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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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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전승 기념탑
3.1 독립선언 기념탑
워싱턴 기념탑

기념탑(紀念塔)은 어떤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하여 세운 을 말한다. 오래도록 기념하면서 후대에 전할 만한 사실이나 인물, 또는 그 업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베를린 전승 기념탑[편집]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전승 기념탑이다. 독일 중심가에 있는 티어가르텐(Tiergarten) 공원 중앙에 세워진 탑으로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WilhelmⅠ)가 1873년 완공했다. 프로이센은 통일 독일을 이룬다는 목표로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를 선두로 1864년부터 1871년에 걸쳐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연합군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이로써 빌헬름 1세는 독일 황제임을 선포했고 베를린을 수도로 정했다. 탑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나 실제로 공사는 1964년에 시작되었다.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빅토리아 여신상이 탑 꼭대기에 장식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황금빛을 띄고 있어 ‘황금의 엘제(Goldelse)’라고도 불린다. 탑의 전체 높이는 67m이며 여신상의 높이는 8.3m다. 여신상의 무게만 35t이다. 탑은 원래 국회의사당(Reichstag building) 앞에 있었지만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193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탑 내부에 28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으며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티어가르텐과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을 비롯한 베를린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본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오늘날에는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반전기념비로 그 의미를 달리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졌으며 현재도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3.1 독립선언 기념탑[편집]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3∙1운동 기념탑이다. 1919년 3월 1일에 거행된 독립선언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이다. 이날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하였으며, 종로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들도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3·1운동이 전국에 확산되어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기념탑의 규모는 가로 세로 각각 1.8m, 높이 4.2m이며, 부지 면적은 324㎡이다. 기념탑 뒤에는 3.1독립선언문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원래 1963년 8월 15일에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여 모금한 국민 성금으로 3·1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으나, 1979년 탑골공원 정비사업으로 철거된 뒤 12년간 방치되었다. 이후 복원을 바라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순국의 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 터에 조성한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2003년 2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3.1 독립운동 기념탑[편집]

3.1독립운동기념탑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식민통치로부터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된 3.1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ㆍ발전시켜 널리 국민들의 호국애족정신을 고양하고자 온 겨레의 정성을 모아 중구 장충동 남산공원에 건립되었다.199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제50주년 기념일에 착공하여 3.1독립운동 80주년 기념일인 1999년 3월 1일 준공하였으며, 탑의 높이가 19m 19cm로 이는 3.1독립운동의 거사일인 1919년을 의미한다. 3.1독립운동은 세계 최초의 비폭력 평화운동이며 세계 최초의 천도교ㆍ기독교ㆍ불교의 종교연합운동으로 중국의 5ㆍ4운동, 인도의 무저항운동을 비롯하여 전세계 비폭력 평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편집]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54년에 조성한 기념탑이다.

탑은 기단 · 탑신 · 상륜부로 구성되었다. 둥근 화강암의 하층 기단 사방에는 탑을 향해 만곡(彎曲)한 5단의 계단을 두었는데 해자를 건너면 탑과 주변 지역이 연결된다. 상층기단 전면에는 학생들의 독립운동 모습을 부조한 청동판을 부착하였다. 그 위의 하층 탑신부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문구를 3단으로 새겼다. 탑신 전면에는 세로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光州學生獨立 運動記念塔) ’이라 쓰인 이승만 대통령 친필 휘호를 새긴 청동판을 부착하였다. 상륜부에는 찰주가 회오리치는 횃불 모양의 수연을 관통하는 모습을 구현하였다.

워싱턴 기념탑[편집]

백악관, 국회의사당과 함께 워싱턴 D.C.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미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으로 백악관 남쪽, 내셔널 몰 서쪽 끝 지점에 위치한다. 총 높이는 170m이며 세계 유수의 오벨리스크(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태양신을 기리며 세운 방첨탑) 형태로 지어져 워싱턴의 시내 대부분에서 조망할 수 있다. 국회에 경의를 표하는 목적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워싱턴 D.C.에서는 이 기념탑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수 없도록 제한한 법규가 있다. 미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D.C.에 고층 빌딩이 보기 드문 이유다.

워싱턴 기념탑은 건축가 로버트 밀스(Robert Mills)의 설계로 1848년 건설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도리스식 주랑 위에 오벨리스크과 조지 워싱턴의 조각상이 세워질 예정이었지만 결국 오벨리스크만 남았다. 기념탑 건설에는 화강암과 대리석이 사용되었는데 무려 37년에 걸쳐 세웠기 때문에 하단과 상단의 돌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착공한 지 30여 년이 훌쩍 지나도록 완공이 늦어진 것은 자금 부족과 1861~1865년에 발발한 남북전쟁 때문으로 공사가 여러 번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1885년 2월 21일 완공되었는데, 당시에는 세계 최고층의 경이로운 건축물이었으나 불과 일 년 만에 워싱턴 기념탑보다 높은 파리 에펠탑이 완공되었다.

워싱턴 기념탑은 1888년 10월 9일부터 일반 관람객에게 내부가 공개되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불과 70초 만에 153m 지점에 위치한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워싱턴 기념탑의 전망대에서는 동쪽으로 국회의사당, 서쪽으로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북쪽으로 백악관까지 시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단, 워싱턴 기념탑에 오르려면 매일 선착순으로 배부되는 티켓을 받아야 한다. 기념탑 옆에 있는 로지(Lodge)에서 시간 선택이 가능한 당일 티켓을 1인당 6장까지 배부한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연중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전망대에 꼭 오르고 싶다면 아침 일찍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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