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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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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자카르타 위치

자카르타(인도네시아어: Jakarta, 문화어: 쟈까르따)는 인도네시아수도이자 인도네시아의 최대 도시이다. 정식 명칭은 자카르타 특별수도지역(인도네시아어: 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DKI Jakarta)이다. 옛 이름은 '바타비아'(Batavia)이며 자와섬 북서 기슭에 위치해 있다. 도시 자체 인구는 1,130만 명이고 수도권에 3,250만 명이 넘는다.[1]

개요[편집]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로 자바섬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다. 찔리웅강(Ciliwung River)의 하구와 자카르타만의 주변 해안, 낮고 평평한 충적지에 자리하며 도시의 평균 고도가 5m에 불과하다. 자카르타는 세계적으로 과밀한 메트로폴리스로 필리핀메트로마닐라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인구 1천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포르투갈이 1522년 당시의 파쟈자란 왕국과 협정을 맺어 무역의 거점으로 건설한 도시이다. 1527년 후아타히라에게 점령되어, 자야카르타로 명칭이 바뀌었다. 자야카르타는 '승리의 도시'라는 뜻으로 현재의 자카르타는 이를 줄인 말이다. 16세기 말 네덜란드의 상관이 설치되었고, 1619년 동인도 총독 쿤은 바타비아라고 개칭하였다. 그 뒤 네덜란드인의 세력 발전에 따라 시가지는 번영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옛 이름인 자카르타로 환원되었다. 1942년 일본군이 점령했으며 1949년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 행정의 중심지 일뿐 아니라 국가 경제 기여도가 60%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의 핵심지역이다. 과밀한 인구, 높은 교통체증, 대중교통의 미발달, 빈번한 홍수 위협 등이 이 도시를 설명하는데 자주 동원되며, 인구 대비 도시 인프라, 주거, 직업 창출이 부족한 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의 혼잡과 잦은 해수면 상승 등과 같은 환경재해 그리고 국토 균형발전을 이유로 동칼리만탄으로 수도 이전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경제, 사회적 중심지로서의 자카르타의 위상은 상당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5개 시와 1개 군으로 구성된다. 네덜란드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시가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메르데카 광장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의 정치·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통령 관저, 관청 등이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쇼핑 센터, 남쪽에는 주택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자카르타는 자바섬 북서부 해안, 찔리웅강(Ciliwung River)의 하구와 자카르타만의 주변 해안에 위치한다. 자카르타는 낮고 평평한 충적지에 위치해 있고 고도가 -2m에서 50m에 이르며, 평균 고도가 5m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따라 해수면이 높았을 때 도시의 대부분은 물에 잠겼거나 습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부의 일부 지역은 해수면보다 낮으며, 주로 갯벌을 간척하여 만든 땅이다. 자카르타의 하천은 찔리웅강을 포함하여 12개가 있다. 그러나 저지대의 배수 능력이 부족하여 매년 수차례 홍수를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자카르타는 연약 지반에 위치하는데 상수도를 지하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으로 지반 침하가 일어나고 있다. 지반침하는 연간 5~10cm수준이고, 일부 북쪽 지역은 연간 20cm 정도의 침하가 일어나서 침수 피해 지역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반침하와 잦은 홍수는 수도 이전의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카르타의 면적은 661.23km²로 인도네시아의 모든 지방 중 가장 작다. 자카르타는 남쪽의 도시인 보고르(Bogor)까지 연담되어 도시 토지이용이 일어나며 동·서쪽에도 도시 경계를 넘어 도시가 확장하고 있다. 해안의 일부 섬과 자연공원을 제외하고는 자카르타의 전부는 도시 토지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과거부터 간척과 주변 개발을 통해 도시 또는 대도시권의 면적을 늘려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개발 여하에 따라 범위와 밀도는 확장될 여지가 크다.

자카르타는 쾨펜의 기후 분류 체계 에 따르면 열대성 몬순 기후(Am)를 가지고 있다. 자카르타의 우기는 10월부터 5월까지 8개월 동안 지속된다. 나머지 4개월(6월부터 9월)은 도시의 건조한 계절을 구성하며 월평균 강수량이 100mm 미만이다. 8월은 강수량이 60mm 미만이고 건기에 접어들어 물 부족이 발생하고 기온이 29°C에서 38°C까지 이르기 때문에 진정한 건기 달로 분류된다. 자바 서부 지역에서 우기는 1월과 2월에 가장 심하며 월평균 강수량은 297.7mm이다. 자카르타는 매년 강수량이 가장 많고 기온은 18°C에서 26°C 사이로 다양하다. 건기가 가장 약한 달은 8월로 월평균 강수량이 43.2mm이다.[3]

역사[편집]

식민지 시대[편집]

자카르타는 네덜란드 식민 시대부터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해양 무역상에서 출발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서부 자바의 작은 항구였던 순다클라바(Sunda Klapa)를 점령하였다. 이 지역은 순다 왕국의 무역항으로 '자야카르타'(Jayakarta)라고도 불리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 지역의 이름을 '바타비아'(Batavia)로 개칭한 후 모국의 암스테르담과 유사한 운하가 있는 항구도시로 개발하였다.

바타비아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은 운하를 건설하고 네덜란드 양식의 건축과 도시계획을 적용하여 최대한 암스테르담과 유사한 도시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에 17세기 이후 바타비아는 '열대의 네덜란드'라 불리기도 하였다. 해안가 바타비아 안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회사와 창고 등의 무역 시설 뿐 아니라 행정기구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행정 및 경제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지역의 이주민들이 모여들게 되었는데, 이들은 집단별로 거주지를 분리하였다. 당시 유럽인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던 중국인들도 항구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차이나타운(Pecinan)에 집중거주하면서 기존의 상업적 활동을 영위하였다.

1800년에 접어들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재정난과 부패로 파산에 이르렀고, 이에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직할 식민지로 경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예속된 상황이어서 이 결정은 프랑스의 후견 속에서 이루어졌다. 1800년대 초반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 심화되며 영국이 자바섬과 자카르타를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네덜란드의 왕정이 복고되며 바타비아에 대한 지배 권한은 네덜란드에 반환되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배가 길어지면서 보다 안정적인 거주지를 찾아 식민시대의 도시개발이 중앙 자카르타의 멘뗑(Menteng)까지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 시절에 도시 중심은 구도심인 코타 투아(Kota Tua)를 벗어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 일본의 식민지배도 받았다. 일제는 1942년 이 도시를 점령하고 도시명을 바타비아에서 '자카르타'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주로 외방도서의 자원 약탈과 전쟁에 집중하느라 자카르타의 행정관청은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독립 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국민혁명 당시 인도네시아 공화당원들은 연합군이 점령한 자카르타에서 철수해 족자카르타에 수도를 세웠다. 완전한 독립을 확보한 후, 자카르타는 다시 1950년에 국가의 수도가 되었다.

초대 대통령 아크멧 수카르노(Sukarno, 재임기간 1945~1966)는 반둥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고, 이에 독립 이후 자카르타를 국가의 근대적 수도로 만들기 위해 근대적 도시계획과 다양한 도시 상징물을 곳곳에 배열하였다.

먼저 도시의 남북을 잇는 중심도로의 이름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부여하였는데, 땀린로(Jalan Tamrin)과 수디르만로(Jalan Sudirman)가 대표적이다. 수카르노는 새로운 독립국가·다종족 다종교의 화합을 상징하는 모나스 국가 기념탑과 메라데카 광장을 조성하였다. 이어서 모나스의 동쪽 찔리웅강변에는 세계 최대의 이스띠끄랄 이슬람 사원(Masjid Istiqlal)을 건설하였다. 모나스와 이스띠크랄 사원은 독립된 통합국가를 상징하는 국가통합 및 근대국가 출범의 상징건축물들이라 할 수 있다.

수카르노 시대 인도네시아는 제3세계 동맹의 맹주로 나서면서 도시의 국제화도 시도하였다. 외국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건설된 최초의 국제급 현대 호텔인 호텔 인도네시아,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인 샤리나 백화점 등이 1960년대에 건설되었다. 또한 1962년 아시안게임과 1963년 신흥국경기대회(GANEFO: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를 유치하면서 주경기장 용도로 스나얀스포츠콤플렉스(현 겔로라 붕카르노, Stadion Gelora Bung Karno)를 건설하였다. 또한 남북 축인 땀린-수디르만로와 남부의 동서 축인 가또수브로또를 연결하는 스망기 인터체인지(Semanggi flyover)를 건설하며 도시의 근대성을 드러내었다.

자카르타 경제의 중심지는 남부 자카르타(Jakarta Selatan)이다. 이 지역의 초기 개발은 1940년대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수카르노 정부는 독립국가의 새로운 공무원들의 신규 주거단지 용도로 끄바요란 바루(Kebayoran Baru)의 개발 계획을 승계하였다. 개발당시 이 지역은 자카르타 도시의 일부라기보다는 도시의 남부 외곽 지대에 위치한 위성도시의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수디르만로를 따라 도시 중심부까지의 접근성과 통근로가 확보되었고, 이로써 끄바요란 바루의 주택가에서 정부 관청과 당시의 주요 상업시설들이 다수 위치한 땀린으로의 통근권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의 도시 성장은 주로 수도인 자카르타의 인구증가의 결과이다. 1961~1971년 자카르타 도시인구는 290만 명에서 460만 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며, 연간 성장률은 5.8%에 달한다.

1970년대 초부터 자카르타 마스터플랜에 따른 도시개발이 한계에 이르면서 새로운 개념의 자카르타 대도시권(Jakarta Metropolitan Region, JMR) 개발계획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70년대 이후 외국인 투자를 바탕으로 도시 개발을 추진하던 정부 정책에 의해 도시 외곽 지역에 공단과 주거지를 비롯한 도시개발이 시작되었고, 당시 도시화의 범위는 도시 중심부로부터 15km 이내로 제한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자카르타와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수도권 인구가 1,190만 명에 달하게 되면서, 수도권의 범위는 도시 중심으로부터 20km까지 확장되었다. 이로써 자카르타 수도권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자카르타의 도시 확대는 60~80년대 독립광장을 중심으로 한 남향의 방사형 도로(땀린과 수디르만)를 타고 남향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으나, 1980년대 이후 동서축을 중심으로 한 도시 개발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남향 방향 개발은 주로 양질의 상수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컸는데, 동서 방향의 개발은 산업화와 적극적인 도시계획에 의해 주도되었다. 1980년대에 수립된 도시 확대 정책이 수립되면서 자카르타 서부의 땅어랑(Tangerang)과 서부의 버카시(Bekasi)를 향하는 고속도로와 신도시 및 산업단지 개발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즈음 인도네시아의 도시화 상황은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단핵구조에서 다수의 산업도시 중심지를 갖춘 대도시 차원으로 이동하였다. 도시 및 택지 개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은 줄어들었으나, 21세기 초반 투기성 토지개발과 메가 프로젝트는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중산층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4]

행정구역[편집]

자카르타는 총 다섯 개의 권역 (Kota Administratif, 행정시)과 하나의 도 (Kabupaten Administratif)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권역에는 시장이 임명된다. 각 권역과 도는 다시 구와 읍 (Kecamatan)으로 나뉜다. 자카르타의 다섯 권역은 다음과 같다.

  • 중앙자카르타 (Jakarta Pusat) - 자카르타에서 가장 작은 시면서도 자카르타의 정치와 행정기관이 집중된 지역이기도 하다. 총 8개의 구로 나뉜다. 중앙자카르타에는 넓은 공원과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건물들이 여러 곳 자리한 것이 특징이며, 주요 건축물로는 모나스 국립기념관, 이스티글랄 모스크, 자카르타 성당, 국립박물관 등이 있다.
  • 서자카르타 (Jakarta Barat) - 자카르타의 중소규모 산업체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총 8개 구로 나뉜다. 이곳에는 자카르타 차이나타운과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건축물이 위치해 있으며 주요 건축물로는 랑감 빌딩과 붉은 별장인 토코 메라 등이 있다. 자카르타의 구도심에 해당된다.
  • 남자카르타(Jakarta Selatan) - 본래 자카르타의 위성도시로 개발된 지역으로 대규모 쇼핑센터와 부유층 주택단지가 자리해 있다. 총 10개 구로 나뉜다. 자카르타의 업무지구는 남자카르타의 세티아부디 구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곳은 중앙자카르타의 타나아방구, 수디르만구와 경계를 나란히 한다.
  • 동자카르타(Jakarta Timur) - 자카르타의 동부를 차지하며, 산업구역 여러 곳이 자리한 지역이다. 테마파크인 타만 미니 인도네시아 인다와 할림 페르다나쿠수마 국제공항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총 10개 구로 나뉜다.
  • 북자카르타(Jakarta Utara) - 자카르타의 다섯 권역 중에서 유일하게 자바해와 접해있는 지역이다. 총 6개 구로 나뉜다. 탄중 프리옥 항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대규모 산업단지가 북자카르타에 집중되어 있다. 17세기 바타비아의 중심지이자 동인도 회사의 무역거래가 집중되던 곳으로 자카르타 구도심에 속한다.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관광단지인 안촐 드림랜드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자카르타의 도는 하나뿐이며 다음과 같다.

  • 스리부 섬 (Kepulauan Seribu) - 옛날에는 북자카르타에 속한 구였다. 자바 해에 위치한 군도로서 총 10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생태계로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구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다이빙이나 수상자전거, 서핑 등의 해상관광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각 섬 사이에는 고속보트와 작은 페리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편집]

자카르타는 명실상부한 인도네시아 경제의 중심 도시이자 동남아시아 경제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인도네시아 금융, 제조업, 의료업, 물류, 통신, IT, 교육 등에서 핵심적인 입지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단, 오늘날 많은 기업의 본사나 사무실이 자카르타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공장들은 자카르타 인근 위성도시 브카시, 탕그랑 등지의 대형 산업단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자카르타 시내 수디르만 중심 업무 지구(Sudirman Central Business District, SCBD), 메가 쿠닝안(Mega Kuningan) 등의 지역을 포괄하는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지역은 각종 고층 빌딩이 늘어선 핵심 경제 지역으로 서울의 강남역 인근 지역 내지 테헤란로 일대, 또는 여의도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주요 관광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관광업도 발달해 있는 편이며, 인도네시아의 관문으로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상당히 현대화가 진행되어 서비스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쇼핑 문화가 독특한 방식으로 발달해 있기도 하다.

관광[편집]

자카르타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동남아 일대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자원을 모으기 위한 거점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당시 자바섬에서 무역항으로 적합한 곳을 획득하고 개발한 곳이다. 네덜란드 점령 이전에도 반튼 술탄국의 유력한 무역항이기는 했지만 네덜란드 획득 시점에 문화적으로 딱히 중요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네덜란드인들과 이들이 데려온 화인들의 도시 문화가 주로 발달하였다. 따라서 주된 볼거리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유적이나 현대적인 랜드마크들이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모나스, 자카르타 국립 박물관, 안촐 유원지, 자카르타 씨월드, 타만 미니 등이 있다.

자카르타의 국가상징 기념물들은 대부분 1960년대 아크멧 수카르노(Sukarno, 재임기간 1945~1966) 정부 때 건설되었다. 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지들은 다음과 같다.

모나스 국립기념탑[편집]

모나스(Monas)는 132m 높이의 국가기념비로 머르데카 광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 정상부에 올라갈 수 있으며, 자바해와 남부의 고층빌딩 중심지를 두루 조망할 수 있다. 머르데카 광장은 본래 네덜란드 총독에 의해 1810년 왕의 광장(Koningsplein)으로 조성되었으나 독립 후 해방을 의미하는 머르데카로 개칭되었다.

타만 미니 인도네시아 인다[편집]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미니어처공원(Taman Mini Indonesia Indah)이다. 1975년에 문을 연 문화공원으로 인도네시아 영토의 미니어처가 있는 호수공원을 비롯 각지의 생활문화양식을 구현해 놓았다. 총 넓이는 100ha를 넘으며 자카르타의 동남부에 위치한다.

꼬따뚜아(KotaTua)[편집]

자카르타 북부의 구도심 지역으로 전체 면적은 334ha에 달한다. 식민시대 개발된 도시지역으로 오랜 기관 적절한 관리 없이 방치되었다가 2000년대 이후 문화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였으나 2015, 2016년에 모두 실패하였다. 핵심지역은 파타힐라 광장(Fatahillah Square)으로, 이 명칭은 1527년 이곳을 침략한 포르투갈 군대를 막아낸 당시의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순다 끌라빠 항에서 남쪽으로 4km 떨여져 있는 이곳은 과거 식민정부청사의 앞마당으로 시장이나 군사광장으로 활용되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식민지 관청들인 시청, 법원, 군사기관 등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발물관, 전시관, 식당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축제[편집]

국제 도시인만큼 자카르타에서는 연중 이벤트와 축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먼저 신년에는 중국계의 축제인 음력설과 정월대보름에 해당하는 짭고메(Cap Go Meh) 기념행사가 크게 열린다. 자카르타의 차이나타운인 글로독 등에서 사자춤과 용춤 공연이 이어지고 바닷가에서는 용선 경주도 펼쳐진다.

6월에는 자카르타의 원주민으로 알려진 바따비아(Betawi)의 문화 축제인 잘란 작사 축제(Festival Jalan Jaksa)와 팔랑 핀투 축제(Festival Palang Pintu)가 열린다. '온델-온델'이라고 불리는 대형인형의 거리행진과 음식 축제들이 있다. 9월에는 인도네시아 국제 모터쇼, 10월에는 자카르타 국제 재즈페스티벌, 12월에는 자카르타 국제 영화제 등이 개최된다.[5]

지도[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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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지역 가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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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자카르타〉, 《위키백과》
  2. 자카르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Jakarta", Wikipedia
  4. 자카르타〉, 《요다위키》
  5. 자카르타〉,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 도시
동남아시아 지리
동남아시아 바다
동남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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