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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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어: Indonesia)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명은 인도네시아 공화국(인도네시아어: Republik Indonesia, 영어: Republic of Indonesia)이다. 약칭 인니라고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1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주요 섬들에는 수마트라섬, 자와섬(자바섬), 보르네오섬, 술라웨시섬, 뉴기니섬 등이 있다. 주요 도시로는 자카르타, 수라바야, 덴파사르, 마카사르, 발릭파판, 아체, 술루 암본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백 개의 다른 민족들과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거대한 민족은 자와인들이다. 이처럼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기에, 인도네시아의 표어 또한 ‘다양성 속의 통합’이며, 복수의 국어, 민족적 다양성, 종교적 다양성을 관용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물가에 따른 구매력 평가로 5순위이다. 인도네시아는 UN, 세계무역기구, IMF, G20, 비동맹 운동, 아세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동아시아 정상회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이슬람 협력 기구의 일원이기도 하다.
목차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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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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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수도: 자카르타
- 면적: 1,904,569km²
- 인구: 279,134,505명(2022년)
- 공용어: 인도네시아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제
- 대통령: 조코 위도도
국명
인도네시아란 명칭은 19세기 영국 학자가 명명한 것으로 '인도양의 섬들(네시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적도의 푸른 보석이란 별칭이 있다.
‘인도네시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인도스(Ἰνδός)’와 ‘네소스(νῆσος)’가 합쳐져 만들어졌고, ‘인도양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어원은 18세기, 현대 인도네시아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850년에 영국의 민족학자 조지 윈드소르 얼이 처음으로 ‘인두네시아’와 ‘말레이유네시안’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이 단어를 이용하여 말레이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의 학생들 중 하나였던 제임스 리처드슨 로간이 ‘인도네시아’를 ‘인도 군도’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인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려했고, 여전히 말레이 반도나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190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각국 학계에서 자주 사용되었고,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주의자들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였다. 베를린 대학의 교수인 아돌프 바스티안은 자신의 저작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으며, ‘인도네시아’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원주민 학자는 1913년에 키 하자르 데완타라가 인도네시아에 새 신문사를 창립하였을 때였다.
역사
현재 인도네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오스트로네시아족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의 섬들로 대략 기원전 2000년 즈음에 도달하였으며, 점차 동쪽으로 확장되어 거주지를 넓혀갔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이상적인 농업 기후로 인하여 기원전 8세기에는 논에 물을 채워 쌀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기원후 1세기 경에는 해양 무역도 활발히 진행되어 중국과 인도의 왕국들과도 교류를 맺었다. 무역은 이때 이후로 인도네시아 역사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7세기 즈음, 스리위자야 해상왕국이 무역로를 독점하고 번성하였다. 힌두교와 불교를 이때 받아들였으며, 8세기와 10세기 사이에는 자와섬에서 불교 왕조인 샤일렌드라 왕조와 힌두 왕조인 마타람 왕조가 등장하였다. 샤일렌드라 왕조는 세계 최대 불교유적인 보로부두르를 남겼으며, 마타람 왕조는 프람바난 사원을 후세에 남겼다. 힌디 왕조인 마자파힛 왕국은 13세기 후반에 자와섬 동부에 세워졌으며, 가자 마다 국왕의 재위기에 최고 전성기를 맞아 현재 인도네시아 대부분 지역에 영향력을 뻗쳤다. 사학자들은 이시기를 보통 인도네시아 역사의 ‘황금기’라고 칭하고는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던 가장 초기 시기는 13세기 수마트라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섬들도 점차 무역자들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믿기 시작하였고, 16세기 후반에 이르자 자마섬과 세마라섬에서는 탐욕과 사치를 멀리하고 베품과 사랑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이스람교가 최대 신앙으로 떠올랐다. 이 때 이슬람교는 토착 종교와 문화와 뒤섞이며 현지화되어갔고, 특히 인도네시아 자마섬에서는 고유 이슬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규율들이 생겨났다.
식민통치기
인도네시아 지방에 처음 유럽인이 도착한 시기는 1512년으로, 프란시스코 세라로가 이끄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육두구, 정향, 큐베브 등을 독점하기 위하여 말루쿠 제도에 상륙한 것을 유럽과 인도네시아의 최초 접촉으로 본다.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의 상인들이 뒤따라 인도네시아로 들어왔고, 1602년에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워 이후 약 200여 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독점적으로 통치하고 약탈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800년에 파산하여 사라졌고, 네덜란드인들은 그 자리에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세워 정부가 직접 통치하였다.
식민지 기간 전반적으로, 인도네시아에 대한 네덜란드의 영향력은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자바에서는 끊임없는 민족운동이 일어나 네덜란드 테러분자들과 맞서 싸웠으며 자바 중부에서는 디포네고로 전쟁이, 세마라 중부에서는 이맘 본졸 등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학살과 강간 마약성매매 범죄 테러조직인 네덜란드에 맞서 싸웠다. 또한 아체 술탄국은 특히 강하게 싸워,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체 전쟁을 치렀다. 네덜란드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현재 인도네시아 지역 대부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일본군들이 침략해들어오자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배는 종말을 맞게 되었고, 일본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독립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불을 지폈다. 1945년 8월에 일본이 패망하고 난지 이틀 후, 수카르노와 모하맛 하타와 같은 독립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포하였고, 각각 신생 인도네시아의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서구 테러조직들 중에 하나인 네덜란드는 이를 거부하였고, 군대를 통해 이를 무참히 진압하려 들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발발하였고, 네덜란드는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인하여 결국 1949년 12월에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는 당시 서구 테러리스트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으나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며 독립 전쟁을 거치며 하나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점차 형성해 독립에 이른다.
독립 이후
수카르노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민주주의에서 점차 멀어지는 행보를 보이더니, 결국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군대, 이슬람 종교세력, 인도네시아 공산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권력을 유지하였다. 군대와 공산당 사이의 갈등은 점차 극에 달했고, 결국 1965년에는 쿠데타가 터졌다. 이때 군대를 이끌던 수하르토 장군은 대대적인 공산당 탄압 작전을 펼쳤고, 5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의 사람들을 학살하며 대참극을 벌였다. 공산당은 쿠데타 모의죄로 몰렸고, 결국 강제해산당했다. 수하르토는 점차 수카르토 대통령의 권력을 넘보았으며, 점차 그의 세력을 키우다가 1968년 3월에는 마침내 수카르토 대통령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아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해외직접투자를 장려하였으며, 이후의 급격한 경제 성장의 기초를 놓았다. 수하르토는 재직 중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킨다는 정책을 펼쳐, 중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는 등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잇따랐다.
인도네시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국가였다. 이로 인하여 대중들은 수하르토 정부를 불신하기 시작하였고, 수하르토가 그때까지 펼쳐오던 정치적 야당의 탄압과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인식을 본격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1999년에는 동티모르가 1975년에 인도네시아에 침략받은 이래 드디어 독립을 되찾았고, 그간 25년 동안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지역에서 저지른 참살은 국제적인 지탄을 받았다.
1998년에 수하르토 대통령이 마침내 하야하였으며, 이어 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압두라만 와힛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사실상 민주적인 성격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2003년까지는 간접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첫 대통령 직접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결하여 유도요노의 승리로 끝났다. 2000년대에도 다만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부정부패, 테러리즘은 여전히 국가적인 난제로 남아있다. 허나 최근들어서는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라는 한계에서 오는 불협화음, 군대와 정부의 부정부패도 문제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군, 정부 엘리트층 출신이 아닌 인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7년에는 자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2007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이슬람영화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반이슬람영화로 촉발된 시위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였다.
2022년에는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이전하는 법안이 통과하여 수도가 누산타라로 이전한다.
지리
인도네시아는 북위 6도와 남위 11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경 95도와 141도 사이에 위치한다. 섬으로 구성된 국가들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동서로 5,120킬로미터, 남북으로는 1,760킬로미터라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해양투자부에 의하면 인도네시아는 17,504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UN에 등록되어 있는 섬들은 총 16,056개이다. 이들 중 6,000여 개의 섬들에 사람들이 거주한다. 가장 거대한 섬들에는 자와섬, 수마트라섬, 깔리만딴섬, 슐라웨시섬, 뉴기니섬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와 세바틱섬에서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며, 뉴기니섬에서 파푸아뉴기니와, 티모르섬에서 동티모르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해상 국경으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팔라우, 오스트레일리아와 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최고봉은 해발 4,884미터의 푼착 자야산이다. 가장 거대한 호수는 수마트라에 위치한 토바 호이며, 총 1,145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한다. 가장 긴 강들은 칼리만탄과 뉴기니에 대부분 몰려 있으며, 주요 강들은 카푸아스 강, 바리토 강, 맘베라모 강, 세픽 강, 마하캄 강 등이 있다. 이들은 보트를 이용하여 교류하거나 물건을 사고팔고는 한다.
기후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5°에서 남위 10° 사이에 위치하므로, 완전한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중 높은 기온을 나타내 거의 전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하며 적도변의 중앙지대에서는 월별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되는 적도 부근의 연중 강우지역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와 우기의 구별이 뚜렷하다. 주요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폰티아나크(보르네오섬) 3,175mm, 파당(수마트라섬) 4,172mm, 자카르타(자와섬) 1,755mm이며, 소순다열도의 동쪽은 훨씬 더 건조하다. 더운 날씨 때문에 12월, 1월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자카르타 (남위 6도)의 기후는 열대성 기후로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우량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습도도 연평균 75∼85%로 상당히 높다. 연평균 기온은 26.8℃로 연교차가 1℃에 불과하지만 1월과 2월에는 20℃ 이하가 되는 날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적도 부근에 자리하고 있기에, 기후가 일년 내내 거의 비슷하다. 인도네시아에는 오직 2개의 계절만이 있는데, 크게 비가 내리는 우기와 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내리는 건기가 있다. 한국과 같이 여름과 겨울 등 극단적으로 온도가 상이한 계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지역 대부분에서 건기는 5월에서 10월까지이며, 우기는 11월에서 4월까지이다. 모든 지역들이 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으며, 대부분의 섬들에서는 거대한 열대우림이 자생하고 있다. 그나마 시원한 기후대는 산악 지역으로, 높이가 해발 1,300m에서 1,500m 정도는 되어야 열대 기후가 어느 정도 시원한 기후대로 바뀐다. 고산 지대 일부에서는 서안 해양성 기후가 드물게 나타나며, 이 지역들에서는 열대 사바나 기후나 열대 기후가 번갈아 나타난다.
칼리만탄이나 수마트라 같은 지역들은 일 년 동안 강우량과 온도의 차이가 거의 없어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다만 누사 텡가라 같은 지역들에서는 차이가 어느 정도 발생하여 건기에는 가뭄이, 우기에는 홍수가 나기도 한다. 강우량은 지역마다 다양한데, 수마트라 서부, 자바, 칼리만탄 내부와 파푸아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가까운 지역들에서는 상대적으로 강우량이 적다. 인도네시아 육지를 둘러싸고 있는 열대 바다가 거의 일정한 수온을 항상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육지의 기온도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을 늘 유지하곤 한다. 습도도 상당히 높아서, 70%에서 90% 사이를 오간다. 몬순 때에는 남동풍이 불어오며, 6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된다. 또한 11월에서 3월까지는 북서풍이 분다. 태풍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으나, 오히려 롬복 등의 해협에서 발생하는 조류의 변화가 더 큰 재산상의 피해를 초래한다.
행정 구역
인도네시아는 총 37개의 1급 행정 구역으로 구성된다. 1급 행정 구역 가운데는 29개의 일반 주(provinsi)와 아체주, 욕야카르타 특별주, 자카르타 3개 주와 서뉴기니의 5개 주는 특별주가 있다.
지역 주 주도 서뉴기니(Western New Guinea) 서파푸아주(Papua Barat) 마노콰리 파푸아주(Papua) 자야푸라 중앙파푸아주(Papua Tengah) - 파푸아고원주(Papua Pegunungan) - 남파푸아주(Papua Selatan) - 남파푸아주(Papua Selatan) 말루쿠주(Maluku) 암본 북말루쿠주(Maluku Utara) 소피피 발리섬과 소순다 열도(Nusa Tenggara) 서누사틍가라주(Nusa Tenggara Barat) 마타람 동누사틍가라주(Nusa Tenggara Timur) 쿠팡 발리주(Bali) 덴파사르 수마트라섬(Sumatera) 아체주(Nanggröe Aceh Darussalam) 반다아체 방카블리퉁주(Kepulauan Bangka Belitung) 팡칼피낭 쿨루주(Bengkulu) 븡쿨루 잠비주(Jambi) 잠비 람풍주(Lampung) 반다르람풍 리아우주(Riau) 프칸바루 리아우 제도주(Kepulauan Riau) 탄중피낭 남수마트라주(Sumatera Selatan) 팔렘방 서수마트라주(Sumatera Barat) 파당 북수마트라주(Sumatera Utara) 메단 술라웨시섬(Sulawesi(Sumatera) 고론탈로주(Gorontalo) 고론탈로 서술라웨시주(Sulawesi Barat) 마무주 남술라웨시주(Sulawesi Selatan) 마카사르 북술라웨시주(Sulawesi Utara) 마나도 동남술라웨시주(Sulawesi Tenggara) 큰다리 중앙술라웨시주(Sulawesi Tengah) 팔루 자와섬(Jawa) 반텐주(Banten) 스랑 욕야카르타 특별주(Daerah Istimewa Yogyakarta) 욕야카르타 서자와주(Jawa Barat) 반둥 중앙자와주(Jawa Tengah) 스마랑 동자와주(Jawa Timur) 수라바야 자카르타 특별수도지역(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중앙자카르타 행정시 칼리만탄(Kalimantan) 서칼리만탄주(Kalimantan Barat) 폰티아낙 남칼리만탄주(Kalimantan Selatan) 반자르마신 북칼리만탄주(Kalimantan Utara) 불룽안(탄중슬로르) 중앙칼리만탄주(Kalimantan Tengah) 팔랑카라야 동칼리만탄주(Kalimantan Timur) 사마린다
정치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1998년에 수하르토가 퇴진한 이후, 인도네시아의 정치 체제는 급격한 개혁을 거쳤고,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통째로 갈아엎어졌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은 곧 국가수반이자 행정부 최고 지도자이며, 인도네시아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이다. 또한 국내의 행정을 모두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이며, 정책을 만들고 외교 정책들을 다루기도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입법부는 국민협의회라고 불린다. 주로 헌법을 수호하고 그에 맞게 법을 제정하는 역할을 하며,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국민협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상원격에 해당하는 지역대표의회는 총 136명의 상원의원들로, 하원격에 해당하는 인민대표의회는 575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8년의 개혁 이후, 입법부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으며 특히 상원인 지역대표의회에서 대부분의 역할과 권위, 권력을 맡는다. 사법부의 경우에는 가장 하급 법원으로 주 법원, 그 다음으로 고등 법원, 최고 법원으로는 대법원이 있다. 대법원에서는 최종 판결을 내리며, 하급 법원들에게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헌법 재판소도 따로 있는데, 주로 헌법적, 정치적인 사안들을 다룬다. 그 외에도 종교법원도 따로 구성되어 있어 샤리아와 관련된 재판들을 맡아 처리한다. 또한 사법 위원회가 사법부 내에 존재하며, 이들이 판사들의 행실을 면밀히 감시한다. 1999년까지는 대통령을 국민협의회(MPR)에서 간선제로 선출했으나, 2004년 이후부턴 직선으로 선출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차례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2014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취임하며 최초의 직선제 문민 정부가 수립되었다. 다당제로 여러 정당들이 난립하고 있어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힘든 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 후보는 총선 득표율 25% 이상 또는 의석점유율 20% 이상인 정당 또는 연합만 선출 가능하다.
1999년 이래 인도네시아는 다당제를 유지해 왔다. 또한 수하르토의 퇴진 이후 치러진 모든 입법 구성 선거에서 그 어떠한 당도 의회 과반석을 차지한 적이 없다. 2019년 총선에서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속해 있는 민주항쟁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그 외의 다른 정당들로는 직능단체당, 위대한 인도네시아 운동당, 민주당 등이 있다. 2019년 총선으로 하원에 총 9개의 정당들이 남아있게 되었는데, 봉쇄 조항으로 인해 국가 전체 득표수의 4% 이상을 득표한 정당만이 의회에 입성하게 한 것이다. 첫 총선은 1955년에 제헌의회와 하원의 의원들을 뽑기 위하여 치러졌다. 2004년까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였으나, 이후부터는 5년 임기로 직선제로 치러지고 있다. 2015년 지방선거부터는 시장과 주지사 선거가 같은 날에 치러진다. 2014년 헌법 재판소는 2019년부터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열리도록 판결을 내렸다.
경제
인도네시아는 혼합 경제 체제로, 민간 부문과 정부가 동시에 경제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G20 회원국으로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2019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명목 GDP로는 세계 16위, PPP로는 세계 7위의 순위를 차지하며 각각 1조 1천만 달러, 3조 7,400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였다. 1인당 GDP에서는 PPP로 환산할 시 14,020달러이나, 명목 GDP로 계산하면 4,120달러로 줄어든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29.2%이다. 서비스업이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GDP의 43.4%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산업이 39.7%, 농업이 12.8%로 뒤를 잇는다. 2009년 이래 서비스업은 그 어떠한 부문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력의 47.7%가 서비스업에 종사하였다. 그 뒤를 농업이 30.2%, 산업이 21.9%로 뒤따랐다.
인도네시아의 경제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변화를 거쳐왔는데, 역사적으로는 농업에 크게 치중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정부가 곡물 자족을 위하여 농업 진흥정책을 펼쳤고, 이에 농업이 급격히 발전한 것이다. 1960년대에 점진적인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유가가 하락함에 따라 정부가 석유 수출 의존 경제에서 탈피하여 제조업 중심 정책을 피며 더욱 산업화와 도시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 과정은 1980년대 내내 지속되었고, 1990년대의 유가 충격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이 때 인도네시아의 GDP는 매년 7.1%에 달하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며, 공식적인 빈곤율은 60%에서 15%로 떨어졌다. 1980년대에는 정부가 무역 장벽을 걷어냈고,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세계에 통합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성장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끝을 찍었는데, 이때 인도네시아는 경제에 엄청나게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실질 GDP가 1998년에 13.1%나 감소하였으며, 인플레이션이 무려 78%에 달했다. 경제는 1999년 중반에 최저점을 찍었으며 이때 인도네시아는 0.8%라는 최저의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에는 점차 이 타격에서 회복하여 급격하게 다시 성장하고 있다. 점진적인 인플레이션 속도와 실질 GDP의 증가로 인하여 소비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2007년 이래 연간 성장률이 은행업과 국내 소비의 활성화로 인하여 4%에서 6% 사이를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08년의 금융위기도 무사히 버텨냈다. 2011년에 인도네시아는 1997년에 잃었던 투자 등급을 다시 회복하였다.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9.41%만이 빈곤하게 살았으며, 공식적인 실업율은 5,28%였다. 인도네시아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주석, 구리, 금, 니켈과 같은 천연광물들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또한 농업의 경우에는 쌀, 팜오일, 차, 커피, 카카오, 의료용 식물, 향신료, 고무 등을 생산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품이며, 팜오일과 석탄, 정제유와 원유들은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출의 기둥들 중 하나이다. 또한 전화기와 전자 장비들도 주요 수출품이며, 중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대한민국과태국 등이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국들이다.
주민
인도네시아인은 85% 정도이고 그 외 민족이 15%를 차지한다. 중국계는 약 3%이다. 한국인은 35,000여명 가량 거주하며, 자카르타 및 인근지역 28,000명, 수라바야 1,800명, 반둥 900명, 발리 600명 등으로 분포한다. 인도네시아는 최소 300여 개가 넘는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후손들이며, 그들이 쓰는 언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조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의 타이완섬 지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민족들 중에서는 주로 뉴기니섬 서부와 말루쿠 제도 등 동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멜라네시아인들이 있다. 자바인들은 전체 인구의 40.2%에 달하며 가장 많은 민족이며, 정치적으로도 가장 거대한 세력이다. 자와섬의 중부와 동부에 살고 있으며, 서부에서도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순다족, 말레이인, 바탁인, 부기니즈인 등이 존재한다. 인도네시아는 아직까지도 국민통합이 완벽하게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국민들이 자신들을 민족적 정체성으로 구분짓는 경우가 많다.
국가의 공식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로, 말레이어 방언에 기초한 언어이다. 1920년대에 민족주의자들이 발전시켰으며 1945년에 드디어 ‘바하사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으로 공식 언어로 지정되었다. 워낙 다양한 문화들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어에도 여러 언어들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는데, 자바어, 순다어, 힌두어, 산스크리트, 중국어, 아랍어, 네덜란드어, 포르투갈어, 영어 등 여러 언어들의 요소들이 조합되어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어는 교육, 학교, 통신, 사업, 정치, 대중매체 등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사할 줄 안다. 또한 그 외에도 자신의 민족들이 쓰는, 700여개에 달하는 언어들 중 몇 개를 추가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포함되며, 동부 지역에는 270여 개에 달하는 파푸아어족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자바어가 있다.
종교
인도네시아는 국교가 따로 없고, 헌법 29조에 의해 6개 종교(이슬람, 개신교, 로마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혹은 반대로 공산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신분증에 반드시 신앙이 명시되어야 한다. 물론 21세기 들어 이것이 전근대적인 발상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인도네시아에는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종교 유무의 자유는 없는 셈이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지만(인도네시아 대통령은 7대까지 다 무슬림이었다) 일부 지역에선 다른 종교가 강세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발리섬에서는 힌두교가, 술라웨시섬 북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서티모르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등이 강세를 보인다.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1960년대에 크게 성장하는데, 이유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당원들을 교우로 받아들여서 정부와 극우파들의 박해와 학살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 힌두교 신년 등 타 종교의 기념일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사실상 사회 분위기를 많이 좌지우지하지만, 보통의 아랍국가들처럼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는 아니고, 식민지 시대 등을 거치며 세속 국가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탐탁치 않아하는 이슬람 강경파들도 존재하지만, 사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주류가 된 것도 중세 이후부터로 이전엔 오히려 불교나 힌두교가 강세였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강요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타 이슬람 국가들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법이 적용된다. 이슬람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교칙에 따라 다리를 드러내지 않는 긴 치마를 교복으로 입고 머리에 히잡을 두른다. 특히 아체 주처럼 샤리아 율법을 강하게 적용하는 지역은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법을 적용하여 술 팔다 적발된 기독교인이 태형을 맞은 사례도 실제로 있다. 도박, 음주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