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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시'''<!--타이베이 시-->(중국어 정체자: 臺北市, 간체자: 台北市, {{발음|台北市}}, 한자음: 대북시) 또는 '''타이페이시'''(웨이드-자일스: T'ai-pei, 영어: Taipei)는 [[대만]]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중화민국]]의 [[수도 (도시)|수도]]이다. 이름 그대로 [[타이완섬]]의 북쪽, [[타이베이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항으로 지룽이 있다. [[신베이시]](신북시, 新北市)에 둘러싸여 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83%80%EC%9D%B4%EB%B2%A0%EC%9D%B4%EC%8B%9C 타이베이시]〉,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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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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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시는 [[중화민국]]의 실질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대만의 각종 정부 부처, 총통관저, 대기업 본사 등이 밀집된 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272km², 인구는 약 269만 명이며 타이완 도시 중 4위이며 인구밀도는 1위에 해당한다. 인구와 면적 모두 [[서울특별시]]의 절반이 채 안 되지만 타이베이를 둘러싼 신베이시와 근교 도시인 지룽시 등을 합친 '타이베이 대도시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면적 2457.13㎢, 인구는 약 690만명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도시]]이다. 또한, 대만 6대 [[직할시]] 중 하나로, 어느 성(省)에도 속하지 않는다. 본래 타이베이 인근은 전통적인 타이완 섬의 수위 도시가 아니었다. 타이완섬에 한족이 들어오기 전 네덜란드 통치 시기부터 [[타이완섬]]의 중심 도시는 타이베이가 아닌 남부에 위치한 [[타이난시]]였다. 동녕 왕국은 물론 청나라의 대만 통치도 타이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청나라의 대만 통치 이후 이 지역에도 한족이 정착하면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개발은 현재 타이베이시 완화(萬華)구 일대인 멍자(艋舺)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당시 타이완 섬에서 타이난, 루강(鹿港, 장화현)과 함께 '일부이록삼맹갑(一府二鹿三艋舺: 타이난, 루강, 멍자)'으로 불릴 정도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이후 아편전쟁으로 청나라의 개항이 이루어지고 일본이 오키나와를 완전히 자국령으로 편입함에 따라 타이완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청의 영토가 되었고, 청불전쟁 당시에는 프랑스가 현재의 타이베이 지역 근처를 공략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청나라에서는 대외 방어의 전초 기지로서 타이완섬의 역할에 주목해 타이완섬에 군사 시설을 갖추기로 하고 타이베이 지역에 타이베이성을 건축했다. 그리고 타이완섬을 복건성(푸젠 성) 관할에서 새로 설치한 대만성(타이완성) 관할로 하고 성도(省都)를 이곳에 두면서 타이베이는 공식적으로 타이완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당시 청나라의 근대화 정책과 맞물려 철도가 부설되고 전등이 설치되는 등 근대 도시로 발전해나갔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2001&cid=40942&categoryId=34068 타이베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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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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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영어 표기 Taipei의 영향을 받았는지 '타이페이'라는 표기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준 표기는 '타이베이'이다. 주음부호 표기는 ㄊㄞˊ ㄅㄟˇ, 한어병음 표기는 Táiběi이며, 웨이드-자일스 표기는 Tʻai²-pei³이다. 현지 약칭으로는 北市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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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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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섬 북부에 위치하며 신베이시가 타이베이시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타이베이시 자체는 타이베이 분지(臺北盆地)라는 분지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쉐산 산맥(雪山山脈)의 끝자락이, 북쪽으로는 화산인 양밍산(陽明山)이 지나간다. 타이베이 서쪽으로는 단수이 강(淡水河)을 따라 신베이시와 맞닿아 있으며, 지룽 강(基隆河)과 신뎬 천(新店溪)이 단수이 강에 합류한다. 지형으로만 보면 타이베이 북쪽의 베이터우·스린, 남쪽의 원산구는 산을 사이에 두고 타이베이 도심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대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동남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의 지류가 서쪽의 본류에 합류하는 것이 어느 정도 대구와 흡사하다. 대만 전역이 그렇듯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소속되어 지진이 종종 발생한다. 2016년에는 연해에서 5.8의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이 흔들리기도 하였다. 다만 건물이 흔들리는 데도 불구하고 호텔에서 아무런 방송이 나오지 않고, 시민들은 별 의식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서 이 정도의 지진은 자주 발생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수기를 적는 작성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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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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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는 18세기 이전까지는 고산족(케타갈란족)의 거주지였다. 1709년부터 주로 푸젠성의 한족이 타이베이 분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 타이베이 지역은 대만 북부의 한족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고 차 무역 등의 해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단수이는 해외 무역항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875년에 대만 북부는 타이완 부(臺灣府)로 분리되었다. 성내로 알려진 완화/만화(萬華)와 다다오청(大稻埕)은 번영하였고 행정 관청들이 이곳에 세워졌다. 1875년부터, 일본의 통치가 시작된 1895년까지 타이베이는 타이베이 부 단수이 현에 속했고 부청 소재지였다. 1886년에는 타이완성이 설치되었고 타이베이는 성도가 되었다. 1894년에 타이베이는 대만의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청나라 때의 옛 유적들은 주로 북문 주변에 남아있다. 서문과 성벽은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고 남문과 동문은 국민당에 의해 광범위하게 개발되어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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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의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일본으로 넘어간 후에 타이베이는 일본어로 다이호쿠라 불렸고 대만총독부의 정치적 중심 역할을 하였다.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에는 많은 새로운 관청과 공무원의 주택이 생겨났다. [[중화민국]] 총통부를 포함한 타이페이의 많은 건물들은 일본 점령기에 세워진 것이다. 일본 점령기에 타이베이는 완화, 다다오청 등을 포함하는 다이호쿠현의 일부가 되었다. 1938년에 동쪽의 마쓰야마(松山;쑹산)가 다이호쿠에 편입되었다.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결국 항복하면서 국민당이 대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타이완 성장의 임시 관청이 타이베이시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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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2월 7일에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 밀려 중국 본토에서 쫓겨났고 타이베이는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되었다(공식적인 수도는 난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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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는 1949년 이후 점차 확장하였고 1967년 7월 1일에 직할시가 되어 성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듬해에 타이베이는 다시 확장해 스린, 베이터우, 네이후, 난강, 징메이, 무자를 합병하였다. 이 때에 도시의 총면적은 주변의 진과 향을 합병해 4배로 늘어났고 인구는 156만 명으로 증가했다. 도시의 인구는 1960년대 초에 100만 명을 넘었고 1967년 이후 급격히 팽창해 1970년대 중반에 200만 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역 내의 인구 증가는 점차 둔화되었지만 타이베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이고 도시 주변 지역의 인구 증가는 계속되었다. 1990년에 타이베이의 16개 구는 현재의 12개 구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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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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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시는 온난 습윤 기후로 고온다습하다. 비가 자주 내리며, 겨울철에도 5월, 10월처럼 따뜻하다. 일교차도 작아 감기 걸릴 걱정은 덜할 듯 하다. 한국에서 2월말은 아직 겨울이지만 타이베이에서는 반팔을 입고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1년에 8개월 정도는 사실상 여름이라 보면 되며, 3월 말부터 11월 소설까지 여름이고 6월부터 장마가 오고 태풍이 많이 오고, 여름 내내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오며 시시때때로 비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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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여행 서적들을 보면 관광하기 좋은 시기는 10월 말~ 11월이다. 이 시기는 서울의 연평균기온과 대응해보면 한여름의 더위가 가시고 가을로 넘어가려는 8월말에서 9월 날씨와 비슷하다. 물론 한국이 겨울철인 12~3월도 온도만 따지면 한국의 가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괜찮지만, 이 때는 옆동네 대륙에서 몰려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극심하다. 반면 10-11월의 대만은 동남풍이 불어오는 시기라 공기가 깨끗하다. 또한 대만은 저위도로 동풍이 더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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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한 곳으로, 도시 지역인데다가 분지지형이기 때문에 여름에 온도가 매우 높다. 가장 더운 달인 7월 평균 기온은 30.1℃로 사막기후 지역인 카이로(28.2℃)나 카라치(28.5℃) 같은 곳보다도 높다. 실제 예로 2016년 7월의 타이베이 날씨를 보면 7월 한 달 동안 낮기온 35℃가 넘어가는 날이 27일에, 열대야 일수가 29일에 달하는 등 매우 높은 기온이 기록되었다. 게다가 타이베이는 습도마저 높은 곳이다. 그렇지만 2020~2021년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와서 기우제까지 지내고 있다.링크 2020년에 대만에 상륙한 태풍이 없으며 2021년에도 강수량이 적은게 원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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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는 대략 15도 정도로 비교적 따뜻한 날씨인 것은 맞지만 분지지형에다가 바다와 인접하여 습도가 높은 특성까지 겹쳐서 체감온도는 상당히 낮다. 대만의 따뜻한 날씨만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는 여행객들도 많지만 이 곳에 사는 한국 교민들도 타이베이 겨울 날씨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11월말부터 2월초까지는 특히 실내에서 보온할 만한 옷이 필요하며 교민들은 아예 한국에서 전기장판을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다.<ref>〈[https://namu.wiki/w/%ED%83%80%EC%9D%B4%EB%B2%A0%EC%9D%B4%EC%8B%9C?from=%ED%83%80%EC%9D%B4%EB%B2%A0%EC%9D%B4 타이베이시]〉, 《나무위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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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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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수도로서 타이베이는 급격한 경제 개발의 중심지이고 현재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국제적인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타이완의 기적'의 일부로서 타이베이는 1960년대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아시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매년 5%의 성장을 하였고 사실상의 완전 고용을 이루었으며 물가상승률도 낮다. 2007년에 타이베이의 명목 GDP는 약 1600억 달러이고 타이페이 도시권의 GDP는 2600억 달러로 세계에서 13위를 기록하였다. 타이베이의 1인당 GDP는 48,400달러로 도쿄(65,453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주변의 도시 및 진과 향을 합치면 1인당 GDP는 25000달러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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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와 그 주변 지역은 오랫동안 대만의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으뜸가는 공업 지대였다. 중화민국의 섬유와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의 대부분이 이곳에 위치해있다. 그 밖의 산업으로 전자제품과 부품, 기계 장비와 유인물, 정밀 설비와 식료품을 생산한다. 조선업으로 요트와 유람선이 도시 북동쪽의 지룽에서 완성된다. 상업, 운송, 은행업 등의 서비스업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관광업은 그 비중은 작지만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고 2008년의 해외 방문객 수는 약 300만 명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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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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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 있는 대부분의 관광명소는 타이베이 첩운으로 대표되는 편리한 교통망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명소는 야시장이다. 2007년 대만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1위는 놀랍게도 유적지나 관광명소가 아닌 야시장이었다. 연평균 20°C가 넘는 기후 탓에 야시장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현지 생활문화가 멋진 관광상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타이페이에는 대만 최대규모의 스린 야시장을 비롯해 중형규모의 화시제 야시장, 라오허제 관광 야시장 등의 명물 야시장이 있다. 타이베이에는 101빌딩이나 신꽝미쯔고시 백화점 등 규모 있는 쇼핑몰이 많다. 그리고, 융캉제나 중산역 근처 등에는 작은 부티크나 트렌디한 디자인숍 등이 타이베이 골목골목에 많이 숨어 있다. 그 외에도 용산사, 시먼띵, 중정기념당, 국립고궁박물원, 베이터우 온천, 타이베이 101 등지도 인기있는 관광 명소이다. 타이베이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대체로 인근 신베이시의 관광지인 진과스, 단수이, 지우펀 등지도 여행 일정에 포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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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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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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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2월 26일 타오위안시 다위안구에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완공되기 전에는 타이베이 쑹산 공항이 국제공항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재 쑹산 공항은 대만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운영되고 있고, 일부 국제선이 셔틀노선으로 개설되어 있다. 2017년 3월 2일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과 타이베이역을 잇는 타오위안 국제공항 첩운이 개통되어서 타이베이 시내에서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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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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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타이베이와 가오슝간에 대만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운행중이다. 타이베이의 지하철인 타이베이 첩운(지하철)은 중국어와 영어로 쓰여진 잘 정돈된 표지판을 갖추고 있어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종관선 역은 난강역, 쑹산역, 타이베이역, 완화역이 있으며 지하화 공사가 끝나 모두 지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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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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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시 중심부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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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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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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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wikipedia.org/wiki/%ED%83%80%EC%9D%B4%EB%B2%A0%EC%9D%B4%EC%8B%9C 타이베이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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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w/%ED%83%80%EC%9D%B4%EB%B2%A0%EC%9D%B4%EC%8B%9C?from=%ED%83%80%EC%9D%B4%EB%B2%A0%EC%9D%B4 타이베이시]〉,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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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2001&cid=40942&categoryId=34068 타이베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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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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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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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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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도시)|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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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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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베이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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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베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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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같이 보기}}
  
{{정부|토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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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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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행정구역}}

2024년 11월 14일 (목) 09:22 기준 최신판

타이베이시 기
타이베이시 위치

타이베이시(중국어 정체자: 臺北市, 간체자: 台北市, tái běi shì, 한자음: 대북시) 또는 타이페이시(웨이드-자일스: T'ai-pei, 영어: Taipei)는 대만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중화민국수도이다. 이름 그대로 타이완섬의 북쪽, 타이베이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항으로 지룽이 있다. 신베이시(신북시, 新北市)에 둘러싸여 있다.[1]

개요[편집]

타이베이시는 중화민국의 실질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대만의 각종 정부 부처, 총통관저, 대기업 본사 등이 밀집된 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272km², 인구는 약 269만 명이며 타이완 도시 중 4위이며 인구밀도는 1위에 해당한다. 인구와 면적 모두 서울특별시의 절반이 채 안 되지만 타이베이를 둘러싼 신베이시와 근교 도시인 지룽시 등을 합친 '타이베이 대도시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면적 2457.13㎢, 인구는 약 690만명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도시이다. 또한, 대만 6대 직할시 중 하나로, 어느 성(省)에도 속하지 않는다. 본래 타이베이 인근은 전통적인 타이완 섬의 수위 도시가 아니었다. 타이완섬에 한족이 들어오기 전 네덜란드 통치 시기부터 타이완섬의 중심 도시는 타이베이가 아닌 남부에 위치한 타이난시였다. 동녕 왕국은 물론 청나라의 대만 통치도 타이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청나라의 대만 통치 이후 이 지역에도 한족이 정착하면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개발은 현재 타이베이시 완화(萬華)구 일대인 멍자(艋舺)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당시 타이완 섬에서 타이난, 루강(鹿港, 장화현)과 함께 '일부이록삼맹갑(一府二鹿三艋舺: 타이난, 루강, 멍자)'으로 불릴 정도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이후 아편전쟁으로 청나라의 개항이 이루어지고 일본이 오키나와를 완전히 자국령으로 편입함에 따라 타이완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청의 영토가 되었고, 청불전쟁 당시에는 프랑스가 현재의 타이베이 지역 근처를 공략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청나라에서는 대외 방어의 전초 기지로서 타이완섬의 역할에 주목해 타이완섬에 군사 시설을 갖추기로 하고 타이베이 지역에 타이베이성을 건축했다. 그리고 타이완섬을 복건성(푸젠 성) 관할에서 새로 설치한 대만성(타이완성) 관할로 하고 성도(省都)를 이곳에 두면서 타이베이는 공식적으로 타이완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당시 청나라의 근대화 정책과 맞물려 철도가 부설되고 전등이 설치되는 등 근대 도시로 발전해나갔다.[2]

어원[편집]

한국에서는 영어 표기 Taipei의 영향을 받았는지 '타이페이'라는 표기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준 표기는 '타이베이'이다. 주음부호 표기는 ㄊㄞˊ ㄅㄟˇ, 한어병음 표기는 Táiběi이며, 웨이드-자일스 표기는 Tʻai²-pei³이다. 현지 약칭으로는 北市라고도 한다.

지리[편집]

타이완섬 북부에 위치하며 신베이시가 타이베이시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타이베이시 자체는 타이베이 분지(臺北盆地)라는 분지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쉐산 산맥(雪山山脈)의 끝자락이, 북쪽으로는 화산인 양밍산(陽明山)이 지나간다. 타이베이 서쪽으로는 단수이 강(淡水河)을 따라 신베이시와 맞닿아 있으며, 지룽 강(基隆河)과 신뎬 천(新店溪)이 단수이 강에 합류한다. 지형으로만 보면 타이베이 북쪽의 베이터우·스린, 남쪽의 원산구는 산을 사이에 두고 타이베이 도심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 대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동남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의 지류가 서쪽의 본류에 합류하는 것이 어느 정도 대구와 흡사하다. 대만 전역이 그렇듯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소속되어 지진이 종종 발생한다. 2016년에는 연해에서 5.8의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이 흔들리기도 하였다. 다만 건물이 흔들리는 데도 불구하고 호텔에서 아무런 방송이 나오지 않고, 시민들은 별 의식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서 이 정도의 지진은 자주 발생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수기를 적는 작성자도 있다.

역사[편집]

타이베이는 18세기 이전까지는 고산족(케타갈란족)의 거주지였다. 1709년부터 주로 푸젠성의 한족이 타이베이 분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 타이베이 지역은 대만 북부의 한족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고 차 무역 등의 해외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단수이는 해외 무역항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875년에 대만 북부는 타이완 부(臺灣府)로 분리되었다. 성내로 알려진 완화/만화(萬華)와 다다오청(大稻埕)은 번영하였고 행정 관청들이 이곳에 세워졌다. 1875년부터, 일본의 통치가 시작된 1895년까지 타이베이는 타이베이 부 단수이 현에 속했고 부청 소재지였다. 1886년에는 타이완성이 설치되었고 타이베이는 성도가 되었다. 1894년에 타이베이는 대만의 공식적인 수도가 되었다. 청나라 때의 옛 유적들은 주로 북문 주변에 남아있다. 서문과 성벽은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고 남문과 동문은 국민당에 의해 광범위하게 개발되어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1895년의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일본으로 넘어간 후에 타이베이는 일본어로 다이호쿠라 불렸고 대만총독부의 정치적 중심 역할을 하였다.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에는 많은 새로운 관청과 공무원의 주택이 생겨났다. 중화민국 총통부를 포함한 타이페이의 많은 건물들은 일본 점령기에 세워진 것이다. 일본 점령기에 타이베이는 완화, 다다오청 등을 포함하는 다이호쿠현의 일부가 되었다. 1938년에 동쪽의 마쓰야마(松山;쑹산)가 다이호쿠에 편입되었다.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결국 항복하면서 국민당이 대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타이완 성장의 임시 관청이 타이베이시에 세워졌다.

1949년 12월 7일에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 밀려 중국 본토에서 쫓겨났고 타이베이는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되었다(공식적인 수도는 난징이다).

타이베이는 1949년 이후 점차 확장하였고 1967년 7월 1일에 직할시가 되어 성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듬해에 타이베이는 다시 확장해 스린, 베이터우, 네이후, 난강, 징메이, 무자를 합병하였다. 이 때에 도시의 총면적은 주변의 진과 향을 합병해 4배로 늘어났고 인구는 156만 명으로 증가했다. 도시의 인구는 1960년대 초에 100만 명을 넘었고 1967년 이후 급격히 팽창해 1970년대 중반에 200만 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역 내의 인구 증가는 점차 둔화되었지만 타이베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이고 도시 주변 지역의 인구 증가는 계속되었다. 1990년에 타이베이의 16개 구는 현재의 12개 구로 통합되었다.

기후[편집]

타이베이시는 온난 습윤 기후로 고온다습하다. 비가 자주 내리며, 겨울철에도 5월, 10월처럼 따뜻하다. 일교차도 작아 감기 걸릴 걱정은 덜할 듯 하다. 한국에서 2월말은 아직 겨울이지만 타이베이에서는 반팔을 입고다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1년에 8개월 정도는 사실상 여름이라 보면 되며, 3월 말부터 11월 소설까지 여름이고 6월부터 장마가 오고 태풍이 많이 오고, 여름 내내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오며 시시때때로 비가 쏟아진다.

대만 여행 서적들을 보면 관광하기 좋은 시기는 10월 말~ 11월이다. 이 시기는 서울의 연평균기온과 대응해보면 한여름의 더위가 가시고 가을로 넘어가려는 8월말에서 9월 날씨와 비슷하다. 물론 한국이 겨울철인 12~3월도 온도만 따지면 한국의 가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돌아다니기 괜찮지만, 이 때는 옆동네 대륙에서 몰려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극심하다. 반면 10-11월의 대만은 동남풍이 불어오는 시기라 공기가 깨끗하다. 또한 대만은 저위도로 동풍이 더 잦다.

대만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한 곳으로, 도시 지역인데다가 분지지형이기 때문에 여름에 온도가 매우 높다. 가장 더운 달인 7월 평균 기온은 30.1℃로 사막기후 지역인 카이로(28.2℃)나 카라치(28.5℃) 같은 곳보다도 높다. 실제 예로 2016년 7월의 타이베이 날씨를 보면 7월 한 달 동안 낮기온 35℃가 넘어가는 날이 27일에, 열대야 일수가 29일에 달하는 등 매우 높은 기온이 기록되었다. 게다가 타이베이는 습도마저 높은 곳이다. 그렇지만 2020~2021년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와서 기우제까지 지내고 있다.링크 2020년에 대만에 상륙한 태풍이 없으며 2021년에도 강수량이 적은게 원인으로 보인다.

겨울철에는 대략 15도 정도로 비교적 따뜻한 날씨인 것은 맞지만 분지지형에다가 바다와 인접하여 습도가 높은 특성까지 겹쳐서 체감온도는 상당히 낮다. 대만의 따뜻한 날씨만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는 여행객들도 많지만 이 곳에 사는 한국 교민들도 타이베이 겨울 날씨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11월말부터 2월초까지는 특히 실내에서 보온할 만한 옷이 필요하며 교민들은 아예 한국에서 전기장판을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다.[3]

경제[편집]

대만의 수도로서 타이베이는 급격한 경제 개발의 중심지이고 현재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국제적인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타이완의 기적'의 일부로서 타이베이는 1960년대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 아시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매년 5%의 성장을 하였고 사실상의 완전 고용을 이루었으며 물가상승률도 낮다. 2007년에 타이베이의 명목 GDP는 약 1600억 달러이고 타이페이 도시권의 GDP는 2600억 달러로 세계에서 13위를 기록하였다. 타이베이의 1인당 GDP는 48,400달러로 도쿄(65,453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주변의 도시 및 진과 향을 합치면 1인당 GDP는 25000달러로 떨어진다.

타이베이와 그 주변 지역은 오랫동안 대만의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으뜸가는 공업 지대였다. 중화민국의 섬유와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의 대부분이 이곳에 위치해있다. 그 밖의 산업으로 전자제품과 부품, 기계 장비와 유인물, 정밀 설비와 식료품을 생산한다. 조선업으로 요트와 유람선이 도시 북동쪽의 지룽에서 완성된다. 상업, 운송, 은행업 등의 서비스업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관광업은 그 비중은 작지만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고 2008년의 해외 방문객 수는 약 300만 명 정도였다.

관광[편집]

타이베이에 있는 대부분의 관광명소는 타이베이 첩운으로 대표되는 편리한 교통망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명소는 야시장이다. 2007년 대만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1위는 놀랍게도 유적지나 관광명소가 아닌 야시장이었다. 연평균 20°C가 넘는 기후 탓에 야시장이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현지 생활문화가 멋진 관광상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타이페이에는 대만 최대규모의 스린 야시장을 비롯해 중형규모의 화시제 야시장, 라오허제 관광 야시장 등의 명물 야시장이 있다. 타이베이에는 101빌딩이나 신꽝미쯔고시 백화점 등 규모 있는 쇼핑몰이 많다. 그리고, 융캉제나 중산역 근처 등에는 작은 부티크나 트렌디한 디자인숍 등이 타이베이 골목골목에 많이 숨어 있다. 그 외에도 용산사, 시먼띵, 중정기념당, 국립고궁박물원, 베이터우 온천, 타이베이 101 등지도 인기있는 관광 명소이다. 타이베이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대체로 인근 신베이시의 관광지인 진과스, 단수이, 지우펀 등지도 여행 일정에 포함하기도 한다.

교통[편집]

공항 교통[편집]

1979년 2월 26일 타오위안시 다위안구에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완공되기 전에는 타이베이 쑹산 공항이 국제공항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재 쑹산 공항은 대만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운영되고 있고, 일부 국제선이 셔틀노선으로 개설되어 있다. 2017년 3월 2일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과 타이베이역을 잇는 타오위안 국제공항 첩운이 개통되어서 타이베이 시내에서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철도 교통[편집]

2007년 타이베이와 가오슝간에 대만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운행중이다. 타이베이의 지하철인 타이베이 첩운(지하철)은 중국어와 영어로 쓰여진 잘 정돈된 표지판을 갖추고 있어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종관선 역은 난강역, 쑹산역, 타이베이역, 완화역이 있으며 지하화 공사가 끝나 모두 지하역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타이베이시〉, 《위키백과》
  2. 타이베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타이베이시〉,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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