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예루살렘(히브리어: יְרוּשָׁלַיִם 예루샬라임, 아랍어: القدس 알쿠드스[*], 영어: Jerusalem, 문화어: 꾸드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선에 위치한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르단강에서 이어지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3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으며 도시가 행정상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으나, 국제 사회상 인정하지 않고 텔아비브를 사실상 수도로 삼았다.
목차
개요
- 행정 단위: 이스라엘의 행정수도
- 면적: 6,183km²
- 인구: 936,425명 (2019년)
- 지역어: 히브리어, 아랍어
- 지역어: Moshe Lion (이스라엘)
역사
청동기와 철기 시대
도시 요새화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청동기 중기에서 후기에 나타나며 기원전 18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원전 1550-1200년경에 예루살렘은 이집트 속국 도시 국가의 수도였으며, 작은 이집트 수비대가 있고 압디-헤바 왕과 같은 임명자들이 통치하는 소수의 외딴 마을과 목가적 지역을 다스리는 작고 초라한 정착지였다. 세티 1세(r. 1290-1279 BCE)와 람세스 2세(r. 1279-1213 BCE) 시대에 번영이 증가함에 따라 주요 건설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 도시의 주민들은 가나안 사람들이었으며 학자들은 그들이 야훼 중심의 독특한 일신교 신앙 체계의 발전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로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경, 다윗 왕이 구릉에 위치한 '시온의 성'이라 불리던 도시를 정복한 후 유대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무엘하 5,7: 역대기상11, 4-7: 열왕기상 8, 7).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에 중요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윗의 이름 밑에 유대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합병된 후, 예루살렘은 통일왕국의 수도가 되었다(사무엘하 2, 4: 5, 3). 이렇게 이곳은 다윗왕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역사의 중심무대로 등장한다.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왕은 도시에 왕궁과 신전 및 성채를 새로이 건설하고 언약궤를 신전 안에 보관하였다고 타나크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열왕기상 6-8). 솔로몬이 세상을 떠나자(BC 925년, 이설도 있다.) 이스라엘은 남북조 시대로 접어들었고, 예루살렘은 남조(南朝) 유다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에 대해 현대 고고학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던 이론은 이스라엘 핀켈슈타인이 제시한 '저연대Low Chronology' 이론이다.[6][7]:59–61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층서학적 모델에 따르면, 그동안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것으로 인식되던 유물이나 유적들(게셀, 므깃도, 하솔의 마병장)은 기원전 10세기가 아닌 기원전 9세기로 비정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다윗 왕은 기원전 10세기~9세기로 비정하는데, 강한 왕권을 가졌다기 보단 유다의 소규모 부족의 족장 수준의 인물로 북이스라엘 왕국과는 무관하다고 본다.
게다가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법궤는 이스라엘의 기럇 여아림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기원전 7~8세기에 이 곳은 강력한 신앙의 중심지였고, 이 도시 유적에서는 이스라엘 북왕국과 관련된 일종의 거대한 신전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 같은 발견과 역대하 35:3을 근거로, 사실 법궤는 성경에서처럼 왕국 형성 초기에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 후기 요시아 통치기에 옮겨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성물을 상자 속에 넣어 운반하는 것은 매우 흔한 전통이었음을 지적하며, 법궤 속에 사실은 수천년 된 석상들이 대신 들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전 시대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성경의 느부갓네살)에게 정복되어 유다 백성들은 바빌론에 억류되었다. 기원전 537년 페르시아 왕 키루스 2세에게 석방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의 로마 공화정에 정복된 이래로 원래의 하스몬 왕조와 일진일퇴 끝에 기원전 37년 로마의 지원을 받은 헤로데 대왕이 협공으로 로마령으로 확정하고 분봉왕 즉위와 동시에 성전을 개축하였다. 70년, 135년의 두 차례 봉기가 있은 후 로마는 전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이방인의 도시'라 했다. 4세기에 로마가 기독교화됨에 따라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중세
638년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으나, 그들은 기독교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동시에 이슬람 사원이 솔로몬의 성전 터에 세워졌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1187년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1260년 훌라구의 몽골군이 예루살렘 근방까지 육박했으나 바이바르스가 이들을 몰아냄으로써 맘루크 왕조의 성지 관할권이 확립되었다.
오스만 제국
1516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400년 내내 지배하였다. 이 시기 이스라엘은 4구역으로 분할되었고 행정구역상 다마스쿠스 소속으로 이스탄불의 지배를 받았다. 유대인의 유입으로 예루살렘의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19세기부터 성벽 밖에 유대인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올드시티의 통곡의 벽이 재건되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으며 19세기에 올드시티는 아르메니안, 크리스챤, 유대인, 무슬림 쿼터로 구분되었다.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로, 1892년에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잇는 최초의 철로가 건설되었다. 예루살렘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미국 영사관이 개설되었다. 1917년에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면서 오스만의 지배는 종결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영국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많은 유대인과 아랍인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면서 전체 인구수는 1922년 52,000명에서 1948년 165,000명으로 증가했다. 영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올드시티 서쪽과 북쪽으로 새로운 거주지역을 건설해나갔다. 유대인의 계속된 유입과 1917년 영국의 밸푸어선언으로 아랍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47년 국제연합(UN)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인지구와 아랍인지구로 분할할 것을 권고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위임통치가 종료되면서 이루어진 이스라엘 독립선언은 주변 아랍국가들이 참전한 아랍이스라엘분쟁(제1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되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를 인위적으로 점령하였다. 1980년 7월 30일 이스라엘 국회는 예루살렘 전체를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80년 8월 20일에 채택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478호(찬성 14, 반대 0, 기권 1(미국))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며 모든 회원국들의 외교관들은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에 있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표부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있으며 사실상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리
예루살렘은 사해의 북쪽으로 약 28km 떨어져 유대 산맥(Judaeau Mountain)의 남쪽 기슭의 고원상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팔레스타인 베들레헴과 베이트 잘라(Beit Jala), 동쪽으로 아부 디스(Abu Dis)와 마알레 아두밈(Ma’ale Adumim), 서쪽으로 메바세레트 시온(Mevaseret Zion), 북쪽으로 라말라(Ramallah)와 기밧 제에브(Giv’at Ze’ev)에 접한다. 예루살렘의 구 시가지인 올드시티(Old City) 구역의 평균 해발고도는 대략 760m 정도이다. 예루살렘 시가지는 골짜기 또는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북쪽의 키드론 계곡, 서쪽과 서남쪽의 히논(Hinnon) 골짜기 등이 있으며, 현재 이 골짜기의 많은 부분은 암괴로 채워져 있었다. 예루살렘은 골짜기로 둘러싸인 지리적 조건으로, 외부 침략으로부터 방어가 유리하였기 때문에 과거부터 거주지로 많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역사시대 수도 또는 중심지로 수차례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지대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물의 공급이 문제였고, 이에 따라 수로 등과 같은 고대 수문 시설들이 도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후는 지중해성기후에 가까우며, 여름이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따뜻하고 습윤하다. 가장 더운 달인 7~8월의 평균기온은 29℃ 내외이며,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은 13℃를 넘지 않는다. 강수는 10월에서 5월까지만 주로 내리는데, 연 강수량이 554mm로 지중해성기후와 반건조기후 지역의 경계지점 정도의 강수량을 보인다.
도시 구조
예루살렘의 동쪽으로 올리브산(Mt. Olives), 북동쪽으로 스코푸스산(Mt. Scopus), 남쪽으로 올드시티가 위치한다. 예루살렘은 크게 올드시티, 동예루살렘, 서예루살렘으로 구분된다. 올드시티를 포함하여 동예루살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시기에 요르단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도시의 경계는 남쪽으로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서안지구와 동쪽으로 헤르즐산(Mt. Herzl), 엔 케렘까지 빠르게 확장되었다.
예루살렘은 구시가지인 올드시티와 신시가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경관을 가진다. 올드시티의 서쪽과 남쪽으로 서예루살렘에 주택, 상업시설, 의료시설, 문화시설, 대학교, 관공서 등이 밀집한 신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로 1,204개의 유대교 회당과 158개의 교회, 73개의 모스크가 있다. 동예루살렘과 올드시티에는 주로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반면, 서예루살렘에는 주로 유대인이 거주한다. 서쪽의 헤르즐산(Mt. Herzl)은 이스라엘 국립묘지가 자리한다.
예루살렘은 국회, 법원 등 주요 정부 기관이 위치한다.
인구
2019년 기준 예루살렘의 인구수는 936,400명이며, 이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이 62%(563,200명), 아랍인이 38%(358,800명), 비아랍인 기독교인 3,300명, 기타 11,100명이다. 아랍인 인구 중 96%는 무슬림, 4%는 기독교인이다.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 전체 유대인의 8%와 이스라엘 전체 아랍인의 19%가 거주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아랍인 거주 인구를 가진 도시인 동시에 가장 많은 초정통파 유대인 인구를 가진 도시이다. 2019년 기준 초정통파 유대인 수는 241,906명으로, 이는 이스라엘 전체 초정통파 유대인의 24%의 비율이다. 2019년 기준 서예루살렘 거주 인구는 55,300명이며, 99%(350,500명)가 유대인, 나머지 4,800명이 아랍인이다. 동예루살렘 인구는 581,100명이며, 아랍인 354,000명(61%), 유대인 227,100명(39%)이다.
교육
예루살렘은 유대인학교와 아랍인학교가 분리되어 있어 각기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학습하며, 제2외국어는 대부분 영어이다. 공립학교와 더불어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등 종교 기관이 운영하는 사립학교가 다수 있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고등 교육기관으로는 히브리 대학교와 알-쿠즈 대학교(Al-Quds University), 베잘렐 예술 아카데미(Bezalel Acadamy of Arts and Design), 루빈 국립 음악 아카데미(Samuel Rubin Academy of Music) 등이 있다. 1925년에 개교한 히브루대학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텔아비브 대학교 다음으로 규모가 큰 종합대학이다. 알-쿠즈 대학교는 서안지구 경계에 위치하는 아랍 고등교육기관으로 1984년에 개교했다.
문화 유산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는 198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올드시티, '예루살렘 구 시가지와 성벽'이다. 올드시티는 1500여 년에 걸쳐 고지도에 '예루살렘'으로 표기된 지역으로, 1860년대부터 그 외곽에 유대인 주거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올드시티에는 폐쇄된 골든 게이트(Golden Gate)를 포함하여 총 8개의 게이트가 있는데, 야포 게이트(Jaffa Gate)와 다마스쿠스 게이트(Damascus Gate)가 각기 서예루살렘과 동예루살렘에서 올드시티로 진입하는 주요 입구로 기능한다.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올드시티 내부는 무슬림쿼터, 기독교쿼터, 아르메니안쿼터, 유대인쿼터로 구분된다. 올드시티 내에는 220여 개의 역사적 기념물이 분포하며 서쪽 성벽을 중심으로 여러 종교 집단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올드시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는 유대교 성지인 서쪽 성벽과 무슬림 성지인 바위 사원,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통곡의 벽'으로 더 잘 알려진 서쪽 성벽은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버렸을 때 유일하게 남은 벽으로 유대교 최고의 성지이다. 유대인들은 이 벽에 와 기도를 올리거나 바르미쯔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행한다. 성별에 따라 장소가 분리되는데 벽을 정면으로 우측이 여성, 좌측이 남성의 공간이다. 남성은 키파를 반드시 써야 하며, 성별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종아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성소 입구에는 관광객을 위해 종이 키파와 파란 천이 준비되어 있다. 벽 틈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끼워 넣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서쪽 성벽은 이슬람교에서도 중요한 성지로 여겨지며 바위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를 둘러싸는 큰 벽과 연결되어 있어 출입권 갈등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바위 사원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양식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원래 유대인 성전이 있던 자리에 691년에 세워졌다가 파괴된 후 1023년에 재건되었다. 전체적으로 비잔틴 제국의 궁전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스만 시대에 개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1959년과 1993년에는 사원 꼭대기에 황금 돔이 설치되어 ‘황금 사원’으로도 불린다. 알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교 3대 성지중 하나로 은색 둥근 지붕을 가진 사원이다. 여러 차례 개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066년에 준공되었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는 이스라엘박물관과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박물관이 있다. 이스라엘박물관은 1965년에 개관한 국립박물관으로 광범위한 시기와 지역의 유물을 소장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홀로코스트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에 건립된 야드바솀은 방대한 기록과 유물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그중 희생자들의 이름과 정체성을 망각으로부터 지켜내려는 거대한 규모의 자필 서명 증언으로 구성된 ‘증언의 페이지’(Pages of Testimony) 콜렉션은 2013년에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제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의 경제는 자파(Jaffa )와 가자(Gaza) 의 주요 항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종교 순례자들에 의해 지원되었다. 오늘날 예루살렘의 종교적, 문화적 랜드마크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최고 인기 명소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의 관광객은 통곡의 벽(Western Wall)과 구시가지( Old City)를 방문한다 . 2010 년에 예루살렘은 Travel + Leisure 잡지 에 의해 아프리카 및 중동 최고의 레저 여행 도시로 선정되었다 . 2013년에는 이스라엘 관광객 350 만 명 중 75%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예루살렘에 중심을 둔 정부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업 계획과 창업에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제공하였고 텔아비브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금융 중심지이지만 점점 더 많은 첨단 기술 기업이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여 2006년에 12,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북부 예루살렘의 Har Hotzvim 산업 단지와 예루살렘 남부의 예루살렘 기술 공원 에는 대규모 산업 단지가 있다. Intel , Cisco Systems 등 국제 기술 기업의 연구 개발 센터, Teva Pharmaceutical Industries , IBM , Mobileye , Johnson & Johnson , Medtronic 등. [385] 2015년 4월, 타임 매거진은 예루살렘을 세계 5대 신흥 기술 허브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이 도시는 생물 의학, 청정 기술, 인터넷/모바일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투자자 및 지원 서비스 제공업체의 번성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
교통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는 텔아비브와 연결되는 1번도로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도로 확장 건설은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교통량이 많고 구시가지의 도로가 협소해 교통체증은 여전히 도시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주요한 대중교통수단은 버스이며,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버스터미널은 예루살렘 중앙버스터미널이다. 동예루살렘 아랍 거주지역과 서안지구 노선은 올드시티를 통하는 다마스쿠스 게이트(Damascus Gate) 근처에 위치한 동예루살렘 중앙버스터미널에서 운행된다. 서안지구 아랍 마을과 도시는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합승택시를 이용해 이동한다. 2011년 8월부터 시내에 경전철이 운행되기 시작했다. 북쪽의 피스갓제에브(Pisgat Ze’ev)에서 올드시티와 도심을 경유하여 남쪽의 헤르즐산(Mt. Herzl)까지 연결된다. 2018년부터는 예루살렘과 벤구리온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운행되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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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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