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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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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청

진도군(珍島郡)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서남부 진도와 부속 섬을 관할하는 군이다.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와 상조도, 하조도, 가사군도 등 45개 유인도를 포함하여 256개 섬으로 이루어진다. 진도는 북으로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대교가 연결되어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진도아리랑이라는 민요가 전해져 내려오며, 유물·유적, 천연기념물, 기·예능보유자가 많다.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친근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진돌이'가 마스코트이다.[1]

개요[편집]

진도군 동남쪽은 완도군, 동북쪽은 명량해협(鳴梁海峽)을 건너 해남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제주해협(濟州海峽), 서북쪽은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53′∼126°23′, 북위 34°08′∼34°35′에 위치한다. 면적은 440.13㎢이고, 인구는 2023년 6월 기준 29,222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 6개 , 242개 행정리(9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다. 진도는 한국에서 3번째로 큰 으로 서해의 관문으로서 극동은 고군면 와도, 극서는 조도면 죽도, 극남은 조도면 병풍도리, 극북은 군내면 나리이다.

전라남도의 군 가운데 구례군·곡성군에 이어 인구가 3번째로 적은 곳으로, 인구는 진도읍에 집중되어 있고 조도면의 인구가 가장 적다. 대표적인 특산종으로 진돗개가, 특산품으로는 홍주가 유명하다.

과거에는 옥도(玉島)로 불리기도 했는데, 진도는 치고는 상당히 토질이 비옥한 편이라서 예로부터 농업만으로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도 웬만해서는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아 사실상 1년 내내 농사가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다른 섬 지역과는 또 다른 진도만의 독특한 문화가 등장한 배경이 되기도 하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섬 자체의 문화가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1년 내내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고, 조선 시대 귀양 온 선비들이 머물다 간 곳이기 때문에 나름 대로의 예향(藝鄕)이기도 하다. 진도가 섬이긴 해도 환경이 좋다 보니 귀양지로서는 그나마 편한 곳이었기 때문에 귀양오는 선비들이 대개는 정계, 학계의 거물이기가 십상이고 그들에게 중앙의 학문과 예술을 배워 꽃피운 것이 진도의 문화였다고 한다. 남도 판소리와 진도아리랑으로도 유명하다. 국립남도국악원이 진도에 소재하고 있으며 국악고등학교(과거 석교고등학교(인문계), 현 진도국악고등학교(특목고))도 소재. 미술로는 조선말 남종화의 거두였던 소치 허련이 진도 출신이며 그가 말년에 기거한 운림산방과 소치미술관이 진도에 소재하고 있다.

어업과 농업이 발달한 곳이다 보니 음식문화도 발달하였다. 전반적으로는 해산물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남도밥상이라는 것 외에는 해남 등의 인근 전라도 지역의 식문화와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몇몇 독특한 식문화가 있는데, 선명한 붉은 색이 인상적인 진도홍주가 유명하며 해초와 쇠고기를 넣고 끓인 '뜸북국'도 독특하고 맛이 좋다. 또 꽃게라고 하면 보통 연평도를 연상하기 쉽지만 진도 꽃게도 만만치 않게 유명하고 품질이 좋다. 게철에 방문해보면 싼값에 배터지게 신선한 게를 맛볼 수 있다. 먹부림을 겸한 관광차 가도 좋을 곳이다.

진도의 토착 문화가 잘 보존된 것에는 진도 특유의 역사도 기인한다. 진도는 삼별초 항쟁 때 삼별초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고려 정부군과 몽골군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이 때문에 몽골은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를 제외한 서남해안 섬들의 주민들을 모두 본토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령(空島令. 섬을 비움)을 내렸다. 몽골이 물러난 뒤에도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서남해안이 쑥대밭이 되자 고려 정부에서는 공도 령을 계속 유지시켜야 했다. 이 때문에 각 섬 주민들이 지켜오던 토착 문화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진도는 정작 삼별초가 진압된 뒤 공도 령이 곧 해제되었고, 왜구의 침입 때도 가까운 영암 지역에 이주했다가 곧 진도로 돌아와서 그나마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2][3]

자연환경[편집]

남서로 뻗어 해남반도를 이룬 소백산맥의 지맥이 바다를 건너 이 군에 이른다. 진도(珍島)·상조도(上鳥島)·하조도(下鳥島)·가사도(加沙島) 등 256개의 섬 들은 지질시대에는 모두 육지에 연결되었으나 후빙기(後氷期) 해수면 상승의 결과 여러 개의 섬으로 분리된 것이다. 지질은 백악기의 반암과 응회암이 주종을 이룬다.

군에는 200∼400m 내외의 산지가 많으며, 대표적인 산으로는 첨찰산(尖察山, 485m)·여귀산(女貴山, 457m)·덕신산(德神山, 395m)·지력산(智力山, 325m)·백야산(白也山, 270m)·돈대봉(敦臺峰, 231m)·금골산 등이 있고, 이들 산지 사이에 좁은 계곡평야와 잔구가 나타난다.

하천으로는 인지천(仁智川)·석교천(石橋川)·진도천(珍島川)·의신천(義新川)·향동천(香洞川)·고방천 등이 있다. 해안선은 총 602.95㎞로 리아스식 해안이므로 굴곡이 심하다.

도서로는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동거차도(東巨次島)·서거차도·대마도(大馬島)·관매도(觀梅島)·독거도(獨巨島) 등 유인도 45개와 무인도 211개로 이루어져 있다. 여름철 태풍과 겨울철 북서계절풍에 노출되어 큰 파도의 영향을 직접 받는 동거차도·서거차도·대마도·관사도·외병도·내병도·관매도의 해안을 따라 해식애와 파식대(波蝕臺)가 발달하였다.

이들 섬으로 둘러싸인 진도 본도의 만입지에는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남쪽 해상에 위치하여 부근을 흐르는 난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후는 온화하다. 그러나 북서쪽이 개방되어 겨울철에 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기 때문에 인접해 있는 완도군보다는 다소 추운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2.7℃, 1월 평균기온은 -0.7℃, 8월 평균기온은 23.6℃, 연강수량은 1,232㎜이다. 봄철에 나타나는 짙은 안개는 부근 해상교통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4]

역사[편집]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으나, 고인돌·석부·선돌 등 청동기·철기시대의 것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바구니 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인진도군(因珍島郡)이라 하여 현 고군면 고성에 관부를 두고, 영현으로 도산현(현재의 고군면·군내면 방면)과 매구리현(현재의 임회면 방면)을 거느렸다.

통일 신라시대에는 인진도군을 진도현으로 고쳐 무안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매구리현은 첨탐현으로 고쳐 뇌산군에 소속시켰다. 757년(경덕왕 16년) 도산현을 뇌산군으로 승격 독립시키고 매구리현을 담침현으로 바꾸어 뇌산군에 따르게 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패한 뒤 고려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940년(고려 태조 23)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뇌산군을 폐지하고 가흥현으로, 첨탐현을 임회현으로, 진도현을 외이현으로 고치고, 새로이 진도군을 독립시킨 뒤 3현을 편입시켜 치소를 고성에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읍성을 고성에서 용장성으로 옮긴 후 남도포에 진을 설치하고 수군을 조련하였다. 1269년(원종 11)에는 경상도 창선현 사고(史庫)를 이전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삼별초의 배중손(裵仲孫)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여 서남해안을 장악하고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군을 토벌함에 따라 진도가 함락되고 잔여세력은 제주도로 옮아감으로써 1만여 명의 주민이 몽고에 잡혀가는 등 진도는 거의 황폐해졌다. 대신 군마사육장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천 필 정도의 우마를 방목하는 큰 규모의 목마장이 되었다.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1350년(충정왕 2) 한때 섬주민을 육지인 영암의 월악과 명산, 금산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80년간 진도에는 행정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금산에 관부를 둠으로써 공도(空島)가 되었다.

조선시대 1409년(태종 9)에 해남현과 합해 해진군이 되었다. 1437년(세종 19) 해남군과 분리하여 진도군이 복구되었고, 읍터는 고성에 임시로 두었다가 1440년에 지금의 진도읍으로 관부를 옮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중심 활동무대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의 명량대첩과 고금도해전이 유명하다.

1662년(현종 3)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71년 군으로 승격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서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 유배되었다. 특히 소치 허유와 미산 허형 등 남종화의 대가들이 다수 배출되어 지금도 그 제자들이 화단의 맥을 잇고 있다.

지방 제도 개정으로 1895년(고종 32) 진도군이라 개칭하고 나주부에 귀속시켰다. 1906년 삼촌(三寸)·명산(命山) 2개 면이 영암군에 이관되고, 1906년(광무 10)에는 육지부의 명산면, 삼촌면을 영암군과 해남군에 각각 귀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을 폐합하여 안창면·가좌면·도초면을 무안군에 귀속하고, 진도군은 진도면·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조도면·지산면으로 하여 7개면 101리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황해도 출신의 피난민 3천여 명이 진도에 정착하였고, 전쟁중 한때 적군에 함락되었다가 수복되었다. 1963년 1월, 조도면(鳥島面) 마진도리(馬津島里)를 무안군에 이관시켰다. 1966년 조도면 가사도(加沙島)에 가사출장소를, 서거차도(西巨次島)에 거차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군내면의 수역리·수유리·해창리·산월리가 진도면으로 편입되었다.

1979년 5월에는 진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재조정으로 조도면(鳥島面) 가사도리(加沙島里) 일부(고사도·평사도·송도)가 신안군 신의면(新衣面)으로, 역시 조도면 만제도리(晩才島里)가 흑산면(黑山面)으로 이관되었다. 1985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비로소 육지와 연결되었다.

199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안군의 저도 외 5개 섬이 진도읍으로 편입하였고, 1992년에는 의신면 도목리가 도목리와 도항리로, 접도리는 원다리로, 임회면 죽림리는 동헌리로, 지산면 소앵무는 백연동리로, 심동리는 상심동리와 하심동리로 분리되어 236개 이(里)에서 241개로 늘었다.

현재 진도군의 행정구역은 진도읍·군내면(郡內面)·고군면(古郡面)·의신면(義新面)·임회면(臨淮面)·지산면(智山面)·조도면의 1읍 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지만 주민의 일부가 반농반어(半農半漁)에 종사할 뿐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을 전업으로 한다. 산업구성비는 1차 산업 77.7%, 2차산업 1.2%, 3차 산업 21.1%로 제조업이 극히 미약하다. 총 경지 면적 127㎢ 가운데 논 70.1㎢, 밭 56.9㎢로 논밭의 비율이 비슷하며, 경지율은 30%이고 농가구수 9,331가구, 농가인구 2만 5264명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쌀보리·맥주보리·콩·목화·참깨·고구마·마늘 등과 진도대파 등 각종 채소류에 엽연초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검정약쌀·구기자·돌미역·돌김·진도홍주·멸치·유자가 있다. 특히 진도 특산물로 손꼽히는 구기자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해양성 기후와 일조시간이 가장 긴 지리적 특성으로 진도읍·의신면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단감·포도·배·복숭아 등의 과일과 양봉·양잠도 활발하다. 임야면적은 256㎢로 군 전체면적의 약 60%를 차지하며, 임산물로 밤·대추·표고버섯 등이 생산된다.

주요 가축은 소·돼지이지만, 진돗개(천연기념물 53)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진도읍·지산면·임회면을 중심으로 사육되는 진돗개는 매년 4~9월에 심사하여 우수한 것은 족보에 올리기도 한다. 진돗개는 구기자·돌미역과 함께 오래 전부터 진도군의 3대 보배로 손꼽힌다.

진도군 일대의 해역은 대륙붕 지역이고 북상하는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어족이 풍부하며 육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해수 오염이 없어 해조류 양식에 유리하다. 연안의 바다에서 조기·갈치·도미·새우·해삼·고등어 등이 많이 잡히고, 연안의 만(灣) 일대에서는 미역·굴·김·패류(貝類)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연간 6만 7140t 정도의 수산물을 어획하며, 492억 69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광물자원의 매장량은 많지 않으나 석재(石材)·납석·고령토·규사(硅砂) 등의 매장량이 많다. 군내면·조도면을 중심으로 연간 1만 1810t의 납석을 채굴한다. 제조업의 발달은 미비하고 소규모 도정·제분·양조업이 영세하게 이루어지며, 30개 업체에서 주로 해산물을 가공한다. 농공단지 1곳이 있다.

진도읍에 상설시장이 있고, 진도읍·고군면·의신면·임회면·조도면 등 5개소에서 5일 정기시장이 열린다. 대부분 가축시장을 겸하며, 농산물과 일용잡화가 거래된다.

교통[편집]

서해의 관문으로서 해남반도에서 이어지는 국도가 진도대교를 통해 군의 중앙부를 통과하며, 내부에 지방도(801·803번)와 군도, 농어촌 도가 진도읍을 중심으로 군내 주요지역으로 통한다.

군내면 녹진리(鹿津里)와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 사이에 연륙교인 진도대교가 놓임으로써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져 관광객 유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진도 일주도로가 확장되었고, 해남을 거쳐 광주·목포·강진을 잇는 도로가 포장되었으며, 화원반도와 영암군 삼호면(三湖面)을 잇는 방조제가 완공되어 목포·광주와의 도로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진도와 서울은 1일 4회, 진도와 부산은 1일 2회 왕복 운행한다.

해상 교통으로 목포·제주·진도군 관내의 여러 섬 들과 연결된다. 목포와 서거차도(西巨次島) 사이를 운항하는 연안여객선이 진도 남서단의 팽목을 거치고, 군의 북동쪽 고군면 벽파리의 벽파항은 목포와 완도, 목포와 제주를 잇는 중간 기착지로 목포·완도·제주와 연결된다. 조도면의 여러 섬은 정기여객선을 통해 조도와 목포를 연결한다. 항공이나 철도 교통은 목포나 광주를 이용하고 있다.

관광[편집]

진도 관광은 진도대교·금골산·금골산 5층 석탑·백조도래지·용장산성·용장사·석불좌상·이충 무공전첩비가 있는 녹진권, 신비한 바닷길과 가계해수욕장, 오산리 선돌, 고성리 고인돌이 있는 회동권, 운림산방·쌍계사·진도향교·왕온묘·의신면 상록수림·문화예술관·향토문화회관이 있는 사천권, 남도석성·남진미술관·상만 비자나무·상만사지5층석탑이 있는 서망권, 접도·구자도·매섬·조도 6군도·관매 해수욕장·시닉 드라이브 여행을 할 수 있는 다도해 권으로 크게 나눈다.

녹진권의 진도대교는 1984년 10월 18일 준공된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로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이 장관을 이룬다. 이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장 명량 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으로,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이루는데, 바다 폭이 한강 너비 정도인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의 시속을 지닌 11노트의 조수가 흐르며, 물소리가 크고 거품이 일며, 물이 용솟음치기 때문에 배가 거스르기 힘든 곳이다.

회동권의 신비한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義新面) 초평마을, 모도(茅島) 사이의 바다에서 해마다 음력 2~3월의 보름이나 그믐께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서 바닷길이 열리는 현상을 말한다. 약 1시간의 일시적인 현상을 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1996년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요시리는 신비한 바닷길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렀고 이후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사천권의 운림산방은 첨찰산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앞에 연못이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룬다. 이곳에서 화가 소치(小痴) 허유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南農)-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 온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쌍계사의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는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150m 정도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 있다.

서망권의 남도석성(南桃石城:사적 127)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 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다. 성종~연산군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래의 규모는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영조 때는 석축 둘레 1,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도 성터가 거의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서문·남문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이다. 조선 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

진도 남서쪽 해상의 조도(鳥島)·거차군도(巨次群島)·독거군도(獨巨群島)·맹골군도(孟骨群島) 일대의 많은 들은 기암괴석·백사청송(白砂靑松)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다. 접섬·금갑도·갑도·접배도라고 하는 접도는 조선시대의 유배지로 곳곳에 기암 절경과 상록 활엽수림, 낙엽수림이 혼재해 풍경이 아름답다.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다에 둘러싸여 청정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배로 섬을 일주할 수도 있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 이 섬의 남방산에 오르면 제주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접도 11경이 있다.

이 밖에도 삼별초(三別抄)의 근거지와 관련된 용장산성(龍藏山城:사적 126)을 비롯해 옛 성터·절터·싸움터 등 명승고적이 많다. 비경을 간직한 조도면 관매리(觀梅里)에는 국내 최대의 후박나무가 있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해수욕장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쪽빛바다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향토문화제로, 매년 4~5월 신비한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의 영등 축제가 있다. 문화행사로 진도 가락공연·군립민속예술단·판소리·강강술래·남도 들노래·씻김굿·축등행렬·노래자랑과 각종 민속경연 등이 열린다. 또 부대행사로 진돗개 묘기자랑, 뽕할머니 축원제, 진도 특산 명물장, 서화 전시회, 홍주시음회 등이 함께 펼쳐진다. 1965년에 개원한 진도문화원이 무형문화재의 전승 및 허유를 추모하는 소치 미술제를 주관하는 등 향토예술 발전에 힘쓰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진도군〉, 《위키백과》
  2. 진도군〉, 《네이버 지식백과》
  3. 진도군〉, 《나무위키》
  4. 진도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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