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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3일 (월) 01:10 기준 최신판
마르마라해(튀르키예어: Marmara Denizi, 그리스어: Θάλασσα του Μαρμαρά, 영어: Sea of Marmara)는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바다이며 튀르키예의 아시아 쪽과 유럽 쪽을 가르는 바다이기도 하다. 흑해 쪽은 보스포루스 해협, 지중해 쪽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면적은 11,350km², 평균 수심은 494m, 최대 수심 1370m이다. 이 해역 아래로 아나톨리아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를 이루는 북아나톨리아 단층이 지나간다.[1]
목차
개요[편집]
마르마라해는 튀르키예 북서부의 내해(內海)이다. 북동쪽 보스포루스 해협 어귀에 이스탄불이 있고 남서쪽에 마르마라섬이 있다. 마르마라해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기후가 온화하여 섬과 연안에는 휴양지가 발달하였다. 프린세스(키질아달라르) 제도와 중서부의 마르마라섬 등은 이스탄불 시민의 휴양, 피서지이다. 명칭은 동로마 시대에 고관대작들의 별장이 위치하였던 마르마라섬에서 유래되었다. 마르마라섬(터키어:Marmara Adası, 그리스어:Νησί του Μαρμαράς)은 지금은 터키 발르케시르 도에 속하는 마르마르해의 남서부에 위치한 섬으로 대리석(Marble)이 풍부하였다고 하여 그리스어로 대리석을 뜻하는 마르마라 섬이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터키어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2]
지리[편집]
마르마라해의 표면 염도는 평균 약 22ppm로 흑해보다는 약간 높지만 대부분의 바다의 3분의 2에 불과하다. 바닷물의 염도는 지중해와 비슷한 평균 38ppm 정도로 훨씬 더 높다. 이 고밀도 염수는 흑해와 마찬가지로 지표로 이동하지 않는다. 수수룩(Susurluk) 강, 비가(Biga) 강, 고넨(Gönen) 강에서 유입된 물은 흑해보다 영향이 적지만 바다의 염도를 감소시킨다. 마르마라해는 프린스 제도, 마르마라섬, 아브샤, 파샬리만의 군도를 포함하고 있다. 바다의 남쪽 해안에는 이즈미트 만(터키어: İzmit Körfezi), 젬리크 만(터키어: Gemlik Körfezi), 반디르마 만(터키어: Bandirma Körfezi), 에르데크 만(터키어: Erdek)이 있다. 1999년 12월 29일 폭풍우 때 러시아 유조선 볼곤프트호는 마르마라해에서 두 동강 나서 1,500톤 이상의 기름이 물에 유출되었다. 1999년 8월과 11월 이즈미트 지진과 뒤즈체 지진 등 최근 몇 년간 많은 지진을 일으킨 북아나톨리아 단층은 바닷속에서 활동하고 있다.[3]
마르마라섬[편집]
마르마라섬(터키어:Marmara Adası, 그리스어: Προκόννησος Proconnesus)은 마르마라해에 있는 터키의 섬이다. 면적 117.8km²로 마마라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괴크세다(Gökçeada, 터키어로 구식 이름: İmroz, 그리스어: Ίμβρος Imvros)에 이어 터키의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발케시르주 마마라 지역의 중심이다. 마르마다는 그 마을이 유명한 대리석으로부터 그 이름을 따왔다. 이스탄불까지 해상 버스로 2시간 30분, 배로 5시간 거리에 있다. 에르케크까지는 배로 1시간 45분 거리에 있다. 여름에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많은 호텔, 호스텔이 있다. 섬 중심부 외에도 마을은 관광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2014년 발케시르(Balıkesir)가 대도시가 된 후 다른 섬과 마을이 마르마라섬과 연결되었다. 여름철에는 2~3척의 해상 버스와 선박이 매일 이스탄불에서 마르마라섬으로 정기 항해를 하며 주말에는 추가 항해를 한다.[4][5]
보스포루스 해협[편집]
보스포루스 해협(그리스어: Βόσπορος, 튀르키예어: Boğaziçi, 문화어: 보스포르 해협, 중국어 : 伊斯坦布尔海峡/이사탄포이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이다. 길이는 30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m이다. 깊이는 36m에서 120m 사이이다. 오랫동안 군사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고 18세기 이후에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해협의 항행권(航行權)을 둘러싼 '해협문제'로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해협 양쪽으로 이스탄불시가 자리잡고 있다. 해협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옛 수도이자, 현재는 터키 제1의 도시이다. 터키의 유럽 영토와 아시아 영토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나뉜다. 1973년에 완성된 해협 횡단의 보스포루스교는 세계 유수의 현수교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간선도로이다. 해협을 횡단하는 3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으며, 2013년 해저 터널을 통과해 이 해협 아래를 지나는 마르마라이 철도가 개통되어 운행 중이다.[6]
다르다넬스 해협[편집]
다르다넬스 해협(튀르키예어: Çanakkale Boğazı, 그리스어: Δαρδανελλια)은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는 터키의 해협이다. 고대 고전에서는 헬레스폰트 또는 그리스어로 헬레스폰토스(고대 그리스어: Ἑλλήσποντος, Hellespontos, ‘헬레의 바다’라는 뜻)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길이는 61km이지만 폭은 1~6km 밖에 되지 않는다. 평균 깊이는 55m이고 가장 깊은 곳은 81m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 양쪽으로 나눈다. 트로이 전쟁의 무대였던 고대의 트로이아는 해협의 서쪽 입구 아시아 쪽에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와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을 위해 이 해협을 건넜다. 비잔티움 제국에게 이 해협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전략요충지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 트로이도 동안(東岸)에 위치하여 번영을 누렸고, 그 이후에도 이 해협은 흑해 연안의 식민도시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상업상의 요로(要路)를 이루었다.[7]
이스탄불[편집]
이스탄불(튀르키예어: İstanbul)은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이다. 행정 구역상 이스탄불주에 속해 있다. 터키 서부에 있고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역사, 상업적인 중심지는 유럽 지구에 있으며 인구의 1/3은 아시아 지구에 거주한다. 위도는 북위 약 41도로, 한여름 평균 기온은 섭씨 29도, 한겨울 평균 기온은 4도이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 이후로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 2015년의 인구는 14,025,646명이다. 이스탄불은 2010년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고, 2012년 유럽의 스포츠 수도로 지정되었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스탄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사라이부르누(Sarayburnu)에 기원전 667년경에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로, 이스탄불은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동양과 서양이 이어져 만나는 곳으로,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실크로드의 가장 서쪽이며 바스라와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이스탄불은 또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거의 1600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다. 오랫동안 로마 제국(330년~1204년, 1261년~1453년)의 수도였고, 잠시 라틴 제국(1204년~1261년)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Konstantinoúpolis; 라틴어: Constantinopolis)의 함락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1453년 ~ 1922년)도 수도로 정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터키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이스탄불로 개칭당하고, 앙카라로 천도하면서, 수도로서의 역할은 끝났다.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후 1923년 수도를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에 있는 도시 앙카라에 내주게 됐다. 이로써 이스탄불은 1600년 만에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터키 최대 인구의 상업 도시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이스탄불은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쓰였고, 서구에서는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1924년에 와서야 이스탄불은 이 도시를 가리키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에 이스탄불은 현대화된 도시로 탈바꿈했다. 광장, 대로, 길이 새로 건설됐다. 1970년대부터 아나톨리아 지방의 농촌인들이 이주하면서 이스탄불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다. 도시 외곽에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8]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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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마르마라해〉, 《위키백과》
- 〈보스포루스 해협〉, 《위키백과》
- 〈다르다넬스 해협〉, 《위키백과》
- 〈이스탄불〉, 《위키백과》
- 〈마르마라 해〉, 《요다위키》
- 〈마르마라 섬〉, 《요다위키》
- 〈마르마라해(MarmaraDenizi)〉, 《네이버 지식백과》
- "Marmara Adası", Vikipedi
같이 보기[편집]
아나톨리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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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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