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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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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위치
부산광역시 중구청

중구(中區)는 부산광역시 남부에 있는 구이다. 부산의 구도심에 해당한다. 면적이 기초 자치 단체 중에서 가장 작으나, 부산항 여객터미널, 용두산공원, 번화가인 남포동, 자갈치시장 등이 있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본점도 있어, 현재도 부산의 경제·교통·관광의 중심지이다.[1]

개요[편집]

부산광역시의 남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9˚ 01' 14"~129˚ 02' 23", 위도상으로는 북위 35˚ 05' 23"~35˚ 06' 48"에 위치한다. 동남쪽으로는 남해를 끼고 영도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서구, 북쪽으로는 동구와 접한다. 동서 간 거리는 1.8㎞, 남북 간 거리는 2.3㎞이며, 면적은 2.83㎢로 부산시 전체 면적의 0.4%를 차지하여 16개 구·군 가운데 가장 작다. 행정구역은 9 행정동(41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동이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동광동이 전체 면적의 6%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3년 7을 기준하여 39,311명이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동백꽃, 나무는 소나무, 새는 비둘기이다. 구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중구의 상징적 명소인 자갈치시장 아지매와 물고기를 소재로 하여 소박하고 청순한 모습으로 형상화한 '자갈치 아지매'이며, 다정다감하면서도 활기찬 표정과 몸짓을 통하여 중구의 친절함과 밝은 미래를 표현하였다. 구청 소재지는 대청동 1가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대륙 횡단도로가 중구에서 시작하며,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 충장대로, 번영로를 통해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어지고,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이 중앙대로를 통해 아일랜드 코크까지 이어진다. 부산광역시의 주요 간선 도로가 모두 중구에서 시작되는데, 중앙대로, 충장대로, 구덕로, 대교로, 대영로, 대청로가 이에 해당된다.

대한민국에서 면적(2.83㎢)이 가장 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기초자치단체인 홍천군(1,820.52㎢)과는 면적이 무려 약 643.3배 차이가 난다. 인구도 대한민국 자치구 중 꼴찌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양산시 물금읍 전체도 아닌 범어리 단 1개의 인구가 부산 중구의 전체 인구수보다 더 많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이며 비록 면적은 매우 작았지만 설치 당시만 해도 인구가 12만을 넘을 정도로 과밀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교대상에 읍면동을 논해야 할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로 이 때문에 통폐합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자치구도 기초자치단체이므로 폐지가 극히 까다로운지라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가 적은 옆 동네 동구와 공유했었으나 20대 총선에서는 영도구와 선거구가 통합되었다.[2][3]

자연환경[편집]

북쪽에는 복병산이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서쪽으로는 보수천·동쪽으로는 영주천이 관내를 흘러 부산항으로 유입한다. 천혜의 양항인 부산항을 끼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해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복병산의 지맥인 용두산이 구의 중앙에 위치해 구를 동서로 나누고 있다. 과거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었으나 지금은 매축되어 시가지로 이용되고 있다.

대청동에는 복병산(伏兵山)이 있다. 대청동 1가 중심부에 위치하는 용두산과 함께 구릉성 산지이다. 엄광산과 구봉산의 내맥이 바다로 이어지면서 형성된 산지로 주변은 시가지화가 되어 있다. 지명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복병막을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복병막은 군사 잠복초소로서 초량왜관 안의 일본인들의 난동, 풍기 문란, 밀무역을 막기 위한 시설로서 1739년(영조 15)에 6개소가 설치되었다. 부산포 개항 후 1892년에 복병산 조차에 관한 협정으로 일본인 공동묘지로 이용되었다.

용두산(龍頭山)은 중구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구릉성 산지로 부산 시민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부산 제1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지명은 산의 모양이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건너보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부산항 일대와 주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용두산은 부산의 역사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동산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일본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던 초량왜관(粱理倭館)은 이 동산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1678~1876),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의 전관 거류지역이 되면서 용두산 일대가 거의 일본인 거리로 탈바꿈했다. 초량왜관 시절부터 1945년 8·15광복 때까지 일본신사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용두산은 본래 짙은 곰솔(해송)들이 짙은 삼림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송현산(松峴山)이라고 불렸다. 한편 영주동에는 해발 약 40m의 영선산이 있었다. 지금의 중부경찰서와 영주동 사이의 해안선에 따라 위치했던 2개의 독립 구릉으로 쌍악이라고도 불렸다. 1907년 부산포 매립에 필요한 석재를 공급하기 위해 이곳을 깎아내리는 착평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없어졌다. 이들 산지 사이로 형성된 고개로 영선 고개가 있었다. 영주동에 있는 지금의 부산터널 입구 삼거리~코모도호텔 앞~메리놀평원 앞~카톨릭센터 앞~대청로 국제시장 입구 사거리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있다. 이 고갯길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부산에서 처음으로 아스팔트로 포장해 일명 유엔고개라고도 했다.

관내를 흐르는 대표적인 도시 하천으로 보수천이 있다. 구덕산에서 발원해 대신동과 보수동을 거쳐 남항으로 유입한다. 이 하천 지명은 부산포가 개항되고 난 다음에 명명된 것으로 이전에는 법수천으로 불렀다. 법수라 함은 불교의 불법이라 뜻으로, 불법은 중생의 번뇌를 씻어 정결하게 한다는 것으로 물에 비유해 일컫는 것이다. 법수천 지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구덕산 기슭에 구덕사라는 오랜 절이 있어 이곳 구덕사의 승려들이나 그 불신 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개항 후 법수천의 ‘법(法)’을 ‘보(寶)’로 고쳐 보수천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의미는 법수와 동일하다.

남포동에 소재한 남포는 과거 부산시청이 있던 자리에서 보수천 하구를 지나 부산 공동어시장에 이르는 해안으로 남항의 해안에 해당된다. 본래 이 해안은 주먹만한 크기의 옥돌 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자갈 해안으로, 일제강점기 때 이곳이 매립되기 전가지만 해도 ‘자갈치’로 불리기도 했으며, 지금도 ‘남포’보다는 자갈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남포’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일본식 지명인 ‘남빈’에서 유래한다.

일제강점기 중 북빈 매축과 남빈 매축공사가 이루어졌다. 북빈 매축은 부산항이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은 1902년에 들어와 부산항을 근대적인 항만으로 조성하기 위해 일본 조차지 앞의 해안, 즉 용미산(지금의 부산 시청자리)~왜관 앞의 해안에 이르는 얕은 바다를 매축하게 되었으며, 이를 북빈 매축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북빈’(北濱)이라 함은 일본식 표기로써 용미산을 기점으로 북쪽의 해안(지금의 제1·2부두~부산시청까지의 해안)을 일컬으며 이에 대해 남쪽의 해안을 남빈이라 불렀다.

1898년 1월 한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매축허가를 얻어낸 부산 매축주식회사 부산지사는 1902년 7월 북빈 매축공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두 차례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제1기 공사는 1902년 7월에 착공해 1905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매축에 투입된 흙과 자갈은 영도와 복병산에서 조달되었다. 제2기 공사는 1907년 4월 착공해 1911년 8월 준공되었으며 그 결과 부산역 부지 일부와 그 남쪽 시가지인 지금의 부산시청에 이르는 중앙로 일대에 8700평의 해안이 매립되었다. 제2기 매축공사에 투입된 건축재료는 인근의 해발 40m의 영선산(또는 쌍악)을 깎아 낸 것으로 이른바 영선산 착평 공사에서 얻어진 돌과 흙이었다. 이 때문에 영선산 또는 쌍악이라 불리던 해발 40m의 독립구릉은 1911년 8월 이후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편 북빈 매축의 대역사가 끝나고 나자 1911년 8월 부산항 북항 일대 총 4만 1374평에 이르는 새로운 땅이 조성되었고 이때부터 새 마당으로 불리게 된 이 지역은 항만시설은 물론 부산항의 중추관리기능인 부산역·부산세관·부산우체국 등이 건설, 새로운 부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져 이곳은 당시 일본식 지명으로 새로운 시가지로 등장했다. 북빈 매축이 근대적인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제공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남빈 매축은 어업전진기지와 연안 무역의 항만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1926년에 매축 건설 설계가 완성되면서 1938년 2월에 이르기까지 약 12년간에 걸쳐 매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제1차로 1931년 5월 지금의 보수천 하구와 남포동 해안 공유수면이 매립되었다. 이어 1938년 2월에는 2차로 지금의 충무초등학교와 완월동 일대 공유수면 3만 4000평이 매축 완료되었다.

바다에 연해 있어 전형적인 온대 해양성 기후를 보여준다. 봄에는 이동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비가 자주 오며 여름철에는 온난 다습하다. 겨울철에는 비교적 온화해 기온의 연교차가 적다. 겨울철에 나타나는 저습 현상은 대륙성고기압과 함께 부산의 산악 분포에 기인한 소기후 현상이다. 연평균기온은 14.4℃로 1월에 가장 낮고, 8월에 가장 높다. 연평균강수량은 1491.6㎜이다.[4]

역사[편집]

삼한 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변한(弁韓)에 속하는 거칠산국(居漆山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가 이 지역을 병합한 뒤 거칠산군(居漆山郡)을 설치하고 대증현(大甑縣)과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지금의 기장군)을 속현(屬縣)으로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 거칠산군이 동래군(東萊郡)으로 개편되고 대증현은 동평현(東平縣)으로 개칭되어 동래군의 속현이 되었으며, 지금의 중구 지역은 동평현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 동래군은 동래현(東萊縣)으로 개편되어 울주(蔚州, 지금의 울산광역시와 부산광역시 대부분, 경남 양산시 일부)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동평현은 양주(梁州, 지금의 양산시)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양주(양산군)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은 1405년(태종 5) 동래현의 속현이 되었다가 1409년(태종 9) 다시 양주에 이속되었으며, 1428년(세종 10) 동래현의 속현으로 환원되었다. 1547년(명종 2) 동래현이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로 승격되었고, 동평현은 동평면이 되어 읍내면·동면·서면·남면·북면·사천면과 함께 동래부에 소속되었다. 1607년(선조 40) 지금의 동구 수정동에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이 설치되었다가 1678년(숙종 4) 지금의 중구 용두산공원 부근의 초량왜관(草梁倭館)으로 이전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동래부는 읍내면·동면·서면·북면·남촌면·동평면·사천면의 7개 면으로 편제되었는데, 사천면의 신초량리와 동평면의 해정리 일부가 지금의 중구에 해당한다.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 초량왜관 지역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어 대규모 매축 공사가 진행되면서 영역이 확장되었다. 1910년 국권피탈과 함께 동래부가 부산부(釜山府)로 개편되고 지금의 동광동2가에 부산부청(釜山府廳)이 설치되었으며,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동래 지역과 기장군이 동래군으로 병합되어 부산부에서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부에 속한 중구 지역의 행정구역은 변천정(弁天町)·본정(本町)·서정(西町)·행정(幸町)·북빈정(北濱町)·대청정(大廳町)·부평정(富平町)·남빈정(南濱町)·복전정(福田町)·보수정(寶水町)·영정(榮町) 등으로 편제되었으며, 이후 북빈정은 대창정(大倉町)·대교통(大橋通)으로 구분되었다.

8·15광복 후, 1947년 일본식 동명(洞名)을 고쳐 변천정은 광복동 1~3가로, 본정은 동광동 1~5가로, 서정은 신창동 1~4가로, 행정은 창선동 1~3가로, 대청정은 대청동 1~4가로, 부평정은 부평동 1~4가로, 남빈정은 남포동 1~3가로, 복전정은 복병동으로, 보수정은 보수동 1~3가로, 영정은 대창동 1~3가로, 대창정은 중앙동 1~4가로 개칭되었으며, 대체로 지금의 법정동으로 유지된다.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편되었고, 1951년 부산시에 중부출장소를 비롯한 6개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중부출장소는 14개 행정동을 관할하였으며, 1956년 부평 1~2동이 부평동으로, 신창동·창선동이 광복동으로 통합되는 등의 개편을 거쳐 10개 행정동으로 축소되었다.

1957년 구제(區制) 시행으로 중부 출장소가 중구로 승격되어 10개 행정동(광복동·남포동·대청동·동광동·보수 1~2동·부평동·영주 1~2동·중앙동)과 42개 법정동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1982년 법정동인 대교동 1~3가가 중앙동 5~7가로, 충무동 1~3가가 남포동 4~6가로 개칭되고 복병동은 대청동에 편입되어 41개 법정동으로 개편되었으며, 1999년에는 보수 1~2동이 보수동으로 통합되어 9개 행정동으로 개편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9행정동(광복동·남포동·대청동·동광동·보수동·부평동·영주 1~2동·중앙동) 41 법정동(광복동 1~3가·남포동 1~6가·대창동 1~2가·대청동 1~4가·동광동 1~5가·보수동 1~3가·부평동 1~4가·신창동 1~4가·영주동·중앙동 1~7가·창선동 1~2가)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중구 중앙동에 시중은행, 증권사, 각종 투자회사 등 금융시설들이 모여있다. 해운회사나 상선회사들도 중앙동에 주로 소재하고 있으며, 외국계 무역회사나 사무실들도 이곳에 밀집해 있어 외국인 비율도 원도심에서는 가장 높다. 연안여객부두가 이 지역에 있다.

신동아시장-자갈치시장-국제시장-부평시장으로 이어지는 전통시장이 많다.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선 후 회복된 남포동-광복동 상권 도소매업 종사자들도 상당수 된다. 향토백화점인 미화당과 유나백화점이 있었지만 1990년대 말에 모두 폐업하였다.

부산시 최대 프로젝트인 북항 재개발이 중구, 동구 일대에 진행중이다. 개발이 완공되면 낙후된 부산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1934년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일엽식 도개교(가동교)인 영도대교가 준공되어 육지와 영도를 연결하였고, 1980년 영도대교와 100m 간격으로 부산대교가 준공되었다. 주요 도로는 중앙 대로가 중앙동 7가를 기점으로 부산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경남 양산시까지 이어지고, 중앙동4가를 기점으로 하는 충장 대로가 동구를 거쳐 남구 문현동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남포동을 기점으로 서구를 거쳐 사상구 학장동까지 이어지는 보수대로, 서구 서대신동 2가를 기점으로 부산터널을 거쳐 중앙동4가로 이어지는 대영로를 비롯하여 망양로(서구 서대신동 3가~중구~부산진구 범천동)·구덕로(중앙동 7가~서구 동대신동 3가)·대교로(서구 서대신동 2가~중앙동 4가)·태종로(중앙동 7가~영도구 동삼동)·대청로(서구 부민동 1가~중앙동 5가)·중구로(남포동 6가~영주동)·흑교로(부평동 2가~서구 동대신동 1가)와 광복로·비프광장로·자갈치로 등이 중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1985년에 개통한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사하구의 다대포 해수욕장 역을 기점으로 중구의 자갈치역~남포역~중앙역을 거쳐 금정구의 노포역까지 운행한다. 해상 교통은 중앙동 4가에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운영하여 부산~제주 노선을 운항한다.

관광[편집]

2008년에 용두산과 자갈치시장 일대가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용두산·자갈치 관광특구는 부평동·광복동·남포동 전역과 중앙동·동광동·대청동·보수동 일부에 걸쳐 있어 중구 전체 면적의 40% 가까이 차지한다. 관광특구에는 부산의 상징적 명소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부산의 랜드 마크로 꼽히는 높이 120m의 부산타워에 올라 시가지 전경과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용두산공원, 국내에서는 유일한 일엽식 도개교(跳開橋)의 다리 한쪽이 들어 올려지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영도대교,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 무대로서 극장들이 즐비한 BIFF광장과 부산 출신 연예인 등을 주제로 조성된 엔터테이너 거리, 국내 첫 상설 야시장으로 개설되어 야간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부평깡통야시장,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란민들의 애환이 담긴 조형물 등으로 조성된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 8·15광복 후 헌책방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형성된 보수동책방골목, 의류·액세서리 등 패션 관련 상점 100여 개소가 밀집하여 부산의 패션 1번지로 꼽히는 광복로 문화 패션거리 등의 명소가 있다.

영주동의 부산민주공원은 4·19혁명과 부마 민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부산 시민의 민주화 노력을 표상하는 조형물과 전시 등을 통한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민주공원 북쪽에 자리한 중앙공원은 부산 출신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한 70m 높이의 충혼탑 등이 조성된 사적(史蹟) 테마 공원으로서 계절마다 수려한 경관과 함께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이밖에 가파른 언덕 계단길을 오르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된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이 관광명소가 되었으며,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산동네를 연결하는 산복도로를 통하여 영주 하늘눈 전망대와 '역사의 디오라마'로 이어진다. 영도동 하늘눈 전망대는 바다를 배경으로 신선대와 부산항대교·영도 봉래산·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등이 한눈에 조망되며,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역사의 디오라마 또한 해안가를 따라 펼쳐지는 부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조망 공간으로서 빼어난 야경을 자랑한다.

먹거리 명소로는 국제시장 먹자골목을 비롯하여 남포동의 자갈치 양곱창 골목, 부평동의 족발 거리·어묵 거리·곱창 거리 등이 있다. 둘레길은 부산의 시조(市鳥)인 갈매기와 길을 합성하여 명명한 갈맷길 9개 코스 21개 구간 가운데 동구의 부산진시장을 기점으로 중구의 백산기념관~용두산공원~부산근대역사관~국제시장~자갈치시장~영도대교를 거쳐 영도구의 남항대교에 이르는 3코스 제2구간(15.8㎞)이 중구에 속한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1992년 '부산 자갈치 축제'가 시작되어 매년 10월에 자갈치시장 일대에서 용신제·만선 제와 길놀이 퍼레이드 등의 문화예술 공연·전시를 비롯하여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수산물 깜짝 경매, 어린이 낚시터, 세계 최대 비빔밥 만들기 등의 체험 행사와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2004년에는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가 시작되어 매년 10월 중에 책방골목 일원에서 작가 초청 북콘서트, 고서·희귀본 전시, 책 속 주인공 코스프레, 영화 야외상영회, 축하 공연 및 버스킹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하여 광복로와 광복중앙로 일대에서 '광복로 연등문화제'가 열려 봉축탑을 비롯한 다양한 장엄등과 오색의 LED 연등으로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고,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는 용두산공원과 광복로 일원에서 '부산 크리스마스트리축제'가 열려 주제를 담은 특색 있는 트리 장식과 함께 다양한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이밖에 매년 5월에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조선 통신사 축제'가 열려 용두산공원과 광복로 일원에서 통신사 행렬 재현 등의 행사가 진행되고, 11월 초에는 영도대교 친수공간인 유라리광장에서 중·장·노년층과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영도다리 만남의 축제'가 열린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중구 (부산광역시)〉, 《위키백과》
  2. 중구 (부산광역시)〉, 《네이버 지식백과》
  3. 중구 (부산광역시)〉, 《나무위키》
  4. 중구 (부산광역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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