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동두천시(東豆川市)는 대한민국 경기도의 북부에 있는 도시이다. 동쪽은 포천시, 서쪽과 남쪽은 양주시, 북쪽은 연천군에 맞닿아 있다. 시청을 기준으로 서울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47km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 북부 전방에 위치하여 국방 안보상 중요한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전쟁 이후 동두천시 총 면적의 39%에 주한미군이 주둔해 왔다.[1]
목차
개요
경기도의 북부 중앙, 경도상으로는 동경 127˚ 00' 37"~127˚ 09' 24",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50' 34"~37˚ 58' 50"에 위치한다. 시의 동쪽 끝과 남쪽 끝은 탑동동, 서쪽 끝은 상패동, 북쪽 끝은 하봉암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12.9㎞, 남북 간 거리는 15.3㎞이다. 면적은 95.66㎢로 경기도 전체 면적의 0.9%를 차지하여 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28번째에 해당한다. 행정구역은 8행정동(12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불현동이 전체 면적의 약 35%를 차지하여 가장 넓다.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9만 9566명으로 경기도 전체 인구의 0.7%를 차지하여 31개 시·군 가운데 연천군·과천시·가평군 다음으로 적다.
시를 상징하는 꽃은 황매화,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파랑새이다. 시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평화를 사랑하며 부지런한 습성의 소요산 다람쥐 암수 한 쌍을 모티브로 하여 동두천 시민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정신과 성실근면함을 표현한 '소람이'와 '요람이', 소요산 단풍을 모티브로 하여 동두천시의 희망찬 미래와 한 가족을 이루는 시민 공동체를 상징하는 한 쌍의 단풍요정으로 형상화한 '아롱이'와 '다롱이'이다. 시청 소재지는 생연동이다.
동두천시는 원래는 양주군 이담면 은현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동두천시로 분리 및 편입되었고, 양주 군은 2003년 양주시로 승격하여 현재에 이른다. 도시 이름의 유래는 주한미군 동두천 기지인 캠프 케이시(Camp Casey)와 턱거리 근처의 캠프 호비(Camp Hovey) 경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의 이름인 동두천에서 유래되였다.[2][3]
역사
동두천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지만 가까운 지역인 연천군 전곡리·운탄리·중리·장파리·남계리 등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손도끼·가르개·외날찍개·쌍날찍개·망치·긁개·찌르개·새김돌·석핵(石核)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동두천 지역에도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 유적 역시 발견된 바는 없지만 양주지역의 양상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지행동과 송내동에서 고인돌이 발견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에 이어 초기 철기시대는 역사적으로 삼한시대인데 이 지역은 마한에 속했으며, 마한 54개 국 중 고리국(古離國)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백제의 영토에 속했다.
고구려의 남진으로 한강의 북방은 물론 천안·아산·청주·죽령·조령을 연결하는 일대가 고구려의 세력권에 있었던 475년(장수왕 63) 경에는 고구려의 영토로서 매 성군(買省郡)·창화 군(昌化郡)으로 불렸다.
551년(성왕 29)에 나제동맹 군(羅濟同盟軍)이 한강유역을 점령했을 때는 일시 백제의 영토로 복귀되었다가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어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으로 되었다.
고려 태조 때에 이르러 내소군은 견주(見州)로 바뀌었고 995년(성종 14) 전국의 12주에 절도사가 설치될 때 동두천 지역은 해주(海州)의 우신책군(右神策軍)과 아울러 좌신책군(左神策軍)의 임지(任地)가 되었다.
1036년(정종 2)에 왕이 삼각산에 행차한 뒤 문종은 서울을 남경이라 하여 새로운 궁궐을 축조한 뒤 견주감무(見州監務)를 별도로 두기도 하였다. 그 뒤 1308년(충렬왕 34)에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되었다.
조선 건국 후 1394년(태조 3) 한양부로 도읍이 옮겨짐에 따라 주치가 아차산 남쪽 대동리(大洞里)로 옮겨지고 지양 주사(知楊州事)가 두어졌으나 곧 부(府)로 승격되었다. 1397년에 부치(府治)가 다시 지금의 양주군 주내 면으로 이전되어 양주로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466년(세조 12)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며, 이때에 이르러 사천현(沙川縣)이 폐합되었다.
사천현은 지금의 은현·동두천 일원으로 고구려 때 내을 매현(內乙買縣)이던 곳이며, 신라 때 사천으로 개칭된 이래 고려 때도 사천으로 불리어오다가 양주에 병합된 곳이다. 한편, 1504년(연산군 10)에 왕의 유행처(遊幸處)로 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목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 관제 개편 때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에도 고양주면(古楊州面)이 양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19년의 3·1운동 때 홍덕문(洪德文)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6·25 전쟁으로 미보 병 7사단이 주둔한 이래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여 근대도시로 발전하면서 1963년 이담면이 양주 군 동두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 포천 군 포천 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 읍에 편입되었으며, 1981년 7월 1일 동두천 읍이 동두천시로 승격되었다. 1983년 양주군 은현면 상패리가 이 시에 편입되었다. 1998년 동 통폐합으로 10개 동에서 7개 동으로 되었다. 2007년 송내동이 신설되었다.
2018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8개 행정동(생연 1~2동·중앙동·보산동·불현동·송내동·소요동·상패동) 12개 법정동(생연동·보산동·걸산동·지행동·광암동·탑동동·송내동·동두천동·안흥동·상봉암동·하봉암동·상패동)으로 이루어져 있다.[4]
지리
동두천시는 경기도 북단에 위치한 도시로, 서쪽은 탑동동이 포천시에 접하며, 남쪽은 상패동이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접해있다. 남쪽은 송내동이 양주시 봉양동에 접하며, 북쪽은 하봉암동이 연천군 전곡읍과 접해 있다. 면적은 동서간으로 12.9km, 남북으로 15.3km이며 총면적은 95.66km2이다.
일대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산들은 광주산맥이 태백산맥의 철령부근에서 갈라져 서울 근처에 이르는 산으로서 동두천 일대에 험준한 산지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동쪽으로는 국사봉을 주봉으로 왕방산, 해룡산이 둘러 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천보산의 회암령에서 서북으로 칠봉산이 솟아 그 지맥이 여러 갈래로 펼쳐져 남쪽으로 높고 잦은 봉우리를 보여준다. 서쪽으로는 마차산이 에워싸고 북으로 뻗으며 옥녀봉이 북계를 이루고 있다.
기후
동두천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기온 연교차가 큰 북부 대륙성 기후와 남부의 난온대 기후가 같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특히 겨울의 기온은 북서계절풍이 불어 위도에 비해 아주 낮은 기온을 보여준다. 연평균 기온이 11.7℃ 내외이고 1월 평균기온은 -3.5℃이며, 8월 평균기온은 24.4℃로 연교차가 30℃가 넘는다. 가장 추운 달과 가장 더운 달의 기온차가 매우 커서 여름철은 열대기온을 이루는가 하면, 겨울철은 한대기온을 이룬다. 여름철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의 지배로 고온이 되고, 겨울철은 한랭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저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527.3mm이고, 연평균 상대습도는 67%, 연평균 일조시간은 7.6시간이다. 평균 초설은 11월 20일경이고, 마지막 눈은 3월 20일 전후이며, 처음으로 결빙되는 시기는 10월 20일경, 얼음이 마지막으로 녹는 시기는 4월 초순으로 경기도의 평균치와 거의 같다.
산업
미군 주둔으로 인한 군사도시로 발전하여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하는 3차 산업이 중심을 이룬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2017년을 기준하여 1조 8856억 원으로 경기도 전체 GRDP의 0.4%에 그쳐 31개 시·군 가운데 연천군·가평군·양평군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전기·가스·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3840억 원)이 22.2%로 가장 크고, 이 밖에 제조업(19.2%),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8.8%),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서비스업(7.9%), 부동산업(7.8%) 등의 순이다.
2017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6388개로 경기도 전체 사업체의 0.7%를 차지하여 과천시·연천군 다음으로 적다. 사업체별로는 숙박·음식점 업체(23.0%)와 도소매업체(22.6%)가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그밖에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13.1%), 운수업(10.3%), 제조업(8.0%)의 비중이 크다. 전체 사업체 가운데 약 85%가 개인 사업체이며,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82%를 웃돈다.
사업체 종사자는 2만 8250여 명으로 경기도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0.6%에 그쳐 연천군·가평군 다음으로 적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종사자(5915명)가 20.9%로 가장 많고, 그밖에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15.3%), 숙박·음식점업(13.5%), 도소매업(12.6%), 교육서비스업(8.2%) 등의 순이다. 지역별로는 송내동(26%)·소요동(23%)·불현동(15%)의 사업체 종사자가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상업 활동은 예로부터 5일장 형태의 정기시장을 통하여 이루어져 조선 후기에 지금의 동두천 지역인 이담면에서 매달 끝자리가 5일과 10일인 날에 동도 천장(東道川場)이 섰는데, 인근의 덕정·연곡·포천 등지에서 보부상과 장꾼이 모이는 제법 규모가 큰 장이었다. 이담면과 접하는 어등산면 봉양리(지금의 양주시 봉양동)에서도 매달 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에 북도 천장(北道川場) 또는 신천장(莘川場)이 열려 동두천 지역의 상권에 속하였다. 동두천의 5일 장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3·1운동의 거사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동두천시의 전통시장은 1960년대에 형성된 생연동의 동두천 제일시장과 중앙시장·동두천 큰시장, 1993년에 개설된 세아프라자상가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되며, 동두천 큰 시장에서는 매달 끝자리가 5일과 10일인 날에 5일장이 병행된다. 이 밖에 유통 업체로는 대형 할인점 1개소와 대규모 점포 1개소 등이 있다. 2017년 도소매업의 부가가치는 727억 원으로 경기도 도소매업 총 부가가치의 0.3%를 차지하여 31개 시·군 가운데 29번째에 해당한다.
농업
산지가 많은 지형적 영향으로 경지율이 낮고, 산업화·도시화의 영향으로 경지면적과 농가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2017년을 기준하여 경지면적은 393ha로 시 전체 면적의 4.1%, 경기도 전체 경지면적의 0.2%를 차지한다. 논밭의 비중은 밭(315ha)이 80%를 웃돌아 밭농사를 위주로 한다. 농가 수는 719가구로 시 전체 가구의 1.7%, 경기도 전체 농가의 0.6%를 차지하며, 겸업농가가 약 65%를 차지한다. 농가 인구는 2020여 명으로 시 전체 인구의 약 2%, 경기도 전체 농가 인구의 0.6%를 차지한다. 경지면적과 농가 인구는 31개 시·군 가운데 25번째에 해당하며, 시로 승격한 1981년과 비교하면 경지면적은 약 47%, 농가 인구는 약 58% 감소하였다. 동두천 지역에서 생산된 농특산물은 '소요산 자연다믄'이라는 공동 브랜드로 출시된다.
식량작물은 미곡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생산량은 많지 않다. 채소류는 부가가치가 높은 시설재배를 위주로 하며, 주요 작물은 호박·가지·배추·상추·시금치·무·파 등이다. 과실류는 배와 사과를 주로 재배하는데 생산량은 많지 않다. 이 밖에 화훼류는 분화류의 호접란이 해외로 수출되는 특산물로 꼽힌다. 2017년 농업을 포함한 농림어업의 부가가치(34억 원)는 경기도 농림어업 총 부가가치의 0.1%를 차지하여 31개 시·군 가운데 24번째에 해당한다.
축산업
가축 사육 농가는 줄어드는 데 비하여 가구당 사육 마릿수는 늘어나는 규모화·전업화가 나타난다. 2017년을 기준하여 주요 축종인 한육우는 16가구 658마리, 젖소는 9가구 430마리, 돼지는 14가구 2만 1700마리, 닭은 4가구 12만 200마리를 사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시로 승격한 1981년과 비교하면 가구당 사육 마릿수는 크게 증가하였으나, 사육 농가 수가 많지 않아 경기도 전체 축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이 밖에 토끼(2가구 620마리)는 도내 사육 비중이 10%를 웃돌고, 마차산·소요산 일대의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천연벌꿀이 특산물로 꼽힌다.
임업
2015년을 기준하여 산림면적은 6354ha로 시 전체 면적의 66.4%, 경기도 전체 산림면적의 1.2%를 차지하여 31개 시·군 가운데 18번째로 넓다. 이 가운데 국유림은 1672ha, 공유림은 112ha이며, 사유림이 72%에 가까운 4570ha를 차지한다. 임상(林相) 별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입목지가 6117ha로 산림면적의 96%를 웃돌고, 이 가운데 활엽수림이 가장 많은 3014ha, 침엽수림이 941ha,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 자라는 혼효림이 2162ha를 차지한다. 주요 임산물은 도라지·하수오와 조경수의 느티나무류·회양목 등이며, 하수오(160㎏)는 도내 전체 생산량의 26%를 차지한다. 2017년 단기소득 임산물 생산액은 약 9억 원으로 31개 시·군 가운데 21번째에 해당한다.
광공업
광업은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이후까지 양주군의 회천 광산에서 고령토를 생산하였으며, 1970년대까지 동두천읍에 2개의 광업소가 있었다. 1981년 동두천시가 출범한 뒤로로 지하자원을 개발하여 1990년대까지 규석과 장석을 생산하였으며, 2016년까지 비금속광 1개소가 가행 되었다. 2017년을 기준하여 비금속광 11개소가 있으나 모두 가행 되지 않는다.
제조업은 공장입지에 불리한 산지가 많은 지역인 데다가 군사도시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발전이 더디다. 2017년을 기준하여 제조업체 수는 508개로 경기도 전체 제조업체의 0.4%에 불과하여 31개 시·군 가운데 과천시·가평군·연천군·양평군 다음으로 적다. 업종별로는 식료품(23.6%)을 비롯하여 가죽·가방 및 신발(16.3%), 섬유제품(13.6%) 등 경공업의 비중이 크고, 지역별로는 전체 제조업체의 34%가 소요동에 분포한다. 2017년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3318억 원으로 경기도 제조업체 총 부가가치의 0.2%에 그쳐 31개 시·군 가운데 25번째에 해당한다.
산업단지로는 동두천동 일원의 동두천 1·2 일반산업단지, 상봉암동 일원의 상봉암 일반산업단지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주한 미군의 평택 이전으로 인한 지역 경제 침체를 방지하기 위하여 상패동 일원에 동두천 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이 밖에 지행동에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로 동두천 싸이언스 타워가 건설되었다. 2017년을 기준하여 3개 산업단지에서 77개 업체 308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교통
서울시 외곽에서 북쪽으로 약 30㎞ 거리에 있다. 도로 교통은 국도 3호선이 경남 남해군에서 경북·충북·서울시·경기도 지역을 거쳐 동두천시의 송내동~하봉암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강원도 철원군까지 이어진다. 일반 지방도는 364호선이 파주시 문산읍에서 동두천시의 상패동·생연동·불현동을 거쳐 가평군 가평읍까지 이어지고, 379호선이 양주시 삼숭동에서 동두천시의 탑동동을 거쳐 포천시 신북면까지 이어진다. 지방도 364호선과 379호선이 생연동의 생골 사거리에서 국도 3호선과 접속한다. 시역을 지나가는 고속도로는 없으나 지방도 364호선을 통하여 인접한 포천시의 선단 나들목에서 세종 포천 고속도로(고속 국도 29호선)와 연결된다.
이 밖에 간선 도로는 의정부시에서 동두천시를 거쳐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까지 이어지는 약 68㎞ 구간의 평화로와 연천군 청산면까지 이어지는 약 37㎞ 구간의 신평 화로를 비롯하여 천보산로·강변로·삼육사로·탑신로 등이 있다. 송내동에 인천국제공항과 수서역·연천·강릉·이천·안성·포항·부산 해운대 방면으로 운행하는 동두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철도 교통은 1912년 양주군 이담면 동두천리(지금의 동두천시 동두천동)에서 동두천역이 영업을 개시하여 경원선이 서울시 용산역을 기점으로 양주 지역의 의정부역~덕정역~동두천역을 거쳐 북한의 원산 역까지 운행하였다. 동두천역은 8·15광복 후 남북이 분단되어 한동안 경원선의 남한 구간 종착역이 되었다. 이후 경원선은 1974년에 개통한 수도권 전철 1호선에 직결되어 동두천시의 소요산역을 기점으로 하여 동두천역~보산역~동두천중앙역~지행역을 거쳐 인천역·신창역·서 동탄역·광명역 등 4개 종점까지 운행한다. 2018년을 기준하여 동두천시 5개 역의 철도 수송 여객은 승차 인원 726만 6170여 명, 강차 인원 709만 1600여 명이며, 지행역 이용객이 가장 많다.
관광
소요산을 비롯하여 마차산·왕방산·국사봉·칠봉산·해룡산 등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자연경관과 역사유적, 미군 주둔지에서 비롯한 이색적 관광 자원 등을 겸비하고 있다. 소요산은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경관이 아름다워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며, 1977년 관광진흥법에 따라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소요산 관광지에는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향토 유형문화재 8),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깃든 요석 공주 별궁지, 원효대사가 수행하였다는 원효굴과 원효폭포, 조선 태조 이성계가 소요산에서 거처하였던 이태조 행궁지(李太祖行宮址) 등의 역사유적, 건강 오행로·연리지문·속리교·옥류폭포·청량 폭포·선녀탕·금송 굴 등의 명소, 잔디광장·초화원·습지원 등으로 조성된 소요산 산림욕장, 6·25전쟁 기념물인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 기념비와 노르웨이 참전기념비·현충탑·충현 탑,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요산 자동차 극장 등이 있다.
소요산을 포함하여 보산동·중앙동·소요동 일원은 1997년에 동두천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캠프 보산이라 부르는 이 일대는 미군 주둔지라는 특성을 배경으로 다민족이 어울려 다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이채로운 명소가 되었다. 다양한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거리와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어우러진 디자인 아트빌리지 & 월드푸드 스트리트, 한국 록 음악의 발원지로서 젊은 음악인들이게 창작 및 공연 공간을 제공하는 두드림 뮤직센터, 곳곳의 건물 외벽에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동서양의 다양한 기법으로 그린 그래피티 아트, 옛 기지촌의 정취가 남아 있는 양키시장(애신 시장) 등이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자연·휴양 명소로는 탑동동에 숲속의 집과 오토캠핑장·유아 숲 체험원 등으로 조성된 동두천 자연휴양림, 115m의 나선형 미끄럼틀 등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숲속 체험을 즐길 수 있는 동두천 치유의 숲, 여름에는 우거진 숲속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가을에는 타오르는 단풍으로 아름다운 탑동 계곡·왕방 계곡·장림 계곡 등이 있다. 광암동에는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쇠목계곡과 쇠 목장 승공원, 상봉암동에 카라반 캠핑과 잣나무 숲·숲속 놀이터·상상 공작소·동물농장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소요 별앤 숲 테마파크, 생연동에 도심의 힐링 공간으로 조성된 어등산 힐링 체험숲 등이 있다.
이 밖에 생연동에 천체관측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별자리 천체관측소,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생연음식문화거리, 생연로의 원도심에 추억의 거리와 테마 가로수 길 등의 특화거리로 조성되어 생연음식문화거리·양키시장·제일시장·동두천 큰 시장 등과 연계되는 두드림 5060청춘로드, 지행동에 시민평화공원, 탑동동에 조선 초기에 여진을 정벌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어유소 장군 묘역(향토 유형문화재 4)과 사당(향토 유형문화재 7) 등의 명소가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1986년부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10월 말경에 소요산 단풍문화제가 열려 시 전역과 소요산 일대에서 동두천의 대표적 역사 인물인 어유소 장군의 승전 행차 재현을 비롯하여 다양한 무대공연과 체험행사 등이 펼쳐진다. 1999년에는 한국 최초의 록 밴드인 '에드 포(Add 4)'가 결성된 한국 록 음악의 발상지를 기반으로 하여 동두천 록 페스티벌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매년 8~9월 중에 아마추어 록밴드 경연과 국내외 유명 록밴드 공연이 펼쳐져 경기도 대표 관광축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 한국예총 동두천 지회와 산하 예술 단체가 주관하는 동두천종합예술제가 11월에 개최되고, 10월에는 동두천 왕방산 MTB 대회와 천사 마라톤 대회, 4월에는 동두천 국제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린다.
민속놀이로는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하여 집을 짓는 공사 과정에서 집터를 고르고 기둥을 세울 자리의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반복적이고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기 위하여 노랫말과 곡조를 붙여 놀이화한 지경닺이놀이가 전승한다. 또한 수령 1000년의 은행나무 밑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 및 풍년을 기원하고 농악·씨름·힘겨루기 등의 뒤풀이 놀이로 마을의 결속을 다지던 행단제(杏壇祭), 행단 제의 뒤풀이로 구성된 놀이에서 시작된 이담 농악(향토무형문화재 3) 등이 전승한다.
문화재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보물 1점(반야바라밀다심경 약소)이 있다. 도 지정 문화재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점(동두천 광주정씨 소장 고문서), 경기도 무형문화재 2점(경기송서-송서율창, 동두천 민요)이 있다. 이 밖에 사패지 경계석을 비롯한 10여 점이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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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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