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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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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
고려 안학궁
경복궁
조선왕들의 어진
익산 미륵사
고구려 대동강 목교
개성 만월대
초조대장경
낙산사 동종
감은사

문화재(文化財, cultural properties)란 고고학, 역사학, 예술, 과학, 종교, 민속, 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인류 문화활동의 소산이다.

2021년 11월 현재 시행 중인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형태로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구분된다. 그리고 지정 방식 중 국가지정 방식으로는 국보, 보물, 국가무형문화재,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민속문화재로 구분되고, 지방지정 방식으로는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에서 시도지정문화재 또는 문화재자료로 지정할 수 있다. 한편 등록방식으로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것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문화재 또는 국가등록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것을 시도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

문화재와 의미가 비슷한 용어로 문화유산, 유산, 유물 등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건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0년간 공식적 용어로 쓴 문화재였다. 그러던 2022년 4월 11일,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라는 용어를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대체하는 개선안을 문화재청에 전달하였다. 일본의 법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한 문화재라는 명칭이 과거 유물이나 재화라는 느낌이 강하며, 자연물(명승)이나 사람(인간문화재)을 지칭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이유다. 문화재 분류체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협약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개요[편집]

문화재란 문화적(文化的) 가치(價値)가 있는 사물(事物), 즉 보존(保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족(民族)의 문화유산(文化遺産)을 말한다. 따라서 한 민족이 생활하면서 생성, 발전시켜 온 모든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산물(産物)이 이에 속한다. 한 나라의 자원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 나라의 천연자원(天然資源)과 생산적(生産的) 자원(資源)에 국한하고 그 밖의 유형, 무형의 중요한 자원은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원은 천연자원(天然資源), 문화자원(文化資源), 사회자원(社會資源)으로 구분되며, 이 중 문화자원은 특히 민족문화(民族文化)의 유산으로서 문화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문화재의 범주가 아주 좁았으나, 전후에는 그 대상을 미술공예품(美術工藝品), 건조물(建造物), 사적(史蹟), 명승(名勝),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민속자료(民俗資料),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등으로 구분하여 국가적으로 보호, 육성하는 것이 국제적인 경향이다.

1984년에 개정된 문화재보호법(文化財保護法)의 정의(제22조)에 의하면 문화재를 크게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와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기념물(記念物), 민속자료(民俗資料) 등으로 구분하고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문화재 정의

대한민국은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라 함은 인위적 ·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 민족적 ·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 예술적 · 학술적 · 경관적 가치가 큰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건조물(建造物) · 전적(典籍) · 서적(書籍) · 고문서(古文書) · 회화(繪畵) · 조각(彫刻) · 공예품(工藝品)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文化的 所産)으로서 역사적(歷史的) · 예술적(藝術的) 또는 학술적(學術的)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考古資料).

  •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연극(演劇) · 음악(音樂) · 무용(舞踊) · 공예기술(工藝技術) 등 무형(無形)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歷史的) 예술적(藝術的) 또는 학술적(學術的) 가치가 큰 것.

사지(寺址) · 고분(古墳) · 패총(貝塚) · 성지(城址) · 궁지(宮址) · 요지(窯址) · 유물포함층(遺物包含層) 등의 사적지(史蹟地)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로서 역사적(歷史的) · 학술적(學術的) 가치가 큰 것. 경승지(景勝地)로서 예술적(藝術的) · 경관적(景觀的) 가치가 큰 것. 동물(動物, 서식지(棲息地) · 번식지(繁殖地) · 도래지(渡來地) 포함) · 식물(植物, 자생지(自生地) 포함) · 광물(鑛物) · 동굴(洞窟) · 지질(地質) · 생물학적(生物學的) 생성물(生成物) 및 특별한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서 역사적(歷史的) · 경관적(景觀的) 또는 학술적(學術的) 가치가 큰 것.

보물급(寶物級)의 문화재(文化財) 가운데 국가(國家)가 법적(法的)으로 지정한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특히, 제작연대(製作年代)가 오래되고 그 시대를 대표하며, 제작기술(製作技術)이 뛰어나고, 형태(形態) · 품질(品質) · 용도(用途)가 특이하며, 역사적(歷史的) 인물(人物)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만든 것 등을 지정한다.

  • [[보물00

역사적(歷史的) · 예술적(藝術的) · 학술적(學術的)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國家)가 법적으로 지정(指定)한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그 대상은 목조건축(木造建築) · 석조물(石造物) · 전적(典籍) · 서적(書籍) · 고문서(古文書) · 회화(繪畵) · 조각(彫刻) · 공예품(工藝品) · 고고자료(考古資料) · 무구(武具) 등이 있다.

기념물(記念物)중 유사이전(有事以前)의 유적(遺蹟) · 제사(祭祀) · 신앙(信仰) · 정치(政治) · 국방(國防) · 산업(産業) · 교통(交通) · 토목(土木) · 교육(敎育) · 사회사업(社會事業) · 분묘(墳墓) · 비(碑) 등으로서 중요한 것.

  • 중요무형문화재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중 중요한 것.

기념물(記念物) 중 동물[動物, 서식지(棲息地) · 번식지(繁殖地) · 도래지(渡來地) 포함] · 식물[植物, 자생지(自生地) 포함] · 지질(地質) · 광물(鑛物)로서 중요한 것.

  • 중요민속자료

의식주(衣食住) · 생산(生産) · 생업(生業) · 교통(交通) · 운수(運輸) · 통신(通信) · 교역(交易) · 사회생활(社會生活) · 신앙(信仰) · 민속(民俗) · 예능(藝能) · 오락(娛樂) · 유희(遊戱) 등으로서 중요한 것.

  • 시 · 도지정문화재

특별시장(特別市長) · 광역시장(廣域市長) · 도지사(道知事)가 국가지정문화재(國家指定文化財)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가치(保存價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 시 · 도(市道))의 조례(條例)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로서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 기념물(記念物) 및 민속자료(民俗資料) 등 4개 유형(類型)으로 구분된다.

  • 문화재자료

시 · 도지사(市道知事)가 국가지정문화재(國家指定文化財) 또는 시 · 도지정문화재(市道指定文化財)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鄕土文化)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시 · 도(市道) 조례(條例)에 의하여 지정(指定)한 문화재(文化財)를 말한다.

  • 등록문화재

문화재청장이 문화재보호법 5장53조에 의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 · 제작 · 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아래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고,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하여 등록한 문화재이다. (다만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50년 이상이 지나지 아니한 것이라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 비지정문화재

문화재보호법(文化財保護法) 또는 시 · 도(市道)의 조례(條例)에 의하여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保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文化財)를 지칭한다.

소실 또는 붕괴로 이제는 볼 수 없는 한국의 문화재들[편집]

경주 황룡사[편집]

황룡사는 경주에 있는 가장 큰 사찰이었다. 신라에서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대 사찰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곳에 있던 황룡사 9층 목탑 역시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전소하여 사라졌다. 현재는 황룡사와 9층 목탑이 있던 터만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고구려 안학궁[편집]

안학궁은 한때 고구려의 궁이었다. 고구려가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강성하던 장수왕 시기에 건립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소실되어 궁의 터만 남아있다. 안학궁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경복궁[편집]

소실 또는 붕괴로 이제는 볼 수 없는 경복궁은 조선 개국 후 1395년에 창건되어 법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에 타 흔적만 남았다. 현재 경복궁의 모습은 고종 때 복원된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조선 전기의 순수한 경복궁의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초기 경복궁의 형태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역사적 사료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조선 왕들의 어진[편집]

왕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은 임진왜란 때 궁궐이 모두 불타면서 현재는 세조와 태조의 어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소실되었다. 어진은 조선 시대에 많이 그려졌는데, 궁의 최고 화가들이 모여서 왕의 모습을 털 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렸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어진이 모두 불에 타서 소실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익산 미륵사[편집]

익산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의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동방의 최대 규모라고 불리는 탑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탑은 현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이다. 동쪽의 탑은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복원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목탑은 완전히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다. 미륵사지 석탑 또한 반쯤 파손되어 있으며 붕괴 위험이 있는 상태이다.

고구려 대동강 목교[편집]

이 다리는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폭이 9m에 길이가 375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교는 고구려의 궁궐로 향하는 진입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목조 건축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지만 소실되어 현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개성 만월대[편집]

고려를 세운 왕건이 개성을 수도로 지정하고 건축한 궁궐이 바로 만월대이다. 고려 왕조의 상징이 된 만월대는 위기를 두 번 겪는데, 처음은 거란의 침략이었다. 이를 대비하여 성벽을 더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그러나 홍건적의 침입으로 건물이 불타서 지금은 구조물만 땅속에 남아 있는 형태이다. 구조물의 흔적만 남아 안타까운 유적지이다.

초조대장경[편집]

고려에서 간행한 대장경에는 초조대장경, 속대장경, 팔만대장경이 있다. 그중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급한 상황일 때 대장경판을 만들면서 불심으로 위기를 타파할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몽골의 침입을 받아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는 흔적도 없이 소실되었으며 일부만이 일본에 남아있다고 한다.

낙산사 동종[편집]

낙산사 동종은 고려 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던 소중한 문화재였다. 높이가 158cm가 되는 대형 범종으로 보물 제479호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강원도 양양과 고성 지역의 대형 화재 때 완전히 용해되어 소실되었다. 이후 종의 모습을 다시 복원하여 달아 놓았으나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어 안타깝다.

감은사[편집]

감은사는 신라 시대의 절이다.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이 나라를 더욱 강성하게 하기 위해서 감은사를 건축하기 시작하여 신문왕 때 완공하였다. 통일신라 때 호국 사찰로서 큰 역할을 했으나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현재는 감은사지 터에 돌탑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으며 구조물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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