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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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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위치
예천군청

예천군(醴泉郡)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서북부에 있는 군으로 경상북도 청사소재지이다. 동쪽으로 영주시, 안동시, 서쪽으로 상주시, 문경시, 남쪽으로 의성군, 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과 접한다. 예천공항(예천 공군 기지), 진호 국제 양궁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양궁의 도시로 유명하다. 호명면 일원에 경상북도청 신도시가 조성 중이다.[1]

개요

예천군은 동경 128°15′∼128°37′, 북위 36°27′∼36°51′에 위치한다. 면적은 661.16㎢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55,672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 11개 , 281개 행정리(1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에 있다.

예천(醴泉)의 이름을 풀어보면 醴(단술 례)와 泉(샘 천)이다. 이설로는 '크고 넓은 땅'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인 '단슬얼'로 불렸던 이곳의 지명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착된 지명이라고도 한다. 관련 링크 간혹 醴'川(내 천)'이나 '禮(예도 례)'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의하자.

경북 북부 지역은 전통 유교 문화의 영향이 강해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지역으로 유명했는데 특히 예천은 1980년 이래 전국에서 남아 출생성비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이 갈수록 약화 되는 추세는 여기도 마찬가지라서 지금은 적정 수준의 출생성비를 유지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참기름이 있다. 백화점에서 명절 선물세트로 꽤 비싸게 팔리며, 대통령실에 납품되기도 한다. 경북 북부 지방답게 사과도 재배하지만 경상북도에서 사과를 특산물로 내세우는 지자체가 한둘도 아니고 청송, 안동, 영양 쪽이 더 유명세가 높은지라 묻히는 감이 있다.[2][3]

자연환경

지형은 소백산맥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어 군의 북부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지가 연속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군계에도 높은 이 많으며, 남쪽으로 가면서 높이가 점차 낮아져 구릉지로 변한다.

화강암(花崗岩) 산지가 많아, 예천군에서도 북부의 높고 험준한 산맥의 능선부(稜線部)는 편마암류(片麻岩類)로 이뤄져 있으나 중·남부의 화강암지대는 내성천(乃城川)·한천(漢川) 등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분지저지(低地)가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쪽에 주마산(走馬山, 556m)·학가산(鶴駕山, 870m)·보문산(普門山, 643m), 서쪽에 국사봉(國師峰, 728m)·왕의산(339m)·용문산(龍門山, 782m)·매봉(865m), 남쪽에 건지봉(乾芝峰, 421m)·나부산(羅浮山, 330m)이 있다.

북쪽에 묘적봉(妙積峰, 1,148m)·자구산(子求山, 784m)·가재봉(佳載峰, 851m)·저수재(850m), 중앙에는 망월봉(望月峰, 424m)·육녀봉(六女峰, 257m)·매봉산(341m)·백마산(白馬山, 383m)·부용봉(芙蓉峰, 688m) 등이 솟아 있다.

하천은 내성천(乃城川)이 봉화군 봉성면의 문수산(文殊山, 1,206m)에서 발원하여 봉화읍 삼계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오울하천(梧鬱河川)과 합류한다. 그리고 봉화읍 문단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낙화암천(洛花巖川)과 영주시 이산면 신천리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용각천(龍角川)과 각각 합류한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에서 수도리로 흐르는 서천(西川)과 합류할 때까지 심한 곡류로 예천군으로 흘러들어 감천면 장산리로 흐르는 옥계천(玉溪川)과 만난다. 그런 뒤 효자면 옥녀봉(玉女峰)에서 발원하여 면의 동부를 지나 하리면·용문면·예천읍을 거쳐 개포면 경진리로 흐르는 한천(漢川)과 호명면 담암리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용궁면 향석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기천(箕川)·금천(錦川)과 합류한 뒤 풍양면 삼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이 군은 내륙에 위치해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가 뚜렷하다. 연 평균기온 12.6℃, 1월 평균기온 -0.4℃, 8월 평균기온 25.7℃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는 약 26℃에 달하며, 연 강수량은 1,122.0㎜이다.[4]

역사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 당시는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점차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 사람이 많이 거주했던 것 같다.

일찍부터 소국(小國, 城邑國家)이 형성되어 변진 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 나라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예천 지역은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수주군(水酒郡: 지금의 예천읍) 축산현(竺山縣: 지금의 용궁면)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수주군은 예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영안현(永安縣: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가유현(嘉猷縣: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은정현(殷正縣: 지금의 안동시 풍천면)·안인현(安仁縣) 등을 영현으로 삼아 다스렸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일찍이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927년(태조 10) 왕건이 친히 용주(龍州: 지금의 용궁면)·근품성(近品城: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 지역을 함락하여 고려에 편입시켰다. 그 뒤 예천군은 보주(甫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태자의 태(胎)를 안치한 것으로 기양현(基陽縣)으로 승격되었다. 1204년(신종 7) 남도초토병마사(南道招討兵馬使) 최광의(崔匡義)가 경주의 신라부흥군과 이 곳에서 싸워 승리한 것으로 인해 지보주사(知甫州事)로 다시 승격되었다.

축산현은 995년(성종 14) 용주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고, 1012년 용궁군(龍宮郡)으로 고쳐져 상주목에 속하였다. 용궁군은 1172년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속군의 위치를 벗어났다. 고려 말에는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운 이방실(李芳實)이 개선하다가 김용(金鏞)의 모함으로 이 곳에서 피살되었다.

고려 후기의 읍격(邑格)을 그대로 유지하던 보주는 1413년(태종 13)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쳐졌다가 1416년 다시 예천군이 되었다. 용궁현은 1413년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당시의 토지와 풍속에 대해서는 예천군이 비옥·척박이 반반이나 평이하였고, 용궁현은 척박하였으나 화목하였다고 한다.

호구 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예천군이 1,092호 1만 1613명, 용궁현이 396호 4,545명이었다. 예천군의 권씨·윤씨가 관료로 중앙에 많이 진출했다고 한다. 윤상(尹祥)·권맹손(權孟孫)·권오복(權五福)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용궁현감 우복룡(禹伏龍)이 예천·용궁의 향병(鄕兵)을 이끌고 6월 15일 용궁으로 진격해 온 적장 요시가와(吉川廣家)의 군대를 무찔러 이 지역은 적으로부터 무사하였다. 이 때 이유(李愈)·이응(李應) 등의 의병투쟁도 있었다. 한편, 예천군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1729년(영조 5)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38년에 군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 예천군과 용궁군으로 편제되어 안동부에 속하였다. 1896년 예천군은 3등 군, 용궁군은 4등 군이 되어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1906년 동로면과 화장면을 문경군에, 다인면을 비안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궁군이 예천군에 통합되는 동시에 안동군에서 감천면을, 풍기군에서 상리면과 하리면을 편입하였다. 1937년 예천면이 예천읍으로 승격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신교육이 보급됨에 따라 유지들이 남명학교(南明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노력했으며 항일의병투쟁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4월 1일부터 12일까지 군 내 각지의 장날에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도 관할 행정구역 내의 부분적인 이동이 있었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1950년 6·25전쟁 때 공산군 1,000여 명이 7월 28일 보문면을 공격해 오자 홍종관(洪鍾寬) 등 경찰 7명이 끝까지 분투하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3년 개포면 상동이 예천읍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보문면 고평동이 예천읍에, 보문면 마촌동이 감천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용문면 두인동이 두천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하였으며, 1989년에는 감천면 미석리 일부가 영풍군 장수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월 1일 예천읍의 대심1리가 대심1리와 대심3리로 분리되었으며, 1999년 4월 10일 유천면의 연천리가 연천 1리와 연천 2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 10월 1일 호명면 월포리 일부가 예천읍 청복리로 편입되었다. 2016년 2월 1일 상리면은 효자면으로, 하리면은 은풍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004년 현재 예천읍, 용문면·상리면·하리면·감천면·보문면·호명면·유천면·용궁면·개포면·지보면·풍양면 등 1읍 11면으로 되어 있다.

산업

경지 면적은 총면적 661㎢ 중 30%인 198㎢ 정도이다. 그중 논이 109㎢이고, 밭이 89㎢로 주산업은 농업이다. 임업은 북부에서 활발하며, 임야면적 368㎢로 그 중 상리면·용문면·보문면에서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 수종은 혼효림과 침엽수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요 농작물은 쌀·보리·고추·잎담배·사과·감 등이다. 쌀·보리는 풍양면·지보면·호명면에서, 고추는 용문면·감천면에서, 잎담배는 보문면·상리면에서, 사과는 감천면·상리면·지보면에서, 그리고 감은 지보면·풍양면에서 주로 생산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상황버섯·양란·영지버섯·옹골진 잡곡·쪽파·참기름·토마토·표고버섯 등이 있으며, 예천 참우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되어 있는 고급육 한우로 유명하다.

목축업은 한우·돼지가 사육되고, 광공업으로는 용문면에 규회석 광산이 있고 예천읍에는 연초제조창이 있다. 예천읍 지내리에 있는 농공단지에는 12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현재 군은 사과·호두·상황버섯·누에 가루·동충하초 등의 특산물 생산을 위한 특작사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9876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한 금당지 건설은 이설 도로·저수지·용수로 건설 등 영농기계화와 지역 농업경제를 촉진시킬 것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인구의 대다수가 1차산업에 종사한다. 그 외에 제16전투비행단의 영향으로 군인도 제법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군 지역이다 보니 상권이 빈약하기 때문에, 상당수 사람들은 문경, 안동, 영주 등으로 나가서 일을 해결한다. 풍양면, 용궁면 지역은 상주·문경권에 속해 있으며, 감천면 지역은 영주권에 속해있다.

전형적인 시골 깡촌 이었고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곳이었으나, 2016년 이후 경상북도청을 안동시와 공동유치하면서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 도청 등 각종 공공 기관들은 안동에 소재하고 있지만 아파트 등 각종 주거 시설들은 예천에 소재하고 있어서 기존에 대구에서 살던 경상북도청 공무원들이 대부분 예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인구수를 어느 정도 늘리는 데 성공했다.

교통

북동부에 인접한 영주에서 중앙선 및 영동선과 연결되고, 동쪽으로 안동,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군위와 경상북도 선산, 서쪽으로는 문경·상주, 북쪽으로는 단양과 연결되는 국도가 시의 중앙부를 통과하여 북부 농촌 지역의 교통중심지 구실을 한다. 예천비행장은 북부 지역과 서울 간의 교통을 편리하게 한다.

관광

북부에 1,000m 이상의 소백산맥 연봉이 솟아 있고, 군 내에는 이보다 낮은 수려한 산들이 자리하며, 군 중앙을 내성천이 흘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용문면 내지리의 용문사, 효자면 명봉리의 명봉계곡, 보문면 산성리의 학가산,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 용궁면 대은리의 의성포가 있다.

고려 초에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용문산에 창건했다는 용문사에는 대장경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대장전과, 안에 경전을 넣어 두고 손잡이로 돌려가며 불경을 외는 장치인 윤장대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절 주위의 거목 숲이 매우 깊어 장관을 이루며,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도 뛰어나다.

용문사 인근에는 소헌왕후(昭憲王后)와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비(胎室碑)가 있다. 명봉 계곡소백산맥 기슭의 깊은 골짜기에 열려 있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맑으며 고즈넉하기 그지없어 자연 그대로의 산수가 절경을 이룬다. 이 계곡에 명봉사가 있다.

명봉사는 법당과 요사채만 남아 있는 작고 쇠락한 절이지만 경내에는 소나무·전나무·느티나무 등의 아름드리 거목이 있고,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와 명봉사 사적비, 문종대왕(文宗大王) 태실비가 있다.

예천·안동·영주에 걸쳐 있는 학가산은 산세가 특색이 있으며 약수와 동굴이 있다. 또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 왔을 때 쌓은 길이 약 1.5㎞의 학가 산성도 있어 관광지로 적합하다.

천연기념물인 석송령(石松靈)은 감천면 천향리의 석평마을 어귀에 있다. 수령이 600년 가량으로 추정되고 키는 10여m이며, 가지는 동서로 32m, 남북으로 22m 정도 퍼져 있다. 동신목 구실을 하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 동신제를 지낸다.

예천의 물도리 마을, 즉 의성포에서는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감천면의 수락대(水落臺), 보문면의 보문사삼층석탑, 호명면의 선몽대, 그리고 유천면 죽안리의 죽안지 및 용문면 두천리의 운암지 등의 낚시터가 있다.

예천 온천은 감천면 관현·천향리 일대로 지난 1998년 온천지구로 지정받았으며, pH 9.52∼10.25의 강알칼리인 중탄산나트륨(HCO3·Na) 단순천으로 수질이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으로 우수한 온천이다. 그밖에도 감천면 덕율리의 예천 천문 과학문화센터, 예천군 보문면 우래리의 학가산 우래 자연휴양림, 미호천 유원지 등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문화행사로는 예천문화원 주관으로 예천읍에서 열리는 예천문화제가 유명하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군민 종합축제로서 우리 음식맛 자랑대회, 농산물 품평회 및 시식회 등의 기획행사와 학생백일장, 한시백일장, 국궁대회, 바둑 대회 및 사진·미술·서화 등의 종합전시회가 진행된다.

매년 5~6월경 예천 아리랑 제가 열리고, 6월에 열리는 통명 농요 발표공연이 있다. 19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통명 농요는 1985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84-나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공처 농요 발표공연, 청단 놀음, 토종닭싸움 대회 등 전통민속놀이가 해마다 열린다. 지역축제로는 2000년부터 5월에 개최되는 산나물 채취 행사와 2002년부터 8월에 개최되는 민물고기잡이 체험행사가 있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예천군〉, 《위키백과》
  2. 예천군〉, 《네이버 지식백과》
  3. 예천군〉, 《나무위키》
  4. 예천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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