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
양천구(陽川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남서부에 있는 구이다. 1988년 강서구에서 분리되었다. 북쪽으로는 강서구, 서쪽으로는 경기도 부천시, 남쪽으로는 구로구, 동쪽으로는 영등포구와 접해있다. 양천의 이름은 고려 시대부터 쓰인 이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했다.[1]
개요
서울특별시의 남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49´ 23˝~126˚ 53´ 24˝,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30´ 17˝~37˚ 33´ 04˝에 위치한다. 동서 간 거리는 6.17㎞, 남북 간 거리는 5.96㎞이며, 면적은 17.41㎢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2.9%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9번째에 해당한다. 1988년 강서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구로서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동(3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정 3동이 전체 면적의 15.6%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신월 6동이 전체 면적의 2.4%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하여 45만 7781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4.6%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8번째로 많다. 오목교역 및 목 1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강서구와 함께 서울 강서 생활권을 형성한다. 서울 서남권에 있는 7개의 자치구 중 고소득층의 비율이 가장 높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해바라기, 나무는 감나무, 새는 꿩이다. 구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구화(區花)인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하여 햇살처럼 밝은 미소로 구민 만족의 행정 서비스를 온누리에 펼친다는 의미를 담아 형상화한 '해누리'와 양천구의 지도 모양을 모티브로 하여 해처럼 밝은 양천구라는 의미를 담아 강아지로 형상화한 '해우리'이다. 구청 소재지는 신정동이다. [2][3]
자연환경
양천구 서쪽에 지양산(126m)이 부천시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매봉산(110m)·신정산(80m)·갈산(65m) 등이 구로구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삼성산에서 발원하는 안양천이 영등포구와 경계를 이루며 한강으로 흘러가고, 안양천과 한강의 합류부에 용왕산(78m)이 있다. 안양천 연안의 동부 지역은 본래 배후 저습지가 넓게 분포하여 범람으로 인한 수해가 잦던 곳이었으나 수리(水利) 사업을 거쳐 벼농사 지역으로 이용되다가 목동 신시가지로 개발되었으며, 안양천에 합류하던 지류들도 복개공사로 대부분 사라졌다.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은 낮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의 지세를 이루며, 지도에서 보면 강아지를 닮은 형상을 이룬다. 중부 지역은 해발고도 20~60m의 기복이 낮은 구릉 지형이 나타나고, 북동부와 남서부에는 해발고도 70~80m의 침식 구릉이 분포한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서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안양천과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는 도림천이 양천구 신정동 신정 1교에서 만나 양천구 목동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기후상 온대로 계절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연평균 기온은 12.8°C, 1월 평균기온은 -3.2°C, 8월 평균기온은 25°C이며, 연 강수량은 1,380㎜ 내외이다.
역사
양천구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까운 김포 일대에서 발견되는 고인돌과 신정동 은행정 마을 뒷산에서 발견된 고인돌, 신정동 토성지에서 채집된 청동동촉 등의 유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인류가 거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국가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 제국을 병합하여 삼국 중 하나인 백제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쟁패가 계속 이어졌다. 특히 백제의 유적으로 생각되는 신정동의 토성을 고려할 때 이 지역은 일찍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 남하 정책을 펴면서 한강 유역을 공략하여 석현성과 관미성 등 10여 성을 함락하고 이어 백제 서해안을 공격하여 58개 성을 취하였다. 이어 장수왕 때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면서 장악하였고, 이 일대에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여 80여 년간 다스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고구려·백제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력이 고구려와 백제를 잇는 수직 라인과 신라와 당을 연결하는 수평 라인이 서로 대립되었고, 당나라 세력을 이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로 개칭하고 한강과 접하고 있는 서울 지역에는 따로 한양군을 두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는 이 지역이 공암현으로 변경되어 율진군(栗津郡, 부천군의 옛 이름)에 속하였다.
후 삼국시대 ‘양천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는 각 지역에 호족세력들이 건재하였는데 한강 유역 일대에는 왕규(王規)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였고,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인 금주 강 씨(衿州姜氏 혹은 衿川姜氏) 세력과 풍덕 유 씨(豊德柳氏) 세력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왕규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금주강씨는 금천구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풍덕유씨 세력들은 한강 하류의 마포 서쪽 지역 일대에 웅거하고 있었다.
이 일대는 고려 초 공암 현으로 계속 불리다가 995년(성종 14) 고려의 행정구역을 5도로 나눌 때 양광 도에 귀속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수주 군(부천군의 옛 이름)에 속하였다. 행정구역이 변하는 과정에서 양원, 양평, 파릉, 제양 등으로 개칭되었고, 1310년(충선왕 2)에 양천으로 바뀌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수도를 한강 북쪽의 한양으로 옮기고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1394년(태조 3) 먼저 경기도를 좌·우도로, 양광도를 충청도로, 강릉 교주도를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 도로 바꾸었는데, 이때 양천은 경기좌도에 소속되었다. 양천에는 종5품의 현령이 파견되어 다스렸으나 1414년(태종 14)에 김포와 양찬을 합하여 김양으로 하였다가 한달 후에 다시 금천과 양천을 합쳐 금양 현으로 하고 양천과 통합하였던 김포는 부평과 통합하였다. 1416년에는 합병한 군현을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면서 양천 현으로 복구되었다. 1505년(연산군 11) 연산군에 의해 현이 폐지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복구되었고, 1586년(선조 19)에는 양천 현에서 아비와 계모를 살해하는 강상죄(綱常罪)가 발생하여 읍호가 강등되었다가 1598년 경 다시 회복된 이후 1895년까지 지속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을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인천부 소속의 양천군이 되었으며,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됨에 따라 다시 경기도 소속이 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전통적인 지방 제도와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행정 구역의 개편을 시도하여 1914년 지방제도를 12부, 317군에서 12부, 220개 군으로 폐지 혹은 통합하였다. 이때 양천 군도 통진 군과 함께 김포 군으로 통합되었으며, 양천군 5개 면도 양동과 양서 2개 면으로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양천군에 해당하는 남산면과 장군 소면이 양동면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양천 군의 하위 행정 구역인 15개 리는 가양리, 마곡리, 등촌리, 양화리, 화곡리, 염창리, 목동리, 신당리, 신정리, 내발산리, 외발산리, 송정리, 과해리, 방화리, 개화리 등이며, 이들 지명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1936년에는 경성부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시흥군에 속했던 영등포 일대와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 염창리, 목동리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이 일대는 한강과 안양천 등의 큰 강이 인접해 있는 평탄한 저지대로서 논보다 밭이 많았으며, 그나마도 수해와 범람의 피해가 많았던 곳이었다. 특히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맞아 방조제가 무너지고, 농지가 유실·매몰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1938년 배수기의 설치와 배수로의 개설, 한강변 제방의 축조 등 개량공사를 수행함과 동시에 양천 수리조합을 설립하면서 저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논농사가 가능해지면서 벼 생산량이 증가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 지역이 광복 이후에도 경기도 김포군에 소속되어 있다가 서울시로 편입된 것은 1963년 1월 1일부터이다. 이때 서울시의 영역을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김포군 양동면, 양서면 전역과 부천군 오정면과 소사읍의 각 일부, 시흥군 신동면 전역과 시흥군 동면 중 시흥·독산·가리봉·신림·봉천의 각 동이 영등포구로 편입되었으며, 1977년 9월 1일에는 안양천 서쪽 지역인 염창·목·등촌·화곡·마곡동 등 16개 동이 분할되어 강서구로 독립하였다.
강서구는 목동 신시가지 개발 등으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1988년 강서구에서 양천구를 분리하여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 그리고 부천군 오정면 오곡리와 오쇠리를 관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1914년에 잃어버렸던 양천의 옛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1989년 목 1동에서 목 5동이, 신정 2동에서 신정 6동이 분동된 데 이어 1989년 신월 4동에서 신월 7동이, 목 5동에서 목 6동이, 신정 1·2·6동에서 신정 7동이 각각 분동 되어 20개 행정동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2008년 목 6동이 목 5동에, 신정 5동이 신정 4동에 각각 통합되어 18개 행정동으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동(목 1~5동·신월 1~7동·신정 1~4동·신정 6~7동) 3개 법정동(목동·신월동·신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4]
산업
부동산 업과 도소매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6조 9312억 원으로 서울시 전체 GRDP의1.6%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6번째에 해당한다. 경제 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부동산업(1조 3698억 원)이 21.3%로 가장 크고, 이 밖에 도소매업(10.8%), 정보통신업(10.5%), 교육서비스업(10.4%),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9.1%), 건설업(6.1%) 등의 순이다. 부동산업의 부가가치는 서울시 부동산업 총 부가가치의 약 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1번째로 비중이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2만 6126개로 서울시 전체 사업체의 3.2%, 사업체 종사자(12만 3311명)는 서울시 전체 종사자의 2.4%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6번째에 해당한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 업체(5259개)가 20.1%로 가장 많고, 이 밖에 운수·창고업체(19.3%), 숙박·음식점 업체(13.8%),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10.9%), 교육서비스 업체(9.1%), 부동산 업체(4.8%) 등의 순이다. 개인 사업체가 전체 사업체의 83%를 웃돌고,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82%를 차지한다. 제조업체(1150개)는 25개 구 가운데 18번째에 해당하며, 식료품·의류 봉제와 가죽·가방·신발 관련 업체가 주류를 이룬다. 제조업의 부가가치(2221억 원)는 서울시 제조업 총 부가가치의 1.4%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6번째에 해당한다.
목동에 SBS 방송 센터(본사)를 비롯한, CBS, KT 인터넷 컴퓨팅 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방송, IT 업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 남부 학습센터 등의 고등 교육 기관이 소재하고 있다. 상업 활동은 등촌 시장, 목동시장, 신곡 시장 등 11개 재래시장과 현대백화점 목동점, 행복한 백화점, 농협 하나로클럽 목동점, 홈플러스 목동점, 이마트 목동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
도로 교통은 1968년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고속국도 120호선)가 개통되어 인천시 서구 가정동을 기점으로 부천시와 서울 지역을 거쳐 양천구 신월동까지 이어진다. 강서구 방화동을 기점으로 하는 남부순환로가 양천구를 거쳐 강남구 수서동까지 이어지며, 신월 나들목에서 경인고속도로와 접속한다. 이밖에 신월동을 기점으로 하여 마포구 신정동까지 이어지는 국회대로와 강서구 방화동을 기점으로 하여 목동까지 이어지는 공항대로를 비롯하여 봉오대로(인천시 원창동~신월동)·안양천로(경기도 광명시~양천구~강서구)·도림천로(신정동~구로구 구로동)·신정로(구로구 궁동~신정동)·화곡로(신월동~마포구 상암동)·곰달래로(신월동~목동)·목동로(신정동~목동)와 목동동로·목동서로·오목로·신목로·신월로 등이 양천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서울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수도권 전철 2호선의 신정지선이 구로구의 신도림역에서 분기하여 양천구의 양천구청 역~신정네거리역을 거쳐 강서구 까치산역까지 운행하고, 강서구의 방화역을 기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5호선이 양천구의 신정역~목동역~오목교역을 거쳐 하남 검단산 역·마천역까지 두 갈래로 운행한다. 이 밖에 강서구의 개화역을 기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9호선이 양천구의 신목동역을 거쳐 강동구의 중앙보훈병원역까지 운행한다.
관광
신월동에 옛 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하여 거대한 중앙호수와 몬드리안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몬드리안 정원, 숲길, 물놀이장, 어린이 놀이터, 100인의 식탁과 체육시설 등으로 조성한 서 서울 호수공원, 유아 숲 체험원과 무장애 숲길을 조성한 지양산, 친환경 텃밭·비닐하우스·논 체험 학습장·곤충 호텔·도시농업교육센터 등으로 조성한 양천 도시농업공원 등의 명소가 있다. 목동에는 용왕산근린공원에 세워진 용왕정(龍王亭)이 한강과 서울의 전경이 펼쳐지는 조망 명소로 유명하고,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공간으로 인기가 높으며, 이 밖에 SBS· CBS 등의 방송사가 있다.
신정동에는 안양 천변에 장미원·글라스 원·허브 원 등으로 사계절 테마 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패션 명물 거리로 손꼽히는 목동역 인근의 로데오거리, 양천구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와 토지조사측량기준점의 하나인 대삼각본점이 있는 갈산공원, 농촌체험학습장과 자연학습장이 조성된 신트리공원, 한국 불교와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제선(禪) 센터, 어린이 교통공원 등이 있다. 걷기 명소로는 용왕산·지양산·신정산·갈산 등 4개 구간의 산림형 코스를 비롯하여 도심형(서 서울호수공원~용왕산)·하천형(안양천 오금교~양화교)의 3개 코스로 연계되는 양천 둘레길(총 24.5㎞)이 조성되어 있다.
교육
전통 교육기관은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천현에 속하여 1411년(태종 12)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에 창건된 양천향교가 양천구 지역의 공공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양천향교는 1963년 강서·양천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서울의 유일한 향교가 되었으며, 현재의 향교 건물은 1981년에 복원된 것이다. 근대 교육기관은 1972년 신정동에서 개교한 양동 국민학교(지금의 서울 양동 초등학교)가 양천구 지역의 첫 초등학교로 기록되며, 이 학교에서 지금의 서울 계남 초등학교·서울 양목 초등학교·서울 강서 초등학교·서울 양명 초등학교·서울 신강 초등학교·서울 양강 초등학교 등이 분리되었다. 이 밖에 1974년 지금의 서울 목동 초등학교, 1979년 서울 양화 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중등 교육기관은 1905년 지금의 종로구 도렴동에 설립된 양정의숙이 1951년 양정중학교·양정고등학교로 분리된 뒤 1988년에 목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1906년 지금의 종로구 창성동에 설립된 진명학교가 진명 여자 고등 보통학교·진명여자중학교를 거쳐 1950년 진명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된 뒤 1988년에 목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1938년에 설립된 남경성 공학원이 1955년 영도중학교로 개편된 뒤 1978년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목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1952년 영등포구 양평동에 설립된 성광 공민학교를 모태로 하는 봉영 여자중학교와 봉영 여자 상업고등학교(지금의 서울 영상 고등학교)가 1988년 신정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밖에 1970년 화곡 여자중학교(지금의 신화중학교), 1981년 금옥 여자중학교(지금의 금옥중학교)·목동중학교·신월중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2019년을 기준하여 교육기관은 고등학교 15개교, 중학교 19개교, 초등학교 30개교 등이 있다. 학생 수는 5만 7631명으로 서울시 전체 학생의 약 3%를 차지한다.
문화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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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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