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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나이'''(영어: Chennai, 타밀어: சென்னை)는 [[인도]] [[타밀나두주]]주의 [[주도 (도시)|주도]]이자, [[벵골만]]과 접한 남인도의 최대도시이다. 과거에는 '''마드라스'''(Madras)라는 도시명이었으나, 1996년에 첸나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2023년 첸나이시의 인구는 1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도에서는 6번째로 큰 도시이며, [[현대자동차]]의 인도 현지공장이 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C%B0%AC%EB%94%94%EA%B0%80%EB%A5%B4 첸나이]〉, 《위키백과》</ref> | ||
== 개요 == | == 개요 == | ||
− | * 행정 단위: 인도 | + | * 행정 단위: 인도 [[타밀나두주]] 도시 |
* 면적: 426 km² | * 면적: 426 km² | ||
− | + | * 지역어: [[타밀어]] | |
− | * 지역어: 타밀어 | ||
− | == | + | 첸나이는 인도 동남부 벵골만의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해 있다. 첸나이는 남인도 문화와 행정,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로, 인도의 대표적인 무역항 중 하나이다. 첸나이는 첸나이 구와 인접한 교외 지역과 함께 인구 기준으로 세계에서 35번째로 큰 도시 지역이자 인도에서 가장 큰 대도시 경제 중 하나인 첸나이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구성한다. 첸나이의 면적은 시 기준 1,189㎢, 첸나이 광역권 기준으로 5,904㎢에 달하며 공식 언어는 타밀어이이다. 16세기 경 [[포르투갈]]의 지배 이후로 향료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7세기 경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양]] 무역의 패권을 장악한 시기, 마드라스 또한 영국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왔다. 영국은 섬유 제조업을 중심으로 첸나이의 경제와 무역을 발전시켰으며, 오늘날 첸나이는 인도 동남부의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첸나이는 교육 중심지로도 유명하며, 인도의 최초의 단과대학들이 위치하고 있다. 인도 공과대학교 중 하나로 첸나이에 소재하는 IIT 마드라스(IIT Madras, 1959년 설립)는 벵갈루루의 인도 과학원 바로 다음 가는 수준이며 영국 식민지 시대인 1857년에 캘커타 대학교, 뭄바이 대학교와 함께 인도 최초의 종합대학으로 설립된 마드라스 대학교가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인도 정부가 조사한 생활 편의 지수(Ease of Living Index)에서 인구 백만 이상의 도시 49개 중 [[벵갈루루]], [[푸네]], [[아마다바드]] 다음의 4위로 꼽혔으며 수도 [[델리]]는 13위였다. 첸나이에 있는 마드라스 [[박물관]](Madras Museum, Government Museum, 1851)은 오래된 고대, 중세 유물을 포함해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전시하는 첸나이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건물 자체도 근대 건축 유산이다. 첸나이에 있는 다른 박물관으로는 철도 박물관(Chennai Rail Museum) 등이 유명하다. 1906년에 세워진 국립 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은 오래된 근대 [[미술관]] 중 하나로 라자 라위 와르마(Raja Ravi Varma, 1848–1906) 등의 작품이 있고 고미술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힌두교 사원으로는 여러 근현대 사원들도 있지만 특히 파르타사라디 사원(பார்த்தசாரதி கோயில்)이 유명한데, 비슈누를 모시는 8세기 팔라바 왕조 시대의 사원으로, 8세기에 있었던 것이 비문 기록으로도 입증되고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90256&cid=40942&categoryId=34032 첸나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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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 및 기후== | ||
+ | 첸나이는 [[인도]]의 남동해안에 위치한 도시다. [[벵골만]]의 남서쪽인 코로만델해안의 해안평야에 위치해 있으며, 첸나이가 속한 해안평야를 인도에서는 동해안 평야(Eastern Coastal Plain)라고 부른다. 도시의 평균 해발고도는 6m 내외이며, 가장 높은 곳은 6m 정도다. 첸나이 동부의 남-북 방향의 해안선과 직각으로, 북쪽의 쿰강과 남쪽의 아디아르강이 첸나이 도심을 곡류하여 통과하며, 도시의 북쪽 외곽으로 코스틸리아르강(Kosasthalaiyar River)이 벵골만으로 흐른다. 이 강은 사력퇴적물을 하천 주변과 해안에 공급하며, 이에 따라 하천 주변은 사질충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첸나이 동해안의 북쪽 엔노어 항구(Ennore Port)와 도심 주변의 마리나 비치(Marina Beach) 사이 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빈 퇴적물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첸나이에서 사질충적지인 지역은 이 하천 주변과 해안으로만 한정되며, 도시 대부분은 대개 점토(clay) 또는 점토와 모래가 혼합된 충적지로 되어 있다. 점토가 모여있는 지역은 남인도 일대에 다수 분포하는 적색의 라테라이트이다. 첸나이 대도시권의 일부 지역과 내륙 일부는 퇴적암 지역으로 분류되며, 대개 사암 또는 셰일이다. 첸나이는 해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도시의 북쪽은 산업지역이며, 중심부는 상업지역으로 되어 있다. 첸나이의 남부와 서부는 과거 주거지였으나 최근 상업지역이자 첨단산업의 집적지로 발달해가고 있다. 첸나이의 토양은 해안과 하천 주변의 사질토, 그리고 그 외 지역의 점토와 점토-사질토 혼합토가 혼재되어 있다. 점토의 분포 지역은 대개 라테라이트토의 특성을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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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나이는 쾨펜의 기후구분상 열대 사바나기후(Aw)로 구분된다. 첸나이는 적도수렴대(ITCZ, 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에 포함되며 해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 상에서 많은 변화가 없다. 연평균기온은 29℃로 다소 더운 편이며, 연중 대부분 비슷한 기후특성을 띈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이 25℃, 가장 더운 5월의 평균기온이 32.4℃로 연중 변화가 크지 않다. 대체로 최고 기온은 38~42℃수준이나, 45℃에 육박한 경우도 있었다. 최저 기온은 1월 즈음의 18~20℃수준이며, 가장 추웠던 경우도 14℃정도의 기온분포를 보였다. 첸나이 일대의 연 강수량은 1,400mm수준이다. 도시 북동쪽의 계절풍에 영향을 받아 주로 9월 중신부터 12월 중순까지 우기로 구분된다. 열대저기압인 사이클론(cyclone)의 내습이 간간히 있으며, 자주 발생하였을 때는 연 강수량이 2,500mm를 넘기도 한다.<ref>"[https://en.wikipedia.org/wiki/Chennai Chennai]", ''Wikipedia''</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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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 첸나이는 서기 1세기 경 촐라왕조(Chola dynasty)의 통치로 시작하여, 3세기에서 9세기 경 팔라바 왕조(Pallava dynasty)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첸나이는 마드라스(Madras)라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촐라 왕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마드라스를 비롯한 동쪽 해안 지방을 차지하였으며, 남쪽의 판드야(Pandya)와 서쪽의 체라(Chera) 왕조와 경쟁하며, 남인도에서의 세력 균형을 유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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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라바람(Pallavaram)은 첸나이의 남서부 지역으로, 팔라바 왕조 시대에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이를 통해 남인도는 북인도와는 독립적인 정치적 세력을 강화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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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22년 [[포르투갈]]이 산 토메 항구(San Thome Port)를 건설한 이후, 16세기 경 이 지역을 중심으로 향료와 직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7세기 초, 동인도회사의 선박이 수라트 근해에서 포르투갈 선박을 패배시킨 후, [[영국]]은 동인도회사와 무굴제국과 협정을 맺고 인도에서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였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640년에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지배자에게서 마드라스 지역을 임차했으며, 이 지역에 상관을 설치하고, 성 조지 요새(Fort St. George)와 면직물 직조 공장을 건립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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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46년 세인트 포트 조지와 마드라스는 모리셔스의 총독인 라 부르돈나이스 장군 휘하의 [[프랑스]]인들에게 붙잡혔고, 그들은 마을과 그 외곽의 마을들을 약탈했다. 영국은 1749년 엑스트라 샤펠 조약을 통해 통제권을 되찾았고, 프랑스인들과 마이소르의 왕 하이데르 알리의 추가 공격을 견디기 위해 마을의 요새 벽을 강화했다. 그들은 1759년 프랑스의 포위 시도에 저항했다. 1769년, 도시는 마드라스 조약으로 제1차 영국-미소르 전쟁 동안 하이데르 알리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8세기에 이르러 영국은 이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마드라스를 수도로 하는 마드라스 대통령직을 수립했다. 이후, 프랑스의 세력권이 영국의 주요 거점인 마드라스를 포위하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은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 1725~1774)를 파견하였다. 그는 마드라스에 발령난 후, 프랑스에 포위당하던 도시 아르코트(Arcot)를 탈환했고, 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에서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19세기 초, 영국이 인도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자 마드라스는 남인도의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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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는 주요 해군 기지가 되었고 남인도에서 영국의 중앙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1802년 4월 10일에 시작된 인도 대삼각 측량의 기준선이었다. 19세기에 인도에 철도가 생기면서 이 도시는 봄베이, 캘커타와 같은 다른 주요 도시와 연결되어 내륙 지역 과의 통신과 무역이 증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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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한 후 도시는 현재 타밀 나두 주의 전신인 마드라스주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는 1956년 언어적 경계를 바탕으로 인도 국가들을 재편하는 결과를 낳은 포티 스리에라물루(Potti Sreeramulu)의 단식투쟁과 사망의 장소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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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7월 17일 마드라스에서 첸나이(Chennai)로 개칭되었다. 2004년 12월 26일, 쓰나미가 첸나이 해안을 강타하여 첸나이에서 206명이 사망하고 해안선이 영구적으로 변형되었다. 2015년 첸나이 홍수로 도시의 대부분 지역이 침수되어 269명이 사망하고 864억 루피(10억 미국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ref>〈[https://yoda.wiki/wiki/Chennai 첸나이]〉, 《요다위키》</ref> | ||
− | == | + | ==경제== |
− | + | 첸나이는 산업이 발달한 도시로, 2021년 추정 GDP가 786억 달러(한화 96조 원)로 인도에서 경제적으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자동차]]공업 및 전자 제조업, 정보기술(IT) 산업, 금융업, 관광업 및 의료 서비스가 주요 산업이다. 대표적으로 16세기 영국의 점령 이후 섬유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부터는 전자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였다. 첸나이의 타이델 공원(Tidel Park)은 인도 [[IT]]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이다. 첸나이는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도 유명하다. 다수의 자동차 회사가 첸나이에 제조 공장을 두고 있으며, 한국의 [[현대차]]도 첸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첸나이는 금융업과 관광업, 그리고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세계 주요 은행들의 지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인도 재무부(Ministry of Finance)에서 운영하는 인도 은행(Indian Bank)과 인도 해외 은행(Indian Overseas Bank)의 본부가 첸나이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첸나이의 해변은 고급 휴양 시설들이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 중 하나이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힌두 사원군도 첸나이의 주요 [[관광]] 자원 중 하나이다. | |
− | + | ==교통== | |
+ | 첸나이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도로]], [[철로]], 항공 및 선박으로 이어져 있다. 첸나이 국제공항(Chennai International Airport)은 인도의 주요 [[공항]] 중 하나로, 첸나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티루술람(Tirusulam) 지역에 있다. 첸나이는 인도 남부의 항만 중심지로 첸나이 [[항구]](Chennai Port)와 카마라자르 항구(Kamarajar Port)라는 두 개의 주요한 항구가 있으며, 인도 남부의 철도 교통 중심지이다. 도시 내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며, 오토 릭샤 또한 흔한 교통수단이다. 오토 릭샤는 인도와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많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일종의 세발자전거 같은 모습이며, 기름으로 작동하는 엔진이 장착되어 있다. 승객과 운전자는 오토 릭샤 안에 함께 앉아 있으며, 운전자는 핸들을 잡고 조작한다. 오토 릭샤는 보통 단거리 이동에 많이 이용되며, 가격도 저렴하다.<ref>〈[https://namu.wiki/w/%EC%B2%B8%EB%82%98%EC%9D%B4 첸나이]〉, 《나무위키》</ref> | ||
== 언어 == | == 언어 == | ||
− | + | 첸나이 지방은 [[타밀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러나 첸나이는 [[대도시]]이므로 타 언어를 모어로 쓰거나 타밀어를 쓰더라도 제2언어로 배운 사람들도 많다. 최근에는 [[영어]]와 [[힌디어]]를 이차 언어로 사용하거나 [[벵골어]], [[펀자브어]], [[말라얄람어]], [[텔루구어]]를 쓰는 사람도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외곽이나 전통 영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타밀어가 으뜸으로 쓰인다. 한편 마드라스 바샤이(Madras Bashai)라고 해서, 첸나이의 독특한 [[슬랭]]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언어는 일단 타밀어 방언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타밀어, 영어, 텔루구어, 힌디어, 칸나다어 등 많은 언어가 섞인 혼합체로, 특히 텔루구어와 영어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보통 릭샤꾼이나 첸나이 북쪽 지역의 어부들이 흔히 쓴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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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wikipedia.org/wiki/%EC%B2%B8%EB%82%98%EC%9D%B4 첸나이]〉, 《위키백과》 | * 〈[https://ko.wikipedia.org/wiki/%EC%B2%B8%EB%82%98%EC%9D%B4 첸나이]〉, 《위키백과》 | ||
* 〈[https://namu.wiki/w/%EC%B2%B8%EB%82%98%EC%9D%B4 첸나이]〉, 《나무위키》 | * 〈[https://namu.wiki/w/%EC%B2%B8%EB%82%98%EC%9D%B4 첸나이]〉, 《나무위키》 | ||
+ | * "[https://en.wikipedia.org/wiki/Chennai Chennai]", ''Wikipedia'' | ||
+ | * 〈[https://yoda.wiki/wiki/Chennai 첸나이]〉, 《요다위키》 | ||
+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90256&cid=40942&categoryId=34032 첸나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 ||
− | * [[인도]] | + | * [[인도 (국가)|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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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4일 (목) 14:1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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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영어: Chennai, 타밀어: சென்னை)는 인도 타밀나두주주의 주도이자, 벵골만과 접한 남인도의 최대도시이다. 과거에는 마드라스(Madras)라는 도시명이었으나, 1996년에 첸나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2023년 첸나이시의 인구는 1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도에서는 6번째로 큰 도시이며, 현대자동차의 인도 현지공장이 있다.[1]
개요[편집]
첸나이는 인도 동남부 벵골만의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해 있다. 첸나이는 남인도 문화와 행정,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로, 인도의 대표적인 무역항 중 하나이다. 첸나이는 첸나이 구와 인접한 교외 지역과 함께 인구 기준으로 세계에서 35번째로 큰 도시 지역이자 인도에서 가장 큰 대도시 경제 중 하나인 첸나이 메트로폴리탄 지역을 구성한다. 첸나이의 면적은 시 기준 1,189㎢, 첸나이 광역권 기준으로 5,904㎢에 달하며 공식 언어는 타밀어이이다. 16세기 경 포르투갈의 지배 이후로 향료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7세기 경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양 무역의 패권을 장악한 시기, 마드라스 또한 영국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왔다. 영국은 섬유 제조업을 중심으로 첸나이의 경제와 무역을 발전시켰으며, 오늘날 첸나이는 인도 동남부의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첸나이는 교육 중심지로도 유명하며, 인도의 최초의 단과대학들이 위치하고 있다. 인도 공과대학교 중 하나로 첸나이에 소재하는 IIT 마드라스(IIT Madras, 1959년 설립)는 벵갈루루의 인도 과학원 바로 다음 가는 수준이며 영국 식민지 시대인 1857년에 캘커타 대학교, 뭄바이 대학교와 함께 인도 최초의 종합대학으로 설립된 마드라스 대학교가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인도 정부가 조사한 생활 편의 지수(Ease of Living Index)에서 인구 백만 이상의 도시 49개 중 벵갈루루, 푸네, 아마다바드 다음의 4위로 꼽혔으며 수도 델리는 13위였다. 첸나이에 있는 마드라스 박물관(Madras Museum, Government Museum, 1851)은 오래된 고대, 중세 유물을 포함해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전시하는 첸나이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건물 자체도 근대 건축 유산이다. 첸나이에 있는 다른 박물관으로는 철도 박물관(Chennai Rail Museum) 등이 유명하다. 1906년에 세워진 국립 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은 오래된 근대 미술관 중 하나로 라자 라위 와르마(Raja Ravi Varma, 1848–1906) 등의 작품이 있고 고미술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힌두교 사원으로는 여러 근현대 사원들도 있지만 특히 파르타사라디 사원(பார்த்தசாரதி கோயில்)이 유명한데, 비슈누를 모시는 8세기 팔라바 왕조 시대의 사원으로, 8세기에 있었던 것이 비문 기록으로도 입증되고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첸나이는 인도의 남동해안에 위치한 도시다. 벵골만의 남서쪽인 코로만델해안의 해안평야에 위치해 있으며, 첸나이가 속한 해안평야를 인도에서는 동해안 평야(Eastern Coastal Plain)라고 부른다. 도시의 평균 해발고도는 6m 내외이며, 가장 높은 곳은 6m 정도다. 첸나이 동부의 남-북 방향의 해안선과 직각으로, 북쪽의 쿰강과 남쪽의 아디아르강이 첸나이 도심을 곡류하여 통과하며, 도시의 북쪽 외곽으로 코스틸리아르강(Kosasthalaiyar River)이 벵골만으로 흐른다. 이 강은 사력퇴적물을 하천 주변과 해안에 공급하며, 이에 따라 하천 주변은 사질충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첸나이 동해안의 북쪽 엔노어 항구(Ennore Port)와 도심 주변의 마리나 비치(Marina Beach) 사이 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빈 퇴적물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첸나이에서 사질충적지인 지역은 이 하천 주변과 해안으로만 한정되며, 도시 대부분은 대개 점토(clay) 또는 점토와 모래가 혼합된 충적지로 되어 있다. 점토가 모여있는 지역은 남인도 일대에 다수 분포하는 적색의 라테라이트이다. 첸나이 대도시권의 일부 지역과 내륙 일부는 퇴적암 지역으로 분류되며, 대개 사암 또는 셰일이다. 첸나이는 해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도시의 북쪽은 산업지역이며, 중심부는 상업지역으로 되어 있다. 첸나이의 남부와 서부는 과거 주거지였으나 최근 상업지역이자 첨단산업의 집적지로 발달해가고 있다. 첸나이의 토양은 해안과 하천 주변의 사질토, 그리고 그 외 지역의 점토와 점토-사질토 혼합토가 혼재되어 있다. 점토의 분포 지역은 대개 라테라이트토의 특성을 보인다.
첸나이는 쾨펜의 기후구분상 열대 사바나기후(Aw)로 구분된다. 첸나이는 적도수렴대(ITCZ, 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에 포함되며 해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 상에서 많은 변화가 없다. 연평균기온은 29℃로 다소 더운 편이며, 연중 대부분 비슷한 기후특성을 띈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이 25℃, 가장 더운 5월의 평균기온이 32.4℃로 연중 변화가 크지 않다. 대체로 최고 기온은 38~42℃수준이나, 45℃에 육박한 경우도 있었다. 최저 기온은 1월 즈음의 18~20℃수준이며, 가장 추웠던 경우도 14℃정도의 기온분포를 보였다. 첸나이 일대의 연 강수량은 1,400mm수준이다. 도시 북동쪽의 계절풍에 영향을 받아 주로 9월 중신부터 12월 중순까지 우기로 구분된다. 열대저기압인 사이클론(cyclone)의 내습이 간간히 있으며, 자주 발생하였을 때는 연 강수량이 2,500mm를 넘기도 한다.[3]
역사[편집]
첸나이는 서기 1세기 경 촐라왕조(Chola dynasty)의 통치로 시작하여, 3세기에서 9세기 경 팔라바 왕조(Pallava dynasty)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까지 첸나이는 마드라스(Madras)라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촐라 왕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마드라스를 비롯한 동쪽 해안 지방을 차지하였으며, 남쪽의 판드야(Pandya)와 서쪽의 체라(Chera) 왕조와 경쟁하며, 남인도에서의 세력 균형을 유지했다.
팔라바람(Pallavaram)은 첸나이의 남서부 지역으로, 팔라바 왕조 시대에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이를 통해 남인도는 북인도와는 독립적인 정치적 세력을 강화하였다.
1522년 포르투갈이 산 토메 항구(San Thome Port)를 건설한 이후, 16세기 경 이 지역을 중심으로 향료와 직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7세기 초, 동인도회사의 선박이 수라트 근해에서 포르투갈 선박을 패배시킨 후, 영국은 동인도회사와 무굴제국과 협정을 맺고 인도에서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였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640년에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지배자에게서 마드라스 지역을 임차했으며, 이 지역에 상관을 설치하고, 성 조지 요새(Fort St. George)와 면직물 직조 공장을 건립하였다.
1746년 세인트 포트 조지와 마드라스는 모리셔스의 총독인 라 부르돈나이스 장군 휘하의 프랑스인들에게 붙잡혔고, 그들은 마을과 그 외곽의 마을들을 약탈했다. 영국은 1749년 엑스트라 샤펠 조약을 통해 통제권을 되찾았고, 프랑스인들과 마이소르의 왕 하이데르 알리의 추가 공격을 견디기 위해 마을의 요새 벽을 강화했다. 그들은 1759년 프랑스의 포위 시도에 저항했다. 1769년, 도시는 마드라스 조약으로 제1차 영국-미소르 전쟁 동안 하이데르 알리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8세기에 이르러 영국은 이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마드라스를 수도로 하는 마드라스 대통령직을 수립했다. 이후, 프랑스의 세력권이 영국의 주요 거점인 마드라스를 포위하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은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 1725~1774)를 파견하였다. 그는 마드라스에 발령난 후, 프랑스에 포위당하던 도시 아르코트(Arcot)를 탈환했고, 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에서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19세기 초, 영국이 인도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자 마드라스는 남인도의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주요 해군 기지가 되었고 남인도에서 영국의 중앙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1802년 4월 10일에 시작된 인도 대삼각 측량의 기준선이었다. 19세기에 인도에 철도가 생기면서 이 도시는 봄베이, 캘커타와 같은 다른 주요 도시와 연결되어 내륙 지역 과의 통신과 무역이 증가했다.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한 후 도시는 현재 타밀 나두 주의 전신인 마드라스주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는 1956년 언어적 경계를 바탕으로 인도 국가들을 재편하는 결과를 낳은 포티 스리에라물루(Potti Sreeramulu)의 단식투쟁과 사망의 장소였다.
1996년 7월 17일 마드라스에서 첸나이(Chennai)로 개칭되었다. 2004년 12월 26일, 쓰나미가 첸나이 해안을 강타하여 첸나이에서 206명이 사망하고 해안선이 영구적으로 변형되었다. 2015년 첸나이 홍수로 도시의 대부분 지역이 침수되어 269명이 사망하고 864억 루피(10억 미국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4]
경제[편집]
첸나이는 산업이 발달한 도시로, 2021년 추정 GDP가 786억 달러(한화 96조 원)로 인도에서 경제적으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자동차공업 및 전자 제조업, 정보기술(IT) 산업, 금융업, 관광업 및 의료 서비스가 주요 산업이다. 대표적으로 16세기 영국의 점령 이후 섬유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부터는 전자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였다. 첸나이의 타이델 공원(Tidel Park)은 인도 IT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이다. 첸나이는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도 유명하다. 다수의 자동차 회사가 첸나이에 제조 공장을 두고 있으며, 한국의 현대차도 첸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첸나이는 금융업과 관광업, 그리고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세계 주요 은행들의 지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인도 재무부(Ministry of Finance)에서 운영하는 인도 은행(Indian Bank)과 인도 해외 은행(Indian Overseas Bank)의 본부가 첸나이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첸나이의 해변은 고급 휴양 시설들이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 중 하나이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힌두 사원군도 첸나이의 주요 관광 자원 중 하나이다.
교통[편집]
첸나이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도로, 철로, 항공 및 선박으로 이어져 있다. 첸나이 국제공항(Chennai International Airport)은 인도의 주요 공항 중 하나로, 첸나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티루술람(Tirusulam) 지역에 있다. 첸나이는 인도 남부의 항만 중심지로 첸나이 항구(Chennai Port)와 카마라자르 항구(Kamarajar Port)라는 두 개의 주요한 항구가 있으며, 인도 남부의 철도 교통 중심지이다. 도시 내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며, 오토 릭샤 또한 흔한 교통수단이다. 오토 릭샤는 인도와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많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일종의 세발자전거 같은 모습이며, 기름으로 작동하는 엔진이 장착되어 있다. 승객과 운전자는 오토 릭샤 안에 함께 앉아 있으며, 운전자는 핸들을 잡고 조작한다. 오토 릭샤는 보통 단거리 이동에 많이 이용되며, 가격도 저렴하다.[5]
언어[편집]
첸나이 지방은 타밀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러나 첸나이는 대도시이므로 타 언어를 모어로 쓰거나 타밀어를 쓰더라도 제2언어로 배운 사람들도 많다. 최근에는 영어와 힌디어를 이차 언어로 사용하거나 벵골어, 펀자브어, 말라얄람어, 텔루구어를 쓰는 사람도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외곽이나 전통 영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타밀어가 으뜸으로 쓰인다. 한편 마드라스 바샤이(Madras Bashai)라고 해서, 첸나이의 독특한 슬랭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 언어는 일단 타밀어 방언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타밀어, 영어, 텔루구어, 힌디어, 칸나다어 등 많은 언어가 섞인 혼합체로, 특히 텔루구어와 영어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보통 릭샤꾼이나 첸나이 북쪽 지역의 어부들이 흔히 쓴다고 한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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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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