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공영㈜
한신공영㈜(韓信公營)은 1950년 주택 건설을 시작으로 건축·토목·전기·플랜트 사업을 통해 종합건설업체로 성장한 회사다. 2023년 기준 도급순위 27위를 기록하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잠원동·반포동 일대 총 27차에 걸쳐 아파트 2만여 가구를 건설했고, 1986년에는 국내 최초 주택연구실을 세웠다. 올릭픽선수 기자촌 아파트 1공구, 1기 신도시인 분당·일산 등 약 30만 세대의 주택을 보급했다. 또 영종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제2 여객터미널 합동청사 등 국가 기간산업 인프라 건설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로도 영토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개요
한신공영㈜는 1950년 3월 한신축로공업사를 전신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아파트 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이었다. 법인 전환일은, 1967년 2월 24일이지만 한신공영 주식회사의 최초 설립일자는 1950년 3월이다. 이후, 1960년 8월 한신공업사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1967년 2월 24일 한신공영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과 동시에 사명을 변경. 1976년 7월 7일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유가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한신공영의 창업주는, 故 김형종 전 한신공영그룹 회장이다. 본사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사무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해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9년 시공능력평가 결과, 토건시평액 1조 9,248억원으로 16위를 기록했다.
역사
한신공영㈜의 모태는 1950년 3월에 설립된 한신출로공업사이다. 설립자 김형종 회장은 1960년 8월에 상호를 한신공업사로 개칭하였는데, 이때부터 일본 히라카와(平川)철공주식회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보일러를 생산하였다. 그러다가 1967년 2월 한신공영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고 종합건설 상장법인으로 전환하였다. 1967년 4월에는 건설업 면허를 취득하였다. 한신공영㈜은 설립 초기에 주로 아파트 등 주택건설에 주력하였다.
한신공영㈜은 1974년 부동산 사업부를 신설하였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한신아파트를, 1976년에 신반포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6년 7월 기업을 공개하고.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1976년 9월에는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 해외건설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였다. 1978년 1월 석우종합설계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8년 3월 쿠웨이트에, 5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하여 해외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또한, 1978년 5월에 건설부의 주택건설업자로, 9월에 기간산업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0월에는 수출입업 허가도 취득하였다. 1978년 12월에는 한신윤교개발㈜과 뉴코아유통을 설립하였다.
1980년 2월 지하철건설주식회사 주주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80년 8월 자본금을 260억 원으로 증자하였다. 1983년 11월에는 전주코아백화점을 개점하였고, 1985년 7월 석우개발주식회사를 흡수·합병하였다. 한신공영㈜은 1985년 12월 전주코아호텔을 개관하였다. 1987년 12월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한신코아백화점을 개점하였다.
한신공영㈜은 1991년 11월 전신통신공사 유선통신선로 공사업 1등급을 획득하였고, 1992년 12월 한신코아 광명점을 개점하였다. 특히 1990년대에 와서 유통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한신공영㈜은 1993년 5월 한신코아 대전점을, 이어서 9월에는 성남점을 개점하였다. 이해에 도급한도액 순위 10위를 기록하였다. 1994년 2월 중국의 연길한신유한공사 현지법인을 설립하였다. 1996년 7월에는 도급순위 24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1997년 6월 한신공영㈜은 216억 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가 나고 말았다. 1978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하여 해외건설에 주력하였으나, 미수금이 생기는 바람에 그 여파가 부도로 이어지고 만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7년 11월에 한신공영의 형제 회사 격인 뉴코아도 화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이해에 한신공영㈜은 법정관리를 신청하였고, 1996년 2월에는 뉴코아를 계열 분리하였다.
한신공영㈜이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2002년 11월이었다. 채권단은 2002년 한신공영㈜의 사업 부문을 건설과 유통으로 나누어 건설은 2001년 8월에 설립한 코암시앤시에, 유통사업인 한신코아백화점의 경우 세이브존 컨소시엄에 각각 매각하였다. 2004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하여 각종 건설사업에 참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베트남 국가우호훈장을 수상하였다. 2010년 2월은 한신공영이 창사 60주년이 되는 해로, LH 우수시공업체로 선정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한국철도 시설공단 시공 분야 우수업체로 선정되어 시공능력을 인정받았다. 2012년에는 미얀마 Manipura수력발전소 프로젝트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2013년 4월에는 필리핀의 파사이시 건설공사 협력 MOU를, 9월에는 역시 필리핀의 사마르지역 건설공사 협력 MOU를 체결하였다. 2016년 3월에는 캄보디아 국도 개선공사의 착공식을 가졌으며, 6월에는 국토교통부 공시 기준 국내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 18위를 기록하였다.
특징
-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급성장한 회사로 한신더휴(THE HUE)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하다. 1980~90년대에 한신코아(현 세이브존)라는 백화점도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고 흑역사가 되었다. 한신코아 브랜드는 백화점 뿐만 아니라 잠실 한신코아 같은 일부 고급아파트나 오피스텔에도 사용된 바가 있는데 한신코아 브랜드는 비록 아파트에서는 널리 쓰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파트 업계에서는 이른 시기에 고급 브랜드 마케팅을 도입한 것으로서, 이 브랜드의 파생형으로 부산지역 향토기업과 합작하면서 부산지역 한정으로 쓰이던 그린코아도 있다.
- 한신공영의 창업주이자 회장은 김형종이었는데, 이 김형종은 1970년대에 한 능력있는 사원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그 사위는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좋아 반포한신아파트 단지 개발을 주도했으며 반포한신아파트에 슈퍼마켓을 차렸고 이게 당시 기준으로 하루에 1000만원을 벌어들이면서 아예 유통업으로 빠졌다. 그 사위의 이름은 김의철. 김의철이 주도하던 유통부문은 빠르게 성장하여 뉴코아그룹으로 발전했다. 이후 김형종 회장이 1983년에 사망하였고, 1993년에 김의철은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유통부문을 가지고 분가하여 뉴코아그룹을 만들었다. 뉴코아는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NC백화점), 킴스클럽 등을 세우며 재벌이 되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때 부도가 나고 결국 대부분의 계열사가 이랜드그룹에 인수된다. 한 편 1983년에 김형종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사업이었던 건설부문은 외아들인 김태형에게 승계되었다. 김태형은 이후 여러가지 사업에 진출하면서 한신공영을 무난히 이끄나 싶었지만, 1996년에 브니엘학원 이전사업이라는 희대의 사업을 수주하였고 결국 외환위기로 재벌그룹들이 쓰러질 때 브니엘학원과 같이 도산하고 만다.
- 2002년에 한신공영의 건설부문만 따로 분리되어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중견기업에 팔려가면서, 2010년대 현재는 아파트 건설과 도로 등 각종 공공인프라의 건설 수주를 받는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암시앤시개발로 인수될 당시에 언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하였으며, 한신공영에 오랫동안 있었던 중역들은 그래도 한때는 대기업이었단 자부심 탓이었는지 몰라도, 지방 중견기업에 인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는 말이 있다.
- 1970~80년대 당시에는 강남개발을 주도하면서 현대, 우성, 삼익, 삼호, 한보, 한양 과 더불어 잘나가는 1군 메이커 아파트로 유명했고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중산층들과 부유층들을 공략하여 1977년 신반포1차아파트부터 1996년 한신타워아파트(신반포 28차 아파트) 까지 무려 19년간 신반포로 불리우는 대규모 브랜드 타운이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중동진출 실패로 인해 휘청거리기도 하고 산업합리화 대상업체로 지정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90년대 초반에 겨우 정상화 되어 흑자를 보나 싶었는데 IMF 사태때 부도 나면서 중견기업으로 팔려갔다. 그 와중에 삼성물산 래미안, GS건설 자이 같은 후발주자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들이 고급화로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전성기때 라이벌이던 주식회사 한양과 함께 현재는 평범한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요새는 주식회사 한양과 비슷한 도급 순위 까지 보여주고 있다. 도로, 교량 건설과 같은 공공인프라 수주 공사도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그래도 아예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잊혀진 우성, 삼익, 삼호, 한보보다는 상황이 낫다. 하지만 한신공영이 최전성기에 만들었던 신반포 한신 타운은 부촌의 대명사 중에 하나로 한신공영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고 한때나마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 이후 한신공영의 부도 후 주인이 바뀌고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사세가 많이 기울어버렸다. 2000년대 이후 이곳이 재건축 될 무렵 한신공영이 자사에게 있어서 상징성이 강한 신반포 한신타운 재건축 사업에 다시 참여하려 했으나 이때는 한신공영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탓에 입주자들이 재건축 수주 업체로 언급조차 안 해주거나 반대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부도 이후로는 서초구 반포동을 포함한 소위 말하는 강남 권역에 재진출은 번번히 실패하게 되는데, 얼마나 오죽했으면 한신공영에서 신반포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라도 수주 하려고 입주자 2만 가구에 호소문을 보냈지만, 입주자들은 하나같이 쿨하게 무시했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어찌보면 아파트계의 대우 로얄 자동차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
대표 실적
- 신반포아파트
- 세종 한신더휴 리저브
- 가온마을 3단지 한신더휴
- 여의도 K타워(한국교직원공제회관)
- 철도기관 공동사옥
- 캠코캐피탈타워 (구 충청은행 본점)
- 서울동부지방검찰청
- 청주지방법원
- 행복도시 첫마을 도시조성공사
- 새만금지구 산업단지 6공구 매립공사
- 경부고속철도 5-2공구 노반신설공사
- 중부고속도로 건설공사 (6공구)
- 중부고속도로(대전-함양) 건설공사 (10공구)
- 순천완주고속도로 건설공사 (14,15공구)
- 베트남 호치민고속도로
- 새나루마을 3단지 더휴예미지
- 함양울산고속도로(밀양-울산) 건설공사 (8공구)
동영상
참고자료
- 한신공영㈜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hanshinc.com/
- 〈한신공영〉, 《나무위키》
- 〈한신공영〉, 《위키백과》
- 〈한신공영㈜ (韓信公營(株))〉,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윤현주 기자, 〈주가 3만원→8000원…한신공영, 20원만 올라도 폭등〉, 《한국경제》, 2023-06-285
- 박혜린 기자, 〈한신공영 분양시장 어려운데 신사업은 아직, 오너2세 최문규 과제 산적〉, 《비즈니스 포스트》, 2023-03-09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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