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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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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은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이다. 시대와 지역, 용도에 따라 축성 양식은 매우 다양하다.

개요[편집]

성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극히 원시적인 방어시설이 설치된 것은 수만 년 전 인간이 동굴이나 야영하는 간단한 주거(住居)에 돌을 쌓거나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적과 야수의 습격을 방어한 때부터라고 여겨진다. 현재 고고학적 발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는 성곽도시(城郭都市)는 이스라엘의 예리코로 그 성벽은 BC 8000년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밖에 지중해의 동해안이나 소(小)아시아에서도 거의 같은 연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어서 BC 4000년경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江)과 유프라테스강 일대에 수메르인(人)이나 아카드인의 성곽도시가 번영하여 그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다. 성곽도시는 또한 고대의 이집트·인도·중국에도 출현했다.

이들 고대 문명권에서는 그 후 여러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수많은 왕조가 흥망하였지만 성곽도시나 성새(城塞)의 구상은 계속 전승되어 근세에까지 이르렀다. 성은 원시인이 적이나 야수를 막는 원시적 방어물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후 농경·목축 등 경제활동을 하면서 일정한 토지에 정주(定住)하게 되자 주거를 지키는 주거방어의 형태를 낳아 주거의 집합체인 취락(聚落) 방위로 발달하였고, 또 이것은 점차 성곽도시로 확대되어 갔다.

또 경제의 발달과 함께 인간사회의 계급화가 진행되어 권력자가 출현하자 권력자의 주거를 특별히 방어하는 사적(私的)인 주거방비가 거관(居館)·거성(居城)·왕궁(王宮)의 형태로 발달하였다. 한편 주거를 위한 방비가 아니고 순전히 전투상의 필요에 의한 방어물도 구축하게 되었으니 이것들은 처음에는 목책(木柵)이나 녹채(鹿寨:가시울타리) 같은 간단한 것이었으나 뒤에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영국에 축조된 하드리아누스의 장성(長城)과 같은 방책(防柵)으로 발달하였다.

성은 원래 인간의 평화에 대한 소망 또는 자기방어 본능 등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나중에는 집단적 싸움인 전쟁에서 방어적 구축물이 되었고, 동시에 도시국가나 왕후·영주 등의 세력신장의 기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성은 전란 속에서 발달한 축성기술에 의하여 유럽에서 중세로부터 근세에 걸쳐 현저한 발달을 이룩하였다. 또한 성은 위력 있는 대포(大砲)의 출현과 정세의 변화 등에 따라 군사적 구축물인 요새(要塞)와 일상생활의 건조물인 성관(城館)·거성 등으로 분리되어 발달·쇠퇴하여 왔다.

(城, castle)

기능[편집]

서울 한양도성
14세기의 양식인 보디암 성
중국의 핑야오 고성
만리장성의 일부인 거용관
유럽 봉건 성채 도시의 대명사인 프랑스의 카르카손 성채
인도 괄리오르 성채의 궁전 부분. 궁전과 닿은 성벽은 상당히 화려하다.
프랑스의 샹보르 성. 이쯤 되면 궁전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19세기 이후 수차례 거래가 이루어진 끝에 초콜릿 재벌로 유명한 므니에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쉬농소 성.
오만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바흘라 성채. 높은 성벽과 두터운 벽이 둘다 작용한 곳이다.
삼국시대의 삼년산성

성의 역할은 주로 높고 튼튼한 성벽을 통해 적이 도시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적들의 공격 루트를 한정시키는 억제 효과가 있었고, 또 방어하는 측 병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전투 중 안정적인 엄폐물을 확보하게 해 줄 수 있는 여러 이점이 있었다.

냉병기 시절 성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제대로 축조한 성에 식량이 충분하다면 성 내부에 전염병이라도 돌거나 공격 측이 정말 압도적인 양과 질의 병력으로 밀어버리지 않는 이상 공격해 온 적군이 먹을 게 없어져서 물러갈 때까지 방어해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적을 전투에서 섬멸하기 위해 요구되는 공격 측과 방어 측의 병력 비율을 3:1이라고 할 때, 성이 있는 경우 이 비율이 5:1에서 10:1까지도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방어 측이 성 내부에 일정 규모의 기동성 좋은 부대를 갖추고 있는 경우, 공격자 측이 공격할 성을 완전히 둘러싸고 포위하지 않으면 난전 중 어느 구석에서 기어 나온 적군에게 뒤통수를 맞기가 십상이고, 포위했던 공격자가 물자가 다 떨어져 물러갈 때 모랄만땅 배만땅 채운 방어 측 기병에게 뒤통수 맞으며 갉아먹히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방어 측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방어 측 입장에서 특히 고난인 것은 식량 + 식수 조달 문제였는데, 아무리 많은 자원을 쟁여놓는다고 해도 일단 공성전이 시작되거든 인근 지역 사람들까지 다 성으로 몰리는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해서 식량과 식수를 조달하는 속도보다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식수의 경우 해자 역할을 하는 강 정도가 없는 한, 해자 주변에 있는 건 오염된 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방어 측의 내분 첩자 문제, 방어 측의 비효율적인 병력 분산 등의 위험이 있었다.

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병기를 제작하는 수법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런 방법은 병기 제작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자원이 들어가게 되며, 공성 과정에서 병력이 손실되게 마련이다. 손자병법에서도 이런 식으로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가장 하책으로 보았을 정도. 애초에 역사적으로 봐도 그런 게 가능했던 건 공략에 만 단위의 보병과 우수한 공병을 투입 가능했던 로마군이나 중동 제국, 중국군 정도였다. 대포가 나온 후에도 콘스탄티노플과 같은 우수한 설계로 지어진 초대형 성곽은 한 줌의 병력만이 지키고 있었는데도 공략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정도.

공성전 시 대형 공성포를 운반할 수 있는 참호를 수성 측 사거리 바깥부터 길게 뻗어 들어가며 만들고 거점에 공성포가 설치되는 시점에서 수성 측이 명예로운 항복을 할 수 있었다. 참호 못 파게 하는 유격부대와 이 유격부대를 처리하려는 유격부대 간의 전투가 주요한 공성전이 될 정도였으며, 이러한 내용의 예는 삼총사의 라 로셸 공방전 장면에서 나온다.

이렇게 보면 공격군이 그냥 성을 지나친 뒤 수도를 공격해 적의 수뇌부를 빨리 사로잡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성을 지나친다는 건 그 성을 지키는 병력들을 후방에 온전히 남겨둔다는 것인데, 이러면 성 안의 적이 빠져나와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 이게 작은 성 한 두개면 모를까, 수천 수만 병사가 지키는 성이라면 그냥 지나치기엔 후방에 생길 위협이 너무 컸다. 여기에 보급선을 유지하는 것도 이 적들 때문에 위태로질 게 뻔했는데, 전쟁에서 보급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더군다나 성들은 대개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건 지형상 불가능하거나, 크나큰 시간과 인명, 보급이 손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경우 후자라 쳐도 통과해봐야 손실이 심하니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3]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성을 점령하는 건 전쟁에서 사실상 필수적이었다.[4] 물론, 삼국시대 당시에 요새를 공략하기보다, 험난한 절벽을 넘어 촉한을 점령한 등애처럼, 반대 사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국토가 작아 이동 거리가 짧고, 적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면 꼭 모든 성을 점령하지 않기도 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수 년에서 수십 년간 지리하게 이어지는 전쟁의 완전히 반대인 단기결전 사례이다.

어휘[편집]

castle[편집]

  • 성관 (영어: Castle, 독일어: Schloss, 불어: Château)

군주가 거주하는 요새화된 저택을 의미한다. 봉건 영주들은 문자 그대로 지역 군벌이므로, 성관은 문자 그대로 군벌 소굴이다. 처음에는 유력한 전사가 개인의 안전을 위해 대충 지어둔 요새화 시설이, 해당 전사가 군벌화 되면서 좀더 요란한 거점으로 성장하고, 겸사겸사 방어력도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전사가 지주화 되면서 거주 기능과 통치 기능도 강화되어 장원의 중심 건물이자 영주의 거처이자 동시에 자체적인 요새 노릇을 하는 복합 시설이 되었고 이게 바로 캐슬이다. 보통 성으로 퉁쳐서 번역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성관(城館)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봉건 영주들의 군벌로서의 권력이 쇠퇴하고 단순 지주화 되면서, 즉, 왕권 신장에 따른 왕토 확장과 중앙 집권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요새로써의 기능이 필요 없어졌고, 왕들 또한 귀족들이 군벌로 기능하는 것을 억제할 목적으로 일부러 벽을 허물게 하는 등, 요새로써의 기능이 상실되어가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봉건 귀족의 성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왕실에서 귀족들의 성관에서 "성"으로써의 기능을 강제로 철거하도록 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성"관"이 되었는데, 따라서 이렇게 요새 기능이 상실된 영주의 거처를 성관의 프랑스어 표현인 "샤토"로 퉁쳐 부르기도 한다.

성(영어: Castle, 독일어: Schloss, 불어: Château)은 군주(또는 영주)가 거주하면서 주변의 장원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방어시설 겸 군주의 주거시설이다. 보통은 성 내부의 안뜰에 어느 정도까지는 성에서 거주하며 노동하는 인구를 부축하기 위해 민간인의 거주구역을 갖추지만, 도시마냥 대규모의 인구 거주 능력을 갖추지는 않았다. 농노들은 성 주변의 들판에 갖추어진 장원에 거주했으며, 유사시에는 성에 주둔하는 영주의 가신들이 출격하여 외적을 요격하거나, 농노들을 성 안에 불러들이고 성문을 닫아 농성했다. 그러다 근세 이후로 넘어가면서 중세시대의 요새화에서 탈피하여 지금 전형적인 유럽식 궁전의 모습을 띠게 되었는데, 주로 기존의 성을 개축하거나 완전히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주거용 건물들은 기존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여 캐슬이나 슐로스, 샤토라고 불리는 경우가 잦다. 전혀 관계 없는 지역에 새로 지은 경우에도 왕족이 살거나 소유한 주거용 건물이라는 이유로 해당 명칭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세 이전에 사용되던 이 단어의 원래 뜻은 요새화된 귀족의 저택을 의미하던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burgh[편집]

  • 성새도시(영어: Burgh/Burh/Borough, 독일어: Burg, 불어: Bourg)

성벽 따위로 보호를 받는 주거지역를 칭하는 단어. 동아시아에서 성(城)이라는 단어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 성이라는 단어는 본래 정착지를 의미하는데, 주요 정착지가 자연히 요새화되면서 어영부영 요새라는 뜻으로 혼용되게 된 것이다.)(평양성. 국내성 등) 현대에는 위의 성관(Castle)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런 경우를 성새도시(城塞都市), 성시(城市)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역 군벌(?)들이 장악하지 못할 만큼 자유민들이 잔뜩 모인 정착지들은 당연히 "도시"로 발전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주의 성관이 발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부분적으로 요새화가 진행된다. 이런 "도시"들은 부유한 요충지에 생성되기 때문에 당연히 특권층으로 승급된 자유민, 곧 시민 세력의 거점으로 변모하며, 아무나 살 수 없는 유사 성관화 된다. 이렇게 버로우의 성벽 내부 주거지에 사는 특권 시민층을 프랑스어로 '성 안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이게 바로 '부르주아(bourgeois)'다.[10] 조선의 읍성은 버로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도시 발달에 따라 방어 시설로의 기능이 무력화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초장에 도시의 부속물인 버로우와 달리 읍성은 본래 요새로써 고안되었으나 버러우같이 도시의 부속물이 되어버린 경우다.

성새도시(Burgh/Burh/Borough)는 요새화된 도시 따위의 거주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유럽은 전란이 잦아서 대규모 인구가 거주하던 곳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의 요새화를 갖추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성새도시다. 그래서 행정구역의 명칭에도 많이 포함되어있는데, 유럽에서는 에딘버러(Edinburgh), 함부르크(Hamburg), 부르캉브레스(Bourg-en-Bresse) 등이 있다. 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던 도시계급의 특권층들이 이후 이 단어에서 파생된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후 자본가 계급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었다.

citadel[편집]

  • 성채(영어: Citadel, 독일어: Zitadelle, 불어: Citadelle)

유사시 단독적인 방어 시설로 작동하나, 평시에는 단독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요새화된 부속 시설을 의미한다. 도시의 방벽(wall) 내에서 방어 거점으로서 따로 요새화된 구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버러우의 방어 효과가 저하됨에 따라 자연히 방어에만 집중한 부속 시설을 따로 설치하게 되었고 그것을 시타델이라 한다. 또한, 원래 요새로 지었고 요새로써 기능하는 시설들도 나중에는 추가적인 요새화가 필요해지면서 도시의 시타델과 비슷한 시설을 추가로 마련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특정 시설에 특별히 부속 방어 시설로 덧붙는 요새화 시설을 시타델로 다 퉁쳐서 부르게 된다. "방어기능 상실"로 인해 추가된 시설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기준으론 "산성"들이 시타델과 동일한 역할을 하지만, 도시 내부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시타델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시설물 내에 추가로 설치된 부속 방어 시설이란 점에서는 차라리 내성(內城)이 시타델과 비슷하다.

성채(Citadel), 즉 시타델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 내부에 있으면서 별도의 성곽과 방어시설을 갖춘 요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원은 이탈리아어로 도시를 가리키는 città이다. 고대, 중세 대도시의 지배자들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도시 안에 이런 시타델을 지어 놓고 직속 병력과 함께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공성전이 벌어졌을 경우 당연히 최후의 저항 거점이 되며, 실제로 공성전 중 도시 성곽은 함락시켰는데 시타델을 함락시키지 못해 교착 상태에 빠진 사례도 여럿 있다. 그래서 시타델 자체를 저항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번역할 때에는 '성채'(城砦)에 대응시킨다. 해당 도시가 자유도시가 아니라 군주가 거주하면서 통치하는 도시일 경우, 대부분은 군주의 거주 시설과 집무실을 성채 안에 (후술하듯 성채 안의 아성에) 마련했다. 그리고 이 시타델은 포격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유용성과 지위가 공고해졌고, 별 모양 형태의 시타델이 이때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keep[편집]

  • 아성(영어: Keep, 독일어: Bergfried, 불어: Donjon)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 혹은 요새(Fortless) 내에서 성주의 지휘소 겸 최후의 방어 거점 본래 모트&베일리에서 베일리가 성의 중앙에 설치한 거대한 탑(던전)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좀 더 다듬어지면서 우리가 잘 아는 네모 반듯한 아성으로 발전했다. 경우에 따라 영주의 저택 기능을 겸할 수도 있다. 이런 류의 시설은 요새화 시설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에도 성 내부에서 전망이 좋은 위치에 지휘소를 세우고 장대(將臺)라고 불렀었다. 보통은 간단하게 누각만 세워을 뿐 요새화하진 않았지만 문수산성 장대나 함흥읍성 구천각처럼 돈대 형식으로 요새화한 경우도 존재하며 이 경우 구조상으론 성 내부의 거대한 탑(던전)과 동일하다. 유럽에 종종 아성만 따로 빼서 지은 듯한 건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병영이나 야전 지휘소 같은 시설로써 자체적인 방어 기능은 거의 못 하지만 아성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들이다. 동양의 단어 중 Keep과 가장 유사한 개념은 일본식 성에 있는 천수각(天守閣)인데, 아성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영주의 저택 기능도 할 수 있으며 구조적인 차이들을 제외하면 군사적으로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 물론 이건 일본식 성에만 있는 건물이라서 일본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keep을 아성으로 번역한다. 기능적으로는 거의 같으나 동서양의 건축 양식의 외적인 차이점과 일반적으로 천수각은 목조 건물이지만 아성은 석조 건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성(castle)과 성채(citadel) 안에는 또 최후의 방어시설로 성의 다른 부분 또는 성채의 다른 부분과 좁은 문으로 격리된 탑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keep'(킵)이라 하며 번역하여 '아성(牙城)'이라고 한다. 아성 부분을 성채로 오역하거나 성채를 아성으로 오역하는 등 이해에 혼선이 많기는 하나, 'keep'은 그 개념상으로는 'citadel'과 확연히 구별된다. 'Keep'은 탑, 즉 단일 건물이고,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가 함락되었을 때 방어자들이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저항하는 건물이다. 반대로 성채(citadel)는 도시 내부에 별도로 벽을 둘러 추가로 요새화된 구역을 의미하며, 성채를 둘러싼 도시가 함락되었을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요새화된 지역이다. 성채마저 함락될 경우 성채 안에 있는 건물인 'keep'으로 퇴각하여 저항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방어적 이점 덕분에, 성을 지배하는 군주의 거주 시설이나 집무실은 아성 안에 마련되었다. 아성 1층이 평시에는 군주의 집무실 겸 연회장인 식으로. 마찬가지 이유로, 도시가 군주가 거주하며 통치하는 수도 도시일 경우, 군주의 집무실은 도시 안의 성채(citadel) 안의 아성(keep)에 지어졌다. 책마다 번역어가 약간씩 다르므로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데, 원문을 참조하여 'citadel'과 'keep'을 헷갈리지 말자.

fortress[편집]

  • 요새(영어: Fortress/Stronghold, 독일어: Festung, 불어: Place forte)

단독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동시에 군사 목적만을 위해 설치된 독립적인 축성물을 포트리스라고 한다. 요새(要塞)라는 단어는 군사용 방어시설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많이 쓴며, 당연히 민간 기능은 최소화되어 있어 오로지 군사 전략/전술적 목적으로만 운용되었다. 포트리스는 "단순히 내용물을 지키는" 용도가 아니라 적의 기동을 차단하는 방해물로써 기능한다. 16세기 이후로 서구권 요새의 대세가 된 성형 요새는 내부에 도시나 마을이 입주해있는 시타델로 기능한 사례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포트리스로 쓰인 경우가 더 많다. 유럽 본토에서는 시타델로 쓰이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식민지에서는 성형 요새를 주로 포트리스로 사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와 같이 순수히 적의 기동을 차단하는 축성물들을 진보(鎭堡)나 보루(堡壘)라고 불렀다. 보루는 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어단어 'Bastion'을 번역할 때도 자주 쓰인다.

요새(fortress)는 성(castle)과 달리 군주의 주거 시설이나 민간인의 주거구역이 갖추어지지 않은 방어 시설로, 오로지 군사 목적으로 요충지에 세워진 방어 시설을 의미한다. 보통은 기사단등의 군사집단이나 상비군이 주둔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주시설을 제외하면 무기고와 마구간 등의 군사시설로 가득 차 있었다. 'fort, fortress'의 'fort-'는 [강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fortis'에서 온 말로 음악에서 쓰는 포르테(forte)와 어원을 같이 한다. 요새를 일컫는 다른 말로 'stronghold'(스트롱홀드)가 있다. 이는 라틴어 어근에서 기원된 'fortress'와 달리 순수 게르만 제어를 어원으로 한다. 영어에는 이런 식으로 같은 의미이면서 한 쪽은 라틴어 기원, 다른 쪽은 게르만어(즉, 영어 입장에서의 고유어) 기원인 단어들이 꽤 있다.

rampart[편집]

  • 성벽(영어 : Rampart, 독일어 : Mauer, 불어: Mur)

단독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적당한 축성물. 즉 도성 또는 성곽(城郭)도 램퍼트에 해당된다. 당연히 벽이니까 적이 침입하는데 방해는 되지만, 적의 기동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지는 못한다. 포트리스는 "여길 통하지 않으면 못 지나가는" 방해물로서 따로 지어진 시설이고, "버로우"나 "캐슬"은 적의 목적지(?)로 지목되는 장소에 적당껏 방어력을 부여한 경우로, 이 3개의 경우 좋든 싫든 점령해야만 하는 부류인 것과 달리 램퍼트는 아무리 잘 지어뒀더라도 꼬우면 피해가면 되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버러우나 캐슬, 시타델에는 당연히 벽이 있고, 그 벽만을 따로 지칭할 때 램퍼트라고 하기도 한다.

wall[편집]

  • 방벽(영어 : Wall, 독일어 : Wall, 불어: Mur)

여러 지역을 통과하며 길게 늘어선 방어용 구조물. 문자 그대로 벽이다. 가장 원초적인 축성물 유형으로 자체적인 거점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문자 그대로 그냥 지나가지 말라고 지은 벽이다. 실상, 요새라기 보다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설치한 산맥(?) 같은 노릇을 하며, 아예 산맥에 지어서 산맥의 기동 방해 효과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짓기도 한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장성(長城)이라고 부르며 기능도 완벽히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만리장성과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월이다. 이런 시설은 보통 방어가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적이 지나가게 두면 심히 곤란한 영 좋지 않은 위치에 어쩔 수 없이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새라는 것은 적이 점령하지 못하게 짓는게 아니라 좋던 싫던 점령하게 만들어서 적의 기동을 차단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데, 벽은 적이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방벽(wall)은 만리장성과 매우 유사한 개념인데, 어떤 구역을 둘러싸는 형태가 아니라 선 형태로 세워진 성벽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경우도 성이라고 불렀으나 유럽에서는 '벽'(영어 : Wall, 독일어 : Wall, 불어: Mur)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대부분의 경우는 국경에 설치되어 국경 밖의 외적이 국경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거나, 평시에는 통행세/무역세 등의 세금을 걷기위해 건설되었는데, 그 무지막지한 규모와 건설 비용 상 전세계 역사에서 이러한 형태의 방벽이 설치된 경우는 잘 없다. 가령 그 예시로 그 유명한 '만리장성'과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가 있다. 물론 물리적인 벽이 없었을 뿐이지 실제로 근대 및 현대 전에서도 방벽을 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대서양 방벽.

도시를 둘러싼 방벽은 city wall(성곽, 성벽)이라 부르며, 그 방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walled city(성새도시, 성시)가 된다. 동양에서 "양양성을 함락시켰다", "평양성을 탈환했다" 식으로 도시 이름을 붙여서 '성'이라고 부를 때는 이 walled city에 해당한다.

기타[편집]

영어 'castle'은 라틴어 'castrum'의 지소형(指小形, diminutive) 'castellum'[17]이 고대 북부 프랑스어 'castel'를 거쳐 후기 고대 영어 'castel'로 들어온 것이다. 'castrum'의 복수형 'castra'는 조금 더 일찍 들어와서 'ceaster'로 유입되고 영국 지명에 '-caster', '-chester' 등의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기원은 스페인어 'alcazar', 'castillo', 프랑스어 'château'와 마찬가지이다. 한편 영어에서는 어중의 'st'에서 [t]가 묵음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ˈkæsl]이라고 읽게 되었다. 재미난 점은 프랑스어에서는 'château'도 그렇고 같은 상황에서 [s]를 묵음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독일어로 성을 의미하는 '-burg'(부르크)는 중유럽의 여러 지명에도 남아있다. 예를 들어 잘츠부르크(Salzburg)는 소금 성이라는 뜻. 이는 영어의 'borough'와도 동원어 관계에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edinburgh'의 '-burgh' 역시 기원이 같다. 독일어에서 'castle'을 의미하는 단어는 'die Burg'(부르크), 'palace'(궁전)은 'Schloss'(슐로스)로 구분한다.

스페인어로는 alcazar라고 한다. 다른 성이나 요새를 뜻하는 alcazaba, castillo란 단어에 비하면 세밀하게 순수한 군사용 목적 뿐만 아니라 왕들이 거주하는 왕궁이란 뜻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분류[편집]

성이 지어지는 위치와 형태, 규모, 용도에 따라 크게는 산성, 평지성, 평산성으로 나뉘고,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진성, 장성, 보성, 행성, 폐성, 수영성, 병영성, 관문성, 포성, 고성으로 구분한다.

위치[편집]

산성[편집]

산성 (건축물)은 말 그대로 산에 지은 성을 말하며, 드물게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에 지은 성도 산성이라고 부른다. 산성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벽을 빙 둘러 지어서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테뫼식(머리띠식)과 성 안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산능성이를 따라 성벽을 지은 포곡식이 있다.

이나 구릉에 짓는다는 특성상 성의 규모는 대부분 그렇게 크지 않으며, 삼국시대 국경선 지역에 설치된 산성들은 산성이라기보다는 거의 돈대 수준에 가까운 작은 산성도 보인다. 높은 지형에 위치하기에 감시와 방어가 유리하며, 산을 끼고 지은 성이기 때문에 공성병기의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어 복잡한 방호시설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방어성능을 보였으나, 산이 침공루트 그 자체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지라 시대가 갈수록 이런 성은 보이지 않게 된다.

평지성[편집]

평지성

평지성은 평야 지역에 건설되는 성을 말한다. 평야지역의 특성상 지형적으로 방어하기가 산성보다 불리해 높은 성벽과 복잡한 방어시설들을 만들어 성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고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산성이나 산성과의 공존이 일반적이었으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건축 기술력의 향상으로 수성기술이 점차 발전하게 되면서 산성보다 일반화된다.

그러나 방어력 증강을 위한 투자에 비해서는 방어력이 크게 늘지 않으며, 적의 대형 공성병기가 쉽게 성벽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이 완전히 평야인 경우를 제외하면 가급적 평야 중에서도 고지대를 취하거나, 적어도 성벽 내부에 약간이라도 고지대를 포함시켜서 내성을 만들어놓는 일이 흔하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성벽이 뚫리더라도 일부 지역은 살아남아서 농성전을 계속할 수 있다.

한국의 평지성들은 대체로 읍성이며, 방어적인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시에 피란하여 농성할 별도의 산성을 갖춘 경우도 많았다. 한반도의 특성상 어딜 가든지 산은 꼭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사시 피란이 전제된 읍성들은 대체로 성벽의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방어에 썩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평산성[편집]

평산성. 서울 한양도성의 산성 부분

평산성은 산지와 평지를 아울러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을 말한다.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과거 고려/조선 시대의 개성/서울의 성곽이나 고구려 평양성, 백제 사비성, 동래읍성, 수원화성이 이런 평산성에 속한다.

다만 이러려면 지형의 조건이 평지 옆에 험준한 산이 붙어있는 등 여러가지 조건이 딱 맞아야 하므로 평산성은 짓고 싶을때 마음대로 지을 수 없어 그 수가 적다. 그리고 제대로 짓지 않으면 평지성도 아니고 산성도 아닌 것이 양자의 약점을 고루 가진 망작이 되기 딱 좋다. 더구나 성 안에 살고 있는 인구수에 비해 성벽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평산성이었던 읍성들이나 한양과 개성에서 성벽이 있는 송악산, 용수산, 북한산, 남산 등의 산기슭을 본다면 민가가 하나도 없어 성벽 둘레에 비해 사람이 거주할 구역이 평지성보다 제한적이다. 당연히 성벽을 따라 배치해야할 병사들의 수도 외부의 지원군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방어하기 힘든, 불리한 구조다.

지하[편집]

마지노선처럼 국경선 전체가 요새화된 방벽+지하 네트워크로 된 물건이나 지면 밖에 나온 시설물은 거의 없는 데 반해 지하에 100km가 넘는 지하통로로 거미줄같이 연결돼 있는 구조인 지하요새도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베트민과 베트콩들이 건설한 구찌 터널이 이런 개념으로 지어졌는데, 비록 사람이 들어가기엔 대단히 비좁긴 하나, 내부에 작전회의실, 식량창고, 병사들용 침실에 사기 진작을 위한 간이 극장도 있는 등, 웬만한 것을 다 갖추고 있다.

현대의 일부 군사기지도 종종 이런 식으로 건설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상기한 마지노 선이나, 스위스의 방공호 등인데, 입구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구찌 터널과는 달리, 못해도 수천 명에서 많게는 천만 명도 넘는 인구를 수용해야하므로 내부가 훨씬 넓고 쾌적하게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방공호를 다른 용도로 많이 써먹는데 주로 서민들의 피서, 피한지로도 애용된다.

이런 요새는 주로 건축공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건설되지만, 데린쿠유같이 고대에 지어진 지하 도시도 좀 있다. 이 경우는 화산암같이 파내기에 용이한 지형에 주로 건설되었으므로 건설 난이도는 다소 낮지만,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당대의 첨단 기술이 대거 동원되었다.

재료[편집]

성의 재료에 따른 분류는 다음과 같다.

  • 목책성(木柵城): 목책, 책성, 성책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 형태의 성이다. 상대적으로 싼 값으로 쉽고 빠르게 세울 수 있지만 내구성은 낮으며, 특히 재질의 특성상 불에 약하다. 상위호환형으로 목책도니성(木柵途泥城)이 있는데, 이것은 한옥의 벽을 만드는 것처럼 나무로 골조를 만든 뒤, 흙을 덧씌워 토벽을 만드는 것으로 일반 목책보다는 품이 더 들지만 다른 성에 비해 훨씬 싼 값으로 빠르게 지을 수 있으면서도 일반 목책보다 튼튼하다. 목책도니성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보루 건설에 많이 사용했으며, 이외에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던 전라도 해안지대에 많이 건설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역시 많이 사용했고, 이에 유성룡은 <설책지법>에서 여말선초기의 목책도니성과 왜군의 임시진지를 기초로 하여 대포를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목책도니성을 제시한 바 있다. 전축성, 석성이 일반화된 뒤에도 싸고 빠르게 짓는 게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 목성(木城): 느릅나무, 버드나무, 탱자나무 등 빨리 자라거나 가시가 있는 나무들을 최대한 일렬로 빽빽하게 심어 서로 엉켜 자라게 해 천연 방어벽으로 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북방의 요, 금의 압력 때문에 자유로운 성곽 건설이 힘들었던 남송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 토성(土城): 흙을 쌓아 만든 성. 토루(土壘)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 황하 유역에서는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지형 자체가 널리고 널린 게 고운 진흙인 데다 흙에 칼슘성분이 풍부해 토성임에도 매우 단단했기 때문이다. 목책과 같이 설치하여 방어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대에는 흙을 정교하고 일정한 두께로 깐 뒤 다지기를 반복해 만드는 판축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이 방법은 튼튼하지만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들어 적당히 쌓아올려 만드는 성토법, 완만한 형태의 지형을 급경사로 깎아서 토성의 효과를 내는 삭토법, 돌로 일부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토성을 쌓거나 아예 처음부터 흙과 돌을 섞어서 쌓는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이 있다.
  • 석성(石城): 석축성(石築城)이라고도 한다. 이름 그대로 돌을 쌓아 만든 성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단단한 화강암이 풍부한 한국에서 특히 발달한 성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식으로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쌓은 편축성(片築城)과 성의 내외벽면만 돌로 쌓고 사이에 흙을 채워넣은 협축성도 석성에 들어간다.
  • 전축성(塼築城): 전돌(벽돌)을 사용해 쌓은 성. 벽돌을 만들기 좋은 고운 흙이 풍부한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 벽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엄밀히 말해 순수한 전축성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돌과 흙을 벽돌과 같이 사용한 혼축성(混築城)이 대부분이다. 물론 벽돌성은 규격이 일정하여 보기도 좋고 섬세한 구조물의 건설이 가능하며, 접착력이 강해 포를 맞아도 피탄된 부분만 부서지는 장점이 있어 여러 차례 도입이 시도되었다. 국내에서도 드물지만 순수한 전축성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토질적인 이유로 좋은 벽돌 만들기가 어려웠으며 기후적으로도 습기가 많아 벽돌이 흙과 잘 붙지 못해 내구성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좋은 석재가 풍부하고 가공기술이 잘 발달해 있어 한국에서는 전축성이 주류가 되지는 못하였다.

역할[편집]

  • 관문
  • 기지
  • 병영
  • 읍성
  • 진지

구성[편집]

  • 교두보
  • 내성 / 외성
  • 도개교
  • 돈대
  • 망루
  • 미궁 / 미로
  • 보루
  • 비밀통로
  • 저항보
  • 총안구
  • 포루
  • 포탑 (터릿)
  • 해자 / 참호
  • 호딩


현대[편집]

  • 감시초소
  • 검문소
  • 대전차방호벽
  • 용치
  • 체코 헷지호그
  • 모래주머니
  • 바리케이드
  • 벙커
  • 방공호
  • 위병소
  • 전초기지
  • 지뢰
  • 철조망

한국의 성 =[편집]

삼국시대까지[편집]

  • 경주 월성 - 신라의 궁궐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경복궁 같이 담장만 두른 궁성은 아니고 구릉에 성벽을 쌓고 해자까지 둘러 그 위에 궁궐은 지은 것이다.
  • 공산성 - 백제의 산성.
  • 관문성 - 울산의 신라성.
  • 국내성 -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
  • 관미성 - 백제 성.
  • 당항성 - 신라가 중국 국가들과 직접 연결되는데 꼭 필요했던 곳이다.
  • 명활성 - 신라 성.
  • 몽촌토성 -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 첫 도읍지로 추정 중이다.
  • 박작성 - 압록강 하류의 고구려 성. 중국 동북공정에 의해 만리장성으로 개조당한 불운의 성이다.
  • 반월성 - 고구려 성.
  • 달성 - 대구 달성공원의 그 달성이다. 원삼국시대의 대구 유력 군장세력이 다스리던 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토성으로 지어졌으나 시대에 따라 석벽을 갖추며 변화됐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고 돌로 쌓은 성벽들도 보기 힘들지만 공원 입구에 뚫린 곳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원모양으로 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 대야성 -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
  • 부여성 - 고구려 천리장성의 북쪽 끝.
  • 사비성 - 백제의 마지막 도읍.
  • 분산성 - 가야 성.
  • 삼년산성 - 신라 성. 견고함과 특색있는 4개 문으로 유명하다.
  • 수정성 - 고구려 왕궁 안 수정으로 만들었다는 성.
  • 신성 - 고구려 성.
  • 아차산성 - 바보 온달이 싸우다 죽었다고 여겨지는 성.
  • 안시성 - 안시성 전투로 유명한 고구려 성.
  • 영인산성
  • 오녀산성 - 고구려의 첫 도읍지.
  • 요동성 - 수,당을 여러번 엿먹인 고구려 성.
  • 우불산성 - 신라 성.
  • 위례성 - 백제 수도 이름.
  • 장미산성
  • 천리장성
  • 평양성 - 고구려의 마지막 도읍.
  • 풍납토성 -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 도읍으로 추정 중인 성.

고려, 조선[편집]

  • 가산산성 - 팔공산에 위치하여 대구 북부를 방비하던 산성.
  • 경주읍성
  • 귀주성 - 고려시대에 활약했다.
  • 금오산성
  • 낙안읍성 - 잘 보존된 관광지로 유명하다.
  • 남한산성 - 유네스코에 등재된 병자호란의 아픔을 간직한 성.
  • 대구읍성 -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일본인 상권 확장을 위해 무너뜨린 성이다. 당시 대구 시가지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던 탓에 읍성 성벽이 있던 곳은 현재 동성로, 북성로, 서성로 등 대구 시가지가 들어섰다. 읍성 안에 있던 경상감영이 실질적인 중심지였다.
  • 문경새재의 관문들
  • 북한산성 - 서울 북부의 방위를 책임진 성.
  • 상당산성 - 청주의 조선시대 성.
  • 서생포왜성 -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일본식 성.
  • 수원화성 -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 성의 최종판.
  • 순천왜성 - 고니시 유키나가가 정유재란 때 축성한 일본식 성.
  • 울산왜성 - 가토 기요마사가 죽을 뻔했던 왜성.
  • 전라병영성 - 조선시대 전라병영이 위치했던 성
  • 전주성 - 풍남문이 유명하다.
  • 정족산성 - 병인양요로 유명한 성.
  • 진주성 - 임진왜란 때의 1,2차 진주성 전투의 현장.
  • 단양 적성 - 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단양 신라 적성비로 유명한 성이다.
  • 천리장성 - 고구려와 고려가 각각 따로 쌓은 성인데, 고구려는 당대 건축 기술의 한계로 인해 그냥 성 여러 개를 일렬로 늘어놓아서 세워놓은 식으로만 건설한 반면, 고려는 진짜로 만리장성 스타일의 길쭉한 성벽으로 지었다.
  • 서울 한양도성 - 조선시대 서울의 기본 방위와 경계를 담당함 성.
  • 행주산성 - 행주대첩지.
  • 홍주성

현대[편집]

  • 매미성 - 태풍을 막으려고 지었다가 관광지가 되어 유명해진 성. 세계에서 가장 적은 인원(단 1명)이 건축한 성이기도 하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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