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은평구(恩平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북서부에 위치한 자치구로, 1979년에 서대문구에서 분리되어 신설했다. 구의 동쪽으로는 서대문구 및 종로구, 남쪽으로는 마포구, 북쪽과 서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와 접한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및 파주시를 연결하는 수도권 서북부 교통의 요지이다.[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의 북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52´ 52˝~126˚ 57´ 42˝,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34´ 23˝~37˚ 39´ 23˝에 위치한다. 동서 간 거리는 7.11㎞, 남북 간 거리는 9.23㎞이며, 면적은 29.7㎢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4.9%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6번째로 크다.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구로서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동(11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관동이 전체 면적의 39%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응암 3동이 전체 면적의 2%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하여 48만 4043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4.9%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6번째로 많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코스모스, 나무는 대추나무, 새는 비둘기이다. 구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조선시대에 지금의 구파발에 있던 역참(驛站)을 모티브로 하여 은평구 관내와 관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정보와 물건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파발마로 형상화한 '파발이'이다. 구청 소재지는 녹번동이다.
은평구는 단독/연립주택이 많은 전형적인 주거 지역이다. 서울 외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도심 접근성이 상당히 좋으며, 3호선이나 도로교통을 통한 강남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은평구는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에 삼면이 산과 접하고, 아래로 조금만 더 가면 한강이다. 마용성 중 하나인 마포구와 같은 생활권으로 엮여 있고, 명문 학교들도 몇몇 있다는 점 때문에 향후 재개발 시 과거의 입지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대 이후로는 70~8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들의 내구연한이 다 되어가면서 재건축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조성되고 있다.[2][3]
자연환경[편집]
동부에 북한산에서 이어지는 의상봉(502m)·응봉(333m)·비봉(560m)·향로 봉(527m)·백련산(215m) 등의 산줄기가 고양시·종로구·서대문구와 경계를 이루고, 서부에는 매봉(235m)·봉산(209m) 등이 고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을 이루며, 마포구와 인접한 서남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고 있다.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조산운동으로 형성된 대보 화강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선캄브리아 시대의 화강편마암·호상편마암 등이 부분적으로 분포한다. 주요 하천은 비봉에서 발원하는 불광천이 불광동·대조동·역촌동·신사동을 거쳐 서대문구와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마포구에서 홍제천에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가고,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에서 발원하는 창릉천이 구의 북쪽 경계를 흐르면서 진관천 등과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간다. 불광천은 본래 한강에 직접 유입되는 제1지류였으나 도시계획에 따라 홍제천의 지류가 되었으며, 상류 부는 복개되어 있다. 불광동에서 발원하여 역촌동에서 불광천에 합류하는 녹번천은 완전히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된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도시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3.3℃, 1월 평균기온은 0.4℃, 8월 평균기온은 26.5℃, 연 강수량은 1212.3㎜이다.
역사[편집]
은평구 지역에서 선사문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인근 고양시 일산 일대의 선사시대 농경유적 등을 통하여 볼 때 인근 한강변의 은평구 일대에도 선사시대에 인류가 살았을 개연성은 높다. 은평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을 무대로 최초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진국(辰國)과 삼한사회의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였다. 서기전 1세기 말 백제국이 마한을 정복하고 초기 고대국가인 백제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강 유역의 경제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 활동과 인구 증가를 이루었고, 보다 큰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475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남평양이 설치되었다.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래 신라 삼국통일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신라는 전국에 9주를 설치했고 용산구를 포함한 서울 지방은 한산주(漢山州)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은평 지역을 포함한 서울 지방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의 활동으로 태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관련유적으로 종로구와 경계를 이루는 삼각산 비봉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사적, 1972년 지정)가 있다.
918년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주·군·현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이 양주(楊州)로 편제되면서 은평 지역은 양주 관할구역이 되었다. 성종 14년 도제(道制)가 실시되어 양주는 관내도(關內道)에 속하였고, 절도사가 배치되어 좌신책군(左神策軍)이 되었다. 현종 9년에 양주가 양광도에 속하게 되었고, 1067년(문종 21) 양주는 남경으로 승격되어 고려 삼경제의 하나로 운영되었으며, 1069년에 신경기(新京畿)에 편입되었다. 그 후 다시 양주가 되었다가 1104년(숙종 9)에 다시 연흥전·천수전 등의 궁궐 건물이 마련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좌도에 속하여 과전과 공신전의 반급지역이 되었다. 은평 지역에는 고려시대 지방을 잇는 22도의 하나인 청교도(靑郊道)의 한 역인 영서역(迎曙驛)이 있어 노원역, 청파역과 이어졌다. 그리고 진관사와 삼천사는 고려 시대 삼각산의 대표적인 사찰이었고, 폐사지로 신혈사와 향림사의 존재도 확인된다. 특히 향림사는 거란의 침입 때 태조 왕건의 재궁을 두 번이나 피신시킨 곳이다.
1394년(태조 3)에 한양부로 도읍을 정하여 한성부로 고치고 서울지역은 5부 52방으로 개편했는데, 지금의 은평구 지역은 북부의 성외인 연은방·상평방 지역에 해당되었으며, 은평구의 이름은 이 두 지명을 합성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1789년 은평구 지역에 해당하는 상평방·연은방의 호구를 살펴보면, 상평방은 560호에 1,939명, 연은방은 631호에 1,876명으로 당시 한성부 인구 약 20만 명의 2%에 해당되었다.
은평 지역은 서울에서 서북지방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길목으로 그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이 길은 흔히 의주로라고 불렸으며, 가깝게는 고양에 이르는 고양 길이라 하였다. 중국 사신이 오고, 조선 사신이 가는 사행길로서 홍제원에서 덕수원·벽제역 사이에 있던 은평구 지역은 정치적·외교적·군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었다. 그리고 임금이 서삼릉이나 서오릉에 행차하는 능행길이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피난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조반정이나 이괄의 난 때는 반정 군이나 반란군이 집결하고 접근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의주로상에 있던 영서역·금암발참 등의 존재에 따라 인조별서유기비와 금암기적비가 세워지게 되었고, 구파발·연서로 등의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또 고양 땅에 서오릉이 위치하게 되자 그 원찰로 수국사가 건립되었고, 도성에 가까운 교외 지역으로 왕실의 화의군파·영산군파·무산군파의 묘역이 자리 잡고, 내시 묘역 일군이 위치하게 되었다.
1910년 한성부가 경성부로 바뀌고, 1911년 경성부에 성안은 5부 35방, 성 밖은 8면제를 시행하면서 은평구 지역은 성 밖의 은평면에 속하였고, 1914년에 은평면은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1936년 경성부의 관할구역을 확장함에 따라 은평면의 일부인 홍제외리·홍제내리·부암리·홍지리·신영리 등 5개 리가 생기고, 현재의 서대문구·종로 지역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이곳에 1940년 7월 서부 출장소가 신설되었다가 1943년 구제 실시에 따라 서대문구로 개편되었다. 한편 오늘날 은평구 지역은 1949년 8월 13일에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때까지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으로 남아 있었다.
광복 후 1946년 9월에 경성부가 서울시로 되었고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 서울특별시로 승격되었다. 1949년 8월 고양군 은평면 11개 리, 연희면 7개 리가 서대문구에 편입되어, 은평 출장소 행정 관할이 되었다. 1973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관내 구파발리와 진관내·외리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은평구의 행정 관할이 되었다. 1979년 10월 1일 은평 출장소가 폐지되고, 서대문구에서 분구되어 은평구가 신설되었으며, 이때 은평구는 녹번, 불광 1, 불광 2, 갈현, 구산, 대조, 응암 1, 응암 2, 응암 3, 역촌, 신사, 증산, 수색, 진관내, 진관외동의 15개 행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1988년 5월 1일 지방자치제를 실시함에 따라 희망에 찬 주민들이 살아가는 전원도시가 되었으며 1989년 9월 1일 이후 20개 행정동에서 13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구가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불광 지구와 역촌 지구의 대단위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어 1978년에 완료됨에 따라 은평구 일대의 농경지는 거의 택지로 변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따라 제조업체가 늘어났다. 그리고 서울 외곽의 주거지역이 된 은평구는 지역 시장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상권이 형성되어 소규모 점포가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연신내 일대에 서울 서부지역의 최대의 패션·의류타운이 형성되었다. 나아가 은평 뉴타운 지역으로 개발되었으며, 수색역 일대의 백화점 유치 등으로 새로운 역세권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4년 진관동 일원이 은평 뉴타운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2008~2010년에 걸쳐 1~3지구 주택 건설공사가 준공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동(갈현 1~2동·구산동·녹번동·대조동·불광 1~2동·수색동·신사 1~2동·역촌동·응암 1~3동·증산동·진관동) 11개 법정동(갈현동·구산동·녹번동·대조동·불광동·수색동·신사동·역촌동·응암동·증산동·진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4]
경제[편집]
부동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4조 7543억 원으로 서울시 전체 GRDP의 1.1%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강북구·도봉구·중랑구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부동산업(1조 7억 원)이 22.8%로 가장 크고, 이 밖에 건설업(14.0%),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11.9%), 교육서비스업(10.1%), 도소매업(10.0%) 등의 순이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2만 4873개로 서울시 전체 사업체의 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8번째에 해당한다. 사업체별로는 운수·창고업체(5214개)가 약 30%로 가장 많고, 이 밖에 도소매업체(20.0%), 숙박·음식점 업체(17.2%),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11.7%), 부동산업체(5.9%), 교육서비스 업체(5.9%) 등의 순이다. 개인 사업체가 전체 사업체의 87%를 웃돌고,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약 86%를 차지한다. 제조업은 식료품·의류봉제가 주류를 이루며, 제조업체(899개)는 동작구·서대문구·노원구 다음으로 적다. 2018년 제조업의 부가가치(800억 원)는 서울시 제조업 총부가가치의 0.5%에 머물러 동작구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전통시장은 응암동에 대림시장·신응암시장·대림골목시장·양지시장을 비롯하여 불광동에 연서시장, 대조동에 제일시장·대조시장, 증산동에 증산 종합시장·증산 골목시장, 갈현동에 갈현시장·역촌중앙시장, 수색동에 수일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이밖에 유통업체로는 대형 할인점 2개소, 쇼핑센터 4개소, 복합 쇼핑몰 1개소, 기타 대규모 점포 10개소 등이 있다. 2018년 도소매업의 부가가치(4497억 원)는 서울시 도소매업 총 부가가치의 0.7%에 그쳐 25개 구 가운데 강북구·도봉구 다음으로 비중이 작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은 국도 1호선의 일부인 통일로가 중구 봉래동을 기점으로 은평구의 응암동·녹번동·불광동·대조동·갈현동·진관동을 거쳐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까지 이어지고, 마포구 상암동 가양대교 북단을 기점으로 하는 가양 대로가 은평구의 수색동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진관동을 기점으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까지 이어지는 북한산로를 비롯하여 서오릉로(응암동~고양시 흥도동)·연서로(신사동~진관동)·수색로(서대문구 연희동~수색동)·가좌로(신사동~서대문구 연희동)·증산로(마포구 상암동~신사동)·진흥로(역촌동~종로구 신영동)와 갈현로·불광로·동축로·백련산로·역말로·진관1~4로 등이 은평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1908년 연희방의 수색리계(지금의 은평구 수색동)에서 수색역이 영업을 개시하여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운행하였으며, 이후 광역전철시대가 열리면서 경의선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운행계통에 포함되었다. 경기도 파주시의 문산역을 기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은 은평구의 수색역~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거쳐 경기도 양평군의 용문역·지평역까지 운행하는 노선과 서대문구의 가좌역에서 분기하여 신촌역을 거쳐 서울역까지 운행하는 노선이 있다. 대화역~오금역을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 3호선이 은평구의 구파발역~연신내역~불광역~녹번역을 거쳐 가고, 은평구의 응암역을 기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6호선이 역촌역~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거쳐 중랑구의 신내역까지 운행한다. 이밖에 서울역·김포국제공항·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은평구의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거쳐 간다. 연신내역과 불광역에서 3호선과 6호선이 각각 접속하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6호선·경의중앙선·인천국제공항철도가 접속한다.
관광[편집]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가 은평구에 속하여 진관동의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대서문~보리사를 거쳐 백운대까지 등반하는 북한산성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북한산 주변에 조성된 북한산 둘레길 21개 코스 가운데 진관 생태다리에서 북한산 생태공원에 이르는 5.2㎞ 구간의 구름정원길, 방패교육대에서 진관 생태다리에 이르는 1.5㎞ 구간의 마실길, 효자동 공설묘지에서 방패교육대에 이르는 3.5㎞ 구간의 내시묘역길 등 3개 코스가 은평구에 속한다. 또한 진관동의 북한산 기슭에 신라 때 창건된 삼천사(三千寺)와 용암사(龍岩寺), 고려 때 창건된 진관사(津寬寺) 등의 고찰(古刹)과 경관 좋은 삼천사계곡·진관사계곡 등이 명산의 정취를 더하며, 조선시대에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을 당한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굿당으로 세운 금성당(錦城堂)이 보존되어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진관사 인근에는 북한산을 병풍처럼 두른 은평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한(韓)문화체험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한옥마을에는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식 한옥들과 함께 은평역사한옥 박물관·문학관·미술관 등이 조성되어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신사동의 봉산에 조성된 편백나무 치유의 숲과 봉산 해맞이공원, 불광동에 건축가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으로 한국의 100대 건축물의 하나로 꼽히는 불광동 성당과 향림 도시농업체험원, 갈현동에 연신내역을 중심으로 연서시장과 다양한 상점·음식점 등이 밀집하여 인파로 북적이는 연신내 로데오거리 등의 명소가 있다.
먹거리 명소로는 응암동의 대림시장 감자 국거리와 불광동 불광역 주변의 불광 먹자골목이 유명하다. 걷기 명소로는 8개 코스로 이루어진 서울 둘레길의 제2코스인 봉산·앵봉산 코스가 마포구와 은평구에 걸쳐 16.8㎞ 구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밖에 봉산해맞이길을 비롯하여 앵봉산생태길·이말산묘역길·은평북한산둘레길·백련산불광천길 등 5개 코스 총 24㎞의 은평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교육[편집]
전통 교육기관은 조선시대에 한성부에 속하여 성균관과 4부 학당이 공공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은 1928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외리(지금의 은평구 진관동)에서 신은 공립보통학교가 은평 지역의 첫 근대 학교로 개교한 뒤 신도 공립심상소학교·신도 공립국민학교 등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서울 신도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이후 1931년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지금의 녹번동)에서 은평 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여 지금의 서울 은평초등학교로 이어지고, 1935년 고양군 연희면 수색리(지금의 수색동)에서 연희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여 지금의 서울 수색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이밖에 1962년 지금의 서울 응암초등학교·서울 불광초등학교, 1965년 선일초등학교·예일초등학교, 1966년 서울 충암초등학교, 1967년 서울 갈현초등학교·서울 대조초등학교·서울 북한산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중등 교육기관은 1897년 평양에서 설립된 숭실학당을 모태로 하는 숭실중학교·숭실 고등학교가 서울 성동구·용산구를 거쳐 1975년 은평구 신사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1921년 서대문구에서 설립된 향상 여자 기예 학교를 모태로 하는 동명여자고등학교가 1974년 대조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1950년 종로구에서 개교한 한양 여자상업중학교를 모태로 하는 성정 여자고등학교가 1974년 갈현동으로 이전하여 지금의 선정고등학교로 이어진다. 1966년에는 응암동에서 충암중학교가 개교하였고, 이듬해에 영락중학교가 중구에서 응암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 밖에 1968년 선일여자중학교에 이어 1969년 대성중학교·대성 고등학교와 충암고등학교 등이 개교하였으며, 같은 해에 예일여자중학교·예일여자고등학교가 종로구에서 구산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2019년을 기준하여 교육기관은 대학교 1개교(서울기독대학교)를 비롯하여 고등학교 18개교, 중학교 18개교, 초등학교 31개교 등이 있다. 학생 수는 4만 9979명으로 서울시 전체 학생의 2.6%를 차지한다.
문화재[편집]
국가 지정 문화재로는 보물 5점(서울 삼천 사지 마애여래입상·묘법연화경 권 4~7(2016)·서울 인조별서 유기비·서울 수국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 유물·서울 진관사 태극기)을 비롯하여 국가무형문화재 2점(대금정악·진관사 수륙재), 국가 민속문화재 1점(서울 금성당) 등이 있다. 이 밖에 진관사에 소장된 '독립신문류'와 '괘불도 및 괘불함' 등 2점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 지정 문화재로는 금악 기적비·사현사 석불좌상·진관사 영산회상도를 비롯한 서울유형문화재 14점, 나전장·휘몰이 잡가를 비롯한 서울무형문화재 4점, 화의 군 이영 묘역·숙용심씨 묘표를 비롯한 서울기념물 4점, 서울 민속문화재 1점(화주당 무신도), 진관사 석불좌상·진관사 독성도를 비롯한 서울 문화재자료 6점 등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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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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