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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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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하

홍정하(洪正夏)는 조선 후기의 수학자이다. 방정식과 마방진 등을 연구했다.

개요[편집]

홍정하는 조선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18세기 초 방정식의 구성과 해법에 대하여 가장 앞선 결과를 얻어낸 『구일집(九一集)』의 저자이다.

1713년 5월 29일 홍정하는 같은 수학자인 유수석과 함께 조선에 온 중국의 저명한 대수학자 하국주를 만나서,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하국주가 홍정하와 유수석에게 수학 문제들을 내었다. 하국주가 참패하자, 하국주 옆에 있던 한 중국 사신이 홍정하와 유수석도 하국주에게 문제를 내보라고 하자, 홍정하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지금 여기 옥에서 속의 정육면체 부분을 빼놓은 껍질의 무게는 265근이고, 껍질의 두께는 4치 5푼입니다. 이 옥의 지름과 내접하는 정육면체의 한 변의 길이는 각각 얼마입니까?" 하국주는 "매우 어려운 문제니 내일 답을 말해주겠소."라고 했지만, 결국 내일까지 답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홍정하는 정육면체의 한 변의 길이는 약 5치이고, 옥의 지름은 약 14치라고 말한 후, 답 풀이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후에도 몇 가지 수학 문제들로 더 토론한 뒤, 하국주는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중인 산원에 관한 정보는 『주학입격안(籌學入格案)』, 『주학선생안(籌學先生案)』, 『주학팔세보(籌學八世譜)』 밖에 없다. 『주학입격안』에는 15세기 말부터 1888년(고종 25)까지 취재 합격자 1,626명이, 『주학선선생안』에는 1869년까지 1,173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산서를 저술한 사람은 홍정하, 경선징(慶善徵), 이상혁(李尙爀) 세 사람뿐이다.[1][2]

홍정하의 생애[편집]

홍정하(1684년~1727년)는 조선 시대의 수학자이다. 본관은 남양홍씨 당홍계 남양군파. 홍정하는 가문 대대로 수학자 집안에서 자란 덕분에 쉽게 수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홍정하는 산학 시험에 합격한 후, 본격적으로 수학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남양 홍씨는 주학 취재에 합격한 110명 중에 100명이 홍정하의 가계에 들어 있다. 홍정하의 조부 홍서주는 1647년(인조 25), 그의 형 홍서구는 1631년(인조 9) 취재에 합격한다. 이들은 영장, 수직가선대부를 지낸 홍인남의 아들이다. 홍정하의 부친 홍재원(1682년 입격)은 경선징의 조카 경연(1653년 입격)의 사위이고, 홍정하는 이극준(1674년 입격)의 사위이다.

홍정하는 1706년(숙종 32) 취재에 입격한 후 1718년(숙종 44) 훈도(정9품), 1720년(숙종 46)에 교수(종6품)가 되었다. 『구일집』의 잡록에 1713년(숙종 39) 유수석(劉壽錫)과 함께 청의 하국주와 산학을 논한 것이 나타났다. 역상고성(曆象考成)』(1721),『수리정온(數理精薀)』(1723)을 포함하는 『율력연원(律曆淵源)』(1722)을 출판하는데, 하국주는 교산(校算)을 맡은 사람이다. 회사(會士, 종9품)인 홍정하가 하국주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의 산학이 매우 뛰어났음을 뜻한다. 홍정하는『구일집』에서 논한 천원술을 이용한 방정식의 구성과 증승개방법을 사용한 해법으로 하국주가 제시한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천원술과 산대를 모르는 하국주와 삼각법을 포함하는 서양수학을 모르는 홍정하는 거의 수학적으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홍정하는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에 대한 수학적 구조를 조선 최초로 알아내고 구고술, 퇴타술, 기하 문제 등에 대해 구조적으로 문제를 구성하여 이론과 응용을 동시에 해결하였다. 이러한 발견과 이론들을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저서 구일집에 담았다. 이러한 풀이를 하는 데는 대나무로 만든 산가지라는 계산 도구를 이용하여 셈을 하였다. 이상혁의 부친 이병철(1799년 입격)은 홍정하의 조카 홍이록(1777년 입격)의 사위이고, 이상혁의 고조 이태윤(1716년 입격)은 홍정하와 동서이면서 홍정하의 백부 홍시원(1669년 입격)의 외손자이다. 따라서 경선징, 홍정하, 이상혁의 집안은 산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국주의 동생 하국종과 매각성은 『율력연원』의 대표 편찬자로 일하고, 고측(考測)으로 일한 하제도는 하국주와 함께 대담에 참여한 것이 잡록에 나온다. 하제도와 하국주가 조선의 천원술을 매각성에게 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정하의 『구일집』은 이상혁과 남병길이 연구한 산학계몽주해(算學啓蒙註解)』(1662)에도 드러난다.

홍정하의 업적[편집]

홍정하가 쓴 책인 구일집에는 파스칼의 삼각형, 복잡한 이항계수의 정리, 고차 방정식의 풀이 등이 쓰여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사라진 방정식 표현법인 천원술을 발전시키고 조립제법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한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을 통해 방정식의 풀이법을 연구해 저서인 <구일집>에 10차 방정식의 풀이까지 담아 조선만의 방정식 이론을 발전시켰다. 물론 당연히 찾지도 못하는 참값을 찾은 건 아니고 산가지를 이용해 수치해석학적 풀이를 찾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 당시 산가지를 버리고 주판에 몰입했는데, 주판이 산가지에 비해 연산력이 월등하기도 했지만 당시 산가지의 이론들이 원나라의 연구대상이라서 반대로 명나라 들어서 기피대상이 된 게 컸다. 그러다가 동시에 주판으로 다루기 곤란한 방정식론이나 유한급수론이 모조리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일본과 중국에서 버린 산가지를 계속 메인으로 사용했기에 방정식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의 양휘가 만든 백자도에는 가로와 세로의 합이 505로 같은 마방진이 있었는데, 척 보고는 대각선의 합이 505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첫째 줄과 두 번째 줄, 마지막 줄과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줄이 바뀐 것을 알아냈다. 두 수의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의 수학적 구조를 조선 최초로 얻어냈다. 홍정하는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동양 전래의 계산법인 천원술과 다항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개방법을 발전시키고 지금의 조립제법과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한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을 통해 방정식의 풀이법을 연구하여 10차 방정식의 풀이까지 담아 조선만의 방정식 이론을 발전시켰다.

구일집[편집]

구일집(九一集)은 조선 후기 숙종 때 산학(算學)에 조예가 깊었던 홍정하(洪正夏)가 저술한 산술서(算術書)이다. 필사본. 9권 8책. 5세손(世孫) 홍영석(洪永錫)이 교자(校字)하여 발간한 것이다. 권1은 종횡승제문(縱橫乘除門)·이승동제문(異乘同除門)·전묘형단문(田畝形段門)·절변호차문(折變互差門)·상공수축문(商功修築門) 등이고, 권2는 귀천차분문(貴賤差分門)·차등균배문(差等均配門)·귀천반율문(貴賤反率門), 권3은 지분제동문(之分齊同門)·물부지총문(物不知總門)·영부족술문(盈不足術門), 권4는 방정정부문(方程正負門)·구척해은문(毬隻解隱門)·관병퇴타문(罐甁堆挅門)·창돈적속문(倉囤積粟門), 권5는 구고호은문(句股互隱門)·망해도술문(望海島術門), 권6∼8은 개방각술문(開方各術門)을 상·중·하로 나누어 실었고, 권9는 잡록(雜錄)으로 천문(天文) 및 음계의 공식을 문답식으로 서술하였다.

구일집은 조선의 위대한 수학자로 추앙받는 홍정하(洪正夏, 1684∼미상)의 업적이다. 천원술(天元術: 일차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동양 전래의 계산법)을 이용한 방정식의 구성과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 다항방정식의 근사해를 얻는 방법)을 통한 방정식의 해법으로 조선의 방정식론을 완결하였다. 최소공배수에 관한 수론, 구고술, 퇴타술, 기하 문제 등에 대하여 구조적으로 문제를 구성하여 이론과 응용을 동시에 해결하였다. 천문학과 율려(律呂)를 정리하고 청의 수학자 하국주(何國柱)와의 대담으로 당시 중국의 방정식론보다 홍정하가 앞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일집은 동양의 여러 수학서의 해법을 정리하고 새롭게 응용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수학서이다. 먼저 『산학계몽』의 천원술에서 음수 지수를 포함하는 천원술과 함께 무리식을 포함하는 고차연립방정식에서 방정식을 구성하여 『집고연단(緝古演段)』의 문제를 포함하는 구고술, 도형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양휘산법』에 들어 있는 일반 2차방정식의 해법에서 증승개방법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방법을 얻어냈다. 한편, 『산법통종』에 인용된 양휘의 10차 마방진의 오류를 고쳐 제대로 된 10차 마방진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최소공배수에 관한 수론은 현재도 사용할 수 있는 이론이며 문제의 배열을 보면 수학에 대한 그의 구조적이며 엄밀한 태도를 알 수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홍정하〉, 《위키백과》]〉, 《위키백과》
  2. 홍정하〉,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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