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구로구(九老區)는 서울특별시 남서부에 있는 구이다. 1980년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었으며 제조업 중심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이 2000년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북쪽으로는 양천구와 영등포구, 동쪽으로는 동작구와 관악구, 서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남쪽으로는 금천구, 경기도 광명시와 접한다. 1995년 3월 1일에 남쪽 지역이 금천구로 분리됨에 따라 현재의 지형을 이루었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구로동에서 이름을 얻었다.[1]
개요
구로구 이름은 구청 소재지인 구로동에서 유래되었다. 9명의 장수한 노인이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에서 구로(九老)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풀이한다. 이 이름은 1789년 《호구 총수》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이외에도 구로동의 자연부락 이름인 '구루지'를 한자화하여 이름 붙였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서울특별시의 남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48´ 60˝~126˚ 54´ 14˝,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27´ 65˝~37˚ 30´ 69˝에 위치한다. 동서 간 거리는 8.0㎞, 남북 간 거리는 6.7㎞이며, 면적은 20.12㎢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3.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6번째에 해당한다. 1980년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구로서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류 2동이 전체 면적의 23%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가리봉동이 전체 면적의 2%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하여 43만 2488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4.4%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0번째로 많다. 구로구를 상징하는 꽃은 목련,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비둘기이며, 구청 소재지는 구로동이다.
생활권이 안양천을 경계로 동쪽은 영등포권, 서쪽은 부천시, 부평권으로 갈라져 있다. 그러나 구로구 서부의 개봉동은 광명시 광명동과 시가지 개발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광명시 동일 소생활권을 공유하고 있고, 고척동은 구로동 바로 옆인데다 광명시 - 목동 사이의 길목에 있기 때문에 부천 생활권이라기보다는 영등포 생활권이라고 보는 편이다. 천왕동도 생활권이 부천시보다 광명시 광명동 쪽에 가깝다. 부평, 부평구/역사 항목에도 작성되어 있듯이, 구로구 서부는 원래 부평도호부에 속해 있었다. [2][3]
자연환경
서쪽에 와룡산(114m)이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에 매봉산(108m)이 양천구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도림천이 영등포구와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구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안양천과 합류하고, 남쪽으로는 목감천이 경기도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구로구로 유입되는 안양천과 합류한다. 안양천을 기준으로 동부와 서부의 지형이 다소 상이하여 도림천과 안양천 사이의 동부에는 두 하천의 범람원이 형성되어 해발고도 50m 이하의 저평한 지대에 충적지가 넓게 펼쳐쳐 있다. 서부에는 남서쪽에 굴봉산(145m)·개웅산(125m) 등의 구릉성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서쪽으로는 김포 준평원이 전개된다. 지질은 대체로 서부에 선캄브리아 시대의 호상편마암이 주로 분포하고, 중부에는 중생대의 화산암류, 동부에는 충적층이 두드러진다.
한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편서풍대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 기온은 13.3°C, 1월 평균기온은 0.4°C, 8월 평균기온은 26.5°C이며, 연 강수량은 1,212.3㎜ 내외이다. 연평균 일 최고기온은 17.8℃, 연평균 일 최저기온은 9.2℃로 연평균 일교차가 8.6℃로 나타난다. 식물의 성장 가능 기간은 267.6일로 서울시 평균(268.5일)보다 1일가량 짧다. 연평균 강수량은 1349.3㎜로 서울시 평균(1387.0㎜)보다 40㎜가량 적으며, 연평균 강수량의 60% 이상이 여름철에 집중하는 하계 다우형이다.
역사
구로구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서초구 원지동의 지석묘군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도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터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대국가로서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 제국을 병합하여 삼국 중 하나인 백제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쟁패가 계속 이어졌다.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 남하정책을 펴면서 한강 유역을 공략하여 석현성과 관미성 등 10여 성을 함락하고 이어 백제 서해안을 공격하여 58개 성을 취하였다. 이어 장수왕 때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 장악하였고, 이 일대에 잉벌노현(仍伐奴縣: 지금의 시흥시와 광명시 지역), 율목군(栗木郡: 지금의 과천시 지역), 주부토군(主夫吐郡: 지금의 구로구 안양천 서쪽 일대)을 설치하여 80여 년간 다스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고구려·백제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력이 고구려와 백제를 잇는 수직 라인과 신라와 당을 연결하는 수평라인이 서로 대립되었고, 당나라 세력을 이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신라는 신문왕대에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로 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한주(漢州)로 개칭하였다. 이때 잉벌노현은 곡양현(穀壤縣)과 장구현(獐口縣)으로, 주부토군은 장제군(長堤郡)으로 바뀌어 구로구의 안양천 동쪽 지역인 곡양현은 율진군(栗津郡)에, 서쪽 지역은 장제군에 각각 소속되었다.
후삼국시대 ‘구로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는 각 지역에 호족세력들이 건재하였는데 한강유역 일대에는 왕규(王規)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였고,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인 금주 강 씨(衿州 姜氏 혹은 衿川 姜氏) 세력과 풍덕 유 씨(豊德 柳氏) 세력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규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금주 강씨는 금천구와 구로구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풍덕 유씨 세력들은 한강 하류의 마포 서쪽 지역 일대에 웅거하고 있었다.
고려 건국 후 구로구 지역은 금주(衿州)로, 율진군은 과주(果州)로, 장구현은 안산현(安山縣)으로 바뀌었다. 995년(성종 14) 고려의 행정구역을 5도로 나누면서 관내도(關內道)에 예속되었고, 금주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으로 단련사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혁파하였다. 1018년(현종 9) 다시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경기도의 수주현(樹州縣)이 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수도를 한강 북쪽의 한양으로 옮기고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1394년(태조 3) 먼저 경기도를 좌·우도로, 양광도를 충청도로, 강릉 교주도를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 도로 바꾸었는데 이때 구로구는 경기좌도 과천군(果川郡)에 소속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금주를 금천현(衿川縣)으로 개명하고 현감(縣監)이 두어졌다. 이후 1795년(정조 19)에는 금천현 지명을 시흥현(始興縣)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안양천 서쪽 지역은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에 소속되어 있는 수탄면(水呑面)이었다. 그 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인천부 시흥군으로 승격되었고, 수탄면 일대는 부평군이 되었으며,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됨에 따라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전통적인 지방제도와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행정 구역의 개편을 시도하여 1914년 지방제도를 12부 317군에서 12부 220개 군으로 폐지 혹은 통합하였다. 이때 경기도 시흥군 북면과 동면, 그리고 계남면으로 불렸으며, 1936년 시흥군 북면의 일부 지역은 경성부로 편입해 영등포 출장소에서 행정을 담당하였다. 당시 북면 지역은 도림리와 구로리, 동면은 독산리·가리봉리·시흥리, 계남면은 고착리·오류리·개봉리·궁리·온수리·천왕리·항리 일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해방 이후에도 경기도 시흥군과 부천군에서 분할, 소속되어 있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다. 이때 서울시의 영역을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10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는데 구로구의 동부 지역인 가산과 시흥리 일대는 영등포구 관악 출장소 관할에 속하였고, 서부 지역은 오류 출장소 관할에 들어갔다. 관악 출장소에서는 독산동·시흥동·가리봉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고, 오류출장소에서는 고척동·개봉동·오류동·궁동·온수동·천왕동·항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이후 1980년 4월 1일 구로동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영등포구의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 등 남부지역을 나누어 구로구를 신설하였다. 당시 구로구에 편입된 지역은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 시흥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온수동, 궁동, 천왕동, 항동과 신도림동 일부 지역이었다. 1995년에는 금천구가 분구되어 독산동, 시흥동, 가리봉동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구로구에는 10개의 법정동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풍부한 노동력과 물줄기, 그리고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1970년대 말 공업단지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많은 공장이 유치되었으나 인구가 밀집되고 공해가 발생됨에 따라 공업단지를 이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기계 공구상가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산업구조 재편으로 최대의 첨단 벤처타운이 조성되어 있다.[4]
산업
정보통신업과 사업서비스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고, 제조업도 비교적 활발하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13조 8167억 원으로 서울시 전체 GRDP의 3.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0번째로 비중이 크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정보통신업(2조 9791억 원)이 23.4%로 가장 크고, 이 밖에 사업서비스업(17.6%), 도소매업(14.4%), 제조업(10.3%), 부동산업(8.6%) 등의 순이다. 정보통신업의 부가가치는 서울시 정보통신업 총 부가가치의 6%를 웃돌아 25개 구 가운데 8번째로 비중이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3만 8553개로 서울시 전체 사업체의 4.7%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7번째로 많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업체(1만 2100개)가 31.4%로 가장 많고, 이 밖에 운수업체(12.7%), 숙박·음식점 업체(12.1%), 제조업체(9.5%),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6.8%) 등의 순이다. 전체 사업체의 약 60%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가 입지한 구로동에 분포하며, 개인 사업체가 약 73%,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79%를 웃돈다. 사업체 종사자는 21만 8070명으로 서울시 전체 종사자의 4.2%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0번째로 많으며, 도소매업 종사자(18.5%)가 가장 많다.
제조업은 1960년대에 국내 첫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이 3개 단지로 조성되어 수출을 견인하면서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에 가발·섬유·봉제, 1970~1980년대에는 석유화학·기계·전자 등의 경공업을 위주로 하다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2000년대 이후 IT 제조·소프트웨어·유통·서비스업 등의 첨단 지식정보산업 중심으로 전환하여 명칭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경하였으며, 금천구의 분구에 따라 2~3단지가 금천구 가산동에 속하여 구로디지털단지(1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밖에 온수동과 부천시 역곡동 일원에 서울 온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18년 제조업의 부가가치(1조 3101억 원)는 서울시 제조업 총 부가가치의 8%를 웃돌아 금천구·강남구·성동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전통시장은 구로동에 구로시장·남구로 시장, 고척동에 고척근린시장, 개봉동에 개봉중앙시장, 가리봉동에 가리봉 시장, 오류동에 오류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이 밖에 유통 업체로는 1700여 개소의 공구점이 모여 있는 구로동의 구로기계 공구상가 단지를 비롯하여 백화점 1개소, 대형 할인점 4개소, 쇼핑센터 1개소, 기타 대규모 점포 17개소 등이 있다. 2018년 도소매업의 부가가치(1조 8384억 원)는 서울시 도소매업 총 부가가치의 약 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1번째로 비중이 크다.
교통
구로구 주요 도로로 경인로와 남부 순환로, 서부간선도로가 있으며, 중심지역이 경인로와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을 따라서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로구는 안양천을 경계로 동부와 서부로 나뉘는데, 관내에 이 동서를 잇는 교량이라곤 경인로의 고척교와 남부 순환로의 안양교(안양교는 구로와 광명시를 잇는 교량이다.
도로 교통은 국도 1호선의 일부인 서부간선도로가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을 기점으로 하여 구로구를 거쳐 금천구의 소하 분기점까지 이어지고, 강서구 방화구를 기점으로 하는 남부 순환로가 구로구를 거쳐 강남구 수서동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금천구 시흥동에서 구로구를 거쳐 영등포구 대림동까지 이어지는 시흥대로를 비롯하여 경인로(인천시 미추홀구~구로구~영등포구)·가마산로(경기도 광명시~구로구~영등포구)·서해안로(경기도 시흥시~개봉동)·안양천로(광명시 소하동~구로구~강서구)·부일로(인천시 부평구~오류동)·고척로(오류동~고척동)·디지털로(광명시 철산동~구로구~영등포구)와 광남로·도림로·도림천로 등이 구로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경기도 동두천시의 소요산역을 기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구로구의 신도림역~구로역~구일역~개봉역~오류동역~온수역을 거쳐 인천역까지 운행하고, 구로역에서 광명역·서동탄역·신창역 방면의 노선이 분기한다. 서울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수도권 전철 2호선이 구로구의 구로디지털단지역~대림역~신도림역을 경유하고, 신도림역에서 도림천역을 거쳐 까치산역까지 운행하는 신정지선이 분기한다. 이 밖에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역에서 인천시 석남역까지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 7호선이 구로구의 남구로역과 천왕역~온수역을 거쳐 간다. 신도림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2호선·7호선이 접속하고, 대림역에서 수도권 전철 2호선과 7호선, 온수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7호선이 각각 접속한다.
관광
항동 일대의 10만여㎡ 부지에 항동 저수지와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조성된 푸른 수목원에서 허브원·암석원·미로원·영국 정원·프랑스 정원·원예체험장 등 25개 테마원에 식재된 2100여 종의 다양한 식물과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에 항동 기찻길이 연계되어 서울에서는 드물게 철길을 따라 걷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궁동 저수지 일대에는 궁동생태습지원이 조성되어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연못과 수변데크·정자 등이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내고, 공원 내에 조선 선조의 일곱째 딸로 궁동에서 살았던 정선옹주 묘역이 있어 역사적 정취를 더한다. 고척동에는 국내 첫 돔구장으로 건설된 고척스카이돔이 2015년에 개장하여 프로야구 경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장으로 사용되어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봄이 되면 구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안양천 둔치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안양천 벚꽃길, 겨울이면 신도림동의 안양천에 조성되어 튜브 눈썰매와 빙어잡이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안양천 튜빙 눈썰매장, 드론·코딩·VR(가상현실)·3D 프린팅 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G밸리 4차 산업 체험센터, 2015년에 문화 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된 구로동의 남구로 시장, 천왕산 근린공원 가족캠핑장 등의 명소가 있다. 먹거리 명소로는 구로디지털단지 인근의 깔깔 거리, 신도림역 인근의 국제음식문화거리가 있다. 걷기 명소로는 안양시 석수역을 기점으로 안양천과 한강을 따라 강서구 가양역에 이르는 서울 둘레길 제6코스인 안양천 코스가 구로구를 경유하며, 산림형·도심형·하천형의 9개 코스 총 28.5㎞에 이르는 구로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교육
조선 시대에 부평도호부에 속하여 부평향교가 구로 지역의 공공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은 1930년 경기도 부평군 계남면 오류리(지금의 구로구 오류동)에 설립된 오류 강습회가 구로 지역의 첫 근대 학교로 기록되며, 이후 오류 심상소학교·사립 오류 학교 등의 변천을 거쳐 1943년 오류 공립 국민학교로 개교하여 지금의 서울 오류 초등학교로 이어진다. 1946년에는 시흥군 북면 구로리(지금의 구로구 구로동)에 문창 공립 국민학교 구로 분교장이 설립되어 1950년 구로 국민학교로 승격된 뒤 지금의 서울 구로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이 학교에서 지금의 서울 구로남 초등학교·서울 동구로초등학교·서울 신구로 초등학교·서울 신도림초등학교 등이 분리되었다. 이밖에 1967년 지금의 서울 고척초등학교와 서울 영일초등학교, 1971년 서울 개봉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중등 교육기관은 1952년 경기도에 설립된 고려공과 기술학교를 모태로 하여 1957년 영등포구에 고려 공과 학원이 설립되었고, 이후 한국 고등기술학교를 거쳐 1964년 유한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1966년 항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1961년 숭덕 중학교(지금의 구로중학교)가 개교하였고, 1966년 중구에 설립된 한광상업 전수학교가 구로여자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어 1991년 궁동의 현 위치로 옮긴 뒤 구로 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등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예림디자인고등학교로 이어진다. 이 밖에 1969년 오류 여자중학교(지금의 경인중학교), 1974년 우신중학교, 1975년 오류중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고등교육기관은 1914년 경기도 강화군에서 개교한 성미카엘신 학원이 인천·청주를 거쳐 1961년 항동의 현 위치로 이전한 뒤 1994년 성공회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른다. 2019년을 기준하여 교육기관은 대학교 2개교(성공회대학교·서울 한영대학교)와 전문대학 1개교(동양미래대학교)를 비롯하여 고등학교 14개교, 중학교 12개교, 초등학교 26개교 등이 있다. 학생 수는 5만 4659명으로 서울시 전체 학생의 2.8%를 차지한다.
문화재
- 여계묘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0호
- 류순정·류홍부자묘역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2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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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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