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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주(스페인어: Comunidad de Madrid)는 스페인의 광역자치주 중 하나이다. [1]
개요
마드리드주의 면적은 8,030.1㎢이며 인구는 6,661,949명(2019년)이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카스티야라만차주, 북쪽과 서쪽으로는 카스티야이레온주에 접해 있다. 주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마드리드주는 대부분 마드리드 도시권에 집중되어 있는 거주민 6,369,160명 (2011년 기준)으로,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다. 자치 지방 중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마드리드 지방의 경제는 스페인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카탈루냐 지방과 거의 규모가 같다. 게다가 마드리드주은 스페인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2][3]
자연환경
이베리아 반도와 메세타 고원 중심부에 있으며 과다라마 산맥 남쪽 경사면에 있다. 나무들이 남아 있는 산지는 마드리드 시민들의 여름철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황색 토양과 곡물밭이 널리 이어져 있어, 카스티야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에나레스강(江)과 하라마강(江)의 유역에서는 관개에 의한 원예농업이 성행한다.
서부는 내륙 지중해성 기후이며 동부 지역은 반건조기후다. 겨울은 평균 667m에 달하는 높은 고도로 인해 선선하며 산발적으로 눈이 내리고 12월부터 2월 사이에는 서리가 자주 내린다. 여름은 매우 더워서 가장 더운 7월의 평균 기온은 낮기온이 32~34°C에 달하며 종종 35°C의 열풍이 분다. 1995년 7월 24일의 최고 기온은 42.2 °C, 1945년 1월 16일의 최저 기온은 -15.3°C였다.
비는 봄가을에 주로 내리며 그리스 아테네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건조한 도시다. 특히 여름이 건조해 소나기 또는 천둥 치는 일이 두 번 정도에 그친다. 물이 부족한 마드리드는 17세기에 건설한 지하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았으며 19세기 중반 이사벨라 2세 운하가 건설되면서 물 부족을 해소했다. 현재는 마드리드 전체 물 사용량의 73.5%를 엘 아탈사르 댐 등 로소야 강에 있는 여러 곳의 댐과 저수지에서 받는다.[4]
역사
9세기경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후우마이야 왕조에서 세운 성채에서 시작되었다.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카스티야 왕국이 1085년경 해당 성채를 정복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별 볼 일 없는 카스티야 중부의 시골 성채 도시에 불과했다. 12세기 말에야 도시로서 권리를 인정받게 된다.
통합 스페인 왕국의 실질적인 첫 군주인 카를로스 1세(카를 5세)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등을 포함한 거대 제국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평생을 각지에 처소를 옮기면서 통치했다. 그의 아들인 펠리페 2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반도의 왕국들, 저지대 지역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아버지와 달리 평생 스페인에서 머물렀다. 재위 초 바야돌리드에 머물던 펠리페 2세는 1561년 마드리드를 새로운 수도로 삼고 성채를 지어 천도를 단행하여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중앙 집권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 당시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아직 법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카스티야는 정식 수도가 없고 삼부회가 모이는 비공식 수도는 톨레도, 왕실의 중심지는 바야돌리드였다. 그러나 톨레도, 바야돌리드, 부르고스 등 카스티야의 전통적인 정치적 중심지들은 지방 귀족 세력의 영향력이 커 제대로 군주 중심의 정책을 펴기 힘들다고 판단한 펠리페 2세는 저런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교통망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지역 유지라고 할 세력이 없었던 소도시 마드리드를 수도로 정하고 왕궁을 지었다. 마드리드를 선택한 또다른 이유는 증가하는 인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분소와 깨끗한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반대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고 톨레도가 주변 도시가 되었다. 이는 한때 수도였으나 주변 도시로 수도 지위가 넘어간 점에서 개성과 서울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베리아 연합 초창기에 스페인 귀족들을 중심으로 리스본으로 천도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마드리드를 수도로 삼은 인물이 펠리페 2세였으니 어림없는 소리였고 이후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1808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1 제국에 점령당했고 이때 프란시스코 고야의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로 유명한 학살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정치적 기능만 하는 도시여서 바르셀로나보다 도시 규모가 작았다. 오히려 자체적인 경제적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그놈의 정치적 기능 때문에 순식간에 전근대 유럽의 최대 소비 계층이었던 귀족들이 막 몰려들어, 스페인의 전성기인 16, 17세기에는 주변 도시들의 부를 빨아먹고 국가 경제 약화에 일조를 했다. 실제로 마드리드의 부상과 톨레도, 바야돌리드, 레온, 살라망카 등 다른 카스티야의 전통적 주요 도시들의 몰락은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진다. 이때는 산업화로 인하여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기 훨씬 이전 시대다. 네덜란드, 라인강 일대, 북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전통적인 상공업 지대도 아니고, 처음부터 별거 없었던 스페인의 제조업은 이때 수요를 감당 못 해 스페인의 동맹/속국이었던 제노바, 밀라노, 플란데런 등의 상인들을 상대로 제대로 경쟁하지도 못하고 몰락했다.
카스티야라누에바의 역사적 지역을 포함했던 옛 마드리드 현의 범위를 바탕으로 1983년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경제
마드리드주는 2014년 기준으로 스페인에서 31,004 유로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다. 스페인 평균에 비해서 아주 높은 수치이고 바스크 지방 (€29,683), 나바라 지방 (€28,124), 카탈루냐 지방 (€26,996)이 그 뒤를 이었다.[3] 같은 해에 마드리드 지방의 GDP 성장률은 1.0%였다. 마드리드는 2009년에 2,198억 유로의 GDP를 보유했었으며; 이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지역인 안달루시아 (1,674억 유로)를 앞서 GDP 2,304억 유로를 기록한 카탈루냐에 이은 두 번째이다.
문화
마드리드의 대표적 미술관으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으로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과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소장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고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루벤스, 베첼리오 티치아노 등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걸작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마드리드 국립고고학박물관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굴된 선사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물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은 20세기 현대미술품을 전시한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후안 그리스, 훌리오 곤살레스 등 스페인 대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은 다른 박물관들이 소장하지 않는 시기의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인상파, 표현주의 작품들과 20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을 1,600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산페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루벤스, 벨리니, 무리요, 고야의 작품 등이 있다.
이곳은 마드리드 미술 아카데미의 본부이기도 하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아카데미 책임자였으며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안토니오 로페스 가르시아, 후안 루나, 페르난도 보테로 등이 이 곳 출신이다.
라스 데스칼사스 레알레스 수녀원은 카를로스 1세와 포르투갈 이사벨라 여왕 부부의 궁전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귀족 가문 출신의 과부들과 노처녀들이 모였으며 이들은 모두 지참금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수녀원이 됐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미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밖에 보석과 의복, 장신구 등을 소장한 라사로 갈디아노 미술관, 국립 장식 미술관, 19세기 일상생활용품을 소장한 낭만주의 국립미술관 등 다수의 전문 미술관들이 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문학의 최고 본거지다.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도 마드리드에서 살았다.
스페인 국립 도서관은 15,000,000권의 책과 인쇄물, 30,000점의 필사본, 143,000점의 신문과 간행물, 4,500,00점의 그래픽 자료, 510,000점의 악보, 500,000점의 지도, 600,000점의 녹음, 90,000점의 시청각 자료, 90,000점의 전자문서, 500,000점 이상의 마이크로필름 등 총 26,000,000점의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타파스 바, 칵테일 바, 클럽, 재즈 라운지, 라이브 음악공연장과 플라멩코 극장이 밤 문화를 주도한다. 밤 생활을 즐기는 마드리드 시민들은 밤 12시에 외출해 새벽 6시반에 귀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라스 벤타스 투우장이 있다. 투우 시즌은 3월부터 10월까지다. 투우는 5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의 산 이시드로 축제 기간에는 매일, 다른 기간 동안에는 매주 일요일과 모든 공휴일에 열린다.
2005년 스페인이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한 뒤로 마드리드는 성소수자 문화가 활발한 곳이 됐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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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마드리드주〉, 《위키백과》
- 〈마드리드주〉, 《네이버 지식백과》
- 〈마드리드 〉, 《나무위키》
- 〈유럽지명사전 : 스페인 마드리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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