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
아메리카 대륙(American Continent)은 북아메리카(North America)와 남아메리카(South America)로 구성된 대륙이다. 좁은 의미로 미국을 아메리카(America)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차
개요
아메리카 대륙 면적은 약 4,221만 km²로 세계 육지면적의 28%, 인구 7억 6280만(1994)으로 세계 총인구의 14.1%를 차지한다. 인구 밀도는 18.1/1 km². 남 ·북아메리카는 좁은 지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종 및 어족을 기초로 북아메리카를 앵글로아메리카라고 하고, 중앙 ·남 아메리카를 라틴아메리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로 구분한다. 아메리카는 좁은 뜻으로 아메리카합중국, 특히 알래스카 ·하와이를 제외한 48주(州)를 가리킨다. 아메리카는 신대륙(新大陸) 혹은 신세계(新世界)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아시아에서 건너가 전 대륙에 분포한 아메리카 인디언과 소수의 에스키모만이 거주하는 지역이었으나 11세기경 북(北)유럽의 바이킹이 그린란드에서 북아메리카 북동안(北東岸) 지방에 도달하여 유럽인(人)에게 존재가 알려졌다. 바이킹의 식민지는 수세기 후에 소멸되고 유럽인에 의한 본격적인 탐험은 C.콜럼버스의 제1차 항해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492년 10월 12일에 바하마제도의 산살바도르섬에 상륙하였으나 그곳의 원주민을 보고 인도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98년 이후 제3차 항해에서 서인도제도(諸島)의 쿠바 ·자메이카 ·아이티를 비롯하여 남아메리카 북안의 오리노코강(江) 하구 부근과 중앙아메리카 대륙 동안(東岸) 일대를 탐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곳이 신대륙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었다.
콜럼버스 이후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많은 유럽인이 신대륙을 탐험하였으나 중앙 ·남아메리카는 에스파냐인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북아메리카는 영국인 ·프랑스인에 의하여 탐험이 추진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499년 스페인의 탐험가 오헤다가 이탈리아인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와 함께 베네수엘라를 탐험하였다. 베스푸치는 자신의 탐험을 편지로 기록한 《신세계(Mundus Novus)》를 1503년 출간하여 그곳이 새로운 대륙임을 알렸고, 독일의 지도제작자인 발트제뮐러(Waldseemüller)는 《세계지 입문(世界誌入門)》(1507)에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500년 P.A.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하였고, 1513년에는 V.N.발보아가 파나마지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안까지 도달하였다. 그 후 1519년 선주민인 인디오와의 싸움을 통하여 H.코르테스가 멕시코를, 1527년 F.피사로가 잉카제국(帝國)의 페루를 정복하였다. 포르투갈인 F.마젤란은 1520년 1월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해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진출,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하였다.[1]
명칭 유래
아메리카(America)라는 이름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탈리아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발견 후에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신대륙을 두 차례 항해했는데, 그는 이 대륙을 '신세계'라고 불렀다. 그의 이름을 딴 신대륙의 이름이 처음 지도에 등장한 것은 1507년의 일로, 독일 출신의 지도 제작자, Waldseemuller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칭하였다. 후에 회사는 신대륙의 이름을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 짓기 위하여 한 때 이름을 삭제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후의 일인지라, 번복을 하지 못했고 이렇게 신대륙의 이름은 아메리카가 되었다.[2]
지리적 특성
아메리카 대륙은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까지 아시아 대륙과 오세아니아는 아예 지구 반대다. 의외로 유럽과 아프리카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붙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도 아시아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아메리카대륙은 캐나다, 미국, 멕시코도 12-15시간이 걸리는 게 기본이며, 아예 어디든 거쳐 와서 24시간이 넘게 걸린다. 2017년 아에로멕시코의 서울 취항 후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을 거치는 게 보편적인데 브라질이나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등은 10시간 넘게 걸리며 이 정도면 서울에서 호주 시드니로 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그리고 아시아/오세아니아는 물론 대서양을 경계로 하는 유럽 및 아프리카도 거리가 멀다.[3]
문화적 구분
아메리카 대륙은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는 당연히 문화가 다르며 같은 북아메리카라도 미국과 멕시코, 미국과 캐나다 퀘벡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미국 내에서도 남북, 동서 간 분위기가 다르며 특히 히스패닉이 몰려사는 텍사스 남부와 플로리다 등 남부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 더 가깝다. 캐나다도 프랑스계 캐나다인 지역인 퀘벡 및 뉴펀들랜드 등은 영국계 지역인 온타리오 등과는 확 차이나며 멕시코도 북부는 미국과 비슷한 분위기고 여름/겨울의 차이가 뚜렷한 온대기후 중에서도 건조기후이며 남부는 전형적인 열대기후로 정글로 뒤덮힌 좀 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 가깝다.
더불어 영어권 국가에서 방위구분이 되지 않은 아메리카(America)는 미국을 의미한다. 다른 유럽 언어권에서도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으나, 미국과 여러모로 껄끄러운 관계인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 사람들은 미국을 아메리카라고 하는 데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 자신들도 엄연히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아메리카인(American)이니 미국이 America이란 명칭을 독점하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자 가차에서 따와 미 대륙이라고도 부르며 한자어로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를 각각 북미와 남미로 구분짓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북미=앵글로아메리카, 중남미=라틴아메리카로 북미와 중남미라는 표현을 쓰는데 편의상 앵글로아메리카를 북미라고 표현하는 것이며 지리적 구분으로는 달라서 물류업 등에서는 북미카리브와 남미로 지리적으로 칼같이 구분해서 캐나다, 미국,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는 북미로 넣고 콜롬비아부터는 남미로 넣어 운송료부터 차이가 난다. 남미 쪽이 당연히 북미카리브보다 더 비싸다. 우체국에서는 캐나다와 미국만 북미로 넣고 나머지는 중남미로 뭉뚱그려서 멕시코부터 비싸진다. 머나먼 옛날에는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의 요금이 달랐는데 지금은 차이가 없다.
어원
아메리카 대륙은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는 당연히 문화가 다르며 같은 북아메리카라도 미국과 멕시코, 미국과 캐나다 퀘벡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미국 내에서도 남북, 동서 간 분위기가 다르며 특히 히스패닉이 몰려사는 텍사스 남부와 플로리다 등 남부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 더 가깝다. 캐나다도 프랑스계 캐나다인 지역인 퀘벡 및 뉴펀들랜드 등은 영국계 지역인 온타리오 등과는 확 차이나며 멕시코도 북부는 미국과 비슷한 분위기고 여름/겨울의 차이가 뚜렷한 온대기후 중에서도 건조기후이며 남부는 전형적인 열대기후로 정글로 뒤덮힌 좀 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 가깝다. 더불어 영어권 국가에서 방위구분이 되지 않은 아메리카는 미국을 의미한다. 다른 유럽 언어권에서도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으나, 미국과 여러모로 껄끄러운 관계인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어권 국가 사람들은 미국을 아메리카라고 하는 데 대한 반감이 매우 크다.
인류의 개척
아메리카 대륙은 신대륙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북아시아인들이 도달해 살고 있었고, 기원전부터 원주민들의 문명이 존재했기 때문에 신대륙은 아니다. 유럽인이 도래하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선주민들은 빙하기 때 베링 해협에 존재하던 육로를 통해 북아시아에서 이주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의 하플로그룹을 조사해본 결과로는 코카소이드와 시베리아 원주민의 공통 조상에서 직접 갈라져나온 후예들임이 밝혀져있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하플로이드 구성이 아메리카에 도달하기 전에 확립되었다는 설과 함께 아메리카로 이주한 민족들 중에 코카소이드계가 있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주류 학계에서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집트나 페니키아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이주하였다고 주장하는 재야 사학자들[8]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의견이다. 하지만 이주까지는 아니더라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전에도 아메리카에 '도달'은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민족들이 꽤 있다. 하지만 실제 도달에 성공했다고 밝혀진 바이킹과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도 아메리카에 도달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사의 대표적인 수수께끼로, 주류 학계에서도 저 둘 말고도 아메리카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 있는지는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다.
항간에 포르투갈인들이 남아프리카를 항해하다 우연히 현재의 브라질을 발견해 포르투갈에서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았단 설도 있다만, 애석하게 리스본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대부분 문서가 소실되어 알 수가 없다. 이들 선주민들은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각지에 정착하여 아즈텍, 마야, 잉카 등의 문명을 건설하였으나, 16세기 들어 도래한 유럽인들에게 군사적으로 정복당하였다. 이들의 문명은 아직 그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단지 수학, 천문학, 건축 기술 및 의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현대기술을 능가하는 발전상을 보여주는 반면, 철기나 바퀴와 같은 구대륙의 관점에서는 간단한 기술은 상용화되지 않은 등 기묘한 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아예 모르던 건 아니고, 지리적 특성상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기존 1만 3천여 년 전에 이주했다는 이론보다 훨씬 이른 2만 2천 년 전에 아메리카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기사. 기사에 아시아 사람들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원주민인 어보리진들이 먼저 정착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소개되어 있는데 아직은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이며 정확한 사실은 관련 연구가 더 진행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선주민들은 유럽인인 스페인인/포르투갈인들의 군사적 정복과 더불어 그들이 옮긴 전염병에 의해 극심한 인구 감소랑 혼혈을 겪었다. 그 결과 특히 미국 대부분 지역들과 멕시코 북부, 카리브 해의 섬들 등 북아메리카 일대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남부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의 남단 국가들에서는 선주민 인구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멕시코 남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선주민들과 그들의 혼혈 후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유럽인들. 가장 먼저 아메리카에 발을 내딛은 유럽인은 북유럽의 바이킹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후대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소멸해버렸고, 결국 영광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로 돌아간다. 이후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들이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시작하여 북부 일대와 포르투갈 땅인 브라질 일대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스페인의 세력권에 귀속되었지만, 스페인의 국력이 쇠락하면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등의 열강들이 앞다투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영국은 버지니아 및 뉴잉글랜드를 개척해 이게 나중에 현대 미국의 근간이 되며 프랑스는 캐나다를 개척하고 네덜란드는 뉴욕주 일대와 수리남,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각각 차지한다. 그리고 다시 캐나다는 7년 전쟁 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할양되고 프랑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철수했으며 뉴욕도 네덜란드에서 영국이 뺏어간 후 잉글랜드 요크(York)의 지명을 이식해 현재의 뉴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의 미국, 캐나다, 가이아나 등지에서는 영국, 현재의 브라질은 포르투갈, 현재의 멕시코, 쿠바, 칠레, 과테말라, 온두라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페루 등 기타 대부분 지역에서는 스페인이 각자 차지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의 역사가 길어지다보니 현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지인들과 유럽의 본국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심해졌고, 18세기 후반 아이티와 미국을 시작으로 19세기 중엽에는 영국 자치령인 캐나다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 거의 전체가 유럽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물론 그 독립은 원주민 인디언이 아닌 정착 유럽인의 후손들이 주도한 독립이었고 원주민 인디언이나 노예인 흑인들이 무시당하는 건 여전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만 해도 옛 콘키스타도르의 후예인 정착 백인들이 독립을 주도한 것뿐이었으며 이후 원주민 인디언 부족들과 피 터지게 싸워 군을 동원해 이들의 영토를 강제합병해 버린다. 아르헨티나의 훌리오 로카 대통령이나 사르미엔토 장군 등이 그러한 인디언 정복전쟁으로 영웅시되는 사람들이다. 앵글로아메리카도 똑같아서 독립을 주도한 13개 식민지는 죄다 영국인들이 이민해서 사는 곳들로 미국 독립 후 신생 미국은 서부로 뻗어나가며 역시 세미놀족, 체로키족, 수우족 등 수많은 인디언들과 피 터지게 싸우고 이들을 보호구역에 밀어넣으며 흑인 노예들과의 갈등은 결국 노예해방령을 둘러싼 남북전쟁으로 비화하고 노예 해방후인 현대에도 흑백갈등이 미국의 고질병으로 남았다.
아메리카의 3대 고대 문명
원주민들은 그들만의 고대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신대륙에 왔던 유럽인들은 마야, 잉카, 모체, 톨텍, 올멕, 카호키아, 아스테카, 이로쿼이 같은 고대 문명에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북부와 남부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문명의 잔재들은 기원전 10,000여 년이 지난 물건들이라고 한다. 15세기 경에는 옥수수가 멕시코에서 전파되어 미시시피강 근처에서 널리 재배 되고, 감자는 잉카인들에 의해, 그리고 초콜릿은 아스테카인들에 의해 널리 채취되는 둥 여러 특산물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화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의 문명 발달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 마야 문명 : 마야 문명(영어: Maya civilization)은 메소아메리카의 멕시코 동남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북부, 벨리즈, 온두라스 서부, 유카탄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던 문명이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발달한 언어 체계와 고도의 문화를 향유했으며, 높은 수준의 예술, 건축, 수학, 달력, 천문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마야'라는 단어 자체는 당시 유사한 지역 전체에 살고 있던 민족들을 통칭하는 단어이나, 정작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동일한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여기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마야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 잉카 문명 :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다. 제국의 군주 칭호는 사파 잉카라 했으며, 이 군주 칭호를 따서 서양에서는 잉카 제국(Inca Empire, Inka Empire)이라 일컬었다. 잉카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이다. 이 제국은 13세기 초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하였으며, 1438년에 본격적으로 역사시대를 맞이했다.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95년 동안 잉카는 무력 정복과 평화 조약을 적절히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에콰도르, 페루, 남서 중앙 볼리비아, 북서 아르헨티나, 북 칠레, 그리고 콜롬비아 남부등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방대한 남서 아메리카 대륙을 융합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 아스테카 문명 : 아스테카 문명은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존재하던 아즈텍인들이 만든 문명이다. 수도는 멕시코 중부의 텍스코코 호 중앙의 인공 섬에 있던 테노치티틀란이었다.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1519년 11월 8일, 에스파냐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들어갔다. 아즈텍 제국의 통치자였던 몬테수마 2세는 백인인 코르테스와 그의 무리를 아즈텍 문명의 전설에 나오는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로 여겨 환대했으나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한 코르테스의 계략으로 1521년 에스파냐 군대에게 정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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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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