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동구
일산동구(一山東區)는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의 구이다. 서쪽으로는 일산서구, 동쪽으로는 덕양구, 북쪽으로는 파주시, 남쪽으로는 김포시에 접하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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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일산동구 면적은 59.8㎢, 인구는 22만 7690명(2005)이다. 북서쪽에 고봉산(高峰山:208m)이 솟아 있고, 정발산(鼎鉢山)·황룡산(黃龍山:134m)·견달산(見達山:132m) 등 낮은 구릉성 산지가 여럿 있다. 북동쪽으로 곡릉 천이 흐르고, 남쪽 고촌면과 경계 지역에 한강이 흐른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달을 성현(達乙省縣), 통일신라 이후에는 고봉현·무왕현, 조선 초기에는 고양 현 지역이었다. 1471년(성종 2) 고양군을 거쳐, 1895년(고종 32) 한성부 관할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고양군 중면이 된 뒤, 1992년 고양시 관할이 되었다. 1996년 고양시에 2개 구가 신설될 때 일산구에 포함되었다가, 2005년 5월 일산서구와 함께 일산구에서 분구되었다.
2006년 현재 식사동·중산동·정발산동·풍산동·백석동·마두 1동·마두 2동·장항 1동·장항 2동·고봉동 등 10개 행정동을 관할한다. 1982년부터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지금도 행정타운 형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시가지는 서쪽에 집중되어 있고, 북쪽에는 농업 인구가 많다. 동쪽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고, 구 중앙부를 356번 지방도(고양대로)가 동서로 관통한다. 그 밖에 경의선 백마역과 곡산역이 있다.[2][3]
역사[편집]
선사시대[편집]
수만 년 전, 일산동구 지역에 한강 주변과 고봉산 같은 낮은 구릉성 산지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주로 이곳 일산 지역에서 이동생활, 또는 정착 생활을 하면서 살았는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마암의 차돌을 이용하여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일산의 대화동과 주엽동 일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의 볍씨가 발견되어, 이곳이 한국 최초로 곡식을 뿌려 논농사를 지은 곳임이 밝혀졌다. 이 볍씨들은 일산 신시가지가 개발되기 이전에 논과 밭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토탄층 조사에서 밝혀졌는데 이곳에서는 이외에도 무문토기, 빗살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선사시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점점 넓혀 점차 그 주변지역으로 확장하였다. 일산동구의 내륙지역인 문봉동, 사리현동, 지영동 등지에서 청동기 시대의 여러 가지 유물이 발견되었고 성석동, 설문동, 사리현동 등지에서는 마제석부 등을 비롯한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편집]
역사시대의 초기 단계인 삼국시대에 일산동구 지역은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통치를 받게 되었다. 먼저 백제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후 일산 지역을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막는 중요한 요충지로 활용하였다. 고구려는 그 후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대에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약 80년 동안 지배하였는데 이곳은 당시 ‘달을 성현’으로 불리었다. 그 후 강력한 신라군의 반격에 의해 이 지역을 물려주고 고구려 세력은 한강 이북으로 철수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 이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 특히 신라와 고구려 군과의 세력이 자주 충돌하곤 하였다. 이때 고구려의 세력 하에 축조된 토성으로는 현재의 대화동 성저 마을에 축조된 성저 토성이 있다. 높이 2~3m 길이 400m 정도의 거대한 토성으로 고구려의 토기를 비롯해 통일신라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어 한강 유역의 방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증명되었다. 그 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신라 경덕왕 16년에는 고봉현으로 불리었다.
고려 시대[편집]
911년 신라의 세력을 물리치면서 일산 지역은 궁예의 태봉국이 되었으나 곧 왕건의 고려에 복속되었다. 고려 시대에 일산은 이웃해있는 개성이 새로운 도읍지로 정해짐에 따라 문화·역사의 중심지의 주변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이곳은 남경 유수관의 한부사가 관리를 맡았으며 1285년에는 명칭을 ‘부원’으로 고치게 되었으며 주엽동 일대는 특히 황조향이, 그리고 밤가시마을 부근에는 율악부곡이 설치되었다.
조선 시대[편집]
1413년 조선 태종 13년에 삼국시대 이후 줄곧 ‘고봉’과 ‘덕양’으로 나뉘어 있던 두 지역의 앞자와 뒷자를 따서 고양이 되었는데 지금의 고양이란 이름도 이때부터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일산 지역은 고려조의 도성이었던 개성과 새로운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역사의 중심지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471년 조선 성종 연간에 일산 지역이 고양현에서 고양 군으로 승격되었다. 연산군 시대에는 이곳 일산을 비롯한 고양 땅은 금표 구역 내에 포함되어 왕의 사냥터와 유흥지, 목초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1755년 영조 때에 발간된 《고양 군지》의 당시 기록을 보면 고양에는 8개면, 3508호 남자 6785명, 여자 7076명 등 총 13,878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1895년 고종 3년에 한성부에 포함되었으며, 1906년 양주군 신혈면이 고양 땅에 속하게 되었다. 1911년 당시 9면 50개리를 관할했다.
일제시대[편집]
1914년 군청 소재지는 지금의 서울적십자 병원 자리에 위치했다. 이후 1936년 지금의 서울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건너편 자리에 군청이 위치했었으며 당시 고양 땅은 지금 서울의 강북 대부분이 포함된 광활한 구역이었다. 당시 이곳 일산은 ‘중면’으로 불리었다. 현재의 일산동구 중 식사동은 원당면과 원당읍 소속이고, 설문동, 지영동, 사리현동, 성석동, 문봉동, 고봉동 등은 벽제 면과 벽제 읍 소속이었다.
대한민국[편집]
1980년 중면이 일산읍으로 승격되었고, 1986년 11월 1일 일산읍의 동부 지역인 마두, 백석, 풍동리 등을 관할하는 일산읍 백마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백마 출장소는 1992년 시 승격 이후 동제로 전환되면서 사라졌지만 현재의 일산동구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1989년 일산 신시가지 개발이 발표되었다. 1992년 2월 1일에는 고양시로 승격되었고, 1996년 3월 1일 덕양구와 일산구로 분구된 후, 2005년 5월 16일 일산구는 다시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분구되었다.
- 2005년 5월 16일 고양시 일산구가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로 분리되었다. 식사동, 일산 4동, 풍산동, 백석동, 마두 1동, 마두 2동, 장항 1동, 장항 2동, 고봉동 일원과 일산 2동 일부가 일산동구의 관할이 되었다. 일산 4동은 정발산동으로 개칭하고, 일산 2동의 일부는 중산동으로 신설하였다. (10개 행정동 13개 법정동)
- 2006년 10월 29일 백석동을 백석 1동, 백석 2동으로 분 동하였다. (11개 행정동)
- 2022년 1월 3일 중산동을 중산 1동, 중산 2동으로 분 동하였다.
지역 특징[편집]
고구려 안장왕과 미녀 한 씨가 만났다는 고봉산이 이 구에 있다. 고봉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으니 만약 시간이 난다면 심심풀이 정도로 간단하게 올라가 볼 수 있다. 다만 산의 정상은 군사용 철탑이 있어서 군사보호구역인 관계로 갈 수 없다. 라페스타와 웨스턴돔 역시 일산동구에 있다. 여러모로 시청과 시의회가 덕양구에 있는 점만 빼면 고양시를 이끄는 중심지라 할 수 있다. 교육지원청(마두동), 각종 상업시설(장항동),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과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장항동), 수도권 법원 기록물 관리 센터(마두동), 사법연수원(장항동), 일산 차병원(장항동), 국립암센터(마두동), 등기소(장항동), (개소 당시 고양시 유일의) 세무서(장항동)[8], 고양시 3구 선관위 합동청사(백석동), 일산 호수공원(장항동), 고양종합터미널(백석동), 대한상공회의소(장항동)[9] 등이 있다. 고등학교 학군 상 고양시 2 지역에 속해 있다.
교통[편집]
고속도로 국도[편집]
동쪽으로는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2020년 드디어 일산동구를 직접 들어가는 평택 파주 고속도로(서울문산)가 개통하였다. 일산동구에 북고양·설문 IC, 사리현 IC 2개가 들어섰다. 일반국도는 77번 국도, 즉 자유로가 지나간다.
철도[편집]
경의 중앙선 풍산역, 백마역, 곡산역 및 일산선(수도권 전철 3호선) 정발산역, 마두역, 백석역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울특별시로 나갈 때 여전히 버스를 많이 이용했으나, 아래 서술처럼 백마역이 생각보다 이용하기 좋다는 것이 드러나고 경의 중앙선이 용산역까지 뚫려서 용산역과 서울역을 모두 갈 수 있게 되다 보니 최근에는 백마역뿐만 아니라 풍산역도 주민들의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러나 경의 중앙선은 평일 기준 최대 15분, 주말 기준 최대 20분의 영 좋지 않은 배차간격인 지라 차량 증차 등의 개선이 요구된다. 2014년 말 경의선(용산선)이 용산역까지 완전 개통되면서 경의선을 이용한 서울 접근성이 매우 크게 향상되었다. 경의 중앙선 급행열차 이용 시 백마역에서 용산역까지 26분, 경의선(경의본선) 이용 시 서울역까지 2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배차간격이 15분에서 최장 20분으로 상당히 긴 만큼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 있다.
버스[편집]
인구가 많은 만큼 버스 행선지도 인천, 파주, 김포, 광화문, 신촌, 서울역, 여의도, 강남, DMC 등 다양하며 인근 도시들을 대부분 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다. 심지어는 강화도까지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존재한다. 일산 신도시를 관통하는 3호선의 경우 연신내를 시작으로 종로3가, 충무로를 지나 교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지나며 서울 도심을 관통하기 때문에 회사들이 몰려 있는 강남이나 광화문으로의 출근도 매우 용이한 편이다.
문화[편집]
대표적으로 일산 호수공원이 있고 그 주변에 MBC 드림센터가 있는데 특히 쇼 음악중심 등의 음악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진행하게 되면 아이돌 및 스타를 만나러 나온 학생층들이 많았다. 다만 여의도 MBC 본사와는 달리 컨벤션 센터 형태이고 로비에 은행이나 커피전문점 등도 갖추어진 것을 보면 정문 입구에서부터 청원경찰이 서 있는 MBC 본사와는 달리 민간인들의 왕래도 많은 편이다. 그 외에 예술의 전당에 이어 대한민국 제2의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공연장 고양아람누리가 정발산역 근처에 있고, 일산동구와 일산서구 양쪽에 걸친 한류월드 복합단지 역시 개발 중이다.
유적[편집]
민속놀이인 진밭 두레패 놀이가 전승되고, 명소로는 호수 공원과 고양시 민속전시관이 있다. 문화유적도 많아 일산 밤가시 초가(경기 중요민속자료 8), 이천우 묘와 신도비(고양 향토유적 7), 계원군 묘와 신도비(고양향토유적 3), 정지운 선생 묘(고양향토유적 11), 홍이상 선생 묘와 신도비(고양 향토유적 13), 장경의 묘와 신도비, 이정암 정려문, 어세공 묘지(墓誌), 독산 봉수대, 권필의 묘와 묘갈, 문봉 서원지(文峰書院祉) 등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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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