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면
추자면(楸子面)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북부 제주해협에 있는 면이다.[1]
개요[편집]
추자면의 면적은 7.08㎢이며 1,577(20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서리·영흥리·묵리·신양 1리·신양 2리·예초리 등 6개 행정동 및 법정동과 9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면 소재지는 상추자도의 대서리이다. 조선조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추자도(楸子島)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한자의 뜻을 살려 개오동나무나 가래나무와 관련시켜 지명 유래를 해석하기도 하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면적은 제주시 관내 7개 읍·면 전체 면적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인구는 2.9%, 인구 밀도는 3배 이상으로 7개 읍·면 가운데 가장 조밀한 인구 분포를 보인다. 성년 인구 중 남성이 많은 것은 산업 측면에서 어로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 여건이 불리하고 생활환경이 불편하여 1980년대 이후 전입 인구보다 전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화상 진료 서비스 실시로 의료 환경을 개선하였으며 도서 담수화 사업으로 만성적인 식수 부족난을 해결하였다. 기상 악조건 속에서도 육지와의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연안항이 개발되면서 바다 관광 낚시터를 벨트화하고 추자도 전역을 해양자연생태 학습체험지로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지리적으로 호남 지방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전라도에 속해 있어 호남 문화의 영향이 일상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항에서 직선거리로 약 50km 떨어져 있으며, 제주해협의 중간 지점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이지만 문화권은 제주도보다는 전라남도 쪽으로 분류된다. 방언 역시 제주도 방언이 아닌 서남 방언이 사용된다. 과거에는 생활권도 제주시보다는 오히려 목포시, 전주시와 더 밀접한 편이었으나 요즘은 확실히 제주시와의 교류가 더 많아지는 추세. 제주도 본도와는 다른 특이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 최근 관광객들이 늘고 있고 바다낚시 명소로도 유명하다.
추자도 출신 사람들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이지만 타지역 사람들 앞에서 "제주 사람"이라고 밝히긴 애매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제주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섬 이름 제주도(島)를 떠올려서, 추자도 출신인데 제주도와 관련하여 이것 저것 이야기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래서 '추자도'라고 하거나 '제주도 위쪽에 있는 추자도'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즉, 어느 지방에 있는 건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추자도 주민들은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제주시 본토 또는 목포에 집을 한 채 더 갖고 있으면서 필요에 따라서 옮겨 다니면서 사는 사람들이 흔하다.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목포의 영향력이 더 강했지만 요즘에는 제주도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력이 커지면서 제주시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는 경우도 많다. 조선 시대에는 경제적으로 전주의 영향력이 더 강했었다.[2][3]
자연환경[편집]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등 유인도 4개, 무인도 3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자도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도 본 섬과는 달리 한반도 남쪽 말단부가 침수되어 형성된 섬이다.
해안에는 작지라고 불리는 자갈 해안이 여러 곳에 분포한다. 추자십경의 하나인 장작평사는 하추자도 신양리에 있는 자갈 해안으로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러 추자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지이다.
추자도 인근해에는 삼치, 농어, 돌돔, 참돔, 조기 등이 출현한다. 현재는 희귀한 나그네새로 알려진 알류샨 제비갈매기가 처음으로 공식기록 된 곳이다.
역사[편집]
중생대 백악기에 전남 남해안의 여타 섬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제주도보다 훨씬 지질학적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추자도에 사람이 최초로 거주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백제와 신라 시대에 탐라의 조공이 있었던 점에서 미루어 그 당시 제주도와 육지를 왕래하는 선박들이 추자도를 자주 경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에는 후풍도(候風島)로 불렸으며, 제주도와 전라도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1271년 삼별초의 난이 일어났을 때 삼별초를 토벌하려 제주로 가던 여몽연합군 병력이 폭풍우를 피해 추자도로 대피했다는 고려사 기록이 있다. 고려 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던 최영도 풍랑을 피하기 위해 추자도에 잠시 기착하였고, 이 때 추자도 주민들에게 선진 어업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주민들은 사당을 세워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렸으며 그 사당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11호).
고려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1350년 충정왕 때 추자도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조선시대에도 공도정책으로 주민들이 섬을 비워야 했고, 성종 시기인 1490년에 왜구들이 들어와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 추자도에 주민들이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직후이다. 구한말에는 전라남도 영암군, 완도군 등에 귀속되어 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가 제주도(島)에 편입시켰다.
1932년에는 추자도 주민들이 일본인 어민들의 횡포에 저항한 사와다 그물망 사건이 일어났다. 1944년에서 1945년 시기에는 결7호 작전으로 인해 추자도에 갱도진지가 10개 정도 구축되었다. 1946년 8월 1일 제주도(濟州道) 북제주군 추자면으로 개편했으며 1988년 1월 1일 신양리를 1리, 2리로 분리되었고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으로 개편했다.
산업[편집]
토지 이용과 인구 구성, 그리고 산업 구조면에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추자면의 농경지는 23% 정도인데 비해 임야는 67%나 된다. 지형이 대체로 가파른 경사지이기 때문에 과수원과 목장용지는 거의 없다.
교통[편집]
선박편의 경우 기상 여건 때문에 결항이 잦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추자도 주민들은 풍랑주의보에 상관없이 운항이 가능하고, 보다 많은 승객과 화물을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대형여객선 투입을 계속 요구해 왔다. 추자도로 들어가는 선박편은 제주 - 상추자 - 해남 우수영 항로의 퀸스타2호(450톤급), 제주 - 하추자(신양항) - 완도 항로로 운항하는 한일고속의 송림블루오션호(2500톤급)가 각각 일 1회씩 운항한다. 퀸스타 2호는 제주항에서 1시간, 우수영항에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추자도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선박이다. 송림블루오션호는 2015년부터 5년간 운항했던 3천 톤급 카페리 한일 레드펄호가 선령 만료로 퇴역하자 2020년 6월부터 한일고속에서 임대하여 운항 중인 카페리이다. 2022년 5월 7일부터 상추자도에서 퀸스타 2호와 같은 항구에 진도를 지나 추자에 도착, 제주로 40분 가량의 초고속 페리 산타모니카호가 입항하면서 추자도 주민들의 제주도로 이동이 편리해졌다.
관광[편집]
- 해수욕장 - 추자도 해안 곳곳에 몽돌밭이 있다. 그 중 신양리 뒤편 몽돌밭은 해수욕을 즐길만하다. 100여 미터의 몽돌밭이 펼쳐져 있고,시원한 샘물이 바다에서 나와 몸을 씻기에도 충분하며, 샤워탈의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있다.
- 관탈섬 - 추자도를 ‘바다낚시의 천국’ 이라고 할 정도로 바다 낚시를 얘기하면 추자도를 떠올린다.굳이 배를 타고 무인도까지 나가지 않아도 섬을 둘러싼 모든 갯바위가 다 낚시 포인트이며, 계절을 불문하고 낚시꾼들이 넘쳐난다. 섬 어디를 가도 참돔, 농어, 우럭, 감성돔등 고급 어종이 넘쳐나고 툭히나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는 ‘최고의 손맛’ 이라는 감성돔의 소식이 전해지므로 겨울을 추자도 최고의 낚시계절로 평가한다.
- 사수도 - 제주특별자치도 추자면에 자리한 사수도는 거의 상록활엽수림이 우거져 하늘이 가릴 정도이다. 숲에는 흑비둘기가 나무가지에 둥우리를 틀며 땅속에는 슴새가 구멍을 파서 둥우리를 마련한다. 섬개개비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이 섬은 1982년 11월4일 천연기념물 제333호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 슴새) 번식지로 지정되었다.
- 최영장군사당 - 국토 수호신적인 의미에서 세워졌다는 설과 함께 백성들에게 어망을 만들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그 은의를 생각하여 사당을 짓고 모시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당은 제주도 기념물 제 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당입구 남동쪽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바로 옆에는 ‘최영사당금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의 앞면에는 ‘신묘금지비’라 음각되어있다. 그리고 사당 안에는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 이라는 한 신위가 안치되어 있다.
- 박씨처사각 - 박씨 문중 후손들의 염도 선조인 박인택의 은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으로 박씨 후손들이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4]
문화재[편집]
문화재로는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슴새) 번식지(천연기념물 333), 최영장군사당(崔瑩將軍祠堂:제주기념물 11), 추자처사각(楸子處士閣:제주유형문화재 9) 등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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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추자면〉, 《위키백과》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추자면〉, 《네이버 지식백과》
- 〈추자도〉, 《나무위키》
- 〈추자면〉, 《제주시청》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