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트라
타트라(Tatra)는 체코의 자동차 제조업체이다. 네델란드의 상용차 제조업체 다프(DAF)의 자회사로, 체코군에 군수 및 트럭, 버스 등과 같은 대형차와 특수차 등을 조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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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편집]
타트라는 체코의 상용차 생산 회사로, 스코다(Skoda)와 함께 체코의 양대 자동차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타트라는 1850년 창립되어 1897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하여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자동차를 제조 및 생산한 브랜드이다. 타트라는 1998년 이후부터 승용차를 더이상 생산하지 않고 상용차 및 중장비 전문 제조사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타트라는 군용트럭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1] 체코군의 요구에 충족되는 군수 및 트럭, 버스 등과 같은 대형차 및 특수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미국의 나비스타 등과 협력 관계 등을 이어가고 있다.[2] 한편 타트라는 공랭식 엔진의 본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산된 승용차인 700은 물론이고, 생산 중인 트럭 중 일부 엔진옵션 중 아직도 공랭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트럭이나 선박에 올릴 정도의 중소형 공랭식 엔진을 생산하는 업체는 타트라 이외에 독일의 도이츠(Deutz)만이 공랭식의 디젤엔진을 생산하고 있다.[3]
역사[편집]
타트라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회사이다. 체코의 모라비아 주 코프리브니체에서 1850년에 이그나즈 슈스탈라(Ignatz Schustala)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890년 독일 네셀도르퍼 바겐바우-파브리크제셀샤프트(Neselsdorfer Wagenbau-Fabriksegellschaft)에서 마차 및 마차 제조사가 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창업 당시에는 마차 제작사였고, 1891년 철로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1897년에 유럽에 처음으로 현대적 개념의 자동차를 등장시킨 것도 타트라이다. 역사적으로 타트라를 유명하게 한 나라는 독일인데 그 이유는 타트라가 철도차량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중 1897년부터 벤츠의 차량을 벤치마킹하여 중부 유럽에서 최초의 자동차이자 자사 첫 승용차 모델인 '프레지던트'를 만들면서 자동차 사업을 본격 개시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1900년대 초반 무렵, 오스트리아 출신인 한스 레드빈카는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체코 타트라의 설계 책임을 맡아 스포츠카에 주로 쓰이는 백본 섀시를 고안해낸다. 독립식 서스펜션과 공랭식 수평엔진 등도 타트라가 선보인 기술이었다. 일각에선 독일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박사보다 그를 뛰어난 기술자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레드빈카를 유심히 지켜본 인물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였다.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에게 국민차 계획을 세우라고 했을 때 둘은 모두 타트라를 주목했다. 이후 히틀러가 생각한 독일의 국민차 비틀(Beatle)을 포르쉐 박사가 내놨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초기 타트라와 비슷했다. 레드빈카는 소송을 냈지만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히틀러는 자신의 역작처럼 여기는 비틀이 체코의 타트라를 표방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타트라 생산을 아예 중단시켰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비틀의 원조는 체코라는 말이 남아있다. 타트라는 스코다(Skoda)와 함께 체코의 양대 자동차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1800년대 중반 기계공작소르 출발한 스코다는 유럽 내에서 다양한 기계분야에 진출해 있었는데, 여러 기계 산업 중 하나로 자동차를 점찍고 개발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동차 역사를 논할 때 체코라는 국가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타트라와 스코다 때문이다.[4]
주요 인물[편집]
이그나즈 슈스탈라[편집]
이그나즈 슈스탈라(Ignaz Schustala)는 타트라의 설립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마차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그는 마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성공적으로 설립했다. 이그나즈 슈스탈라는 빈(Vienna)에 있는 마차 제조사에서 무역을 배웠다. 그는 수년간의 근무하며 마차 관련 실무를 익혔고, 모라비아-실레시아 지역의 코피브니스로 돌아와 동생의 집에서 마차를 만드는 작은 작업장을 열었다. 그의 사업은 번창했고, 직원들을 고용했으며 고급 역마차와 화물 및 우편 마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특허를 등록했다. 1870년, 그의 회사는 1,200대의 객차를 생산하고 러시아, 갈리시아, 인접 프로이센, 그리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국가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 양은 점차 늘어났고 이그나즈 슈스탈라는 해외 진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라티보, 브로츠와프, 빈, 프라하, 베를린, 체르노비체, 키예프 등에 지점을 개설했다. 1860년 그는 주식회사 코피브니카 보조브카를 설립했으나,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891년 1월 29일에 사망했으며, 이 회사는 곧 타트라의 전신이 되었다.[5]
한스 레드빈카[편집]
한스 레드빈카(Hans Ledwinka)는 타트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설계자이다. 그는 1878년 2월 14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인근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삼촌 밑에서 수습생으로 기계 관련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시작한 그는 빈에서 학업을 마친 1897년, 네셀스도르프에 있는 네셀스도르프 철도차량 제조사에 제도사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여러 젊은 엔지니어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동료들과 함께 회사의 대표에게 자동차 개발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회사에서는 이런 한스 레드빈카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회사 내에 소규모 자동차 개발 부서를 만들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정부 지원금을 철도차량 부문 투자에 집중하고 자동차 부문을 포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는데, 한스 레드빈카는 이에 뜻이 맞지 않아 1916년에 다시금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빈의 슈타이어(Steyr)로 그는 그곳에서 전 직장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대형승용차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네셀스도르프 차량 제조공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아울러 본사를 프라하로 옮기며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산맥 이름인 타트라를 새로운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자동차 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인재가 필요했던 타트라는 그를 다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사와 여러 차례 불화를 겪었던 그는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타트라와 레드빈카 사이의 협상은 1년 남짓 이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었다. 슈타이어의 컨설턴트 자리를 지키면서 타트라의 자동차 설계 책임자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6]
제품[편집]
승용차[편집]
타트라는 20세기 초반 백본 프레임 기반의 고급차를 제작 및 판매하며 이름을 알렸다. 1934년에는 세계 최초로 공기역학 개념을 차체 외관 디자인에 적용한 승용차인 타타르 77을 출시하였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당시 히틀러가 체코로 정치유세를 다니며 타트라의 차량들을 보고 매우 만족했다는 내용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게 '아우토반에서 달려야 할 차들은 이런 차들이다'라고 칭찬하였고, 포르쉐는 이에 RR 구동계와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탑재한 타트라 T97의 디자인을 채용하여 독일의 신형 국민차가 된 폭스바겐 비틀을 제작했다. 이에 타트라는 폭스바겐에게 표절 소송을 걸었지만,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며 소송은 없던 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T97의 생산도 중단되었다. 전쟁 후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방침에 따라 타트라는 공기업이 되었다. 공기업으로의 전환 이후 처음으로 개발한 모델이 타트라 600인데, 이는 스코다의 공장에서 제작되어 유럽 동구권에서 1951년까지 생산 및 보급되었다. 1952년에는 타트라 600의 후속으로 타트라 603이 출시되었다. 타트라 603은 강력한 V8 엔진과 유선형 디자인, 4개의 헤드라이트가 가운데 모여있는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고, 20년이 넘는 1975년까지 생산되었다. 이 차량의 후속모델은 타트라 613이었다. 이는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비날레에서 디자인되어 모던하고 각진 스타일의 차체를 갖추고 있었으며, 3.5L V8엔진을 탑재하고 1996년까지 5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에야 생산되었다. 이렇게 대형세단 단일 차종을 한 가지 모델로 계속해서 생산하다보니 대중들에게 타트라는 더이상 신선한 브랜드가 아니었고, 결국 1996년 오랜만에 내놓은 신차인 타트라 700의 흥행에 실패하며 승용차를 더이상 만들지 않고 있다. 타트라 승용차는 모두 RR 구동계를 채용했으며 마지막 모델인 타트라 700 모델까지도 RR 구동계를 고집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승용차가 공랭식 엔진을 적용하고 있으며, 특히 600~700 시리즈는 포르쉐(Porsche)도 양산하는 데 실패한 V8 공랭식 가솔린 엔진을 얹은 승용차로 유명하다.[7]
타트라 11[편집]
타트라 11(Tatra 11)은 1921년에 타트라로 복귀한 한스 레드빈카(Hans Ledwinka)가 슈타이어(Steyr)에서 일할 때 설계를 시작한 차의 개발을 계속해, 1923년에 완성된 자동차이다. 공랭식 수평대향 2기통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얻은 타트라 11과 그 뒤를 이은 타트라 12에는 여러 혁신적 설계가 탑재되었다. 앞에 놓인 엔진과 변속기의 동력을 뒤 차축으로 전달하는 프로펠러 샤프트(propeller shaft)를 속이 빈 튜브 형태의 백본 안으로 통과시키는 백본 섀시를 선보였고, 뒤 차축은 스윙 액슬(swing axle) 독립 서스펜션 구조로 만들었다. 스윙 액슬 서스펜션은 1903년에 독일의 과학자 에드문트 룸플러(Edmund Rumpler)가 특허를 냈던 기술이었기 때문에 한스 레드빈카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엔진과 변속기를 직접 결합한 구조 역시 에드문트 룸플러에 의해 시도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설계를 구체화해 제품에 반영한 것은 한스 레드빈카의 아이디어였다. 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백본 섀시와 결합한 것 역시 한스 레드빈카의 아이디어였다. 타트라 11과 타트라 12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이 개념은 이후 이와 같은 기술 요소의 조합은 '타트라 섀시 콘셉트'로 불리며 여러 타트라 차에 이어졌다. 현재 생산 중인 타트라 트럭과 군용차에도 토크 튜브를 활용하는 백본 섀시 개념이 쓰이고 있다.[6]
V570[편집]
V570은 타트라 57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장차이다. 한스 레드빈카는 독일의 자동차 엔지니어 에리히 위버라커(Erich Überlacker)와 자신의 아들 에리히 레드빈카(Erich Ledwinka)와 함께 새로운 개념의 설계에 도전했다. 작은 크기의 차체에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추고, 가볍우며 연료를 적게 소비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일반적 설계로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들의 해법은 1931년에 만든 프로토타입 타트라 V570으로부터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평범했지만, 엔진과 구동계 배치는 전혀 달랐다. 백본 프레임 구조는 이어받았지만 새로운 공랭식 엔진은 차체 앞쪽이 아닌 뒤쪽에 놓였다. 공랭식 엔진은 냉각수 순환을 위한 장치가 필요 없어 작고 가벼웠다. 엔진을 뒤로 옮기면서 앞 서스펜션 설계의 자유도도 높아졌다. 동력을 뒷바퀴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펠러 샤프트가 사라진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무게를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프로펠러 샤프트가 차지했던 공간을 실내를 넓히는 데 쓸 수 있었다. 시험 결과, 일반적인 차체 형태로는 뒤쪽에 있는 공랭식 엔진을 충분히 냉각시킬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리히 위버라커와 에리히 레드빈카는 차체를 더 키워 엔진 주변 공간을 넓히도록 한스 레드빈카를 설득했다. 한스 레드빈카는 에드문트 룸플러의 영향을 받아 관심을 두었던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접목하기로 했다. 한스 레드빈카는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선구자인 파울 야라이(Paul Jaray)에게 자문을 구해 프로토타입에 유선형 차체를 올렸다.[8]
타트라 77[편집]
타트라 77(Tatra 77)은 더이상 승용차를 개발하지 않는 타트라가 승용차 개발 중단을 선언하기 전에 선보인 자동차이다. 최초로 직렬로 생산된 진정한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되었다. 타트라 77은 한스 레드빈카와 제플린(Zeppelin)의 공기역학 엔지니어인 폴 자레이(Paul Jaray)에 의해 개발되었다. 1934년에 출시된 타트라77은 타트라의 트레이드마크인 튜브형 섀시가 아닌 프레스 박스 섹션 강철 백본이 있는 플랫폼 섀시로 제작되었으며, 후면 장착형 2.97리터의 공랭식 V8 엔진에 의해 구동된다. 이후 직렬 75마력의 3.4리터 엔진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오버헤드 밸브, 반구형 연소실, 드라이 섬프(dry sump), 완전히 독립적인 서스펜션, 리어 스윙 차축 및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및 차체에 경량 마그네슘 합금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등의 다양한 고급 엔지니어링 기능이 탑재되었다. 타트라 77의 1:5 모델의 평균 항력 계수는 0.2455로 기록되었다. 후기 모델인 타트라 77A는 예외적으로 낮은 항력 계수를 제공하는 진보된 공기역학 설계로 최고 속도가 150km/h를 넘는다.[9]
타트라 87[편집]
타트라 87(Tatra 87)은 타트라 77의 설계와 디자인을 더 발전시켜 1936년에 출시된 승용차이다. 타트라 77을 조금 줄인 차체는 타트라 77의 과도기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펜더와 차체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을 갖췄다. 다른 유럽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런 형태의 차체를 갖춘 차를 1940년대에 들어서야 만들기 시작하여 출시 당시에는 상당히 진보적인 모델로 평가받았다. 차체 디자인의 새로운 시대를 연 타트라 87은 한스 레드빈카가 가장 좋아한 차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모터 오버헤드 캠샤프트(Overhead camshaft, OHC)는 85마력의 힘을 만들어 냈고, 160km/h의 속도를 달성했다. 그러나 고속에서 특정 차량 섀시 때문에 숙련된 운전자가 차량을 몰아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자 한계점으로 자굥ㅇ했다.[10] 타트라는 타트라 87과 함께 좀 더 작은 크기의 타트라 97도 함께 생산했는데, 타트라 97의 앞모습은 2년 후 히틀러가 독일 중산층 회복을 위해 개발한 폭스바겐(Volkswagen)의 웨건, KdF-바겐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하고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타트라는 1939년에 승용차 생산을 중단했다.[8]
상용차[편집]
타트라는 승용차보다 상용차 분야에서 더 인정을 받는 자동차 브랜드이다. 1898년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2.7L 엔진을 올린 첫 트럭 모델을 양산했다. 이후 한동안 일정한 모델과 정형된 설계 없이 트럭을 제조하다가 1914년부터 T14/40hp, TL-2와 같은 모델명을 붙여 라인이 있는 트럭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타트라는 모델11에서부터 백본 프레임과 스윙액슬을 채용한 독창적인 설계를 탑재하기 싲가했다. 1942년에는 가장 흥행한 6X6륜 군용트럭인 타트라111이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애용했으며, 뛰어난 성능으로 전후 소련군도 많이 사용했다. 타트라111에 들어가던 타트라의 V12 디젤엔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사용한 장갑차에도 탑재되었다. 그 외에 타트라의 V8, V12 공랭식 디젤엔진들이 독일군의 장갑차에 다수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체코가 소련 치하의 공산국가가 되며 타트라111의 후속모델인 타트라 138, 타트라 148 등이 소련군에 납품되었다. 이 시절 가장 유명한 모델은 T813으로, 백본 튜브 섀시라는 독창적이고도 높은 내구성과 뛰어난 험지 접지력을 발휘하는 설계가 적용되어 친소련 국가들의 군용트럭 및 장비 운반 차량으로 쓰였다.[7]
타트라 810[편집]
타트라 810은 타트라에서 제작 및 생산한 중형트럭이다. 당시는 체코 프라하에 본사를 둔 자동차 제조회사 프라가(Praga)가 출시한 중형트럭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프라가의 V3S는 1950년대에 출시되어 2008년까지 오랜 체코군에 생산 및 납품되었는데, 타트라 810가 이 모델을 대체하였다. 2002년 타트라사는 R210 트럭의 모든 모델이 대형트럭이기 때문에 중형트럭의 시장 진입을 위해 R210 트럭에 대한 문서와 권리를 샀다. 원래 계획을 현대화하려는 의도였고, 마침내 체코 육군이 4,000대의 프라가 V3 함대를 대체하기를 희망했다. 타트라는 다른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라가는 기어 박스와 포털 차축을 제공하고 다른 구성 요소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Renault)가 납품하기로 했다. 2005년 체코 정부는 2005년 8월에 타트라 810 트럭 인수를 승인했고 2008년 4월에 인도 되었다. 다른 타트라 트럭과는 달리, 타트라 810은 백본 섀시와 스윙 하프 액슬의 전통적인 타트라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프레임을 가진 관습적인 트럭 구조를 사용했다.[11] 액체냉각된 6기통 엔진, 수동변속기, 트랜스퍼 케이스 및 레벨 1탄도 보호 기능을 갖춘 강화 장갑 바닥을 갖춘 현대적인 3인승 캡, 총기 운반 시스템을 위해 개조된 루프, 루프 해치 및 기타 특수 또는 군사 목적을 위한 부분 개조를 단행했다. 차량에는 윈치와 중앙 타이어 팽창 시스템이 있다. 프런트 액슬은 코일스프링에 의해 기계적으로 매달려 있고 리어 액슬은 로커 리프 스프링에 의해 매달려 있다. 민간용 버전 타트라 810-C는 2010년에 도입되었으며, 타트라는 최대 중량이 15.5톤인 트럭 중 유일하게 3개의 구동 차축을 가지고 있다.[12]
타트라 815-7[편집]
타트라 815-7(Tatra 815-7)은 타트라에서 2008년부터 생산한 중군 물류 차량이다. 표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C-130 헤라클레스 항공기에 의해 수송될 수 있는 능력, 표준화 협정에 따른 추가 갑옷의 가능성, 과압 NBC 보호 키트의 사용, 포차 시스템 장착 가능성 등 특수 군사력의 모든 요건을 준수하는 표준화된 범위의 특수차이다. 섀시는 타트라 차량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모든 차축은 프레임 아래에 배치된 고무 공기 벨로우에 의해 매달려 있다. 리어액슬의 경우 킹 프레임 결합 서스펜션 시스템도 사용할 수 있다. 차량에는 로우 캡이 장착되어 있고 사용 가능한 엔진은 타트라가 디자인한 공랭식 엔진이거나 해외의 다른 제조업체에서 제작한 엔진을 장착하는 방식이다. 변속기의 경우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 각각이 탑재되어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타트라 815-7 제품군에는 사륜구동이 장착된 4x4, 6x6, 8x8~10x10 모델 버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차량은 주로 군사 부문용으로 제작된다. 그러나 낮은 높이와 소형성 덕분에 이동식 크레인, 사다리가 있는 소방차 및 구급차와 같은 민간 부문에서도 널리 사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2]
TerrN°1[편집]
TerrN°1(Tatra TerrN°1)은 타트라에서 제작 및 생산하는 트럭이다. 1989년에 타트라는 타트라 815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타트라 815-2를 선보였는데, 1994년에 모델을 업데이트하고, 3년이 지난 1997년에 새로운 TerrN°1를 출시하였다. 이 모델은 2000년에 이어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 그중에는 새로운 계기판과 캡 부착장치도 포함되었으며 액체로 냉각된 엔진의 장착 옵션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2003년 배기가스 요구 사항 변경으로 인해 타트라는 유로 III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신형 V8 엔진 T3C를 개발하였고, 다시 한번 공기냉각 설계를 적용하였다. 더 개발된 T3D 엔진은 2006년에 선택적 촉매환원법(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SCR)과 유로 IV를 준수하여 도입되었다. 캡오버 엔진(COE) 섀시, 플랫폼 트럭 및 팁퍼는 민간 부문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킹 프레임 이름은 기계식 리프 또는 코일스프링과 고압 공기 벨로우스로 구성된 결합된 서스펜션을 의미한다. 이 차량 범위는 타트라 815-2 유로 II 상용 범위의 직접적인 후속 모델이다.[12]
타트라 피닉스[편집]
타트라 피닉스(Tatra Phoenix)는 타트라가 다프(DAF) 트럭 회사와 협력 및 개발하여 2011년부터 생산한 대형트럭이다.[13] 따라서 차량 외형은 다프의 대형트럭 CF와 유사하다. 타트라 피닉스가 출시되었을 당시에는 유럽에서 치열하게 상용차 경쟁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타트라는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내구성 등의 오프로드 특화 기술로 마케팅을 펼쳤다. 주로 건설장비나 농업용차로 사용되는 편이다. 타트라 섀시에 구축된 타트라 피닉스 유로6는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환경친화적인 파카그룹(PACCAR)의 엔진이 엄격한 유로 6 배출 제한을 충족했다. 타트라 피닉스는 오프로드는 물론이고 가장 험난한 지형을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섀시 설계에는 티퍼 본체를 장착하기 위한 추가 서브프레임이 필요하지 않다. 조립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상부 구조의 설치가 간단하다. 에어쿠션이 있는 하프 액슬을 독립적으로 매달아 운송 속도를 높이고 총 운송 용량을 늘릴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 안전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차량에는 모든 액슬 및 액슬 간 디퍼렌셜 잠금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장착 가능한 전륜구동 기능을 사용하면, 운전 주행환경에 따라 사륜구동 차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으며, 온로드에서는 전륜구동 모드를 끄고 주행하여 차량 작동을 간소화할 수 있다. 섀시의 공기 시스템은 전자 관리 시스템을 통해 새롭게 제어되므로 공기 소비량과 압축기 작동을 최적화하고 연료 소비량을 줄인다. 조향식 차축은 최대 10톤까지 적재할 수 있으며, 비조향식 차축은 최대 하중이 16톤이다.[12]
각주[편집]
- ↑ 모토야 , 〈우리에겐 아직 낯선 '체코'의 자동차들〉, 《모토야》, 2020-04-02
- ↑ 김학수 기자, 〈(클래식카리뷰) 1945 타트라87〉, 《한국일보》, 2018-02-23
- ↑ 〈타트라〉, 《나무위키》
- ↑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오토 오피니언) 독일의 국민차 '비틀'...원조는 체코 '타트라'〉, 《한경뉴스》, 2016-09-27
- ↑ 〈Ignaz Schustala, founder of a company that later became Tatra, born 130 years ago〉, 《Radio Prague International》, 2021-01-24
- ↑ 6.0 6.1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1)〉, 《다음 콘텐츠 뷰》, 2021-05-18
- ↑ 7.0 7.1 〈타트라〉, 《나무위키》
- ↑ 8.0 8.1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2)〉, 《다음 콘텐츠 뷰》, 2021-06-18
- ↑ 〈Tatra 77〉, 《Wikipedia》
- ↑ Martin, 〈History of Tatra 87〉, 《Auto-zine.》, 2015-02-26
- ↑ 〈Tatra 810〉, 《Wikipedia》
- ↑ 12.0 12.1 12.2 12.3 타트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tatratrucks.com/
- ↑ 〈Tatra 158 Phoenix〉,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 타트라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tatratrucks.com/
- 〈Tatra (company)〉, 《Wikipedia》
- 〈Tatra 77〉, 《Wikipedia》
- 〈Tatra 810〉, 《Wikipedia》
- 〈Tatra 158 Phoenix〉, 《Wikipedia》
-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오토 오피니언) 독일의 국민차 '비틀'...원조는 체코 '타트라'〉, 《한경뉴스》, 2016-09-27
- 김학수 기자, 〈(클래식카리뷰) 1945 타트라87〉, 《한국일보》, 2018-02-23
- 모토야 , 〈우리에겐 아직 낯선 '체코'의 자동차들〉, 《모토야》, 2020-04-02
- Martin, 〈History of Tatra 87〉, 《Auto-zine.》, 2015-02-26
-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1)〉, 《다음 콘텐츠 뷰》, 2021-05-18
- 류청희 칼럼리스트 , 〈전설의 엔지니어들 - 한스 레드빙카 (2)〉, 《다음 콘텐츠 뷰》, 2021-06-18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