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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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하(Kra Canal) 또는 끄라운하는 태국에서 기획하여 건설하려는 운하이다. 태국운하(Thai Canal)라고도 부른다. 크라운하는 태국 남부의 크라지협(Kra Isthmus)을 가로질러 태국만과 안다만해를 연결하는 운하에 대한 여러 제안 중 하나이다. 운하는 통행량이 많은 무역로를 통해 여행 및 운송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1]
개요[편집]
태국 남쪽에는 태평양-인도양을 잇는 말라카해협이 있다. 하지만 말라카해협을 거치는 항로는 해적이 창궐하고 길쭉한 말레이반도를 돌아가야 하며, 워낙 많은 물동량에 교통도 혼잡한 데다가 너무 좁고 수심도 얕아 대형선이 지나가기엔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닌 등 여러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국 측이 크라운하를 뚫으면, 유럽과 중동에서 동아시아를 오가는 상선들이 1,200km의 항해 거리를 절약할 수 있다. 철도와 항공, 차량에 비해 속도가 느린 해운에서 이 정도 거리는 상당히 큰 차이이다. 크라지협의 폭은 가장 좁은 곳이 44km 밖에 되지 않으나 이 구간의 가장 높은 해발고도는 75m이다. 참고로 파나마운하의 경우 길이는 77km이나 가장 높은 곳은 가일라드 컷의 64m이고, 수에즈운하의 경우 길이는 훨씬 긴 192km에 이르나 구간 전체가 평지를 통과한다.
역사[편집]
태국에서 크라지협에 운하를 뚫겠다는 발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다. 심지어 아유타야 왕국 시대부터 있던 이야기이다. 수에즈운하를 뚫은 레셉스가 탐사를 나서려 했으나 태국 왕실에서 막기도 했다. 1800년대에는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이나, 싱가포르의 가치를 높이려는 영국이 반대해 운하 건설을 막았다.
19세기 초에 영국 동인도회사는 운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63년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후, 크라 하구 반대편 빅토리아 포인트를 최남단으로 하여 탐사가 수행되었지만 이번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1882년 수에즈운하의 건설자인 페르디난드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이 지역을 방문했지만 태국 국왕은 그에게 자세한 조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1897년 태국과 대영제국은 싱가포르 항구의 지역적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하를 건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1946년 태국과 영국은 영국-태국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양국 간의 전쟁 상태를 종식시켰다. 조약에서 이루어진 많은 양보 중 조항 중 하나는 태국이 영국 정부의 허가 없이 크라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파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 더 이상 영국이 크게 방해할 명분도 없어졌고,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가 더욱 발달하고 말라카해협의 물동량이 늘자 점점 더 가치가 높아졌다. 송유관을 놓자는 생각도 있다. 운하 건설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1993년부터 크라지협을 가로지르는 화물용 도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큰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나 항구의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44번 국도는 아직 바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철도와 송유관을 위한 공간을 남기기 위해 차선 세트가 150m 떨어져 있다.[2]
추정[편집]
크라운하 건설 시 거리는 짧으나 지형이 높아 땅을 많이 깎아내려야 하는 게 문제이다. 루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짧은 코스일 경우 거리는 44km밖에 안 된다. 문제는 높이가 75m나 된다는 것이다.
한 계획에서는 총연장은 120km이고, 총사업비는 2004년 당시 23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또 2014년에는 중국 자본이 크라운하의 건설에 대한 지원 계획을 추진하면서 사업비 1,200억 위안(약 21조 원)의 사업비, 5년의 공사 기간을 추산했다.
크라운하를 통과하면 말라카해협을 거치는 것보다 뱃길은 1,200㎞, 항해기간은 2∼5일 줄일 수 있다. 대형 유조선이면 1차례 운항에 23만달러(약 3억 9천만 원)를 절약할 수 있다.
현황[편집]
태국 탁신 총리가 적극적으로 크라운하 건설을 추진했으나 엎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들어서 태국은 말라카해협의 이용자(한국, 중국, 일본)에게 투자 제안을 던지기도 하였다. 다만, 태국 정세의 불안정성 탓에 프로젝트 추진이 어렵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에 운하가 나타나면 아직까지도 활동하는 태국 남부의 이슬람 말레이계 분리 운동의 준동을 통제하기 더 어렵다.
이후 2015년 중국과 태국이 운하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보도되었다. 허나 중국이 크라운하의 건설을 지원하기로 한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말라카해협에 대한 우회로가 될 수 있는 크라운하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봉쇄망이 뚫릴 수 있다는 관점이다. 중국은 운하 건설에 소요되는 공사비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대신, 일정 기간의 운하 운영권을 태국에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크라운하와 관련된 태국과의 양해각서에 자국이 서명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상기한 보도를 부인했다.
경제 효과[편집]
크라운하는 국지적으로 말라카해협을 경유하는 데 비하여 운송 경로를 다소 단축하고 해적 행위로부터 안전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끼고 도는 경로를 대체하는 수에즈운하나 남아메리카 대륙을 끼고 도는 경로를 대체하는 파나마운하와 같이 극적으로 운송경로를 단축시키는 데 비할 바는 아니다. 수에즈운하가 19세기에 이미 완성됐고, 파나마운하도 20세기 초에 이미 완성됐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개통에 따른 가치가 충분하다면 지금보다 경제적, 기술적 역량이 부족했더라도 얼마든지 운하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21세기에 이르러 경제적 기술적 역량이 개선된 지금도 크라운하의 추진이 지지부진한 원인은 미약한 경제적 효과도 있지만 싱가포르, 영국의 반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크라운하가 실제로 건설될 경우 인근 지역에서의 경제적 득실 차이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말레이반도[편집]
말레이반도(말레이어:Semenanjung Tanah Melayu)는 동남아시아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반도이다. 북동부와 중앙부는 태국, 북서부는 미얀마, 남부는 말레이시아가 각각 위치한다. 최대 너비는 말레이시아의 페라강(江) 어귀와 콸라트렝가누를 연결하는 지점으로 약 300km, 가장 좁은 곳은 타이의 크라 지협(地峽)으로 약 50km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한 지맥(支脈)이 남북으로 뻗어내려 반도의 골격을 이루며, 특히 말레이시아 북부에서는 몇 줄기의 산계로 갈린다. 최고점인 타한산(2,190m)도 여기에 있다. 동쪽으로는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보르네오섬, 서쪽으로는 믈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수마트라섬이 놓여있다.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있는 반도(半島) 지역으로 말레이시아 반도라고도 부르며 아시아 대륙, 유라시아 대륙 본토의 최남단이다. 주변국인 태국 남부와 인접하여 북쪽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와도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바다 건너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동쪽으로 바다 건너 보르네오 섬의 사바-사라와크 지역도 관할하고 있다. 실제로 말레이 반도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일부로 인도차이나의 반도로서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말라카해협을 제어할 수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대항해시대가 개막된 후 일찍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네덜란드 등 열강이 찝적거렸던 땅이며 결국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지역이 프랑스가 장악하여 지배하고 주변의 인도네시아 제도를 네덜란드가 장악하여 지배하게 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 인도네시아 섬지역과 함께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하게 되면서 말레이 반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때 싱가포르와 하나의 국가였을 때나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연방에서 탈퇴하여 자치독립을 이루게 되는 등 변화도 있었다. 지리적으로 남중국해와 인도양 사이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들 바다의 경계선 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인도차이나 반도와 함께 동남아의 중심지역으로 손꼽히기도 한다.[3]
말라카해협[편집]
말라카해협(Malacca Strait)은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 남부 서해안과 수마트라섬의 동해안 사이에 있는 해협(海峽)이다. 믈라카해협(말레이어: Selat Melaka)이라고도 부른다. 믈라카 해협은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항로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뱃길로, 세계 해상 물동량의 1/5에서 1/4 사이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바다를 통한 석유 수송의 절반 이상이 이곳을 이용한다. 특히 동아시아 나라들은 석유 공급의 90%를 이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5해리(2.8km)밖에 되지 않아 병목 현상이 심하다. 그래서 이 해협은 해적과 테러리즘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마트라섬의 화재 때문에 매년 발생하는 연무 탓에 항해가 제한받기도 한다. 말레이 반도의 크라 지협을 통과하는 운하나 송유관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만약 건설된다면, 동아시아로의 원유 수송 비용을 배럴당 0.50달러 줄일 수 있게 된다.
말라카해협은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가늘고 긴 해협이다. 말라카해협의 길이는 약 900km, 너비 65km ~ 70km에 이르며, 북서쪽 해협 입구 부근에서 약 250km로 넓어진다. 순다 대륙붕 상에 있기 때문에 평균 수심은 약 25m로 얕은 편이며, 얕은 암초와 작은 섬, 여울이 많다. 따라서 대형 선박이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이 불과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점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선박 항행이 많은 해역 중 하나이며 태평양과 함께 남중국해와 인도양의 일부인 안다만해를 최단 거리로 잇는 주요 항로가 있다. 통과 화물로 가장 많은 것은 중동산 석유와 석유 제품이다. 싱가포르 인근 필립스 수로는 폭이 2.8km로 매우 좁고, 수심도 23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항로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최대 크기는 ‘말라카 막스’(Malaccamax)라고 하고, 유조선 대형화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4]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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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