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호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하산호(영어: Lake Khasan, 러시아어: озеро Хасан)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변경주(러시아어: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영어: Primorsky Krai 하산스키군에 있는 호수로,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남서쪽으로 130km 떨어졌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총면적은 2.23km²이며 1938년에 하산호 전투가 발생한 곳이다. 호수는 두만강 하류 중국 방촨 근처에 있다.[1][2]
하산호 전투
하산호 전투(러시아어: Хасанские бои, 영어: Battle of Lake Khasan) 또는 장고봉 사건(張鼓峰事件, ちょうこほうじけん)은 1938년 7월 29일부터 8월 11일까지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조선, 만주국, 소련의 국경인 두만강의 하산에서 벌어진 국경분쟁으로 일어난 전투이다. 1938년 7월 29일부터 동년 8월 11일까지 약 2주 간 소련군과 일본군(조선군, 관동군)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로, 소-일 국경분쟁 중 할힌골 전투 다음으로 컸던 전투였다. 소련이 승리하였다.
장고봉(張鼓峰, 러시아명 сопка Заозёрная/Zaozyornaya)은 두만강 근처 하산에 있는 해발고도 약 150m의 언덕으로, 그 자체로는 흔해빠진 언덕이어서 별다른 쓸모가 없는 곳이었다. 만주, 조선, 소련 사이에 절묘하게 걸친 탓에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분쟁이 있던 장고봉의 정상 부분을 소련, 만주국 양국은 서로 점령하지 않고 그냥 무주공산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당시 이쪽의 국경선에 대해서 소련과 만주국 간 의견이 엇갈렸다. 소련은 베이징 조약에 근거하여 국경선은 장고봉 정상을 통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은 장고봉 정상 일대는 만주국에 속한다고 보고 있었다. 소련은 일본이 국경선을 왜곡하고 있으며 만주국에 설치된 국경 표지판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구역의 방위를 담당했던 조선군 제19사단은 이곳을 국경 불확정 지대로 보고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장고봉 정상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7월 12일 소련군이 파견되어 장고봉 정상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다음날 13일에는 일본군 감시병이 소련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에 놀란 일본은 대사관을 통해 항의했으나 소련은 이를 애써 무시했고 이로써 건차자도 사건이 끝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던 때 또 다른 무력 충돌이 예고되었다.
일본은 장고봉에 정찰대를 파견했는데 이들은 소련군의 사격을 받고 오장이 전사하는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관동군은 중국 전선에서 공세를 준비하느라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장고봉에서의 사태를 악화시키기 싫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관동군 작전참모들이 '좁은 곳이라 전투가 확대되지도 않을 것이고 소련군이 전차까지 끌고 오지도 않을 듯'이라고 하여 제19사단을 동원해서 소련군을 격퇴하기로 했다. 조선군 사령관 고이소 구니아키는 제19사단의 출동을 명령했다.
7월 29일 확인 결과 소련군은 장고봉 북쪽에 위치한 사초봉(沙草峰, 러시아명 сопка Безымянная/Bezymyannaya)에도 진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제19사단이 공격을 가했지만 이미 대규모로 증강된 소련군을 격퇴하지는 못했는데, 7월 31일 19사단 휘하 제75연대가 야습을 가해 소련군 제40사단을 격퇴하였다. 덕분에 제19사단은 장고봉과 사초봉을 탈환할 수 있었다. 이후 8월까지 소련군이 여러 번 반격을 시도했으나 일본군은 의외로 선전해서 이를 막아냈다. 8월 1일 소련군 항공대가 나타나 두만강 인근 지역에 폭격을 가했다. 8월 2일에는 당시 극동 군관구 사령관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가 참전했다. 그리고 소련군은 슬금슬금 병력을 증강시켜 나갔다. 반면 일본군은 장고봉 일대의 19사단에 이렇다할 중장비나 추가병력 지원을 하지 않았다.
건차자도 사건 이후 제대로 열받은 소련이 1개 군단과 1개 기계화여단, 연해주 항공대를 동원해서 8월 6일 대반격을 가해왔다. 무장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19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장고봉에서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멸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19사단 장병들은 분투하여 장고봉과 사초봉을 빼앗기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고, 소련군 측도 상당한 사상자가 나왔다. 그러나 소련, 일본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 일본의 시게미츠 마모루 대사와 소련의 막심 리트비노프 외무인민위원 간 회담으로 8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정전 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 내용은 11일 정오로 전투를 중지하고 소련의 주장대로 국경선을 확정한다는 것. 19사단은 두 고지를 점령했지만 이를 소련측에 내줘야 했다. 이에 일본군의 조 이사무(長勇) 대좌와 소련 극동군 참모장인 그레고리 슈테른 대장이 회견하여 정전이 발효되었다. 8월 12일 양 군은 문서를 통해 장고봉 이북의 국경선 문제를 매듭지었고 160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소련군의 피해가 더 컸으며, 격분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책임을 물어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를 숙청했다. 블류헤르 원수는 모스크바로 압송되어 수감된 후 고문당했으며, 18일 후에 옥사했다.
1938년 10월에 일본 수상은 미국 정부에 평화 협상 중재를 요청했다. 11월에 소련과 일본, 쌍방은 서로에 대한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지했고, 이후 1939년 5월-9월의 할힌골 전투 때까지 양국의 전투는 없었다.[3][4]
두만강
두만강(豆滿江, Tumen Bira, 중국어 간체자: 图们江, 정체자: 圖們江, 러시아어: Туманная)은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되는 강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와의 국경을 이룬다. 두만강은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홍토수(紅土水)를 원류로, 석을수(石乙水), 홍단수(紅端水), 서두수(西頭水), 홍기하(紅旗河), 하이란강(해란강, 海蘭江), 가야하(嘎呀河, 알아하), 훈춘하(琿春河)등의 지류와 합쳐져 동해로 흘러드는 547km(서두수의 발원지부터는 610 km)의 강이다. 유역은 33,800km²이며, 《한청문감(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지리명이 유래되었다. 남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와 함경북도에 속하고, 북쪽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이다. 강의 하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라선시와 러시아 하산스키군 사이의 국경이다. 두만강 하구에는 15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鹿屯島)가 있었다. 녹둔도는 약 4 km²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두만강 하류의 섬으로, 이 섬은 두만강의 퇴적작용에 의하여 18세기에 연해주와 연륙(連陸)되어 육지가 되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제국은 연해주에 붙은 녹둔도까지 점령하였다. 1886년 중·러가 동해 연안의 제일 마지막 구간 경계선을 탐측할 때 당시 청조 도찰원 좌부어사였던 오대징은 도리를 따져 경계비를 두만강 하구 46리 밖에서 30리 안으로 옮겨갔으며 중국은 러시아와의 변경선을 따라 동해로의 출해 권리를 획득하였다. 1992년 중·러 동쪽 국경선 담판이 끝난 후 중국은 두만강에서 출해 권리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하류에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다리가 너무 낮고 수로가 침적된 진흙으로 막혀 300톤 이하의 작은 배만 통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국이 두만강 출해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성 고깃배의 출해 통행만 허용할 뿐 상업성 운행은 동의하지 않는 등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어 중국으로서는 사실상 출해권을 상실한 상태이다.
두만강은 백두산(2,744m)의 동남쪽 대연지봉(2,360m)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를 원류로 하여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대지류를 합해 동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총 길이는 521㎞로 한국에서 세 번째로 길다. 유역 면적은 10,513㎢(중국과 러시아 지역의 유역 면적을 합하면 41,242㎢)에 달한다. 한반도 최북단의 자연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선사 시대 이래로 한반도 문화 형성의 통로 역할을 했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여진족과 힘겨루기를 하던 곳이며, 일제강점기에는 학정을 피해 강을 건너 이주하던 곳이다. 이 강은 백두산 동남쪽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를 원류로 하여 처음에는 동류한다. 그 다음 마천령산맥에서 발원하는 소홍단수(小紅湍水, 82.5㎞)를 합류, 북동류하면서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서두수(西頭水, 173.1㎞) · 연면수(延面水, 80.0㎞) · 성천수(城川水, 76.3㎞) 등의 대지류들을 합류한다. 중류에 이르러서는 심한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하면서 보을천(甫乙川)과 회령천(會寧川)을 합한 후 본류는 북북동류한다. 함경북도의 최북단에 이르러 중국의 간도(間島) 방면에서 흘러오는 해란강(海蘭江)을 합류한 뒤 유로는 급전하여 남동류한다. 하류에서는 다시 간도 지방에서 남서류하는 혼춘강(琿春江)과 한반도 쪽의 오룡천(五龍川) · 아오지천(阿吾地川) 등의 지류를 합한 뒤, 수량과 하폭을 증대하면서 하구 부근의 호소(湖沼)지대(地帶)를 거쳐 서수라(西水羅) 부근에서 동해로 들어간다.[5]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