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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즈드
야즈드 위치

야즈드(영어: Yazd, 페르시아어: يزد)는 이란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야즈드주주도이다. 인구는 53만 명이며, 이란에서 15번째로 큰 도시이다. 2017년 역사적인 도시 야즈드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1]

개요[편집]

야즈드는 이란 중부, 이란고원의 중앙에 위치한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 무역의 거점으로서 번영하였다. 해발고도는 1,216m이다. 이스파한에서 동남쪽으로 270km, 시라즈에서 동북으로 300km, 케르만에서 서북으로 300km 떨어져 있다. 야즈드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신' 이란 뜻이며 사산 제국 시기에 국교이던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다. 이름은 샤한샤 야즈데게르드 1세(Yazdegerd I)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당시 유적이 남아있고, 이슬람 팽창 이후로는 카비르 사막 지대에 위치한 입지조건 덕에 역사적으로 큰 변동이 없어 지금도 중세의 가족 중심 문화가 깊게 배어있다. 중세 시기에는 카쿠이 왕조의 수도였고 (1051 ~ 1141년), 그 후로는 토착 아타베그들이 통치하였다. 1297년 일 칸국에게 흡수되었다가 1315년에 복구된 아타베그 국은 1319년 무자파르 왕조에 의해 정복되었다. 무자파르 조 역시 야즈드를 중심으로 삼았다가 1340년 케르만을 정복한 후 그곳으로 천도하였다. 1350년, 무자파르 조와 대립하던 인주 왕조는 야즈드를 포위했으나 이듬해 격퇴되었다. 그후 1353년 반격에 나선 무자파르 조가 역으로 쉬라즈를 점령하며 인주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큰 변고가 없이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사막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독특한 건축 양식을 띤다. 품질이 뛰어난 수공예품과 비단, 과자 등이 생산된다. 구도심에는 바자, 함맘(목욕탕),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조로아스터교 사원, 이슬람 사원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한 관개 시설인 카나트 시스템과 전통 가옥들도 완벽히 보존되어 현존한다.[2][3]

기후[편집]

야즈드는 더운 사막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BWh)를 가지고 있다. 이란에서 가장 건조한 주요 도시로, 연 강수량이 60mm 미만이며 강수일은 11.5일에 불과하다. 여름철 기온은 뜨거운 햇살과 낮은 습도에서 40°C를 넘는 경우가 많고, 일 년 중 35.3일은 최고 일일 기온이 40°C에 도달하거나 초과한다. 밤에도 여름철 기온은 다소 불편하다. 겨울에는 낮에는 온화하고 맑지만, 아침에는 공기가 희박하고 구름이 적어서 기온이 낮아지고, 일 년 중 최저 기온이 0°C(32°F)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24.3일 있다.[4]

역사[편집]

야즈드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야즈드를 포괄하는 지역은 고대 말기, 즉 사산 왕조 시대에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야즈데게르트 r.1세(재위 399–420) 치하, 야즈드에 조폐소가 설립되었고 이는 댜즈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441년의 새로운 페르시아 연대기 타리크이 야즈드 ("야즈드의 역사")에 따르면, 야즈드는 바흐람의 아들 야즈데게르드(438–457)에 의해 반환되었다. 야즈드라는 단어는 신을 의미한다. 아랍의 이란 정복 이후, 많은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이웃 지방에서 야즈드로 이주했다. 세금을 지불함으로써, 야즈드는 정복 후에도 조로아스터교로 남을 수 있게 되었고, 이슬람교는 점차 도시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고립된 사막 환경과 어려운 접근으로 인해 야즈드는 주요 갈등과 전쟁의 파괴와 혼란에서 대체로 벗어났다. 예를 들어, 이곳은 몽골의 침략 기간 동안 페르시아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파괴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1272년에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그는 도시의 훌륭한 비단 직물 산업에 대해 언급했다.

야즈드는 14세기에 잠시 무자파리 왕조의 수도로 활동하다가 1350-1351년 샤이크 아부 이샤크가 이끄는 인주족에 의해 포위당하는데 실패했다. 도시의 가장 큰 건축적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금요일(또는 회중) 모스크와 다른 중요한 건물은 이 시기에 지어졌다. 카자르 왕조(18세기) 동안 바흐티아리 칸의 지배를 받았다.

사파비드(16세기)의 통치 아래, 일부 사람들은 야즈드에서 이주하여 오늘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지역에 정착했다. 야즈디라는 이름의 이 정착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같은 이름의 주에 있는 파라 시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날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야즈드 사람들과 매우 비슷한 억양으로 말한다.

야즈드의 주목할 만한 점 중 하나는 가족 중심의 문화이다. 이란 국가민간등록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Civil Registration)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야즈드는 이란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세 도시 중 하나이다.[5]

야즈드 역사도시[편집]

야즈드 역사도시는 이란에서 가장 역사가 긴 도시 중 한 곳으로 이란의 중부 고원 지역에 위치한다. 동명의 주인 야즈드주주도이다. 이란의 3대 도시인 이스파한(Isfahan)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50km 가량 떨어져 있다.

척박한 사막 기후의 조건하에서 조성된 전통적인 도시의 형태로써 보존의 가치가 높으며 세 개의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장소로써 문화사적 의미가 있어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면적은 완충 지대를 포함하여 6.65㎢ 정도이며 야즈드의 구시가지와 조로아스터교 구역, 돌랏 아바드 페르시아 정원(Dolat-Abad Garden)의 세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막이라는 환경적 제한으로 인해 목재와 건축 자재가 부족한 가운데 건설된 다양한 건축물들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특별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이란 중부 카비르 사막(Dasht-e Kavir) 인근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야즈드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도시의 명칭은 페르시아 제국 사산 왕조의 샤였던 야즈데게르드 1세(Yazdegerd I)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도시는 사산 왕조 시기에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 까지도 야즈드에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인 배화신전(Fire temple)들이 많이 있다. 650년 경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당시 많은 조로아스터교 교도들이 야즈드로 이주해 오기도 했다.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몽골이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당시에 야즈드는 많은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1272년 이 도시를 방문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이곳의 훌륭한 실크 산업 기술에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여행기인 동방견문록에 야즈드를 훌륭하고 고귀한 도시로 묘사했다. 야즈드는 14세기에 짧은 기간 동안 무자파르 왕조(Muzaffarid Dynasty)의 수도였다. 1907년 영국러시아가 협상을 통하여 야즈드를 기점으로 각각 남쪽과 북동쪽에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야즈드는 근대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페르시아 건축의 중심지로 유명한 야즈드에는 고대 수로 시스템인 카나트(Qanat)가 발달해 있다. 카나트는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에서 물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해 지하에 건설된 수로로써 야즈드의 카나트는 2016년에 '페르시아 카나트'(The Persian Qanat)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하여 야즈드의 도로와 마당 위에는 지붕이 설치되어 있으며 방들은 주로 지하에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수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에 고대의 냉방 시설인 윈드타워(windtower)가 설치되어 있다. 야즈드는 3대 무역로의 길목에 위치하여 무역의 중심지이자 요새화된 도시로써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또한 이곳에서는 역사적으로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교, 유대교가 평화롭게 공존해 왔으며, 도시 곳곳에 모스크와 시나고그, 배화신전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1930년대에 도시를 현대화 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본래의 모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도시가 보존될 수 있었다. 오늘날 야즈드는 작은 규모의 건축물에서부터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까지 매우 다양한 전통적 사막 지역 건축의 예를 보유하고 있다. 모스크와 시장 거리를 비롯하여 수조와 목욕탕, 무덤 등이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아치와 지붕을 덮어 조성한 거리와 골목들도 보존되어 있다. 높은 굴뚝 처럼 솟아 있는 윈드타워와 대저택, 사원의 돔지붕 등이 어우러져 유서깊은 도시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14세기에 완공된 자메 모스크(Jameh Mosque of Yazd), 1438년에 지어진 아미르 차크마크 모스크(Amir Chakhmaq mosque), 조로아스터교 사원인 야즈드 아타쉬 베람(Yazd Atash Behram) 등이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야즈드〉, 《위키백과》
  2. 야즈드〉, 《나무위키》
  3. 야즈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Yazd", Wikipedia
  5. 야즈도〉, 《요다위키》
  6. 야즈드 역사도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아라비아 국가
페르시아 국가와 지역
아나톨리아 국가
레반트 국가
남캅카스 국가
아라비아 도시
페르시아 도시
아나톨리아 도시
레반트 도시
남캅카스 도시
서아시아 문화
서아시아 지리
서아시아 바다
캅카스 지리
서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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