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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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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위치
두바이 지도
두바이

두바이(아랍어: دبي, 영어: Dubai)는 페르시아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수도이다. 2023년 인구는 356만 명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최대이며 면적은 4,114km²로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함께 나라의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이다. 두바이는 도시 국가 또는 독립된 국가로 자주 오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아랍에미리트(UAE) 전체 대표로 '두바이'로 표기하기도 한다.[1]

개요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샤르자-아지만 대도시권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다. 21세기 들어 급속한 발전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도시답지 않게 인구가 350만 정도로 적어 보이지만, 두바이 동북쪽에 위치한 인구 180만의 샤르자와 인구 40만 가량인 아지만과의 도시연담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제 도시권 인구는 570만을 넘는다. 두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75년이며 1799년 최초로 도시로 언급되었다. 1833년 셰이크 막툼 빈 버티 알 막툼이 바니야스 부족에서 800명을 이끌고 두바이를 공식적으로 세웠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인 세컨드 사우디 스테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바니야스 부족의 알 파사 씨족 역시 두바이 크리크에서 막툼을 따라 떠났다. 1892년에는 영국이 두바이를 지켜준다는 명분 하에 독점 조약을 체결했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할 때까지 영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두바이는 지리학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중요한 무역 허브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미 중동에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오늘날 두바이는 중동과 페르시아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또 화물과 여객 교통의 중심지이다. 두바이의 경제석유 산업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사업을 해온 결과 현재는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혁신적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2]

두바이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더 월드, 팜 아일랜드, 워터프런트와 같은 사람이 만든 인공섬, 초고층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두바이 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심이 증가하면서 공사 중 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시장이 침체되면서 두바이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 전철이나 노면전차는 쥬메이라, 데이라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샤르자와 아지만으로 연장되지 않아 두바이에서 샤르자-아지만 지역 간의 이동은 절대다수가 버스와 자가용에 의존하고 있다. 두바이는 두 번째 규모의 도시인 아부다비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기후는 다습한 사막기후라서 겨울철에는 그나마 버틸 만하지만 여름철에는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의 날씨다. 5월부터 밤중 온도가 30°C를 넘나들고, 6월부터 낮 평균기온이 40°C에 육박하는 어메이징한 도시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닷가에 인접한 탓에 습도 또한 엄청나게 높다. 사람들이 밀집되어 사는 해안 지역의 경우 습도가 보통 60%~80% 안팎이다. 이러한 살인적인 더위 탓에 시내의 모든 아파트 단지에는 수영장 건설 의무를 법제화했고, 에미레이츠 몰, 마리나 몰 등 빵빵한 냉방으로 중무장 한 온갖 몰들이 시내에 즐비하게 건설되어 있다. 어찌나 더웠는지 엄청난 자본을 이용하여 에미레이츠 몰 내부에 크고 아름다운 스키장을 때려 박아놓았다. 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도 캡슐식으로 만들어 내부에 에어컨이 나오는 등, 살인적인 더위를 견디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놨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답게 비는 1년에 정말 1주일 정도 이슬비가 내릴까 말까 한 수준이다.[3]

어원

1820년대 두바이는 영국 역사가들로부터 Al Wasl라고 불렸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사와 사람들의 말로 전해지는 구비로만 몇 개의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민속과 신화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 역사 연구원 Fedel Handhal에 따르면 두바이라는 단어는 내륙에 있는 두바이 크리크가 느리게 흐른다는 뜻인 Daba(두바이어로 살살 움직인다는 뜻의 Yadub의 파생어)에서 왔다고 한다. 시인이자 학자 아흐마드 모하마드 오바이드 역시 같은 단어에서 온 것으로 보고있지만, 메뚜기에서 온 지명 일 수도 있다고 한다.

지리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페르시아만 연안 해수면 16m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아부다비, 북동쪽으로는 샤르자, 남동쪽으로는 오만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해안은 페르시아만과 맞닿아 있다. 두바이의 작은 월경지 하타는 서쪽으로는 아지만, 북쪽으로는 라스알카이마, 그리고 오만 세 지역에 둘러쌓여 있다. 두바이는 수리적 위치로 북위 25.2697° 동경 55.3095°에 있고 4,110km²에 걸쳐 펼쳐져 있다. 간척 사업을 시작하기 전 면적은 3,900km²였지만 간척 사업을 하고 나서 현재와 같은 면적으로 늘어났다.

두바이는 아라비아 사막 바로 위에 펼쳐져 있다. 두바이의 지형은 아랍에미리트의 남쪽 일부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데, 남쪽 대부분 풍경은 자갈 사막인데 반해 두바이는 모래사막이 주를 이룬다. 모래에서 조개껍데기와 산호를 찾아볼 수 있으며, 깨끗한 하얀색이다. 도시의 동쪽에 있는 사브카로 알려진 소금으로 이루어진 연안 평지는 모래언덕의 남북을 이어준다. 동쪽 끝에는 산화철이 더해져 빨간색을 띄는 모래언덕이 많다. 평평한 모래사막을 지나 서쪽으로가면 하타와 오만 국경에 하자르산맥이 있다. 하자르산맥의 서쪽은 매우 건조한데, 들쑥날쑥하고 험난한 이 산맥은 1,300m의 높이를 자랑한다. 두바이에는 자연적인 강이나 오아시스가 없다. 그러나 자연적인 작은 하천 두바이 크리크를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깊게 준설했다. 서쪽 하자르산맥에는 많은 협곡과 물웅덩이가 있다. 두바이 남쪽은 많은 사구가 펼쳐져있고, 룹알할리 사막으로 이어진다. 지질학적으로 두바이는 자그로스 단층이라는 지진 단층선과 가까워 매우 안정된 지질에 위치하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200km 밖에 떨어져있어 충분히 두바이에 지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페르시아 만은 쓰나미가 생길만큼 충분한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나미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래사막은 야생 풀과 대추야자의 서식지가 되어준다. 도시의 동쪽 사브카 사막에는 히아신스가 자라며 서쪽 알 하자르산맥 주변 평야에서는 아카시아와 프로소피스 시네라리아 나무가 자란다. 대추야자, 님과 같은 고유 나무종 뿐만 아니라 유칼리나무와 같은 수입종도 두바이의 자연 공원에서 자란다. 후바라 능에, 줄무늬하이에나, 카라칼, 사막여우, 매, 아라비아영양은 두바이 사막에서 흔한 야생동물들이다. 두바이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회유하는 경로로 320종이 넘는 철새들이 봄과 가을에 이곳을 거쳐간다. 해양에는 다금바리의 한 종 하모르를 포함해 300종 이상의 물고기들이 서식한다. 이 외에 열대어, 해파리, 산호, 듀공, 돌고래, 고래, 상어 등 열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물들도 서식하고 있다.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한 대모, 푸른바다거북 등 다양한 거북 종류가 서식하고 있다.

두바이 크리크는 도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지난다. 도시의 북동쪽은 디에라가 위치하고 있고 그 측면에는 샤르자 남쪽에는 알 아위르가 있다. 디에라 남부에는 두바이 국제공항이 있으며 북쪽 페르시아 만에는 인공섬 팜 디에라가 있다. 두바이 부동산 붐의 대부분은 두바이 크리크의 서쪽 주메이라 해안선을 따라 집중되고 있다. 포트 라시드, 제벨 알리, 부르즈 알 아랍, 팜 주메이라와 같은 비지니스 베이 자유구역은 모두 서쪽 해안선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

두바이 많은 지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초기 주민들에 의해 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의 많은 고대 도시들은 동방과 서방 세계를 잇는 중계 무역지로 알려져 있다. 두바이 인터넷 시티 하수관 공사 중 기원전 7세기 맹그로브 습지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5,000년 전에 사막화되어 예전 해안지대는 내륙으로 넓어져 오늘날의 해안선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옛 이슬람 도자기는 3, 4세기부터 발견되었다.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이 지역 사람들은 바지르(Bajir)또는 바자(Bajar)라고 하는 숭배사상을 믿고 있었다. 비잔틴과 사산(페르시안) 제국이 전성기를 이룩했을 시대에 두바이 지역 대부분은 사산제국이 통치했다. 동부 이슬람 세계의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가 동남쪽 아라비아를 침공하며 사산 제국을 몰아내면서 이슬람이 퍼지게 된다. 알 주메이라(주메이라) 지역에 있는 두바이 박물관 동굴에서는 우마이야 시대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두바이 최초의 기록은 1095년 아랍계 안달루시아 출신 지리학자 아부 압둘 알 박리의 Book of Geography에서이다. 1580년 베네치아 진주 상인 가스페오 발비가 이 지역을 다녀간 뒤 두바이(당시 표기는 Dibei)의 진주 산업을 알렸다. 1799년 이후 두바이는 점점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바니야스 부족 중 알 아부 팔라사 씨족집단(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이 두바이를 세웠고, 1833년까지 아부다비 의존도가 컸다. 1820년 8월 1일 두바이의 셰이크와 다른 토후국의 셰이크들은 영국 정부와 "해상무역조약"을 체결했다. 1833년 부족의 불화에 따라 바니야스 부족의 알 막툼 가문(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의 후손)은 리와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남서쪽 아부다비와의 합의하에 먼저 정착했던 아부 팔라사 씨족을 아무런 저항없이 몰아냈다.

1892년 두바이는 영국과 페르시아만에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공격을 보호해준다는 "독점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800년대 두 번의 대재앙이 들이닥쳤는데, 하나는 1841년 버두바이 지역에 천연두라는 역병이 발생했으며 이곳 주민들을 디에라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894년에는 디에라 지역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거의 모든 집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도시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각국 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다했다. 두바이 국왕은 외국 무역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는데, 당시 중동 지역 무역의 중심지였던 샤르자와 반다르에렝게로부터 상인들을 끌어오기 위해 거래 과세 등급을 낮췄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두바이를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페르시아만을 건너와 정착한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 두바이 크리크에서 다우배를 타고 에렝게와 무역을 하고 있었고, 이들은 남서부 페르시아 바스타크 지역에 정착해 이 지구를 바스타키야라고 불렀다.

두바이의 지리학상 이란에 가까워 중요한 무역 거점 도시였다. 주로 이란에서 온 외국 상인들이 잠시 쉬기위한 항구 도시로 이 상인들 중 대부분이 두바이에 정착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중요한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 진주를 수출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진주 산업은 세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진주 산업이 무너지면서 두바이는 깊은 불경기에 빠졌고 주민들은 굶어 죽거나 페르시아만 주변 지역으로 떠났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설립 초기부터 끊임없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47년 두바이와 아부다비 사이에 북쪽 영토를 놓고 국경 분쟁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중재로 라스 하시안 해안에서 동남쪽으로 영토가 확장되면서 전쟁은 임시 휴전되었다. 1950년대 영국의 지역 관리사무국이 샤르자에서 두바이로 옮겨지면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는 한편 전화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공항도 지어졌다. 이후 아부다비는 수 년간의 탐사끝에 엄청난 양의 석유를 발견해냈고, 1966년 아부다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양이지만 두바이에서도 석유가 발견되었다. 석유 개발은 국제적인 석유 회사에게 양도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1968년부터 1975년 사이 도시의 인구는 300% 이상 증가했다.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만에서 물러나면서 12월 2일 아부다비, 두바이를 포함한 여섯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가 건국되었다. 1973년에는 다른 토후국들과 함께 전국 통화인 디르함을 채택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카타르와 바레인이 개별적인 국가로 독립했다. 1973년 카타르와의 통화 동맹이 무산되었고 UAE 디르함이 토후국 사이에서 채택되었다.

1970년대 두바이는 석유와 무역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으며, 레바논 내전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아랍에미리트를 창설한 이후에도 토후국들 사이에서 영토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1979년 협의를 통해 분쟁을 끝냈다. 1979년 제벨 알리 항구가 개항하였으며, 1985년 이 주변에 외국 기업들로부터 아무런 제한 없이 노동력 수입과 자본 수출을 하고자 JAFZA(제벨알리자유구역)가 개발되었다.

1990년 걸프 전쟁이 발발하면서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고 거래자들의 무역 중단으로 도시 금융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분위기를 바꿔놓으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이후 많은 거래 업체들은 쿠웨이트는 걸프 전쟁으로 인해, 바레인은 시아파 불안 확산으로 두바이로 옮겨왔다. 걸프 전쟁 중 제벨알리자유구역은 연합국의 연료를 급유하는 곳으로 이용되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중에도 똑같은 용도로 이용되었다. 걸프 전쟁 이후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두바이는 자유 무역과 관광에 주력을 다하고 있다.

기후

두바이의 기후는 더운 사막기후이다. 여름에 두바이는 매우 덥고, 바람이 거세며, 습하다. 평균적으로 최고 온도는 42°C이며, 밤사이 최저기온은 29°C이다. 대부분 일년내내 맑다. 겨울의 평균 최고 온도는 23°C이고 밤사이 최저기온은 14°C이다. 강수량은 지난 수 십년간 매년 250 mm 씩 증가하고 있다. 두바이의 여름은 많은 것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매우 높은 습도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두바이의 강수량이 급증하게 되면 두바이의 기후는 스텝 기후 대역으로 편입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4]

교통

두바이에는 두바이 국제공항, 두바이 알 막툼 국제공항 두 개의 공항이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알 막툼에 가끔 화물기를 띄우는 듯 한데, 비즈니스 베이까지 대략 40분 넘는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에미레이트 항공 역시 이 국제공항을 허브로 이용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주요 도시들에서 두바이 국제공항으로 직항편을 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으리으리한 두바이 국제공항도 주변이 시가지로 뒤덮여 더 이상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제벨 알리 지역에 알 막툼 국제공항을 짓고 있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에미레이트 항공과 대한항공이 둘 다 공평히 매일 1회 운항중에 있다.

도시철도인 두바이 메트로의 경우, 두바이 시내에서 4개의 노선이 운행 중이다. 셰이크 자예드 고속도로를 따라 같이 건설되어 두바이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레드 라인과 데이라 지역을 샅샅이 훑어주는 그린 라인, 그리고 마리나 지역에 건설된 지상 트램, 팜 주메이라를 이어주는 주메이라 모노레일 등.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은 아니지만 전철이 골드석과 일반석으로 구분된 게 특징인데 비행기로 치자면 비즈니스석과 일반석의 차이 정도 된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답게 전철 내에 선 하나를 기준으로 여성 칸 그리고 혼성 칸 이렇게 구분이 된다.

광광

봄에서 가을에 걸친 4월부터 10월까지는 밤에도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탓에 야경 구경할 겸 마리나를 나갔다간 몰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 맞을 생각부터 하게 된다. 두바이에 이븐 바투타, 마리나,에미리트, 두바이 등 온갖 쇼핑몰들이 몰려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바깥이 너무 더워 피신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늦봄~초가을까진 해수욕을 하지 않는 이상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이 지역 몇몇 국제학교는 여름에 몰로 피크닉을 가기도 한다. 이렇듯 워낙에 더운 시기라 비행기 표와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표 구하기는 쉽다. 반면, 겨울에는 한국의 봄 같은 따뜻한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 온도가 딱 적당해서 수영이나 해수욕을 하는 데에도 큰 지장이 없다. 따뜻한 봄 기후와 아름다운 야경 및 건물 숲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방문하는 것이 추천된다. 두바이의 겨울밤은 좀 쌀쌀하다. 두바이는 사막에 위치한 도시이므로 낮에 덥고 밤에 춥기 때문이다. 치안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큰 건물이나 술집에는 거의 경비원이 있으며 밤이 되어 기온이 선선해지면 조깅을 하러 나오는 여자도 많다. 그리고 치안이 좋고 더운 기후 탓도 있어서 일찍 문을 닫는 유럽과 달리 아랍 국가임에도 밤 늦게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등 활동이 활발하다.

종교

아랍에미리트의 임시 헌법 제7조에는 이슬람이 국가의 공식 종교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모스크의 95%와 이맘에게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고 있으며 나머지 5% 모스크는 사유 재산이다. 몇몇 큰 규모의 모스크는 개인 제단을 가지고 있다. 또 기독교, 힌두교, 시크교, 바하이, 불교도 많은 신자들을 두고 있으며 이 외에 도시에는 여러 종교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종교집단도 예배당을 가질 수 있는데, 정부로부터 무상 토지가 주어줘 건물 건설 승인과 자유롭게 종교 실천이 가능하다. 소유 건물이 없는 집단은 개인 집이나 다른 종교 집단 시설을 사용한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종교 집단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은 허용되지만, 개종시키려 하거나 종교 문학을 배포하는 행동은 형사고발, 징역, 이슬람교를 모욕한 행위로 추방하는 등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또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5]

지도

동영상

각주

  1. 두바이〉, 《위키백과》
  2. 두바이〉, 《나무위키》
  3. 두바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두바이〉, 《요다위키》
  5. "Dubai", Wikipedia

참고자료

같이 보기

아라비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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