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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17일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14일 샤트 알-아랍 수로에서 이란해군과 충돌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해군은 이 과정에서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8명과 장교 1명을 생포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호시야르 지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17일 바그다드 주재 이란 대사를 통해 이란 해군이 억류중인 이라크 해안경비대원들의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다. 샤트 알-아랍 수로는 이라크를 관통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이라크 남부 알-바스라주(州)의 알-쿠르나에서 만나 걸프연안까지 약 160㎞를 흐르는 강이다. 아랍의 강이라는 뜻을 지난 샤트 알-아랍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오랜 영유권 분쟁은 지난 80년 이라크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됐었다. 이번 충돌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원유를 밀반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 선박 한 척을 수색하기 위해 나포를 시도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바스라지역 국경수비대장인 압바스 무사위 준장은 바스라 남쪽 45㎞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을 발견해 수색하려 하자 이란 해군 고속정들이 갑자기 나타나 공격해 왔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알-와일리 바스라 주지사는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1명이 이란 해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현지 분석가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란에 가까운 시아파가 장악한 이라크가 이란과 전례없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이 두 나라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f>박세진 특파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198690?sid=104 이란-이라크, 샤트 알-아랍 水路에서 무력충돌]〉, 《연합뉴스》, 2006-01-17</ref>
 
* 2006년 1월 17일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14일 샤트 알-아랍 수로에서 이란해군과 충돌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해군은 이 과정에서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8명과 장교 1명을 생포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호시야르 지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17일 바그다드 주재 이란 대사를 통해 이란 해군이 억류중인 이라크 해안경비대원들의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다. 샤트 알-아랍 수로는 이라크를 관통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이라크 남부 알-바스라주(州)의 알-쿠르나에서 만나 걸프연안까지 약 160㎞를 흐르는 강이다. 아랍의 강이라는 뜻을 지난 샤트 알-아랍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오랜 영유권 분쟁은 지난 80년 이라크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됐었다. 이번 충돌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원유를 밀반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 선박 한 척을 수색하기 위해 나포를 시도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바스라지역 국경수비대장인 압바스 무사위 준장은 바스라 남쪽 45㎞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을 발견해 수색하려 하자 이란 해군 고속정들이 갑자기 나타나 공격해 왔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알-와일리 바스라 주지사는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1명이 이란 해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현지 분석가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란에 가까운 시아파가 장악한 이라크가 이란과 전례없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이 두 나라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f>박세진 특파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1198690?sid=104 이란-이라크, 샤트 알-아랍 水路에서 무력충돌]〉, 《연합뉴스》, 2006-01-1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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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스라 부근의 샤트알아랍강
샤트알아랍강

샤트알아랍강(Shatt al-Arab, 아랍어: شط العرب, 페르시아어: اروندرود)은 이라크 남부에서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이 합류하여 이란과 이라크 국경을 따라 페르시아만까지 200km를 흐르는 이다. '아랍의 강'이란 의미로 이라크, 터키, 이란, 시리아를 지나며세계에서 17번째로 긴 강이며 면적이 884,000km²에 이르며, 평균유량은 1,750 m³/s에 이른다.[1][2]

개요[편집]

샤트알아랍강은 이란과 이라크 국경을 따라 흐르는 강이다. 이란에서는 샤트알아랍 수로를 '빠른 강'이라는 의미로 아르반드루드(Arvand Rud)라고 부른다. 샤트알아랍강은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오랜 분쟁의 대상이었다. 이라크의 바스라, 이란의 아바단이 이 강을 끼고 오랫동안 하항(河港)으로 자기매김해 왔다. 이 강은 고대로부터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들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무역로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에 샤트알아랍은 이란과의 국경이었다. 1913년 이슬람의 두 강대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이란은 국제적 관례인 탈베크(Talweg)의 규칙을 따라 샤트알아랍의 가항수로(可航水路)의 가장 깊은 곳(流心)을 양국 간의 경계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오스만투르크가 패하고, 이라크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32년 이라크는 영국이 뒤를 돌보아 주는데 힘입어 샤트알아랍의 동쪽(이란쪽) 연안으로 국경선을 긋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은 탈베크의 규칙을 지켜 강 중앙을 경계로 하자고 했지만, 러시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랐다. 1968년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는 1969년 4월 샤트알아랍이 자국 영토라고 선언하고 이 수로를 운항하는 이란 선박이 이란 국기를 달 수 없으며 이란 해군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이란의 팔레비(Pahlevi) 국왕은 1937년의 국경조약을 파기하고 군대의 호위 하에 이란 국기를 단 선박이 수로를 운항하게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국내에서는 쿠르드족 반군을 내전을 벌이고, 이스라엘과 맞서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라크는 이란의 무력시위에 대응해 군사적 행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1975년 이란이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 반군을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양국은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앙선을 경계선으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알제 협정(Algiers Accord)이라고 한다.

알제 협정은 5년만 물거품이 되었다. 1979년 7월 야심만만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집권하고 1980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전쟁은 후세인의 야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랍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후세인은 페르시아(이란)를 증오했고, 마침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 혼란스러운데다 수니파 국가의 단결을 꾀할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서방국가들이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던 시기여서 좋은 타이밍이라고 보았다. 1980년 9월 17일 이라크는 갑자기 알제 협정의 파기를 선언하고, 샤트알아랍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5일 후인 9월 22일 사담 후세인은 이란 공군기지를 폭격하라고 자국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시작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이나 끌었다. 이란과 이라크는 1988년 8월 휴전협정을 맺어 포성을 멈추었고, 1990년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앙선을 경계로 하는 알제협정을 재확인하고 국교를 회복했다. 사망자가 50만 명, 사상자도 비슷한 숫자였다.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두 나라의 전쟁은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승자 없는 전쟁으로 종결되었다.[3] [4]

구성[편집]

유프라테스강[편집]

유프라테스강(Euphrates R.)은 서아시아 최대의 강이다. 아랍어로는 알-푸라트(Al-Furāt, الفرات), 튀르키예어로는 피라트(Firat)라고 한다. 길이 2,781㎞로 티그리스강과 병칭(竝稱)되며 튀르키예에서 발원하여 시리아와 이라크를 흐른다. 튀르키예 동부의 아르메니아 고원에 위치한 아라라트(Ararat) 산기슭의 반(Van) 호수에서 발원하며, 상류는 산악지역에서 협곡을 이루며 시리아를 향해 남동쪽으로 흐른다. 시리아에 들어선 유프라테스강에 카부르(Khabur)강과 발리크(Balikh)강이 합류하여 유프라테스 본류를 이루며, 시리아 사막의 북동부를 횡단하고 이라크에 들어가 티그리스강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흐른다. 이라크에서는 이들 강 사이의 길쭉한 지역을 알자지라 섬라고 부른다. 유프라테스강은 바그다드 부근에서 티그리스강과 가장 가까워지며, 거기서부터 다시 거리가 멀어진다. 알-낫시리야(Al-Nasiriyah)를 지나면서부터 물길은 많은 분류를 형성한 후 광대한 하마르호(湖)에 이른다. 여기서 빠져나와 바스라(Basra)에 이르면 유프라테스강은 여러 개의 운하로 나뉘어 소택지를 이루며, 그 중 일부가 알-쿠르나(Al-Qurna)부근에서 티그리스강과 합류하여 샤트알아랍 수로(Shatt al Arab Water Gate)로 연결 된다.

1990년대부터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에 의해 거주민 반란을 진압하려는 한 방편으로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간척사업이 실행된 적이 있다. 샤트알아랍 수로는 약 200km로 일대에 저습지를 이루고 바스라, 아바단을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든다. 튀르키예 국경에서 바그다드 부근까지는 낙차가 커서 1년 내내 유속(流速)이 빠르고 다량의 침전물을 나르지만, 그 이남에서는 땅이 매우 저평하고 흐름도 완만하다. 수위는 9∼10월에 최저에 이르며, 봄에는 아나톨리아 산지의 눈이 녹아 홍수가 나고 5월에 최고수위에 이른다. 그러나 전체적인 수량은 티그리스강에 비하여 적다. 시리아는 1973년에 타바까(Tabaqah) 댐과 이에 따른 아사드(Assad) 호를 완공했으며, 그 물을 관개 농업에 활용해 면화 생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프라테스강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고 강폭이 좁기 때문에 선박이 오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운하로 활용된 예는 거의 없다. 다만 강 상류로부터 1930km가 떨어진 하류의 이라크 히트(Hit) 시부터는 작은 선박의 항행이 가능하다.[5]

티그리스강[편집]

티그리스강(Tigris R.)은 튀르키예와 이라크에 걸쳐 흐르는 강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다. 아랍어로는 Nahr Dijla(نهر دجلة), 튀르키예어로는 디클(Dicle)이며, 성서에는 Hiddekel로 되어 있다. 길이 1,850km로 튀르키예와 이라크를 관통하며 도중에 시리아 국경을 지난다. 수원지는 튀르키예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하제르(Hazer) 호수와 반(Van) 호수 두곳이며, 두 물줄기는 튀르키예의 틸(Til) 에서 합류한다. 상류에서는 물길이 불규칙하게 흐르면서 디야르바키르를 거쳐 남동류하다가 이라크 북부에 들어와 남쪽으로 흘러 바그다드를 지난다. 그 부근에서 유프라테스 강과 접근하나 다시 멀어졌다가 바스라(Basra) 상류의 알-쿠르나(Al-Qurna)부근에서 합류하여 샤트알아랍 수로(Shatt al Arab Water Gate)로 연결 된다. 샤트알아랍 수로는 약 200km로 일대에 저습지를 이루고 바스라, 아바단(Abadan)을 거쳐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든다.

티그리스강은 동쪽의 자그로스 산맥에 접근해서 흘러 그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디얄라강, 상·하 자브(Upper and Lower Zab)강 등 대소 지류와 합류하기 때문에 유프라테스강과는 달리 집수범위가 넓고, 따라서 지역적인 강수 상황이 곧바로 유수량에 영향을 미쳐 범람을 일으키기 쉽다. 자그로스산맥에 집중호우가 있으면 수시간 내에 수위가 상승하고 24시간에 3∼4m의 증수를 보이기도 한다. 물길의 기울기가 커서 튀르키예 국경과 바그다드에서의 고도차는 약 300m나 되고, 또 유프라테스강보다 너비가 좁기 때문에 강물은 수량이 많고 흐름의 속도도 꽤 빠르다. 수위는 눈이 녹는 4월에 최고 9월에 최저가 되나 자그로스산맥에서의 강수량에도 크게 영향을 받고 또 해에 따라 유수량의 변동도 심하다. 티그리스강은 모술(Mosul), 티크리트(Tikrit), 사마라(Samarra) 등의 이라크 주요 도시와 수도 바드다드를 관통하기 때문에 이라크 정부에서는 치수, 이수(利水) 사업에 주력하여 본류의 사마라 제언(堤堰) 외에도 지류에 다목적 댐 등이 건설되었다. 중류지역 및 바그다드 남쪽에는 유역에 관개농지가 펼쳐져서 대추야자, 쌀, 밀 등이 재배된다.[6]

이란-이라크 전쟁 관련[편집]

이란과 이라크간 적대감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페르시아만 입구의 샤트알아랍강(이란명은 아르반드 루드)이라는 수로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분쟁이다. 샤트알아랍 수로는 양국을 경계짓는다. 이곳은 양국의 석유 수출에 중요한 수단이었다. 수로의 경계를 결정하는 권한은 역사적으로 힘이 센 쪽에 있었다. 1937년 영국이 이라크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수로의 경계는 동쪽(이란 쪽)으로 정해졌다.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이란은 1969년 4월 수로의 안쪽으로 선박을 출입시켰다. 이라크는 내부 사정으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고 1975년 3월 알제 협정으로 이란의 우세가 확인됐다. 알제 협정 시 협상을 맡았던 사담 후세인은 1980년 9월 17일 알제 협정 폐기를 선언한 뒤 9월 22일 이란-이라크 전쟁을 개시했고, 이후 8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관련 뉴스[편집]

  • 2021년 11월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코로나19로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과 세계 해양에서의 운명 논문은 이같이 지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지난 8월 23일까지 전 세계 193개국에서 배출된 코로나19 관련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840만 톤으로, 이 중 2만5900만 톤이 해양에 버려졌다. 쓰레기 73%가 아시아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갔으며, 유럽은 11%로 나타났다. 주요 강별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합류한 이라크 샤트알아랍강에서만 5200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에 버려졌다. 인도 인더스강에선 4000톤, 중국 양쯔강에선 3700톤이 배출됐다. 유럽 다뉴브강에선 1700톤 쓰레기가 흘러갔다. 87.4%는 병원 폐기물이었으며, 개인이 버린 쓰레기 비중은 7.6%에 그쳤다. 포장재는 4.7%, 코로나19 검사 관련 쓰레기는 0.3%로 나타났다. 논문은 이 점을 토대로 개발도상국 등이 의료 폐기물 관리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대부분은 병원에서 나온 의료용 폐기물이었다며 상대적으로 (마스크 등) 개인 보호 장비와 온라인 쇼핑 포장재 비중을 작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해양 생물에 해를 가하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 세계 주요 환경 문제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 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미 통제 불가능한 이 문제에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7]
  • 2006년 1월 17일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14일 샤트 알-아랍 수로에서 이란해군과 충돌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해군은 이 과정에서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8명과 장교 1명을 생포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호시야르 지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17일 바그다드 주재 이란 대사를 통해 이란 해군이 억류중인 이라크 해안경비대원들의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다. 샤트 알-아랍 수로는 이라크를 관통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이라크 남부 알-바스라주(州)의 알-쿠르나에서 만나 걸프연안까지 약 160㎞를 흐르는 강이다. 아랍의 강이라는 뜻을 지난 샤트 알-아랍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오랜 영유권 분쟁은 지난 80년 이라크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됐었다. 이번 충돌은 이라크 해안경비대가 원유를 밀반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 선박 한 척을 수색하기 위해 나포를 시도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바스라지역 국경수비대장인 압바스 무사위 준장은 바스라 남쪽 45㎞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을 발견해 수색하려 하자 이란 해군 고속정들이 갑자기 나타나 공격해 왔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알-와일리 바스라 주지사는 이라크 해안경비대원 1명이 이란 해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현지 분석가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란에 가까운 시아파가 장악한 이라크가 이란과 전례없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이 두 나라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8]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샤트알아랍강〉, 《위키백과》
  2. 샤트알아랍 강〉, 《우남위키》
  3. frog1, 〈이라크의 숨통 '샤트알아랍 수로'〉, 《티스토리》, 2021-08-22
  4. 아틀라스, 〈(물과 전쟁)이란-이라크 전쟁 초래한 샤트알아랍 수로〉, 《아틀라스뉴스》, 2019-04-19
  5. 유프라테스강〉, 《네이버 지식백과》
  6. 티그리스강〉, 《네이버 지식백과》
  7. 이혜원 기자, 〈바다로 간 '코로나 쓰레기' 2만6000톤…대부분 의료 폐기물〉, 《뉴시스통신사》, 2021-11-09
  8. 박세진 특파원, 〈이란-이라크, 샤트 알-아랍 水路에서 무력충돌〉, 《연합뉴스》, 2006-01-1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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