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네프르강
드네프르강(영어: Dnieper River, 러시아어: Днепр, 문화어: 드네쁘르강), 드냐프로강(벨라루스어: Дняпро), 드니프로강(영어: Dnepr River, 우크라이나어: Дніпро)은 러시아 스몰렌스크주의 발다이 구릉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남서부를 거쳐 흑해의 북서안(北西岸)으로 흘러드는 큰 강이다. 길이 2,290km, 유역면적 51만 500㎢, 유럽 러시아에서는 볼가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1]
개요
드네프르강은 러시아 스몰렌스크 주의 발다이 구릉 지대에서 발원해 남서쪽으로 흐르다 벨라루스 공화국을 지나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드니프로페트로프시크에서 크게 굽은 뒤 헤르손 부근에서 흑해로 들어간다. 거의 전 길이에 걸쳐 선박 통항이 가능하며 많은 지류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보리스테네스라고 불렀으며 이름은 '북쪽의 하천'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유역은 비옥한 초르노젬(흑토) 지대로 농업 생산이 풍부하고 북유럽과 흑해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서 고대에는 많은 국가들이 번영했다. 스키타이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인들이 찾아와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팔고 밀을 사갔으며 바이킹들은 다우가바강과 이 강을 연결한 무역로를 타고 내려와서는 동로마 제국과 무역을 했고 키예프 공국 시절에는 흑해와 연계한 수운 무역으로 강변 여러 도시들이 번영을 누렸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전 강의 중심도시 키이우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은 소련 3대 도시였다. 드네프르강은 우크라이나 경제를 위한 중요한 수로이며 드네프로 - 버그 운하 (Dnieper-Bug Canal)를 통해 유럽의 다른 수로와 연결된다.[2][3]
드네프르강은 인근 주민들에게는 이 비옥함이 축복만은 아니었으니, 이 지역의 높은 식량생산량과 인구 부양력을 노리고 주변국 세력들이 온갖 수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강 남부 크림반도와 동부에 근거지를 둔 몽골-투르크계 유목민들의 약탈과 노예사냥은 18세기 말까지 천 년 가까이 이어졌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주들과 러시아 제국에서는 주민들을 농노화한 뒤 생산된 잉여 곡물을 서유럽으로 수출하였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시절에도 소련 정부가 도시노동자들에 대한 식량 공급 안정화를 위해 이 지역에 집단농장을 세우고 밀 수탈을 일삼는 바람에 1932-33년 대기근이 들어 수백만 명이 굶어 죽기도 했다. 그리고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이 지역의 비옥한 평야와 강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거대한 노천 광산들을 노리고 쳐들어오면서 독일군과 소련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평야가 펼쳐져서 별다른 지형 장애물이 없는 우크라이나에서 드니프로강은 몇 안 되는 중요한 방어선이기도 했다. 이런 요소들이 맞물려서 격전지가 됐고 이 과정에서 또 주민 수백만 명이 독일군에게 살해당했다. 1950-70년대 소련 정부에서 드니프로강에 대규모 댐들을 건설하면서 유역을 따라 커다란 저수지들이 있다. 상류로부터 키이우호(922km²), 카니우호(675km²), 크레멘추크호(2252km²), 카미얀시케호(567km²), 드니프로호(410km²), 카호우카호(2150km²) 순이다. 드네프르강은 강 중에서도 손에 꼽게 넓다. 물론 끝판대장인 라플라타강, 아마존강보다는 못하지만 실선으로 표시된 다른 강에 비해 거의 호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이건 원래부터 넓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급류였던 지역이 소련 시절 댐 건설로 인해 넓어진 것이다.
명칭
기존의 표제어는 러시아어 표기에 따른 '드네프르강'이었으나 2022년 3월 3일 외교부의 우크라이나 지명 표기 방침에 따라 '드니프로강'으로 바뀌었다. 발원지는 러시아고 도중에 벨라루스 땅도 지나는 강이라 우크라이나만의 지명으로 보긴 무리가 있으나 전체 유역 면적의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영내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도 이 강을 발판삼아 큰 번영을 이루었다.
지리
드네프르강의 중·하류의 1,000km는 흑해의 하구에서 2,150km 상류에 있는 드로고비치 혼합림지대를 흐르고 크레멘추크 부근 하류에서는 반건조지대의 초원지대를 통과한다. 상류에는 베레지나강, 프리퍄트강, 좌안에는 데스나강, 수라강 등이 흘러 들어온다. 강은 상류부에서는 12월 초순부터 이듬해 4월 초순까지, 하류에서는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얼음으로 덮인다. 드네프르강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장 중요한 수상교통로를 이루어 하구에서 2,150km 상류에 있는 드로고비치까지 기선이 다니고 있다. 수송되는 주요 화물은 목재, 종이, 펄프, 밀, 석탄, 석유제품 등이다. 강을 낀 연변에는 모지리, 키이우, 크레멘추크,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의 대도시와 중공업 도시가 줄지어 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드니프로 공업지대의 이름으로 불리는 중공업 지대에 의해서 폴란드의 비스와강으로 연결되는 내륙수로도 열려 있어 건설자재와 목재를 운반하고 있다. 수력 전원으로서도 이용될 뿐 아니라 공업, 관개용수로도 이용되며, 300개가 넘는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특히 드니프로 발전소의 규모는 크다. 그 밖에도 카호프카, 크레멘추크, 드니프로제르진스크에 댐과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어족(魚族)이 풍부하여 잉어, 농어, 메기, 청어 등 60종 이상이 살고 있다.[4]
이슈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때문에 생긴 이른바 '코끼리의 발'이 이 강에 닿을 경우 서부 러시아의 중요한 식수 공급지가 방사능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저지되었다. 러시아가 2022년 초 우크라이나 국경에 총 1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배치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강 동안의 남부에 있는 남동부인 돈바스 지역을 주로 노리겠지만, 어차피 우크라이나 지대 대부분이 평야지대라서 드니프로 강 동안 전체를 점령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키이우가 최전방에 위치하게 되고 한편 친러 세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오데사 지역까지 동요하게 만들 수 있다. 2022년 2월에 이는 실제로 일어났다. 즉 우크라이나를 절반으로 쪼개서 내륙국으로 만들어 버리고, 몰도바 내의 미승인국 트란스니스트리아 및 자치 국가인 가가우지아까지 육로로 연결할 수 있다. 몰도바 내의 두 지역은 둘 다 친러 지역으로, 몰도바가 루마니아와 합쳐진다면 이들은 러시아에 붙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지역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로서 암담한 점은 이 강의 상류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있다는 것이다. 국제정세상 대체로 같은 편인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서로 짜고 댐 건설이라도 하면 우크라이나는 농업에 막대한 손실이 날 수도 있으며, 강의 수위가 낮아짐에 따라 최후의 방어선 역할도 무력화될 수 있다. 국제하천에서 상류 국가가 댐을 지어 하류 국가에 엿을 먹인 사례는 나일강, 메콩강 등 몇몇 사례가 있었다.
키이우
키이우(우크라이나어: Київ), 또는 키예프(러시아어: Киев)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드니프로강을 따라 우크라이나 중북부에 위치해 있다. 2021년 1월 1일 기준 인구는 2,962,180명으로 유럽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키이우는 동유럽의 산업, 과학, 교육과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이다. 키이우는 많은 첨단 산업, 고등 교육 기관과 역사적인 랜드마크의 본거지이다. 또한, 키이우 지하철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대중교통 시스템과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키이우의 이름은 이 도시를 창건한 네 명의 전설적인 설립자 중 한 명인 키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 기간 동안,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키이우는 여러 번의 부각과 무명을 거쳤다. 키이우는 5세기 초 상업 중심지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키이우는 스칸디나비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사이의 거대한 교역로에 위치한 슬라브족의 정착지로, 9세기 중반에 바랑기아인 (바이킹)에게 함락될 때까지 하자르의 지류가 거주하였다.바랑기아인의 통치하에, 키이우는 최초의 동슬라브 국가인 키예프 루스의 수도가 되었다. 1240년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된 이 도시는 이후 수 세기 동안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였다. 처음에는 리투아니아, 다음에는 폴란드, 그리고 결국 러시아와 같은 강력한 이웃 국가가 통제하는 영토 외곽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지역 중심지였다. 키이우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의 산업혁명 기간 동안 다시 번영했다. 1918년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러시아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키이우는 수도가 되었다. 1921년부터 키이우는 붉은 군대에 의해 선포된 우크라이나 SSR의 도시였으며, 1934년부터는 수도가 되었다. 키이우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심각한 파괴를 겪었지만, 전후 몇 년 동안 빠르게 복구되어 소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남아 있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수도로 남아 다른 지역에서 온 우크라이나인 이주자들의 꾸준한 유입을 겪었다. 우크라이나가 시장 경제 체제와 선거 민주제로 전환하는 동안,키이우는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군비 의존적인 산업 생산량은 소련 붕괴 이후 감소하여 과학 기술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서비스와 금융과 같은 새로운 경제 부문은 키이우의 급여와 투자의 증가을 촉진하고 주택과 도시 기반 시설의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자금을 제공하였다.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친서방적인 지역으로 부상하였고, 유럽 연합과의 긴밀한 통합을 지지하는 정당이 선거 기간 동안 지배적이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키이우에서 전투가 일어났다.[5]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
각주
- ↑ 〈드니프로강〉, 《위키백과》
- ↑ 〈드니프로 강〉, 《나무위키》
- ↑ 〈드네프르강(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드니프로강(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키이우〉, 《위키백과》
참고자료
- 〈드니프로강〉, 《위키백과》
- 〈키이우〉, 《위키백과》
- 〈드니프로 강〉, 《나무위키》
- 〈드네프르강(세계인문지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드니프로강(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