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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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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헝가리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 위치

부다페스트(헝가리어: Budapest, 문화어: 부다뻬슈뜨)는 헝가리수도이자 정치, 산업,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다. 인구는 약 175만 명이며 1980년대 중반의 207만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현재 중앙유럽 최대의 도시이며 부다페스트 대도시권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대도시권 인구는 약 330만 명으로 헝가리 인구의 33%를 차지한다. 부다페스트는 역사적 전통이 남아있는 부다의 사적들과 장려한 의사당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다.[1]

개요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다뉴브강 양안에 걸쳐 있다. 1873년에 다뉴브강 서편의 부더(Buda)와 오부더('Cổ부더'; Óbuda), 동편의 페슈트(Pest)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따라서, 부다와 페스트의 두 지역으로 대별된다. 부더에는 왕궁과 관청가, 귀족 등 지배층이 살았고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살았다. 페슈트는 '도자기 굽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부더와 페스트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서로 경치가 다르다. 역사적 전통이 남아 있는 부다의 사적들과 장려한 의사당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도 유명하다. 도시 중심에 다뉴브강이 흐르고 있어 "다뉴브의 진주", "다뉴브의 장미"라고 불린다. 구릉지대인 부더는 기복이 심하고 녹음이 우거져 있다. 다뉴브강과 이어지는 언덕에는 변화의 역사를 겪어온 왕궁이 장엄하게 서있고, 서쪽에는 야노슈 산이 우뚝 서있다. 그 산자락에 한적한 주택가가 펼쳐지며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양안의 지구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다리가 세체니 다리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 주변 지역이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헝가리국회의사당, 부더성, 어부의 요새, 세체니다리, 마차시성당, 자유상, 언드라시거리, 성이슈트반성당, 영웅광장, 밀레니움지하철 등 수많은 명소가 있으며 223개에 이르는 박물관, 미술관과 오페라하우스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밖에 세체니온천을 비롯한 여러 온천과 도시공원, 인민공원, 머르기트섬 등 많은 공원이 있다. 부다페스트는 관광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매년 44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부다페스트를 방문한다.[2]

지리 및 기후

카르파티아분지의 중앙에 자리한 부다페스트는 트랜스다뉴브산맥과 대평원을 연결하는 고대의 길 위에 있다. 오스트리아 남동쪽으로 216km 떨어져 있고 바르샤바 남쪽으로 545km, 모스크바 남서쪽으로 1,565km, 아테네 북쪽으로 1,122km, 밀라노 북동쪽으로 788km, 프라하 남동쪽으로 443km 떨어져 있다. 부다페스트는 중부 헝가리에 있으며 페슈트주의 여러 소도시에 둘러싸여 있다. 부다페스트는 남북으로 25km, 동서로 29km 뻗어 있다.

다뉴브강이 북쪽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다. 다뉴브강에는 오부더섬과 머르기트섬, 체펠섬 등 세 개의 하중도(河中島)가 있다. 체펠섬이 가장 크다. 체펠섬의 북쪽 끝부분만 부다페스트시 영역에 속한다. 부다페스트를 두 지역으로 나누는 다뉴브강은 제일 좁은 부분이 폭 230m이다. 동쪽의 페슈트는 대평원의 평평한 지역에 위치하고 서쪽의 부더에는 산이 많다. 부다페스트는 지형적으로 대비된다. 부더는 서쪽의 하안단구와 언덕에 건설되었고 페슈트는 다뉴브강 반대편의 평평한 평원에 펼쳐져 있다. 페슈트의 지형은 동쪽으로 서서히 높아지는 지형을 이루고 있고, 그 가장 높은 곳이 부더에서 가장 낮은 산인 겔레르트언덕과 캐슬언덕의 고도와 같다.

부다페스트는 유럽의 주요 도로철도가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이다. 다뉴브강은 중요한 수로였고 지금도 중요하다. 카르파티아분지의 중앙에 있는 이 지역은 교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부다페스트는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불가리아의 소피아와 함께 세계에서 온천이 있는 수도 세 곳 중 하나이다. 125개의 온천이 매일 7천만 리터의 온천수를 뿜으며 온천수의 온도는 58°C에 이른다. 이들 온천수 중 일부는 의학적으로 가치 있는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약효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다페스트는 습윤한 대륙성기후를 보이고 있다. 겨울은 11월부터 3월 초까지로 춥고 햇빛이 적다. 겨울에 눈은 자주 오는 편이고 12월 중순에서 2월 중순까지 밤 기온이 영하 10°C 이하인 날이 드물지 않다. 3월부터 4월까지 봄은 평균 기온이 급상승하는 등 날씨 변동이 심하다. 3월 말과 4월의 날씨는 낮에는 기분이 좋고 밤에는 상쾌하다. 부다페스트의 여름은 5월부터 9월 중순까지로 덥고 특히 5월과 6월에는 갑작스런 집중호우가 종종 쏟아진다. 가을은 9월 중순부터 늦은 10월까지로 비가 적고 온화한 기온에 화창한 날이 많다. 늦은 10월이나 이른 11월에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다. 부다페스트의 연평균 강수량은 596.9mm이고 평균 비 오는 날은 84일이다. 매년 해가 비치는 시간은 평균 1,988시간이다.[3]

역사

부다페스트의 기록된 역사는 서기 89년경에 건설된 로마제국의 아쿠인쿰(Aquincum) 성에서 시작된다. 이 성은 훗날의 오부더의 터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았던 켈트족의 거주지역에 세워졌으며 106년부터 4세기 말까지는 로마제국의 저(低) 판노니아(Lower Pannonia) 주의 주도였다. 훗날의 페슈트 자리에는 '아쿠인쿰 반대편'의 뜻인 콘트라 아쿠인쿰(Contra Aquincum)이 세워졌다. 처음에는 군사도시였으나 점차 주변에 도시가 생겼다. 아쿠인쿰은 오늘날 부다페스트 내의 오부더 구역, 즉 3구에 해당한다. 로마인들은 이 요새화된 군대 주둔지 안에 도로와 원형극장, 목욕탕과 온돌 있는 집들을 지었다. 로마인들의 도시 아쿠인쿰은 헝가리에 있는 로마 유적 가운데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고고학적 유적지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900년경 이 지역에는 오늘날 헝가리인들의 조상인 마자르(Magyar)인들이 아르파드의 인솔하에 들어왔다. 이들은 판노니아와 도시를 점령하고, 1세기 후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이때 이미 중요한 성이었던 페슈트는 1241년 몽골제국의 바투가 이끄는 정서군(征西軍)의 침략을 받았다. 벨라 4세의 통치 하에, 곧 피해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1247년부터 왕궁 소재지였던 부더가 페슈트를 대체하였다.

연구자들은 아르파드가 살았던 곳을 부다페스트 부근의 중앙 권력의 초기 장소로 본다. 13세기에 타타르족의 침입은 평지를 방어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입증했다. 헝가리의 벨러 4세는 도시 둘레에 돌로 성벽을 강화하도록 명령했고 부더의 언덕 꼭대기에 자기 자신의 왕궁을 쌓았다. 1361년에 이곳이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

부더의 문화적 역할은 마티아시 1세 지배 시기에 특히 중요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이 도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서관인 비블리오테카코르비니아나는 15세기에 유럽에서 역사 연대기, 철학과 과학 분야의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했고 크기에서는 바티칸도서관 다음이었다. 1367년에 페치에 헝가리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후 1395년에 오부더에 두 번째 대학이 설립되었다. 최초의 헝가리어 책이 1473년에 인쇄되었다. 부더는 1500년 무렵 주민이 약 5,000명이었다.

오스만인들이 1526년과 1529년 부더를 침략했고 마침내 1541년에 부더를 점령했다. 투르크의 지배는 150년 이상 계속되었다. 오스만투르크는 도시 안에 많은 훌륭한 목욕 시설을 만들었다. 투르크인들이 만든 목욕 시설 중 일부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1547년까지 기독교인의 수는 약 1,000명으로 줄어들었고 1647년에는 약 70명으로 떨어졌다. 점령되지 않은 서부 지역은 합스부르크군주국에 속했다. 기독교 연합군인 신성동맹군은 1686년 실패로 끝난 부더 포위 2년 뒤에 헝가리 수도로 진입하기 위한 새로운 작전을 개시했다. 신성동맹의 군 병력은 두 배로 늘어나 7만 4,000명에 달했다. 독일과 크로아티아, 네덜란드, 헝가리, 영국, 스페인,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부르고뉴, 덴마크, 스웨덴의 군인들이 참가했으며 다른 유럽인들도 자원자로서 동참했다.

기독교 군대는 부더를 포위했고 그 후 몇 년 동안 테메슈바르(티미쇼아라)를 제외한 이전 헝가리 땅 모두를 투르크로부터 빼앗았다. 1699년 카를로비츠조약에서 이러한 영토 변경을 공식적으로 승인받아 투르크 지배를 종식시켰고 1718년에 헝가리 왕국 전부가 오스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9세기는 헝가리의 독립 투쟁과 근대화의 시기였다. 합스부르크에 대한 민족적인 항거는 1848년 헝가리 수도에서 시작됐고 1년 반 뒤에 러시아제국이 개입하여 패하고 말았다. 1867년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탄생을 가져온 타협의 해였다. 이로써 부다페스트는 이중제국의 쌍둥이 수도가 되었다. 이 타협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까지 부다페스트 역사에서 두 번째 위대한 발전이 시작되었다.

1849년 부더와 페슈트를 이어주는 세체니 다리가 다뉴브강 위의 첫 번째 다리로 개통되었다. 1873년에 부더와 페슈트는 오부더(옛 부더)와 함께 공식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었고 새로운 대도시 부다페스트가 탄생했다. 역동적인 페슈트는 나라의 행정, 정치, 경제, 상업, 문화의 허브로 성장했다.

19세기 후반에 인구가 과밀한 농촌 트란스다뉴비아와 대헝가리아 평원으로부터 헝가리인들이 대규모로 부다페스트로 이주해 오면서 도시의 인구구성에서 독일인을 능가했다. 1851년과 1910년 사이에 헝가리인의 비율은 35.6%에서 85.9%로 뛰어올랐고 헝가리어가 지배적인 언어가 되었으며 독일어는 밀려났다. 유대인의 비율은 1900년에 23.6%로 가장 높았다. 20세기 초 부다페스트에는 대규모 유대인공동체가 있어서 부다페스트는 흔히 '유대의 메카' 또는 '유다페스트'라고 불렸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전쟁에서 져서 패망했고 헝가리는 독립 공화국(헝가리공화국)을 선언했다. 1920년 트리아논조약으로 헝가리는 영토가 분할되었다. 그 결과 헝가리는 국토와 국민의 3분의 2를 잃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년 전에 부다페스트는 영국미국의 공습으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부다페스트는 1944년 12월 24일부터 1945년 2월 13일까지 부다페스트전투 기간 중에 포위되었다. 부다페스트는 공격하는 소비에트-루마니아 연합군과 방어하는 독일-헝가리군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3만 8,000명 이상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모든 다리는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852년 이래 세체니 다리를 장식해온 돌사자상은 전쟁의 참화에서 살아남았다.

1944년부터 1945년 초까지 독일의 헝가리 점령기간 중에 대부다페스트의 25만 명 유대인 거주민 중에서 20~40%가 나치에 의해 죽었다. 스위스 외교관 카를 루츠는 스위스가 보호하는 증서를 발행함으로써 수만 명의 유대인을 구출했다. 버다스거리 29번지에 있는 지금은 유명해진 유리집을 포함해서 많은 건물을 스위스의 보호를 받는 영토로 지정하였다. 약 3천 명의 헝가리 유대인이 유리집과 근처의 건물에서 피신했다.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부다페스트에 있는 수만 명의 유대인에게 스웨덴 보호 증서를 교부하여 그의 영사 보호 아래 데려옴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했다.

발렌베리는 1945년 1월 17일에 소련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다시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이탈리아 시민인 조르지오 페를라스카는 스페인 외교관 행세를 하며 수천 명의 헝가리 유대인을 구했다. 부다페스트에는 발렌베리를 기리는 두 개의 기념물과 카를 루츠의 기념물 하나, 조리지오 페를라스카의 기념물 하나가 있다.

헝가리 해방 후에 소련군의 점령이 이어졌다. 이는 1991년에야 끝이 났다. 소련의 영향권 아래 1949년 헝가리에 공산주의인민공화국(헝가리민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새로운 공산주의 정부는 부더성 같은 옛 건물을 이전 정권의 상징으로 간주했고 1950년대에 왕궁을 철거하고 내부를 파괴했다.

1956년 10월 23일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데모대는 부다페스트 라디오방송국으로 가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방송하라고 요구했다. 정권은 군대에 발포 명령을 내렸다. 헝가리 군인들은 총을 시위대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1956년 헝가리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시위대는 임레 너지를 헝가리수상으로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놀랍게도 '헝가리노동자당'의 중앙위원회는 당일 저녁에 임레 너지를 헝가리수상으로 임명했다. 이 봉기는 10월 23일부터 11월 11일까지 계속된 반소봉기였다. 너지가 헝가리는 바르샤바조약을 탈퇴하고 중립국이 된다고 선언한 후에 소비에트 탱크와 장갑차가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헝가리에 진입했다. 전투는 11월 중순까지 계속되었고 3000명 이상이 죽었다. 2006년 봉기 50주년을 맞아 1956년의 봉기를 기리는 기념물이 시민공원 끝에 세워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헝가리는 풍자적으로 동유럽권 국가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일컬어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입은 피해는 상당수 복구되었다. 에르제베트다리 보수는 1964년에 끝이 났다. 1970년대에 부다페스트 지하철의 동서 M2노선이 처음 개통되었고 뒤이어 1976년에 M3노선이 개통되었다. 1987년에 부더성과 다뉴브 강변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밀레니엄지하철, 회쇠크테레, 바로슐리게트를 포함한 언드라시대로가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980년대에 부다페스트의 인구는 210만 명에 달했다. 최근에 페슈트주에 있는 도시로 대량 이주가 일어나 인구가 뚜렷하게 감소했다.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1989~1990년의 정치적 변화(철의 장막 붕괴)가 부다페스트 거리 풍경의 변화를 낳았다. 독재의 상징물이 공공 장소에서 제거되었고 조각 공원으로 변했다. 새로운 민주주의 20년 동안 부다페스트의 발전은 가보르 뎀스키 부다페스트 시장이 이끌었다.[4]

경제

부다페스트는 국가 수입의 39%를 담당한다. 헝가리 경제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총생산은 2015년에 1천억 달러를 넘어 유럽연합의 지역경제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다. 유럽연합통계청에 따르면 구매력평가에서 부다페스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7,632유로로 유럽연합 평균의 147%였다. 부다페스트는 전세계 상업중심지 지수에서 세계에서 52번째로 중요한 상업중심지로 꼽혀 베이징, 상파울루, 선전 등보다 앞섰다. UBS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서는 48번째 도시에 올라 프라하, 상하이, 쿠알라룸푸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앞선다. EIU가 매기는 도시 경쟁력 평가에서 부다페스트는 텔아비브, 모스크바, 요하네스버그 등에 앞섰다.

부다페스트는 금융, 부동산, 소매, 무역, 교통, 관광, 뉴미디어, 전통 미디어, 광고, 법률서비스, 회계, 보험, 패션, 예술 등의 중심지이다. 부다페스트에는 거의 모든 국립기관이 있을 뿐 아니라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몰려 있다. 2014년에 부다페스트에 등록된 회사는 모두 39만 5,804개였다. 이들 대부분 회사는 부다페스트의 중앙비즈니스구역인 5구와 13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부다페스트와 페슈트주의 소매시장도 또한 시내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웨스트엔드시티센터와 아레나플라자는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이다.

부다페스트는 스타트업의 허브로서도 뚜렷한 혁신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많은 스타트업이 부다페스트를 근거지로 하여 사업을 한다. 특히 프레지, 로그멜른, NNG 같은 스타트업회사들은 주목할 만하다. 부다페스트는 혁신도시 톱 100 조사에서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가장 상위의 도시로 꼽혔다. 부다페스트의 혁신과 연구 잠재력은 유럽혁신기술연구소가 부다페스트에 본부를 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유엔의 중부유럽대표부 또한 부다페스트에 있다.

그뿐 아니라 유럽중국연구소와 자연과학 연구소, 정보통신기술 연구소, 의학연구소, 각종 비영리기관, 대학들도 부다페스트에 소재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유력한 경영대학인 부다페스트비즈니스스쿨과 CEU비즈니스스쿨,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대학은 경제, 금융, 경영 등 전 영역에 걸친 과정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헝가리어로 가르친다. 실업률은 헝가리 안에서 부다페스트가 제일 낮다.

부다페스트는 세계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25개 도시 중의 하나로 매년 440만 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관광산업은 부다페스트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많은 컨벤션센터가 있으며 수많은 레스토랑과 바, 커피숍, 파티장, 호텔 등이 있다. 부다페스트는 2010년 EIU 삶의 질 지수 조사에서 중부와 동부 유럽 도시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뽑혔다.

교통

부다페스트의 시내 공공교통기관은 BKV(부다페스트교통공사)에 의해 일원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런던,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영업을 개시한 부다페스트 지하철과 트램, 트롤리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4호선 및 6호선의 트램은 트램 노선으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이용자 수를 나타내고, 54m의 차량편성은 세계 최장이다. 48시간·72시간의 2종류가 있는 부다페스트카드를 구입한 경우, 무제한 승차할 수 있다. 헝가리국철(MÁV)은 시내의 주요 3개역(부다페스트 동역(Keleti, 페스트 쪽)· 부다페스트 서역(Nyugati, 페스트 쪽)·부다페스트 남역(Déli, 부더 쪽))을 시발점으로 하여 헝가리 국내와 유럽 각지에 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HÉV(Budapest commuter rail)에 의해 교외전차도 운행되고 있다. 그 밖에, 부다페스트 어린이 철도, 왕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인 푸니쿨라(funicular) 등도 유명하다.

부다페스트의 항공 교통의 관문,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Budapest Liszt Ferenc Nemzetközi Repülőtér)은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16km인 페슈트뢰린츠에 위치해 있다. 위즈 에어와 LOT 폴란드 항공의 허브며, 말레브 헝가리 항공이 파산한 후 헝가리의 우방국인 폴란드의 국적사 LOT가 부다페스트를 허브로 편입하여 부다페스트를 오고 가는 대륙간 장거리 노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LOT가 2019년 9월 22일에 인천 - 부다페스트 직항을 첫 취항했고, 대한항공도 인천 - 부다페스트 노선에 취항할 예정이다.

네브리게드 장거리국제선 버스 터미널도 있다. 다뉴브강을 이용하여 브라티슬라바를 경유하여 빈으로 가는 국제항로도 MAHART Passnave에 의해 운항되고 있다. 선착장은 시내 중심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5]

세계문화유산

1987년,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안과 부다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2002년에 안드라시 거리 및 그 지하 (부다페스트 지하철)이 등록대상에 추가되어, 2003년에는 등록명칭이 "도나우강안, 부다성 지구, 안드레시 거리를 포함한 부다페스트"로 변경되었다.

주요 등록 물건

  • 부다 성 : 부다 성은 헝가리 국왕들이 살았던 역사적인 성채이다. 과거에는 왕궁(Királyi-palota) 또는 왕성(Királyi Vár)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다 성은 중세와 바로크, 19세기 양식의 가옥들과 공공건물들로 유명한 옛 성곽 지역(Várnegyed) 옆에 있는 부다 언덕 남쪽 꼭대기에 지어졌다. 아담 클라크 광장과 푸니쿨라(계단식 열차) 옆 세체니 다리와 이어져 있다. 부다 성은 1987년 공표된 부다페스트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이기도 하다.
  • 마차시 성당 : 1255년, 부다 성 내에 건축되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서 이용되었다. 1479년에 마차시 1세에 의해 대개축됨으로써,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증축되었다.
  • 국회의사당 : 1904년에 완성된 네오 고딕 건축물로, 도나우 강변에 접하고 있다. 또한, 헝가리의 국장에도 포함되어 있는 성 이슈트반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
  • 세체니 다리 : 도나우강의 양안에 펼쳐진 부다지구와 페슈토지구를 연결한다.
  • 안드라시 거리 : 2002년에 역사지구의 확장에 의해 추가된 거리이다. 거리 이름의 유래는, 건설을 추진하였던 안드라시 수상이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모방하여 플라타너스를 나란히 심어놓은 거리이며, 세체니 다리의 끝에서 페슈토지구의 시민공원까지의 거리이다. 지하에 유라시아 대륙 처음의 지하철, 지상에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 영웅광장, 세체니 온천, 리스트 음악원 등이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부다페스트〉, 《위키백과》
  2. 부다페스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부다페스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부다페스트〉, 《요다위키》
  5. 부다페스트〉,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유럽 같이 보기

동유럽 국가
동유럽 도시
동유럽 지리
동유럽 문화
동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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