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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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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30일 (일) 14:34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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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위치
바실리카타주 위치

바실리카타주(이탈리아어: Basilicata)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주이다.[1]

개요

바실리카타주의 면적은 9,995km², 인구는 572,693(2016)명이다. 풀리아주 캄파니아주 칼라브리아주와 인접해 있다. 주도는 포텐차이다. 포텐차현(縣)과 마테라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루카니아라고 불리던 지방이며, 중세 시대에는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다. 비교적 최근까지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지역으로 북부나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으나 최근 개발이 진행되어 농토가 개간되고 각종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이곳은 1993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동굴마을 '사시 디 마테라'로 유명하다. 카를로 레비가 쓴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의 무대가 된 곳이며 2차대전이 끝나고 한참 지난 1970년대까지도 이탈리아 남부의 빈곤 문제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동굴집의 사정은 매우 열악하여 방 하나에 커다란 침대를 놓고 온 가족이 자는 수준이었다. 1990년대 이후 거주자가 모두 사라지면서 관광지로 변모했다.[2][3]

자연환경

이오니아해에 딸린 타란토만과 지중해에 딸린 티레니아해 사이의 좁은 지역에 위치한다. 아펜니노 산맥의 지맥이 뻗어 있어 산지가 많고 평지는 좁다.

고대에는 루카니아라고 불렀으며, 중세 초기로 접어들자 비잔틴 세력의 거점이 되었다. 불모의 산악 지대인데다가 해안은 말라리아가 많은 늪지대였으나, 1950년 이후 간척·댐 건설·산림식수·토지개량 사업을 벌여 비옥한 농업지대로 바꾸어 놓았다.

역사

고대 로마가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대한 지배는 비잔틴제국(330/339~1453)과 롬바르드왕국(랑고바르드왕국,568~774)과의 경쟁으로 이어지지만 롬바르드왕국(랑고바르드왕국)이 멸망한 이후 비잔틴 제국의 속주로 남게 된다. 이탈리아의 남부지역은 비잔틴제국 계열, 롬바르드 계열, 이슬람계열의 소국들이 있었는데 이슬람계열은 성지순례를 한다 면서 이탈리아 남부지역 1017년 상륙한 노르만인에 의해 1070년경에 우선 사라지며 이후 롬바르드 계열도 사라지고, 비잔틴제국 계열의 소국들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면서 시칠리아왕국이 된다,

이탈리아 남부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비잔틴제국의 속주형태로 유지하다가 노르만인에 의해 지배를 받은 이후로 지역주민의 정체성을 잃게 되어 산업화 발전에도 뒤처지면서 현재까지도 경제력이 좋지 못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지역에는 동로마제국 계열의 아말피 공국, 가에타 공국, 나폴리 공국, 소렌토 공국, 롱고바르디아, 카테 파네테가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도시 아말피를 중심으로 존속했던 사실상의 독립 국가로 원래 아말피 시와 그 인근 지역은 귀족들이 관리했던 대 두카투스 네아폴리타누스의 일부였으나, 스스로 비잔틴 제국의 가신에서 벗어났고, 958년에 첫 공작을 선출하였다. 아말피 공국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나라 피사, 베네치아, 제노바같은 이탈리아 북부의 해양 공화국들이 이들을 뛰어넘어서 대등해지기 전까지 지중해이탈리아 무역을 독점했던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073년에 아말피는 자치권을 상실하고 1137년에 노르만인들이 세운 시칠리아왕국(1130~1816)에 정복을 당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가에타 공국은 남부 이탈리아 해안 도시인 가에타를 중심으로 한 초기 중세 국가로. 9세기 초에 롬바르드와 사라센의 침략으로 지중해와 반도에서 비잔틴 세력이 뒤처지면서 지역 공동체가 자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778년에 이곳은 시칠리아의 귀족이 캄파니아지역을 침략한 사라센인에 대항하는 지휘본부였다.

가에타공국의 첫번째 공작인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틴제국과 밀접하여 849년 오스티아 전투에서는 이슬람 해적들에 맞서 교황과 힘을 합쳤기에, 그의 아들 마리누스와 함께 가신인 도시빌리스 1세에 의해 폐위를 당하게 되었다. 도시빌리스 왕조는 당시 가장 능력이 있었던 모든 권력과 동맹을 통해 가에타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였기에 때로는 이웃 기독교인에 맞서 사라센인들과도 힘을 합쳤기에, 거대한 궁전을 건설하고 도시의 명성과 부를 크게 증가시켰다. 가에타는 가릴리아노 전투에서 그들의 깃발 아래 싸운 10세기 중반까지 명목상 비잔틴제국에 충성을 유지했으며, 도시빌리스 왕조가 성공한 것은 나폴리공국(661–1137)지배에서 가에타가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도시빌리스 2세 (933~954년 사망)가 공작 칭호는 933년에 처음 받고서, 이 당시 가에타는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후에는 폰디(Fondi)라는 명칭의 공작의 지위가 이어지면서 약화되어 962년에 가에타는 카푸아의 롬바드르 왕자(Pandulf Ironhead)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976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오토 2세와 교황이 가에타의 종주국으로 인정한다.

마리누스 2세(978~984)시절에는 가에타 공국과 그 주변지역과 분할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국력이 쇠퇴했으며, 1012년에 왕위계승위기로 인해 더욱 약화되다가 가에타는 1032년에 아베르사(노르만인이 점령)에 의해 정복되어 1064년까지 지배를 당한다.

1064년부터는 노르만인들이 지배하여 공작지위를 이어받다가 마지막 가에타 공작인 리처드 3세가 1135년에 시칠리아에게 넘기겠다고 하였다가 1140년에 죽으면서 가에타는 시칠리아왕 루제루 2세(1095, 시칠리아백작1105, 시칠리아왕1130~1154)에게 넘어가게 된다.

나폴리 공국은 7세기에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는 동안 정복하지 못한 축소된 해안 지역에서 7세기에 구성된 비잔틴제국 속주로 시작되었는데, 군사령관에 의해 다스려졌지만, 661년 사실상의 독립 국가가 되었다. 나폴리는 노르만인이 이탈리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난 마지막 이탈리아 남부 국가였는데, 카푸아, 살레르노, 베네벤토와 같은 롬바르드 계열의 공국이 몰락한 후에도 살아남았고, 아말피, 가에타, 소렌토 같은 동로마계열 공국이 함락된 뒤에도 살아남았다. 1137년에 노르만인으로 1127년에 아풀리아 칼라브리아의 공작위를 넘겨받고 1130년에 시칠리아의 왕으로 선포했던 시칠리아왕 루제르 2세(1095, 시칠리아백작1105~1130, 시칠리아왕1130~1154)에게 항복해야 했다. 시칠리아왕국(1130~1816)은 1816년에 나폴리왕국(1282~1816)과 합쳐서 양시칠리아왕국(1816~1861)이 된다.

소렌토 공국은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고대 국가로, 수도인 소렌토의 영토에는 소렌토 반도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소렌토는 7세기에 나폴리 공국(661–1137)의 영토로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여전히 비잔틴 제국의 일부였는데, 이후 나폴리는 비잔티움으로부터 사실상 자치권을 갖게 되었고, 839년 소렌토는 다시 나폴리로부터 사실상 독립을 얻었으나, 둘다 명목상 비잔틴 속주로 남아 있었다.

주변 국가인 롬바르드 계열의 베네벤토 공국(571~1077)과 지속적인 전쟁을 치렀지만, 나폴리 공국(661–1137) 또는 아말피 공국(958~1137)의 지원 덕분에 저항할 수 있었다. 소렌토 통치자는 절대 군주도 세습 군주도 아니었고, 국민이 선출했지만 1072년 동로마계열의 나폴리 공국(661–1137)에게 권력이 넘어간 이후 롬바르드 계열의 살레르노공국(841~1077)에게 넘어갔다가, 1077년 노르만인으로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여 풀리아 칼라브리아 공작인 로베르 기스카르의 동생으로 시칠리아 백작인 루제르 1세가 살레르노공국을 함락하여 소렌토공국도 노르만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롱고바르디아는 바리를 수도로 하는 현대 이탈리아의 아풀리아 지역과 바실리카 타 일부를 포함 하는 속주(테마)를 가리키며 정확한 기원과 진화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고 있으며, 이탈리아 반도 문제에서 거의 완전히 부재한 100년 후, 비잔틴제국은 바실리우스 1세 (867~886 재위) 치하에서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달마티아에 대한 비잔틴 지배력 확립,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 대해 비잔틴 통제권을 다시 한번 확장하는 과정에서 오트란토는 873년 사라센에서 빼앗었고, 876년 비잔틴은 871년 프랑크 카롤링거왕조 왕 루이 2세(825,공동왕844~855,단독왕855~875)에 의해 사라센 통치자들로부터 점령되었던 바리를 점령했다,

롱고바르디아(Longobardia)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롬바르드가 통제하는 영토에 대한 비잔틴 용어로, 9세기와 10세기에는 이탈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롱고바르디아의 테마로 알려진 비잔틴 군사-민간 지방(또는 thema)의 이름이기도 했다.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왕국(랑고바르드왕국, 568~774)과 “롬바르드 계열”의 베네벤토(577~1053), 스폴레토(570~1201), 살레르노(851~1077) 및 카푸아(861~1139)의 롬바르드 공국, 비잔틴제국 계열의 도시 국가인 나폴리공국, 가에타 공국 및 아말피공국과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구성했다.

880년대 중반에 장로 니케포로스 포카스(Nikephoros Phokas the Elder)와 그의 후계자들은 비잔틴제국 통제 하의 지역을 크게 확장하여 칼라브리아, 아풀리아, 바실리카타를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4]

산업

공업 분야에서는 메탄가스전의 발견에 힘입어 화학 공장과 제분공장 등이 들어섰다. 주요 농산물은 밀·포도·올리브 등이며, 양·염소·돼지·젖소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바실리카타주〉, 《위키백과》
  2. 바실리카타주〉, 《네이버 지식백과》
  3. 바실리카타〉, 《나무위키》
  4. 연우, 〈바실리카타주〉, 《네이버 블로그》, 2023-07-19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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