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서뉴기니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독립을 원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것이 다른 지역의 소수민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칠까 우려했고, 이러한 이유로 동티모르와 더불어 가장 가혹하게 억압받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호주 역시 서파푸아의 독립을 인정하려 하자 인도네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된 적도 있었던 만큼 인도네시아 정부에게는 민감한 소재라고 한다. 물론 호주가 서뉴기니 독립 집단, 세력들을 도와주나 무작정 서파푸아의 독립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건 아닌데, 굳이 보면 서뉴기니 인권 유린 문제들을 비판하고 호주로 망명한 서파푸아인들을 도와주는 정도이며,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무조건 인정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아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오세아니아 지역인 곳이기도 하다. 분리주의뿐 아니라 서파푸아 내에도 수많은 민족들이 존재하고 갈등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기 때문에 치안 등이 영 좋지 않은 편. 남성의 48%가 강간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파푸아인 인종 차별
파푸아인은 서뉴기니의 토착민이며 제한적으로 티모르인에 대한 자바, 발리, 수마트라 등 인도네시아 주류 지역 사람들의 인식은 상당히 차별적인 경우가 흔하다. 주류 지역에도 자바인, 순다인, 마두라인, 브타위인, 화인, 바탁인, 말레이인, 발리인, 미낭카바우인 등 수많은 민족이 있고, 민족별 스테레오타입도 어느 정도 있다. 이들 민족에는 주류 사회에서 원시적, 부족적, 비문명적, 미개한, 주정뱅이등의 차별적 묘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각 민족이 스테레오타입을 자긍심의 원천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지만 파푸아인 등을 바라보는 주류 민족들의 시선은 자신들과 동등하지 않은 비문명 부족에 대한 그것인 경우가 많고, 주류 민족들은 파푸아인이나 티모르인에 대한 차별적 관점을 여러 경로로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 (인종) 차별 문제는 파푸아 권리 운동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이며, 파푸아 분리주의 문제와도 얽혀 있다.
심지어 2012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 유력 정치인인 유숩 칼라(당시 현직이 아닌 전 부통령이었음)가 파푸아인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파푸아의 주요 문제는 소비적인 문화와 낮은 생산성이다. 푸아인들은 필요가 적어 생산성이 낮다. 단순한 옷을 입고, 단순한 음식만 먹으면 충분다. '2012년'에 이런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이 논란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이 파푸아인을 두고 '게으르고, 술에 절어 있고, 무식하고, 더럽다'는 등의, 인종적 스테레오타입화를 곁들인 차별 발언을 하거나 파푸아인을 실제로 차별한 사례는 숱하다. 파푸아인의 무능력함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파푸아인이 실제로 받는 고용 시장 차별을 정당화하는 암묵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기술관료적 인종주의'(technocratic racism)라고도 할 수 있다. 자야푸라 같은 파푸아 주요 도시에서는 호텔, 쇼핑몰, 은행에 고용된 점원들이나 심지어 정비공, 숙련공, 건설 노동자 등도 최근까지도 대부분 외지 출신 사람들(자바인 또는 남술라웨시에서 이주한 마카사르인, 부기스인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파푸아 지역에서 다양한 토착민 권리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차별 해소까지는 갈 길이 멀다.
'원숭이'(monyet) 등이 자바 등지에서 파푸아인을 비하할 때 멸칭으로 쓰인다. 자바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등의 외모를 가진 파푸아인 또는 (제한적으로) 티모르인은 자바에서 이러한 언어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 만약 파푸아인이나 인접 지역 출신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피부가 희고 직모여서 대강 자바인이나 술라웨시 사람 정도로 패싱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인종적 멸칭으로 불리지 않기도 한다. 국내 유학 등의 이유로 자바에서 공부하는 파푸아계 학생들은 만성적인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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