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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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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7일 (목) 10:41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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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둔
데라둔 위치

데라둔(영어: Dehradun, 힌디어: देहरादून Dēharādūn)은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우타라칸드주주도이며 인구는 80만 명이다. 도시는 히말라야에서 카트만두스리나가르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1]

개요

데라둔은 시왈리크산맥의 해발고도 670m 지점에 위치한다. 데흐라둔은 히말라야산맥 기슭의 둔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갠지스강 지류인 송강과 서쪽 야무나강의 지류인 아산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25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타라칸드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가월(Garhwal) 지방의 도시이며 우라라칸트 입법부의 겨울수도이다. 캘커타에서 출발하는 간선철도의 종점이며, 히말라야산맥으로 향하는 도로의 기점이다. 또한 산속에 있는 관광, 피서지로 유명한 무수리(Mussoorie)에 이르는 거점이기도 하다. 이곳은 17세기에 시크교(敎) 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한때 네팔왕국령이었으나 구르카전쟁 후 영국령이 되었다. 수도 뉴델리와 중국 국경과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대규모 병영이 설치되어 있고, 1922년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설립되었다. 분지 내에서 재배되는 쌀, 밀, 잡곡, 차, 목재 등의 거래중심지이기도 하다. 삼림연구소, 히말라야지질연구소, 박물관 등이 있다. 데라둔은 인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이다.[2]

지리 및 기후

데라둔은 주로 둔 계곡(Doon Valley)에 위치해 있으며 클레멘스 타운(Clement Town)의 410m에서 말시(Malsi)의 700m까지 높이가 다양하다. 그러나 평균 해발고도는 450m이다. 말시는 무수리(Mussoorie)와 그 너머에 이르는 소히말라야산맥의 출발점이다. 데라둔 지역의 야운사르바와르(Jaunsar-Bawar) 언덕은 해발 3,700m까지 올라간다. 언덕이 많은 지역은 해발 1,870~2,017m 높이까지 올라간다. 지형학적, 기상학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쉽다. 지진 외에도 이 지역은 산사태, 폭우, 홍수, 한파, 우박폭풍으로 인해 자주 피해를 받는다.

데라둔의 기후는 습한 아열대(Cwa) 기후이다. 둔밸리(Doon Valley)에 위치한 도시로 고도차에 따른 기온차가 상당하다. 언덕이 많은 지역에서는 여름이 쾌적하다. 그러나 종종 더위가 심하고 여름 기온은 며칠 동안 40°C에 이를 수 있으며 북인도에 뜨거운 바람이 분다. 겨울 기온은 빙점 아래로 떨어지고 일반적으로 6~20°C 사이이며, 안개는 평야와 같이 매우 흔하다. 데라둔의 기온이 혹한기에는 영하까지 떨어질 수 있지만,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2,073.3mm이다. 도시의 연간 강우량은 대부분 6월부터 9월까지, 7월과 8월까지 비가 가장 많이 내린다. 장마철에는 폭우가 장기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농업은 비옥한 충적토, 적절한 배수, 풍부한 비로 인해 이익을 받는다.[3]

역사

데라둔의 역사는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라바나(Ravana)와 라마(Rama)의 전투 후 라마와 그의 동생 락슈마나(Lakshmana)가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데라둔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유적들은 약 200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장소, 지역 전통, 문헌은 이 지역의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의 사건과의 연관성을 반영하고 있다. 마하바라타 전투 이후에도 판다바 가문은 하스티나푸라의 통치자와 스바후의 후손들이 그 지역을 종속 통치하면서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마찬가지로 리시케시는 비슈누가 성인들의 기도에 응답하고 악마를 학살하고 땅을 성인들에게 물려준 것으로 역사에 언급되어 있다. 인접한 차크라타라는 곳은 마하바라타 시대의 역사적 인상을 가지고 있다.

7세기에 이 지역은 수다나가라(Sudhanagara)로 알려졌으며 중국인 여행자 후엔창에 의해 묘사되었다. 스다나가라는 후에 칼시(Kalsi)로 인식되게 되었다. 칼시의 야무나 강변 지역에서 고대 인도의 부와 중요성을 나타내는 아소카의 칙령이 발견되었다. 하리푸르(Haripur) 인근 지역에서는 라살라(Rasala) 왕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번영을 반영한다. 데라둔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전 옛 지도에는 구루드와라(Gurudwara)로 표기되어 있다. 원래 시크교 사원 주변에는 현재 현대 도시의 일부 이름이 된 작은 마을이 많이 있었다.

데라둔 자체는 7대 시크교 구루 하르 라이(Har Rai)의 장남인 바바 람 라이(Baba Ram Rai)가 1676년 둔(계곡)에 자신의 데라(캠프)를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 되었다. 이 '데라 던'은 나중에 데라둔이 되었다.

무굴(Mughal)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는 카리스마 넘치는 람라이(Ram Rai)의 기적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가르왈(Garhwal)의 동시대 마하라자 파테 샤에게 람라이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의 건물인 구루람라이 다르바르 사힙(Guru Ram Rai Darbar Sahib)은 1707년에 완공되었다. 벽에는 신들, 여신들, 성인들, 현자의 초상화와 종교적 이야기가 있다. 강라굴러 미술과 무굴 미술의 색채의 상징인 꽃과 나뭇잎, 동물과 새, 나무, 뾰족한 코와 큰 눈을 가진 비슷한 얼굴의 그림들이 아치 위에 있다. 높은 첨탑과 둥근 첨탑은 이슬람 건축의 모델이다. 70m×24m의 거대한 연못은 수년에 걸쳐 물이 부족하여 말라 있었다.

데라둔은 1368년 티무르(Timur), 1757년 나집 앗-다울라(Najib ad-Dawlah), 1785년 굴람 카디르(Ghulam Qadir)의 침공을 받았다. 1806년에 네팔의 군벌 카지 아마르 싱 타파 (Kaji Amar Singh Thapa)는 총리 무크티 야르 빔센 타파(Mukhtiyar Bhimsen Thapa)의 중앙 지도 하에 현재 알모라(Almora), 파탄코트(Pathankot), 쿠마온(Kumaon), 가르 왈(Garhwal), 시르무르(Sirmur), 심라(Shimla), 강라(Kangra), 데라둔(Dehradun)과 같은 지역에 속해 있던 많은 인도 영토를 통합했다.

서부 전선에서는 가르왈과 히 마찰프라데시 일부 지역에서 펀자브 까지 동부 전선에서는 다르 질링까지의 시킴주가 1814년부터 1816년까지 영국 동인도 회사가 전쟁에 참전할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네팔의 일부가 되었다. 전쟁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거의 1/3이 양도된 수고울리 조약의 체결로 끝났다. 영국은 1816년에 데라둔을 얻고 1827-1828년에 란두르와 무수리를 식민지로 삼았다.

인도 최초의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는 이 도시를 매우 좋아해 자주 방문했다. 그는 1964년 델리에서 사망하기 전에 이곳에서 마지막 며칠을 보냈다. 독립운동의 또 다른 지도자인 라쉬 베하리 보스(Rash Behari Bose)는 가다르(Ghadar) 음모의 주요 조직자 중 한 명이었고 나중에는 인도 국군(Indian National Army)이 본거지를 두었다. 그는 자유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1915년 일본으로 강제 이주되기 전 초기 시절 데라둔에서 살았다.

독립 후 데라둔과 가르활 및 쿠마온의 다른 지역은 나중에 우타르프라데시주로 이름이 변경된 유나이티드 프로빈스(United Provinces)와 합병되었다. 2000년에 우타르프라데시 재조직법(2000)에 따라 우타르프라데시 북서부 지역에서 우타라칸드 주(이전에는 우타란찰이라고 불림)가 창설되었다. 데라둔은 임시 수도가 되었다.

데라둔의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는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후 아프가니스탄 에미 르 도스트 모하마드 칸이 영국에 의해 데라둔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6년 넘게 무수리에 머물렀다. 무수리시 산하 발라히사르구는 도스트 모하마드 궁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40년 후, 제2차 영-아프간 전쟁 후, 그의 손자 모하마드 야쿠브 칸은 1879년 인도로 유배되었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둔 계곡을 거주지로 선택했다. 야쿠브는 데라둔에 공식적으로 정착한 최초의 아프간인이 되었다. 현재의 망라 데비 인터 대학(Mangla Devi Inter College)은 한때 야쿠브가 그의 인생의 몇 년을 보낸 카불 궁전이었다. 왕의 대가족과 신하들도 데라둔으로 이주했다.

아프가니스탄 왕실은 데라둔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왕인 모하메드 나디르 샤(Mohammed Nadir Shah)의 출생지였다. 데라둔의 카불 궁전과 무수리의 발라 히사르 궁전의 두 기이한 궁전은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20세기 초 인도에 망명해 있던 아프가니스탄 통치자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아프가니스탄 왕들이 소유한 궁궐의 축소 모형이다. 발라 히사르 궁전은 이제 무수리의 윈버그 알렌 학교(Wynberg Allen School)로 바뀌었다.

오늘날 전 왕족인 야쿠브 칸(Yakub Khan)과 그의 손자 사르다르 아짐 칸(Sardar Azim Khan)의 가족의 후손들은 데라둔 생활의 주류에 통합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왕인 자히르 샤(Zahir Shah)가 말년에 뉴델리에서 치료를 받던 중 두온 사촌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해 두온 인연은 다시 살아났다.[4]

지도

인도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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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데라둔〉, 《위키백과》
  2. 데라둔(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Dehradun", Wikipedia
  4. 데라둔〉, 《요다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남아시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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