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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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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스톡홀름 위치

스톡홀름(스웨덴어: Stockholm)은 스웨덴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 도시이다. 많은 섬을 끼고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회토리예트(Hötorget)에 위치한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1912년에는 하계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였고, 1958년에는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다. 인구는 약 100만 명이며 1634년 스웨덴의 정식 수도가 된 이래 지금까지 스웨덴의 수도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1]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스웨덴의 수도
  • 면적: 118 km²
  • 언어: 스웨덴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start.stockholm/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이며 스톡홀름주의 주도로 스칸디나비아반도 내륙과 발트해 여러 을 포함하여 동부해안 남쪽의 멜라렌호와 발트해 안의 소금호수(Saltsjön) 사이에 위치한다. 스톡홀름은 다리 속의 도시(city between the bridges)라고 할 정도로 시 전체에 산재한 14개 섬이 50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스톡홀름은 바다에 면한 지정학적 위치로 시 전체 면적의 약 30%는 수로로 이어져 있다. 아름다운 풍광과 여러 섬을 거느린 도시로 종종 이탈리아베네치아와 비교되기도 한다. 스톡홀름 도시 면적의 약 30%는 녹지공간으로 공기 청정도는 유럽에서도 취리히, 코펜하겐, 비엔나에 이어 4번째로 좋은 편이다. 인구는 약 100만 명으로 스톡홀름주에는 18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수도권에는 대략 2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스톡홀름은 유럽에서도 북쪽에 위치하지만 연평균 기온은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여름기온은 12~15°C 정도이며 흔치 않게 20~25°C까지 기온이 오른다. 가을의 절정인 10월 기온은 10°C 내외로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자주 내리며 겨울인 12월부터 3월초까지 -3~3°C 수준을 유지한다. 고위도에 위치하므로 한여름에는 18시간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반면 12월에는 해가 뜨는 시간이 6시간에 불과하다.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문화와 언론, 정치 그리고 경제의 중심이다. 스톡홀름 지역만 해도 스웨덴의 국내 총생산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GDP로는 유럽에서 10위권 안에 든다. 스톡홀름 대학은 1878년에 창설되어 1960년 종합대학 지위를 받았다. 스톡홀름의 가장 오래된 구역은 감라 스탄으로, 작은 섬에 위치해 있으며, 여전히 남아있는 중세풍의 거리가 특징이다. 감라 스탄의 유명한 건물로는 큰 독일 교회(Tyska kyrkan)와 귀족원(기사원)과 본데 궁전, 테신 궁전, 옥센셰르나 궁전이 있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13세기 후반에 세워진 리다르홀름 교회(Riddarholmskyrkan)이다. 감라 스탄의 노벨 박물관(Nobelmuseet), 유르고르덴 섬의 바사 호 박물관, 스칸센, 북방민족 박물관, ABBA 박물관 등 박물관이 굉장히 많다. 북유럽답게 가격은 비싸지만 과거 유럽 역사에 흥미가 있다면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 참고로 스웨덴 역사 박물관(Historiska museet)이나 스톡홀름 중세 박물관(Stockholms medeltidsmuseum), 스웨덴 군사 박물관(Armémuseum), 스웨덴 해양 박물관(Sjöhistoriska museet) 등이 있다. 스톡홀름은 2010년에는 EU위원회로부터 유럽 녹색수도에 선정되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스칸디나비아반도 동부 연안에 위치한 스톡홀름은 발트해와 스웨덴 내륙의 멜라렌호 사이에 있다. 도시의 서부는 멜라렌호와 이어지는 큰 강줄기를 끼고 있고, 동부는 다도해 해안 형태로 발트해와 만나고 있다.

스톡홀름은 유럽 대륙의 습한 공기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다. 겨울은 춥지만, 연평균 기온은 대부분 0°C를 웃돌아 비슷한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온화한 편이다. 낮 길이는 한여름 18시간 이상에서 12월 말 6시간 정도까지 폭이 넓다. 일 년 평균 1800시간 조금 넘게 햇볕을 쬐는 이곳은 파리, 런던과 더 남쪽에 있는 유럽 몇몇 도시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는다. 7월이 가장 따뜻하고, 눈을 볼 수 있는 날은 연평균 75일에서 100일 정도이다. 여름철 기온은 평균 최고 20~25°C, 최저 약 13°C이지만, 30°C가 되는 날도 있다.

겨울은 대체로 흐리고 12월과 1월에 비나 눈이 많이 온다. 평균 기온은 -3~-1°C이며, 외곽에서는 -20°C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높았던 온도는 1811년 7월 3일 36°C, 가장 낮은 온도는 1814년 1월 20일 -32°C이며, 1987년 1월 10일 이후 겨울철 기온이 -25.1°C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연간 강수량은 531mm이며, 약 170일 정도 내리는데,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50% 더 많이 내린다. 때때로 오로라(극광)를 볼 수도 있다.[3]

역사[편집]

'스톡홀름'이라는 이름은 1252년 기록물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Stock은 통나무라는 뜻이고 holm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멜라렌호(스웨덴어: Mälaren) 상류에서 통나무를 동동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짓기로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철광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멜라렌 호와 발트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중요성 때문에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의 덴마크 왕들 사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1523년 구스타브 1세 바사(스웨덴어: Gustav Vasa) 왕이 즉위하며 중심 도시로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고, 1600년까지 인구가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17세기 스웨덴북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1634년 공식적으로 스웨덴 왕국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무역법에 따라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스웨덴의 상인들이 꼭 거쳐가야 하는 독점 무역의 핵심 무대가 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흑사병과 대북방 전쟁으로 인해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등 침체기를 맞았으나, 여전히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로서 제 역할을 다 하였다.

19세기에 들어 다시 경제적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자체 출생보다는 주로 이민에 의한 것이었다. 도시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지역들이 거주지로 개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노동집약적 공장들이 도시 내부에 생겨났으며 공업 중심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스톡홀름은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 감라스탄(Gamla Stan)과 그 남쪽의 쇠데르말름(Södermalm), 북쪽의 쿵스홀름(Kungsholmen) 및 노르말름(Norrmalm),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의 한정된 지역에만 있는 작은 도시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부터 공업 발달로 인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하여, 유르고르덴(Djurgården) 지역이 개발에 포함됐다.

20세기 초(1900~1930)에는 영국런던 근교 개발 모델을 본따 '정원 도시'를 모토로 주로 개발이 이루어져, 시 외곽의 솔나 시(Solna), 순드뷔베리 시(Sundbyberg) 등에 방대한 양의 단독 주택 형식의 주거지가 생겨나게 되었다. 때를 맞추어 시민들의 통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트램과 철도가 함께 발달하였다. 193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현대적 도시 건설을 모토로 개발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대량 생산된 형태의 공동 주택들이 많이 지어졌다. 또한 자동차가 새로운 교통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며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많은 간선 도로가 건설되었고, 이와 함께 대대적인 도심 재개발{세르옐스토르(Sergels torg)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지하철(스웨덴어: Tunnelbana 툰넬바나)로 인해 교통수단의 지형도가 새롭게 바뀜으로써 근교 지역에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상업 단지와 고층 주거가 위치하고 그 바깥에 저층 주택들이 넓게 분포하는 형태의 개발 모델이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 이후 지나친 도심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로 대규모 개발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가족 단위를 위한 표준화된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90년대 이후로는 전통적인 도시의 모습을 되찾아가면서 버려진 역들과 항구 등을 재활용하며 보다 환경친화적인 도시 쪽에 초점을 맞추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70년대 이후 IT·전자 산업에 특화해 개발된 시스타 (Kista) 지역은 북유럽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며 많은 IT 기업들이 입주하였다.[4]

경제[편집]

스톡홀름의 일자리는 서비스 산업이 대략 85%를 차지한다. 중공업이나 화석연료 발전소가 없다시피 해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대도시로 꼽힌다. 지난 10년 동안 첨단기술 분야에서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며, 대규모 고용주는 IBM,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등이다.

IT 센터는 북부 키스타(Kista)에 있고, 스웨덴 은행, 헨델스뱅크, SEB 등 은행 본사와 보험회사인 스칸디아(Skandia), 포크삼(Falksam), 트릭한사(Trygg-Hansa) 등도 있다. 증권거래소도 있으며, 직원 200명 이상 기업의 약 45%가 스톡홀름에 본사를 두고 있다.

H&M도 시내에 본사가 있다. 최근 관광 산업이 발달해 유럽에서 열 번째로 많이 찾는 방문지가 되었다.

교통[편집]

스톡홀름은 광범위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스톡홀름 메트로(Tunnelbanan)는 색깔에 따라 3개(녹색, 적색, 청색) 선으로 나뉘는데, 각각 하나 이상의 노선이 있어 실제로는 모두 7개 노선(10, 11, 14, 17, 18, 19)이 운행된다. 통근 철도는 4개 노선(35, 36, 37, 38)을 가진 국유 철도이며, 4개 경전철-트램웨이 선(7, 12, 21, 22), 북동부 지역에 협궤(891mm) 열차인 로슬락스바난 3개 노선(27, 28, 29), 동남부 지역에는 지방 철도 살트셰바나 두 개 노선(25, 26)을 운행하고 있다.

버스 노선은 다양하고 도시 내부 섬들은 유르고르덴 여객선으로 잇고 있다. 육상 대중교통 대부분(공항버스-공항 고속열차, 몇몇 상업 버스는 제외)은 스톡홀름 주의회가 전액 출자한 회사 SL(Storstockholms Lokaltrafik)이 맡아서 운영한다. 1990년대부터 대중교통 운영과 유지 보수는 현재 메트로를 운영하고 있는 MTR처럼 계약을 통해 독립 회사에 위탁하고있다. 섬을 오가는 선박 교통은 박스홀름스예트가 담당하고 있는데, 이 역시 주의회가 출자한 회사다.

스톡홀름에는 핀란드헬싱키와 투르쿠, 에스토니아 리가, 라트비아, 올란드 제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정기적으로 다니는 페리선들이 있다. 스톡홀름 제도에 있는 큰 섬들로 가는 페리는 스톡홀름 주의회가 소유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박스홀름스예트가 운행하고 있다.

스톡홀름-브롬마 공항은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약 8km 떨어져 있다. 또 스톡홀름-스카브스타 공항은 남쪽 108km 지점에 있으며 쇠데르만란드 주 수도 뉘셰핑에서 5km 떨어져 있다. 또 스톡홀름-베스트레오스 공항은 서쪽 103km에 위치해 있다.

경관[편집]

스톡홀름에는 스웨덴의 세계유산 중 세 곳인 드로트닝홀름 궁전(Drottningholm Palace), 스코그쉬르코고르덴(Skogskyrkogården)과 비르카(Birka)가 있다. 1998년에는 '유럽 문화의 수도'로 명명되었다.

옛 도시 구역인 감라 스탄에는 여전히 중세적 모습이 남아 있다. 거대한 독일 교회(Tyska Kyrkan)와 리다르후셋(Riddarhuset, 귀족의 집), 본데 궁전 등이 있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13세기 후반에 지은 교회인 리다르홀름(Riddarholmskyrkan)이다.

스톡홀름 궁전은 1697년 화재로 중세 때의 성이 파괴되자 그 자리에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세웠다. 궁전 옆 스톡홀름 주교가 있는 스토르퀴르칸 대성당은 13세기에 건립되었지만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외관을 덧씌웠다.

19세기 산업화 시대에는 베를린과 비엔나 등 대륙의 대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물이 등장했는데, 스웨덴 왕립 오페라와 스트란드베겐(Strandvägen)의 주택지 등을 들 수 있다. 20세기 들어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양식과 아르누보 경향이 강해졌다.

스톡홀름 시청은 건축가 라그나르 외스트베리(Ragnar Östberg)가 1911~1923년에 걸쳐 세운 것으로 랜드마크가 되었다. 1930년대에는 도시의 성장에 따라 모더니즘이 발전했다.

게르데트(Gärdet)와 같은 새로운 주거 지역이 생겨났고, 1950년대에는 지하철이 도입되어 교외가 새롭게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는 5개의 고층 사무빌딩을 올린 세겔스(Segels) 광장을 조성하면서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넓은 지역을 정리했다.

1980년대에는 모더니즘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교외를 스카프네크(Skarpnäck)처럼 좀 더 밀집된 지역으로 개발했다. 1990년대에는 더욱 나아가 도심에서 가까운 옛 공업지역 함마르비 셰스타드(Hammarby Sjöstad)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시 당국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공식적으로 미관 위원회(Board of Beauty)를 구성하기도 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스톡홀름〉, 《위키백과》
  2. 스톡홀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스톡홀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스톡홀름〉, 《요다위키》
  5. 스톡홀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북유럽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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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문화
북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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