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부산)
동구(東區)는 부산광역시 중부에 있는 구이다. 복합단지 개발지구인 북항 재개발 구역이 있다.[1]
개요[편집]
부산광역시의 중남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 01' 25"~129˚ 03' 56", 위도상으로는 북위 35˚ 06' 21"~35˚ 08' 37"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남구, 서쪽으로는 서구, 북쪽으로는 부산진구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중구와 부산만에 면한다. 동서 간 거리는 3.8㎞, 남북 간 거리는 4.2㎞이며, 면적은 9.87㎢로 부산시 전체 면적의 1.3%를 차지하여 16개 구·군 가운데 중구 다음으로 작다. 행정구역은 12 행정동(4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범일5동이 전체 면적의 17.6%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수정1동이 전체 면적의 2.2%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86,809명이다. 구청 소재지는 수정동이다.
인구가 적은 서구와 같이 묶여서 하나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중구처럼 부산광역시의 중구와 동구도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이다.[2][3]
자연환경[편집]
북서쪽은 금정 산맥 주능선과 수정산, 엄광산, 구봉산 등의 산지가 연봉을 이루고 있다. 이들 산지는 오랜 지질시대의 삭박작용(削剝作用)으로 전형적인 노년 산지(老年山地)를 이루고 있으며 남동쪽이 바다에 연해 전형적인 배산임해(背山臨海)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는 암석 해안이었으나 지금은 매립되어 시가지와 도로 및 항만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엄광산(嚴光山)은 동구와 서구 동대신동, 부산진구 개금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1740년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 “엄광산은 부(府) 남방 30리에 있으며 위에 구봉이 있고 아래에 두모진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산은 북쪽으로 백양산과 마주하며, 남쪽으로는 구덕산과 이어지고, 한때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불리어 왔다.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 지명은 옛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일제강점기 형성된 일본식 지명으로 추정된다. 1995년 엄광산으로 지명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수정동에 위치한 수정산(水晶山)은 동구와 부산진구의 경계를 이룬다. 전형적인 노년산지로, 서쪽으로 엄광산, 남쪽으로는 구봉산에 이어진다. 지명은 보석의 일종인 수정이 채굴되어 유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일제강점기 상서 공원과 대지 공원이 있었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며, 지금도 부산 제일의 도심 산지로 부산 항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초량동에 소재한 구봉산(龜峰山)은 서구와 경계를 이룬다. 엄광산과 구덕산으로 이어지는 부산항의 동줄산맥 산정의 하나이다. 지명은 산의 모습이 마치 거북처럼 엎드려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정상부에는 봉수대가 있다.
좌천동에는 독립 구릉성 산지로 증산(曾山)이 있다. 범일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지로 오랜 지질시대의 삭박작용으로 수정산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독뫼에 해당된다. 이곳 증산의 산허리에는 아리랑 고개라는 옛 지명이 있었으며, 지금은 ‘성북고개’로 지칭되고 있다.
수정동에는 관골이 있다. 수정동 남쪽 산록에 있는 골짜기로 부산천의 상류 계곡에 해당된다. 일명 ‘온정골’이라고도 불린다.
동구의 산록에서 부산천·초량천·호계천 등 하천이 발원하여 동구 중앙을 지나 부산만으로 유입되며 하천 유역과 해안 지역, 산기슭 하천 주변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해 있다.
수정산에서 발원하는 범천은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안창마을을 지나며 동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옛 교통부와 평화시장을 지나 동천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이 하천 지명은 우리말인 ‘범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일대가 1945년까지만 해도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삼림으로 뒤덮여 있었고,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호계천(虎溪川)’이라고도 불렸다.
범천이 흐르는 계곡은 범천골이다. ‘호천곡(虎川谷)’ 또는 범천곡(凡川谷)‘이라고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삼림이 울창해 사람이 출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류의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복개되어 옛 경관은 찾아볼 수 없다.
구봉산에서 발원한 부산천은 수정동과 초량동을 차례로 관통하면서 부산만으로 유입된다. 유로는 약 2㎞이며 상류는 급경사이지만 하류는 완만한 구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 천은 예부터 여름철 집중 호우시 홍수와 산사태가 빈발하여 유역에는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상류 일부만 제외하고 복개되어 유로를 찾아볼 수 없다.
증산에서 발원하는 좌천은 일명 ‘좌자천’이라고도 불렸다. 서면과 옛 조방 일대의 주거 밀집 지역 및 시가지 중심부를 관류하는 동천은 동구와 남구의 경계를 가르고 있다. 이는 시가지의 인구 조밀 지대를 흐르는 도심 하천으로 일찍부터 하천오염 문제가 제기된 대표적인 하천이다.
이 지역 일대의 해안은 거의 매립되어 과거의 해안선은 찾아볼 수 없다. 과거 부산포 일대의 해안은 대부분이 산지로 항만부지가 매우 부족하여 바다 매축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개항 이후 북변을 매축하여 중앙동에 평지를 조성하고, 영선상을 착평하여 중앙동 북쪽 지역과 초량의 바다 쪽 지역을 조성하였다. 그 뒤 이루어진 매축이 부산진 매축이었다. 이 공사는 1913∼1917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이때 생겨난 매립지는 약 14만 평이었다. 현재의 수정동 구관 앞에서 좌천동 앞의 바다이며, 이후 1926년 착공된 매립은 지금의 범일동에서 우암동까지 이어진 자리이다.
동구는 바다에 임해 있어 전형적인 온대 해양성 기후를 보여준다. 북서쪽에 연해 있는 금정산맥이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어 온화하며 기온의 연교차가 비교적 적다. 여름과 가을철은 태풍의 경로상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풍수해를 입기도 한다. 연평균기온은 14.4℃로 1월에 가장 낮고, 8월에 가장 높다. 연평균강수량은 1491.6㎜이다.[4]
역사[편집]
삼한 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변한(弁韓) 연맹체에 속하는 거칠산국(居漆山國)의 영역이었으며, 신라가 이 지역을 병합한 뒤 거칠산군(居漆山郡)을 설치하고 대증현(大甑縣)과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지금의 기장군)을 속현(屬縣)으로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거칠산군을 동래군(東萊郡)으로 개편하고 대증현은 동평현(東平縣)으로 고쳐 동래군의 속현으로 두었으며, 동평현의 일부가 지금의 동구 지역에 해당한다.
고려가 개국한 뒤, 1018년(현종 9) 동평현은 양주(梁州, 지금의 경남 양산시)의 속현이 되었고, 동래군은 동래현(東萊縣)으로 개편되어 울주(蔚州, 지금의 울산광역시와 부산광역시 대부분, 경남 양산시 일부)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때 지금의 좌천동 일원에 부산부곡(富山部曲)이라는 특수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보는데, 조선 초기에 '富山'과 '釜山'이 혼용되다가 《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세기 말엽에 '釜山'이 일반화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7년(태조 6) 지금의 범일동·좌천동 일대에 해당하는 동래현 부산포에 수군(水軍) 진영인 부산진(釜山鎭)이 설치되어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는 군사거점이 되었으며, 1407년(태종 7) 부산포에 왜관(倭館)이 설치되었다. 양주(양산군)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은 1405년(태종 5) 동래현의 속현이 되었다가 1409년(태종 9) 다시 양주에 이속되었으며, 1428년(세종 10) 동래현의 속현으로 환원되었다. 1547년(명종 2) 동래현이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로 승격되었고, 동평현은 동평면이 되어 읍내면·동면·서면·남면·북면·사천면과 함께 동래부에 소속되었다. 1607년(선조 40) 지금의 동구 수정동에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이 설치되었다가 1678년(숙종 4) 지금의 중구 용두산공원 부근의 초량왜관(草梁倭館)으로 이전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동평면은 13개 리(고대리·부현리·감물리·당리·와요리·가야리·범천 1리·범천 2리·부산성내리·좌자천 1리·좌자천 2리·두모포리·해정리)를 관할하였다. 이 가운데 두모포리(지금의 수정동)·범천 1리·범천 2리(지금의 범일동)·부산성내리·좌자천 1리·좌자천 2리(지금의 좌천동)·해정리가 지금의 동구 지역에 해당하며, 이밖에 사천면의 신초량리가 지금의 초량동에 해당한다. 1868년(고종 5)에 편찬된 《동래부사례(東萊府事例)》에 따르면, 동평면의 도모포리·범천 1~2리·부산성내리·좌자천 1~2리·해정리가 분리되어 부산면(釜山面)이 신설되었다.
1910년 국권피탈과 함께 동래부가 부산부(釜山府)로 개편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동래 지역과 기장군이 동래군으로 병합되어 부산부와 분리되었으며, 지금의 동구 지역은 부산부 부산면에 편제되었다. 8·15광복 후,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개편 되었으며, 1951년 지금의 동구 지역을 관할하는 초량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 부산시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동구와 동래구·서구·부산진구·영도구·중구의 6개 구가 설치되었다. 신설된 동구는 9개 동(대창동 3가·범일 1~3동·범일 6동·범일 7동·수정동·좌천동·초량동)으로 편제되었고, 196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8개 행정동(범일 1~5동·수정 1~5동·좌천 1~3동·초량 1~5동)을 관할하였다.
이후 1970년 초량4동이 초량4동과 6동으로, 좌천 2동이 좌천 2동과 4동으로, 범일 4동이 범일 4동과 6동으로 각각 분 동되었으며, 1975년 범일 3동의 일부가 남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어 20개 행정동으로 재편되었다. 1982년 대창동 3가가 초량동에 흡수된 데 이어 1985년에는 초량 5동이 초량 3동에 흡수되었고, 1998년 좌천 1~2동이 좌천 1동으로, 좌천 3동과 범일 5동이 범일 5동으로 각각 통합되었다. 2008년 초량 4동과 6동이 초량 6동으로, 수정 2~3동이 수정2동으로, 범일4동과 6동이 범일 4동으로 각각 통합되었으며, 2015년에는 좌천1동과 4동이 좌천동으로, 2016년 범일 1동과 4동이 범일 1동으로 각각 통합되어 12개 행정동으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2 행정동(범일 1~2동·범일 5동·수정 1~2동·수정 4~5동·좌천동·초량 1~3동·초량 6동) 4 법정동(범일동·수정동·좌천동·초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부산의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범일동에 소재하였던 한국거래소였다. 그 외에도 메리츠화재 빌딩, DGB 생명 본사 등등 부산의 대표적인 업무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주부산 일본총영사관도 동구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시 최대 프로젝트인 북항 재개발이 중구, 동구 일대에서 진행중이다. 개발이 완공되면 낙후된 부산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금정구 구서동을 기점으로 하는 번영로(부산 제1 도시고속도로)가 해운대구·동래구·수영구·남구를 거쳐 동구 좌천동까지 이어지고, 관문 대로(부산 제3 도시고속 도로)가 좌천동의 제5 부두를 기점으로 좌천동과 부산진구 가야동을 잇는 수정터널(2356m)을 거쳐 사상구의 삼락 나들목까지 이어진다. 국도 7호선의 일부인 중앙 대로가 중구 중앙동 6가를 기점으로 동구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경남 양산시까지 이어지고, 중구 중앙동 4가를 기점으로 하는 충장 대로가 동구를 거쳐 남구 문현동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서구 서대신동을 기점으로 하여 중구와 동구를 거쳐 부산진구 범천동에 이르는 망양로를 비롯하여 범일로(범일동~부산진구 범천동)·자성로(좌천동~남구 문현동)·고관로(초량동~좌천동)·성남로(좌천동~범일동)와 조방로·정공단로·자성공원로·증산로 등이 동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는 1905년 초량동의 부산진역이 영업을 개시하여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선이 운행하였으며, 1908년 경부선의 종점인 부산역이 개통되었다. 1934년에는 동해남부선의 부산진~해운대 구간이 개통하였으며, 2016년부터 동해선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행한다. 지하철은 1985년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여 사하구의 다대포 해수욕장 역을 기점으로 동구의 부산역~초량역~부산진역~좌천역~범일역을 거쳐 금정구의 노포역까지 운행하며, 부산역에서 경부선·경부고속선과 접속한다.
한편, 해상 교통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된 뒤로 근대화의 관문이 되었으며, 초량동에 국제선 여객터미널이 운영된다. 국제선은 일본의 후쿠오카·오사카·시모노세키·이즈하라 등지를 오가는 정기항로를 운항한다.
관광[편집]
예로부터 외국과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해상 운송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시기의 역사적 유물, 근대 역사와 관련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역사 유적으로는 조선 수군의 5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부산진성(부산기념물)과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국한 충장공 정발 장군 등을 기리는 정공단(부산기념물), 조선 후기에 통신사들이 출발을 앞두고 무사 항해를 기원하며 제를 올리던 영가대(永嘉臺) 등이 있다. 이 밖에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과 부산 초량동 일본식 가옥은 일본의 주거 및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로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초량동에는 부산역에서 망양로 방면으로 까꼬막까지 약 1.5㎞에 걸쳐 초량 이바구길이 조성되어 있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이 테마 거리에는 부산 최초의 근대식 물류창고로 건립된 남선창고 터부터 1927년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건립된 부산 구 백제병원(국가 등록문화재), 초량초등학교 담장을 활용하여 근대사를 이끈 동구의 인물들을 회고하는 인물사담장,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168개의 계단과 60m가량의 모노레일이 설치된 168계단·모노레일, 〈기다리는 마음〉을 지은 동구 출신의 시인 김민부를 기념하는 김민부전망대, 산복도로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이바구공작소, 야경 명소로 알려진 친환경 스카이웨이전망대, 동구에서 여생을 마친 시인 청마 유치환을 기념하는 곳으로서 부산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유치환 우체통 전망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의 판잣집을 본딴 게스트하우스 까꼬막 등이 조성되어 있다. 부산역 부근의 차이나타운 특구와 텍사스 거리는 이국적 풍경의 명소로 꼽히고, 부산항 힐링 야영장이 조성되어 부산항의 아름다운 야경 속에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 구봉산에 5개 코스의 숲길과 족욕장·편백칩 풀장·발물놀이장·치유필드 등으로 이루어진 치유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범일동에는 화가 이중섭이 한국전쟁 피란 당시 거주하였던 판잣집을 중심으로 이중섭거리가 조성되어 주택가 담벼락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거리미술관, 그의 편지와 생전 사진들을 계단 곳곳에 붙여 놓은 희망길 100계단,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중섭전망대 등으로 이어진다. 좌천동에는 안용복 부산 포개항 문화관에서 증산공원을 잇는 190개의 오래된 계단 옆에 설치된 경사형 엘리베이터, 1950년대부터 가구점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되어 자개와 칠기 가구로 명성을 얻은 좌천동가구거리가 명소로 꼽힌다. 먹거리 명소로는 초량동에 돼지불고기백반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초량 불백 거리와 돼지갈비 골목 등이 있다.
둘레길은 부산의 시조(市鳥)인 갈매기와 길을 합성하여 명명한 갈맷길 9개 코스 21개 구간 가운데 남구의 오륙도선착장을 기점으로 동구의 부산진시장에 이르는 3코스 제1구간(11.5㎞)과 부산진시장을 기점으로 증산공원~초량성당~부산역을 거쳐 영도구의 남항대교에 이르는 제2구간(15.8㎞)이 동구에 속한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2004년 초량동의 차이나타운에서 상해거리축제가 시작되어 2006년 차이나타운축제로 개칭하였고, 2007년 차이나타운 특구로 지정됨에 따라 2008년부터 차이나타운 특구 축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른다. 축제는 매년 10월 중에 차이나타운 특구 일원에서 사흘간 열려 중국 소수민족 민속춤·변검·경극과 한국의 가면무·민요를 비롯한 한·중 민속문화 공연, 중국요리 시식회, 관광객이 참여하는 거리 퍼레이드, 중국인 유학생 가요제 및 다문화 가족 장기자랑 대회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밖에 동구와 서구·중구·영도구 등 부산의 원도심 4개 구에서 부산 원도심 골목길 축제가 열려 동구의 168계단 골목길축제 등 각 구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동구 (부산광역시)〉, 《위키백과》
- ↑ 〈동구 (부산광역시)〉, 《네이버 지식백과》
- ↑ 〈동구 (부산광역시)〉, 《나무위키》
- ↑ 〈동구(부산광역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 〈동구 (부산광역시)〉, 《위키백과》
- 〈동구 (부산광역시)〉, 《네이버 지식백과》
- 〈동구 (부산광역시)〉, 《나무위키》
- 〈동구(부산광역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이 보기[편집]
이 문서는 로고 수정이 필요합니다.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