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아레스제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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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아레스제도주(카탈루냐어: Illes Balears, 스페인어: Islas Baleares, 영어: Balearic Islands)는 지중해 서부의 스페인의 자치 지방 중 하나다.[1]
개요
발레아레스제도주의 면적은 4,992㎢ 인구는 1,215,174명(2020년)이다. 주도(主都)는 팔마데 마요르카다.
가끔 카탈루냐 독립운동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발렌시아와 함께 이 지역까지 포함시켜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는 하는데, 카탈루냐 독립운동을 지칭하면 거의 대부분은 스페인 본토의 카탈루냐 지역만을 일컫는 말이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지, 피서 휴양지로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마요르카는 남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고 휴가철이 되면 햇빛이 부족한 북유럽 관광객들이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즐기기 위해 많이 찾아 온다. 특히 이비사는 유흥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독일의 경우 매년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요르카 섬을 찾아서 오죽하면 '마요르카는 독일의 17번째 주'라는 말도 있다. 문화와 요리가 카탈루냐와 매우 유사하고 언어도 카탈루냐어를 사용한다. 물론 스페인어도 잘 쓰인다.[2][3]
자연환경
에스파냐 본토에서 동쪽으로 80~300km 해상에 산재하며, 마요르카섬 ·메노르카섬 ·이비사섬 ·포르멘테라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제도는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온난한 기후 때문에 휴양지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역사
고대
고대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이 지역의 투석병들은 당시 서지중해에서 정예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카르타고가 서지중해 페니키아계 도시국가들의 맹주로 부상한 이후에는 발레아레스 제도 역시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으나, 포에니 전쟁의 결과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로마는 수백년에 걸쳐 발레아레스 제도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으나, 5세기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서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반달족에게 정복당해서 반달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중세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에 동로마군은 벨리사리우스 등을 앞세워 구 서로마령에 대한 재정복 전쟁에 나선 끝에, 반달 왕국을 정벌하고 발레아레스 제도를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의 동로마 제국은 이탈리아(동고트 왕국) 및 이베리아 반도(서고트 왕국) 남부 등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역병으로 인한 타격을 받았고, 비록 전쟁 자체는 승리했지만 더이상의 고토 수복을 진행할 역량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슬람 제국이 발흥하여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이후에는 동로마가 발레아레스 제도를 방어하기 극도로 어려워졌고, 결국 우마이야 왕조에게 정복당해서 스페인 본토와 마찬가지로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이후에는 그 후신인 후우마이야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나,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 칼리파가 지방 통제력을 상실하자 타이파(Taifa)라 불리는 지방 호족들이 할거하게 되었고, 이베리아 본토를 휩쓴 베르베르계 왕조인 무라비트 왕조 및 무와히드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이 발레아레스 제도는 수백년에 걸친 무슬림의 지배를 받았으나, 13세기에 아라곤 국왕 하이메 1세에게 재정복당해서 다시 기독교인의 땅이 되었다.
아라곤 왕국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섬인 마요르카 섬의 이름을 딴 마요르카 왕국을 수립하여 동군연합의 형태로 지배했고, 아라곤 본토에서 이주해온 카탈루냐인들이 대거 정착하여 오늘날과 같이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카탈루냐어권 지역이 되었다.
근대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통합하여 스페인을 형성한 이후로도 발레아레스 제도는 마요르카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권을 유지했으나, 1715년 보르본 왕조의 펠리페 5세가 공표한 누에바 플란타(Nueva Planta) 칙령으로 인해 스페인이 공식적으로 단일국가로 거듭나면서 마요르카 왕국은 폐지되고 스페인 본토와 같은 나라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다만 메노르카섬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와 함께 영국으로 넘어갔고, 7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 전쟁 등을 거치며 스페인 또는 프랑스가 일시적으로 차지했다가 영국이 되찾는 과정이 반복되었는데, 1802년 아미앵 조약을 통해 최종적으로 스페인에 반환되어 발레아레스 제도 전체에 대한 스페인의 영유권이 확고해졌다.
산업
주요 산업은 어업과 농업인데, 올리브 ·포도 등이 생산되는 외에 염소 ·돼지 등의 사육도 성하다. 공업은 마요르카섬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공예품이 많다. 선사(先史)시대 ·로마시대 등 고대문화의 유적도 많아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마요르카섬
지중해 발레아레스 제도에 있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섬이다. 1952년 5월 영국과 독일에서 최초로 마요르카 여행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 이곳은 유럽의 주요 관광지로 발돋움하여 1960년대에 유럽에서 마요르카 섬은 관광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했다.
마요르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기원전 6000–4000년)의 주거지 유적 및 무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에는 매우 먼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섬은 기원전 123년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리아리쿠스가 이끄는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다. 로마제국의 통치 시기에 폴렌시아(Pollentia, 현재의 알쿠디아) 및 팔마리아(Palmaria, 현재의 팔마)와 같은 섬의 주요 도시가 세워졌다. 당시 섬의 산업은 올리브 및 포도 재배, 소금 생산이 중심이었다. 마요르카의 군인들은 특유의 투석기 사용 기술로 로마군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426년 반달족의 침입을 받은 마요르카 섬은 465년부터 반달족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534년에는 동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당하였으며 사르데냐 왕국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동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로마 가톨릭교회) 문화가 번창하였으며 유명한 성당들이 이때 지어졌다. 707년 이후로 섬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계 침략자들로부터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902년 코르도바 칼리파테가 섬 일대를 장악하면서 다시 번영 시기를 맞게 되었으며 무어인의 이주와 함께 관개를 비롯한 농업 및 지역 산업이 발달하였다. 칼리파테가 1015년 분할되면서 마요르카는 일대 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114년 8개월에 걸친 카탈루니아인들의 공격에 의해 도시는 다시 정복 당했고, 한동안 침략자들이 머물다가 북아프리카의 알모르다비 왕조가 다시 통치권을 쥔다. 연이은 사회 불안으로 아라곤 왕국의 제임스 1세가 1만 5천 명의 남자와 1천 5백 마리의 말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아라곤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제임스 1세가 1276년 죽자 왕국이 아들들의 싸움으로 분열되었다가 제임스 2세가 마요르카 섬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1344년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5세(Pedro IV)가 침략하여 다시 섬을 왕국으로 통합한다.
1479년 이래로 아라곤 왕국은 카스티야 왕국과의 연합을 이루었다. 18세기 초에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이후 스페인에서는 단독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716년 통합 왕국령으로 마요르카 섬이 발레아레스 제도의 부도서로 편입되었다.
1950년대 이후 관광지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팔마 시와 섬 전체에 외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증가하였고 스페인 본토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이주하였다. 이는 마요르카 섬의 전통적 산업구조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팔마시를 방문한 관광객의 숫자는 1960년 약 5백만 명이었고 1997년에는 6,739,700명을 기록하였다. 2001년에는 거의 2천 만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섬을 방문하였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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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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