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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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단(영어: Hamedan, 페르시아어: همدان, 고 페르시아어: Hagmatana, 고대 그리스어: Ecbatana)은 이란의 도시로, 이란 중서부의 하마단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78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마단은 가장 오래된 이란의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1]
개요
하마단은 이란 중서부에 있는 3,574m의 알반드산의 기슭에 자리 자고 있으며 도시는 해발 고도는 1850m이다. 수도인 테헤란에서는 남서쪽으로 약 400km정도 떨어져 있다. 하메단은 이란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기원전 12세기경 아시리아인들이 점령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700년경 헤로도토스는 메디아의 수도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이후에는 633년 나하반드 전투가 벌어져 하마단은 이슬람 아랍인들의 세력에 넘어갔다. 이슬람 도래 이후 지방 세력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하마단은 잠시나마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될 정도로 중서부 이란의 주요 도시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다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파괴되었고 그 이후 티무르의 침입 때 완전히 파괴 당했으나 사파비 제국 때 재건되어 번영을 누렸다. 18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항복하여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나디르 샤의 활약으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란에 반환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러시아군과 오스만-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영국군이 도시를 잠시 점령했다가 1918년 전쟁이 끝날 때 이란에 반환되었다. 비옥한 농경지의 중심을 이루는 상공업도시로서 번영하였다. 과거부터 계속 번영을 누려왔고, 현대 이란 내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지방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대체로 습윤 대륙성 기후를 띈다. 겨울에는 눈까지 내리며 이란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곳으로 꼽힌다. 시원하다는 특징 때문에 고대에도 페르시아 시절부터 여름 수도로 종종 기능했다. 도시의 특수성과 유적지는 여름 동안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이 도시의 주요 명소는 간즈 나메 비문, 아비세나 비석, 바바 타헤르 비석이다.[2]
기후
하마단 주는 자그로스 동쪽에 있는 온화한 산악 지역에 있다. 이 지방의 북쪽과 북동쪽의 광활한 평야는 거의 일년내내 지속되는 강한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지역의 다양한 기류는 봄과 겨울의 북풍과 북풍으로, 보통 습기가 많고 비가 온다. 가을에 부는 북동기류와 아사드 아바드 지방의 맹풍처럼 고지대와 평원의 기압 차이로 발달하는 국지풍의 영향을 받는다.
하마단은 지중해의 영향을 받은 더운 여름 대륙성 기후(쾨펜 : Dsa, 트레워타 : Dc)를 가지고 있으며, 차가운 반건조 기후(쾨펜 : BSk)와 전환된다. 도시는 더운 건조한 여름과 추운 눈이 내리는 겨울을 경험한다. 가장 추운 날에는 기온이 -30°C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겨울에는 폭설이 흔하며, 이는 최대 2개월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짧은 여름 동안 날씨는 더우며 대부분 맑다. 기록된 최저 기온은 1964년 1월 7일 –34.0°C이고 기록된 최고 기온은 1989년 7월 14일 40.6°C이다.[3]
역사
하마단의 옛 지명은 ‘학마타가’이나 헤로도토스는 저서 ‘역사’에서 ‘악바타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어로는 ‘집회의 장소’를 ‘엑바타나’(Agbatana, Ecbatana)라고 하는데, 이 이름이 유럽에서 유행하였다. 원래 하마단은 이란 고원 서부에 건립되었던 메디아 왕국(Media, 기원전 640~550)의 수도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오스(Polybios, 기원전 204~122년경)는 “엑바타나(하마단)는 메디아인들의 왕도(王都)로, 물산이 풍부하고 건물이 화려하며 성채는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다. 왕궁 궁전의 둘레는 1.2km에 달하며, 궁전의 천장은 번개무늬로 장식하였고, 궁성문과 열주는 금, 은박을 입혔다”고 하였다.
기원전 550년에 아케메네스조의 실질적인 건국자 키루스(Cyrus) 2세는 하마단을 점령하고 메디아 왕국을 멸하고 나서 하마단에 하기 이궁을 마련하였다. 하마단 서남방 12km 알반드 산중에서 한 주민이 ‘간즈 나메’(Ganjnameh, ‘보물의 글’이란 뜻) 비문을 발견하였다. 거대한 화강암 벽 중턱의 고대 페르시아어와 아람어, 아카드어로 쓰인 비문의 좌측은 다리우스 1세, 우측은 크세르크세스 1세에 관한 내용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정 때 이 고도의 유물 일부가 약탈당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이곳을 점령할 때 궁전을 장식한 금 · 은박과 타일을 대부분 뜯어갔다. 후에 그가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그의 한 충신이 이곳에서 병사하자 진찰을 한 의사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도성의 주벽을 마구 파괴하였다. 알렉산드로스제국을 계승한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코스 3세(재위 기원전 223~187)는 화려한 아나히타 신전의 기둥과 타일, 금, 은박을 뜯어갔다.
파르티아(Parthia) 시대에는 평범한 도시로 남아 있었는데, 이 시대의 유물로는 구릉 위에 자리한 거대한 사자석상이 있다. 파르티아에 이어 사산조 시대(226~651)에 들어와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야즈데게르드 1세의 유대인 왕비가 이곳에 유대인들을 대거 유치해 정착시키고 자신의 묘당(에스테르 묘당)을 성역화하였으며, 또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곳을 순례하게 한 것이다.
644년 이슬람군에게 함락된 후 셀주크조 때까지 하마단은 줄곧 주도로 남아 있었다. 931년 지야르조의 창건자 마르다비즈(Mardavij)는 하마단을 점령한 후 파르티아시대의 유물인 사자석상을 라이(테헤란 남부)로 옮겨가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옮길 수 없게 되자 홧김에 사자 다리를 부숴버렸다고 한다.
하마단은 1220년 몽골 서정군의 유린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일 칸국시대에는 거의 원상복구가 되었다. 그러나 1386년 티무르군의 침공으로 많은 주민이 학살되고 도시는 다시 파괴되었다. 그후 300년간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다가 17세기 사파비조의 압바스 대제가 이스파한으로 천도하자 이를 계기로 삼아 하마단은 재건의 기회를 맞기도 했으나, 18세기에 하마단은 오스만 제국에 항복했지만 나데르 샤에 아프샤르의 노력으로 침략자가 없어졌고, 이란과 오스만 간의 평화 조약으로 하마단은 이란에 반환되었다. 하마단은 실크로드에 서 있으며, 최근 몇 세기 동안 페르시아와 이란의 주요 도로망에 위치하여 무역과 무역이 활발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도시는 러시아와 투르크-독일 군대 사이의 격렬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1918년 전쟁이 끝나면서 이란 정부의 지배로 돌아오기 전까지 양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마침내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4]
하마단주
하마단주(영어: Hamadan Province, 페르시아어: استان همدان)는 이란을 구성하는 30개 주 가운데 하나로, 주도는 하마단이며 면적은 19,368km²이다. 해발고도 약 1,640m의 고지에 위치하고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알반드(Alvand) 산맥이 지난다. 북쪽으로 잔잔 주, 북서쪽으로 코르데스탄 주, 남서쪽으로 케르만샤 주, 남쪽으로 루리스탄 주, 동쪽으로 마르카지 주, 북동쪽으로 카즈빈 주와 경계를 이룬다. 하위행정구역은 9개 군(郡, counties)으로 나뉘어지고 아사드아바드(Assad Abad), 바하르(Bahar), 하마단(Hamadan), 카부드라항(Kabudrahang), 말라에르(Malayer), 나하반드(Nahavand), 라잔(Razan), 투이세르칸(Twiserkan), 게삼트(Gesamt)로 구성된다. 주도는 주의 중부에 위치한 동명의 하마단이며 그 외 주요 도시로 투이세르칸, 나하반드 등이 있다.
하마단 주는 기원전 7세기 메디아 왕국 시대에 세워진 최고 도시 중 하나인 에크바타나(Ecbatana)가 입지하였던 곳으로, 구약성서의 에스더기에 기록되어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동양을 잇는 대상로의 요지였으며 641~642년 아랍인에 정복된 이래 하마단 시가 수도로 부흥하였다. 중세 바바타히르를 비롯하여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본래 케르만샤 주에 포함되었던 지역으로 1960~1981년 사이 독립된 주로 설립되었다. 지명은 고 도시 에크바타나의 페르시아어 지명인 항마타나(hangmatana)에서 유래하였다. 1963년 얄판(Yālfān) 강에 에크바탄(Ekbātān) 댐이 건설되어 수원을 공급하고 카레수 강 유역의 비옥한 평지대가 농지로 쓰이며 사과, 배, 앵두, 목화, 감자 등이 생산된다. 특산품으로 하마단 융단(Hamadan Carpet)이 유명하며 광물자원으로 흑연, 금, 백금, 안티몬 등이 산출된다. 하절기 기후는 온화하지만 겨울의 최저 기온은 영하 31℃에 달하며 적설량도 많다. 주민은 쿠르드족과 루리족, 아제르바이잔인 등의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언어는 인구의 약 80%가 쓰는 페르시아어 외에 아제리어(Azeri), 루리어, 쿠르드어, 튀르키예어를 사용한다. 문화유산으로 고대 에크바타나가 기원으로 추정되는 하마단의 사자상과 11세기 이란 최대의 철학자인 이븐 시나의 묘지 등이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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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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