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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5일 (수) 10:48 판
영국(英國, United Kingdom)은 유럽 대륙의 북서쪽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가명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지만, 간략히 '영국'이라고 부른다. 수도는 런던(London)이다.
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 북쪽의 북(北)아일랜드로 이루어진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될 때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음으로써 현재의 연합왕국이 되었다.
영국은 국제무대에서 G7, G20,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요 국제기구의 중요한 회원국이며, 1973년 1월 1일부터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었으나, 2021년 1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인 브렉시트가 발효되어 EU를 탈퇴하였다.
개요
영국은 유럽대륙 서북쪽 대서양상에 위치한 입헌왕국이다. 수도는 최대 도시이기도 한 런던이며 영어로는 흔히 United Kingdom, UK, Britain으로 줄여 부른다. 올림픽 등의 스포츠에서는 다소 부정확하지만 관행상 Great Britain이라고 부른다.
한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있었다. 19세기~20세기에 대영제국의 영토가 절정에 달했을 때 언제나 제국의 어딘가는 낮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제국이 해체된 지금도 해외 영토들이 일부 남아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국가인 것은 맞다.
지리적으로는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 동북부에 걸쳐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면적은 209,331 km²로 한반도보다 약간 작고, 북아일랜드의 면적은 14,130 km²이며 기타 영국령의 부속도서를 포함한 면적은 244,341 km²다. 아일랜드해를 사이에 두고 아일랜드와 근접해 있으며,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서는 프랑스의 칼레와 마주보고 있다.
크게 영국 본토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의 북아일랜드 네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이외에도 영국 왕실 영지인 맨 섬, 저지 섬, 건지 섬이 존재하고 지중해, 카리브 해와 아프리카 지역에 몇몇 해외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의 국민들은 서로의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간의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
현재의 4개의 독립적인 지역이 연합한 영국이라는 국가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영토가 확정된 것은 1922년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생겨난 후다. 뒤이어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대영제국이 해체되고 지금의 영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근대적 의회제도와 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시킨 국가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가 된 나라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유일의 초강대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경제, 문화, 군사, 과학,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특히 대중 음악은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5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임 연봉은 2010년 기준으로 약 25,000 영국 파운드(한화 약 3,767만원)에 달한다.
상징
국호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의 한자 표기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수용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한 것이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한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여 중의적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포르투갈어: 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일본어: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로도 쓰인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영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호칭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부를 때 사용했던 국명으로, 다만 1707년부터 1800년까지 정식 국명은 여전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었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통합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였다.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분리되어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자, 영국은 아일랜드 북부 지방 일부만을 통치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정식 명칭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고 바꾸게 되었다.
영국은 현재 단일국가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상당한 자치를 가지고 있다. 영국 총리의 웹사이트에도 영국을 설명할 때에는 '국가 안의 국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서, 대부분의 정부 통계를 낼 때에는 '지방'이나 '행정구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보통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하는 것이나, 정치적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이기도 한다. 가끔씩은 영국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로, 영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한다. 다만 영국 정부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하며, 대사관이나 외교 업무를 제외하고는 브리튼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지리학회에서는 자국의 약칭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의 경우에는 은연 중에 북아일랜드를 제외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여 따로 분류해놓고 있다. 다만 영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BBC의 경우, 영국을 칭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해오고 있다.
국기
현재의 국기인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 유니언 잭(Union Jack)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영국 해군만의 이름으로 현재는 보통 유니언 플래그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유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섬의 국기를 조합한 것이다. 유니언 플래그가 제정되던 때는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완전히 합병되었던 상태였기에 웨일스의 국기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웨일스에서는 유니언 플래그에 웨일스의 상징인 붉은 용을 집어넣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국장
영국의 국장은 다른 왕정 국가처럼 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문장이자 윈저 왕조의 문장이다. 찰스 3세가 즉위함에 따라 바뀔 예정이다.
영국의 국기처럼 영국의 국장도 연합왕국 이전의 국가들인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의 국장을 반영한 것이다. 방패 모양의 문장과 주변의 파란색 띠는 잉글랜드 왕국의 국장을 모방한 것이지만 방패 안쪽의 문장이 좀 달라졌다. 방패 모양의 문장은 세 개의 문장으로 구분되는데 좌상단과 우하단의 것은 잉글랜드 왕국의 국장, 우상단의 것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 좌하단의 것은 아일랜드 왕국의 국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저 문장을 이루는 세 도안 자체는 1707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성립 이후 바뀌지 않았고 1712년 이후부터 1837년 이전까지는 하노버 왕국과 동군 연합이었으므로 하노버 왕국의 국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패를 둘러싼 동물들은 왼편에 있는 것이 사자로 잉글랜드 왕국을 상징하고 오른편에 있는 것이 유니콘으로 스코틀랜드 왕국을 상징한다. 사자가 쓰고 있는 관은 영국 국왕의 공식 왕관인 성 에드워드 왕관이다. 방패 모양의 문양 바깥쪽의 도안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과 유사한데 기본적인 틀은 스코틀랜드 왕국의 것을 유지하되 잉글랜드 왕국의 상징들을 집어넣었다. 국장 아래에 새겨져 있는 문구인 Dieu et mon droit는 '하느님과 나의 권리'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잉글랜드 왕국의 표어다. 방패 주변에 새겨진 문구인 Honi soit qui mal y pense도 역시 프랑스어로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 재앙이 온다'라는 뜻으로 가터 훈장의 표어에서 유래했다.
스코틀랜드 관련 정부 기관에서는 이렇게 다른 문장을 쓴다. 이쪽은 위의 국장에 비해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장에 좀 더 가깝고 위의 국장이 잉글랜드의 국장을 1순위로 반영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스코틀랜드의 국장이 1순위다. 왕관도 스코틀랜드 양식으로 바뀌고 아래의 문구도 스코틀랜드 왕국의 표어인 NEMO ME IMPUNE LACESSIT(라틴어: 그 누구도 나를 경솔히 자극할 수 없다)로 바뀐다. 또한 위에 IN DEFENS라는 표어도 추가되는데 스코틀랜드 왕국의 또 다른 표어인 In My Defens God Me Defend(스코트어: 내 안의 하느님이 나를 보호한다)를 줄인 것이다. 중앙의 방패 문양(국왕의 문장)도 스코틀랜드 왕국 것과 잉글랜드 왕국 것의 위치가 바뀐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라도 영국 공통의 것을 써야 할 때는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위의 국장을 쓴다. 예를 들어 영국 여권 표지에는 무조건 위의 국장만 사용하고 스코틀랜드용 국장이 새겨진 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본토의 일부인 스코틀랜드만의 여권을 따로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 God Save the King
- 미국의 비공식 국가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My Country, 'Tis of Thee와 음율이 같다.
- 비공식 국가로 Rule Britannia와 I Vow To Thee My Country가 있다.
-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도 제 2의 국가로 불려지기도 할 만큼 많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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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나라로 유럽 대륙의 북서쪽 해안인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위치한다. 총 면적은 약 243,610㎢이며,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 브리튼섬(Great Britain)과 아일랜드섬을 포함하는 영국제도를 중심으로 약 5,0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이트 브리튼섬의 북쪽에는 스코틀랜드, 남쪽에는 잉글랜드, 남서쪽에는 웨일스가 위치해 있다.
잉글랜드는 그레이트 브리튼섬 영토의 약 57%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는 약 34%, 웨일스는 약 9%를 차지한다. 아일랜드섬의 경우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섬의 약 1/6에 해당하는 북아일랜드만이 영국에 속해있으며 면적은 14,130㎢이다. 잉글랜드 남서쪽에는 실리제도, 남쪽에는 와이트섬이 위치하고 스코틀랜드의 북쪽에는 오크니제도와 셰틀랜드제도, 서쪽에는 헤브리디스제도가 위치하며, 웨일스 북서쪽에는 앵글시섬(Island of Anglesey)과 맨섬이 위치한다. 유럽 대륙과는 잉글랜드 남부와 프랑스 사이의 영국해협과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지형 및 지질
영국의 국토는 크게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누어지는데, 그레이트 브리튼섬 북서부와 남서부의 3개의 고지대 지역과 남동부와 동부의 2개의 저지대 지역이 존재한다. 잉글랜드의 북부 지역에는 '영국의 척추(The Backbone of England)'라고 불리는 페나인산맥이 위치한다. 페나인산맥의 최고봉은 크로스펠 산으로, 해발 893m이며 근방 지역 지류의 분수령이다. 잉글랜드 서북부에는 컴브리안(Cumbrian) 산맥이 위치하며 레이크지방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스카펠파이크 산이 위치한다. 또한 잉글랜드에는 워시만(The Wash Bay)을 중심으로 저지대 지역인 링컨셔와 펜스(The Fens) 지방이 위치한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가장 산악지대가 많은 지역으로, 지형은 지질학적으로 고지대 경계단층(Highland Boundary Fault)으로 구분된다. 주요 산맥으로는 스코틀랜드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그램피언산맥이 있으며, 북부 지역에는 해발 1,344,m의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벤네비스산이 위치한다. 그램피언 산맥을 중심으로 북서부 고원과 남부 고원, 중부 저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큰 도시인 글래스고와 정치 중심지인 에든버러를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웨일스에는 남북으로 뻗은 캠브리안산맥을 중심으로,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 1,040m 높이의 스노든산이 위치한다. 지형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이지만, 남부 지역은 북부나 중부에 비해 산악 지대가 적다. 인구와 주요산업이 남부의 카디프, 스완지, 뉴포트에 집중되어 있다.
북아일랜드는 아이리시해와 노스해협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고원과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아일랜드의 최고봉은 몬산맥의 높이 852m의 슬리브도너드 산이다.
주요 하천으로 잉글랜드에는 잉글랜드 남서쪽에서부터 6개 주를 횡단하는 템스강과 영국에서 가장 긴 강인 세번강, 스코틀랜드의 수도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흐르는 클라이드강과 네시(Nessie)의 전설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스호를 비롯한 많은 호수가 있다. 북아일랜드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네이호가 위치한다.
기후
쾨펜의 기후 분류체계에 따르면 영국은 최난월 평균기온이 22℃ 이하이며, 월 평균기온이 10℃ 이상인 달이 4개월 이상 지속되는 기후인 서안해양성기후(Cfb)로 분류되며, 유럽 대륙 서안의 해양성 한대기단(mP)과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영국을 포함하여 프랑스·독일·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들과 같은 유럽 국가들이 서안해양성기후 분류에 속해있다. 또한 영국은 유럽 대륙 서안에서 49°~61°사이의 비교적 높은 중위도에 걸쳐 있는 국가로, 항상 극전선 제트류의 경로에 근접해있기 때문에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고기압과 저기압에 영향을 받아 빈번하게 날씨가 변화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날씨는 선선하고 흐리며, 연중 고른 강수량을 가지고 있어 우기와 건기의 개념이 모호하며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온난하다. 지역적으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북아일랜드와 웨일스 및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서부 지역은 영국에서 가장 온난하고 습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다. 또한 계절별 기온 교차가 적어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온화하다. 반면 영국의 북동부지역은 서부지역보다 더 건조하고 서늘하며 바람이 덜 불며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춥다. 일반적으로 영국 주요 도시들의 평균기온은 6~8월인 여름에는 18~20°C, 12~2월인 겨울에는 0~7°C이며 강수량의 경우 여름 평균 45mm, 겨울 평균 55mm이다.
강수량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일반적으로 서쪽 고지대로 갈수록 강수량이 많은 편인데,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산맥과 잉글랜드 북부의 페나인산맥, 잉글랜드 남서부의 무어랜드(Moorlands)는 영국에서 가장 습한 지역이다. 영국에서 대부분의 강수량은 북서쪽이나 남서쪽에서 일 년 내내 불어오는 북대서양 기류에 의해 형성되며 특히 가을과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에식스, 노스요크셔 지역의 케임브리지셔(Cambridgeshire), 잉글랜드 남동부의 서퍽과 노퍽는 영국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600mm이다. 이는 영국 남서부와 웨일스, 컴브리아 등에 위치한 산악지형이 동쪽으로 향하는 습한 기류를 차단해주는 비 그늘 효과(rainshadow effect) 때문이다.
한편 영국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인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인 노력 기울이고 있다. 2019년 환경성과지수(Envrionmental Performance Index)에서 180개국 중 4위를 차지하였으며, 2019년 6월 27일, 정부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0'에 수렴하도록 하는 '순배출 제로법(net-zero emission law)'을 통과시킨 세계 최초의 주요 경제국이다.
식생과 동물
영국은 온화한 기후와 다양한 토양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저지대에서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무성하였고, 고지대에서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등을 포함하여 광활한 숲을 이루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저지대의 많은 부분이 경작을 위해 개간되고, 산업혁명을 거치며 공업지역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삼림이 황폐화되었다. 1919년 영국 산림위원회(Forestry Commission)가 설립된 이래 활발한 활동을 해 왔지만 오늘날 영국 국토의 약 9%만이 삼림지역으로 남아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 북동부와 잉글랜드의 킬더와 노섬벌랜드, 서섹스의 애쉬다운숲과 웨일스의 귀네드에 집중되어 있다. 잉글랜드에는 참나무·느릅나무·너도밤나무 등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스코틀랜드에는 자작나무가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산업 중심지 외곽의 거의 모든 저지대는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반 자연(semi-natural)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황무지로 이루어진 고지대에서는 헤더(Heather), 고사리 등을 포함한 풀들이 자란다. 또한 습하고 온화한 기후의 영향으로 다양한 꽃들이 잘 자라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붉은 장미는 영국의 상징이며 지역별로 스코틀랜드는 엉겅퀴, 웨일스는 수선화와 부추, 북아일랜드는 토끼풀을 국화로 삼고 있다.
서식하는 동물 종은 북서유럽대륙의 종과 유사하며, 수 세기에 걸친 개간과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오늘날 영국의 동물들의 개체 수는 상당히 감소하였다. 늑대, 곰, 멧돼지, 그리고 순록과 같은 몸집이 큰 포유류 중 일부는 멸종되었지만, 일반적인 작은 포유류들인 여우, 산토끼, 고슴도치, 담비, 뾰족뒤쥐 등은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강과 호수에는 연어, 송어 등의 40여 종류의 민물고기 종이 있으며, 습지가 개간되면서 파충류와 양서류, 수달 등은 외곽지역으로 이동해 서식 중이다. 또한 약 230종의 조류들이 서식 중이며, 약 200종의 철새들이 영국을 주거지로 삼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종은 유럽산 검은새, 참새, 찌르레기이며 오리, 거위 그리고 다른 물새들의 개체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중이다. 이외에도 자고새, 꿩, 딱새 등은 동물보호법에 의해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갈매기를 비롯한 다른 바다 새들은 해안 근처에 둥지를 틀어 서식하고 있으며, 주요 근해종으로는 대구, 명태, 고등어, 넙치, 가자미 등이 있다.
행정구역
영국의 행정구역은 중세 초기부터 그 경계가 설정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근대 초기에 들어서는 이미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어 있었다. 또한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여러 왕국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연합왕국이었기 때문에, 이 4개의 국가들은 서로 행정구역을 나누는 방식도 달랐으며 행정구 간의 위계도 차이가 있어 통합 초기에는 이를 일원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의 지방자치단체 제도는 매우 복잡한데, 왕국들의 경제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제도가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일단 잉글랜드는 기본적으로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중 하나인 그레이터런던은 직접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의회를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2011년부터 설립된 10개의 통합자치구역들 가운데에서 8개가 선출직 시장을 두고 있다. 지역의 하위 구역인 주나 면 단위의 단체들에서도 내각제를 채택하여 일부 독자 의회 제도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32개의 주(council area)들로 나누어지며 글래스고, 에든버러, 던디, 에버딘은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북단에 위치하여 스코틀랜드 전체 영토의 3분의 1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다 합쳐 보았자 20만 명 밖에 안되는 하이랜드도 독자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지방의회들은 모두 투표로 인하여 직접선출되며, 국가로부터 월급을 지급받는다. 각각의 의회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뽑을 권한이 있다. 웨일스는 총 22개의 주(unitary authority)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대도시인 카디프, 뉴포트 등의 지방들은 따로 분류한다. 선거는 매 4년마다 치러진다. 북아일랜드의 경우, 1973년 법에 따라 26개의 구(district)으로 나누어졌으며, 불안정한 정세 탓에 타 왕국과 비교했을 때 지방단체들의 권한이 상당히 약하다. 북아일랜드 지방의회는 하수 처리, 공공기물 관리 등에 그 권한이 한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권한은 중앙정부에게 맡겨져 있다.
-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잉글랜드는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은 다시 48개의 주(county)로 나뉜다.
- 스코틀랜드의 행정 구역: 스코틀랜드는 32개 주(council area)로 나뉜다.
- 웨일스의 행정 구역: 웨일스는 22개 주(unitary authority)로 나뉜다.
- 북아일랜드의 행정 구역: 북아일랜드는 26개 구(district)로 나뉜다.
- 런던
- 노팅엄
- 뉴캐슬어폰타인(뉴캐슬)
- 다트머스
- 도버
- 리버풀
- 리즈
- 맨체스터
- 미들즈브러
- 바스
- 버밍엄
- 브래드포드
- 브리스톨
- 선덜랜드
- 셰필드
- 캔터베리
- 코번트리
- 킹스턴어폰헐
- 포츠머스
- 헐(킹스턴어폰헐)
해외영토
British Overseas Territories. 대부분이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영국의 영토로 남아있는 지역이다.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시절에는 대부분 왕령 식민지(Crown colony)였던 곳이고 1981년에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영국 속령(British Dependent Territory)이 되었다가 이 속령 중 하나였던 홍콩을 중국에 반환해줬고 다시 2002년에 법령 개정을 통해 현재의 명칭으로 확립되었다.
섬으로 구성된 곳이 많고 주로 카리브 해에 모여있다. 지역에 따라 정치 체제가 달라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되는 지역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고 파운드 스털링이 아닌 자체 통화 혹은 다른 국가의 통화(주로 미국 달러)를 끌어다 쓰는 곳도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시절에는 영국 본국뿐만 아니라 해외 영토 중 지브롤터도 유럽연합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해외 영토는 유럽연합 지역이 아니었다. 지브롤터를 제외한 해외 영토 시민들은 EU 국가 국민으로서 EU 국가에서 제공되는 혜택(노동, 거주, 이동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없었다.
굉장히 많은 해외 영토가 있고 이 영토를 모두 합하면 1,727,570km²인데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남극을 빼면 18,170km²로 영국 본토의 7.5% 정도의 면적이다. 인구는 전부 합해도 고작 25만명으로 영국 본토의 0.3% 정도에 불과하다. 홍콩을 영유하던 시기인 1997년 이전까지는 저 지역 인구를 모두 합해도 홍콩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키프로스에 있는 영국군 기지다.
- 앵귈라
- 영국령 남극지역: 남극조약이 있지만 영국은 남극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 영국령 인도양 지역
영국 왕실령
영국 국토가 아닌 영국 왕실이 소유한 땅이다. 역사적으로 복잡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독립적인 의회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영국 시민권자가 아니어서 영국 본토 거주권은 있지만 투표권은 없다. 투표권을 가지려면 별도로 영국 시민권자가 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외교, 국방 등은 영국 정부에 의지하고 관세에서는 영국과 동일 권역에 들어가고 대외적으로는 영국 시민권자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등 경우에 따라 다르다.
왕실 소유이기 때문에 영국이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 국가로 바뀐다 해도 이들 지역은 영국 정부가 왕실에게서 소유권을 박탈하지 않는 한 왕실 영토로 남게 된다.
과거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이었던 시절에도 영국의 왕실 영토는 유럽연합 관할 지역이 아니었으므로 이들 지역 시민들은 EU 국가 국민으로서 EU 국가에서 제공되는 혜택(노동, 거주, 이동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없다.
역사
고대의 영국
5만 년 전 유럽 대륙과 이어져 있던 브리튼섬에는 혈거 수렵인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으나, 빙하의 확대와 함께 섬을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 지각의 함몰로 유럽 대륙과 떨어지고 난 뒤 유럽 대륙의 갈리아와 발트해 연안 등지에 살던 종족이 영국해협을 건너와 정착하였고, 이어 신석기 시대에 이베리아인 등의 종족이 이주하였다.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에서 켈트족이 선주민을 제압하고 브리튼섬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먹는 것 외에 밀·보리·귀리 등을 재배하였고, 짐승 가죽 그리고 삼베옷과 양모의 직물을 착용하였다. 또 다신교를 믿고, 소부족으로 갈라져 서로 독립적으로 생활하였는데, 딘 또는 둔이라고 하는 방벽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런던(London)'이라는 지명은 소택지의 성(castle)을 뜻하는 켈트어 '린딘(Lyndyn)'에서 나왔으며, 이후 로마인이 이를 라틴어로 '론디니움(Londinium)'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 및 앵글로색슨의 지배
브리튼섬의 켈트족 부족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로마제국의 침략과 지배였다. 기원전 55년 당시 로마의 사령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54년까지 약 1년에 걸쳐 켈트족과의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로마가 새롭게 영국 일대를 지배하였다.
로마의 통치기에는 런던을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까지 지속적인 이민족의 침입과 함께 게르만족의 침략이 있었고, 잇따른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로마의 영국 지배는 410년 이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게르만족의 분파인 앵글로색슨족은 449년 본격적으로 영국을 침공하여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켈트족을 잉글랜드 외곽과 웨일스,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몰아내고, 660년경 잉글랜드 내의 웨섹스(Wessex), 켄트(Kent) 등 7개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후 828년에는 웨섹스의 국왕인 에그버트가 7개 왕국을 통일하여 잉글랜드 지방에서 통일 왕국을 수립하였다.
노르만족의 지배
8세기 말부터 노르만족은 영국을 침공하여 잉글랜드 요크(York)를 수도로 삼고, 잉글랜드 동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후 1013년과 1015년, 크누드 1세는 지속적으로 영국을 침락하여, 1016년에는 잉글랜드 통합 국왕이었던 에드먼드 2세(Edmund II)를 몰아내고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공작(Duke William of Normandy)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노르만 왕조를 수립하여 윌리엄 1세로 왕위에 올랐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통합된 행정 체제로 잉글랜드를 지배하였다. 그는 봉건제를 채택하였으며, 앵글로색슨인의 토지를 노르만 제후에게 봉지로서 나누어 주었다. 또 잉글랜드의 토지·인구·가옥 등을 기재한 둠즈데이북(Domesday Book)을 작성하여 왕실 재정의 기초를 굳히고 중앙집권적 봉건제를 시작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우스와 대립한 윌리엄 1세는 교회에 대한 국왕의 관리권을 주장하고 주법정과 교회법정을 분리하여 왕권을 신장시켰다.
이후 헨리 2세가 왕위에 오르며 이에 플랜태저넷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는 내란으로 세력을 회복한 제후를 누르고, 재판제도의 정비, 관료제와 용병제의 확립 등으로 절대적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으로 유명한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동생 존왕, 이른바 실지왕은 헨리 2세 이래의 대륙 영토의 절반을 잃고, 중과세를 부과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다. 이 때문에 귀족들은 1215년에 49개조로 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게 하고, 왕권을 제한하였다. 당시 이 헌장은 봉건제후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런던 이하 자유시의 특권을 인정하고 자유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적 자유주의의 기원으로 여긴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헨리 3세도 남은 대륙령을 상실하고 실정이 많았기 때문에, 귀족들은 주대표 시몽 드 몽포르를 지도자로 내세워 반항하였다. 또한 귀족들은 시민대표를 포함시킨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영국의회의 기원이며, 이후 에드워드왕 시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1282년,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웨일스를 정복하며 영토를 회복하였고, 이후 서부 프랑스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세력을 넓혔다. 프랑스의 영토를 보유한 영국은 오랫동안 프랑스와의 분쟁이 지속되었고, 에드워드 3세(Edward Ⅲ, 1312~1377)가 프랑스에 대해 왕위를 요구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백년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의 전반에는 영국군이 유리하여 한때는 프랑스령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나, 헨리 6세 때, 오를레앙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는 승리하지 못하여 칼레 외의 모든 대륙령을 상실한 상태로 전쟁이 끝났다.
특히 1348∼1349년의 흑사병으로 말미암아 인구의 1/4 이상이 사망하자 살아남은 농민의 지위가 문제였다. 영주계급은 농업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억압을 강화하였지만 농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와트 타일러 등이 농민봉기를 일으켰다. 이 봉기는 실패했으나 농민의 감소로 나타난 부역의 폐지와 지대의 인하, 영주직영지의 대출 등이 부득이하여 장원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왕위계승시대
백년전쟁 후 2년 뒤에는 국내의 왕위계승권을 두고 1455년부터 30년간 내전이 계속되었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제7대 잉글랜드 국왕인 에드워드 3세의 셋째아들인 초대 랭커스터 공작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이 장남의 아들인 리처드 2세를 대신하여 헨리 4세로 즉위하여 랭커스터왕가를 세웠다. 이후 그를 지지하는 랭커스터파와 존의 동생인 초대 요크 공작 에드먼드(Edmund of Langley, 1st Duke of York)를 옹립하는 요크파가 대립하였다. 이 전쟁은 양가의 문장이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였기 때문에 장미전쟁이라 불렀다.
요크파의 승리로 왕위에 오른 헨리 6세는 망명하고, 에드워드 4세가 요크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를 대신하여 에드워드 4세의 동생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가 섭정을 맡았다. 그는 실권을 놓고 우드빌 일족과 대립하다 결국 우드빌 일족을 제거하고, 에드워드 5세를 폐위시킨 후 리처드 3세로 즉위하였다. 이후 랭커스터가의 유일한 왕위계승권자인 웨일스의 튜더가의 헨리가 리처드 3세를 격파하여 헨리 7세로 왕위에 올랐고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노르만 왕조 시기를 거치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농노화된 농민의 지위는 14세기에 들어서부터 차츰 향상되었고, 농민의 계층분화가 진행되었다. 한편, 14세기에 영국의 무역은 양모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15세기에 들어 모험상인회사가 등장하여, 모직물 무역의 독점권을 가지게 되었다.
튜더왕조와 통합왕조시대
장미전쟁을 통해 헨리 7세가 즉위함에 따라 본격적인 튜더 왕조가 시작되었다.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왕 중 하나인 헨리 8세가 즉위하였다. 그는 웨일스와의 연합법(Union Act with Wales)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웨일스와 아일랜드의 왕을 선언한 최초의 통치자가 되었다. 헨리 8세는 1512년 영국 왕립 우체국(The Royal Mail)을 창설하여 최초의 국가 우편 시스템을 마련하였고, 1635년부터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중화되었다. 1533년 헨리 8세는 캐서린(Catherine) 왕비와 이혼하고, 앤 볼린(Anne Boleyn)과 재혼함으로서 교황에 의해 파문당하게 되었는데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발표한 후 로마교황청에서 독립된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창립하였다. 영국 성공회의 창립과 함께 헨리 8세는 약 800개가 넘는 수도원을 해체하고 그들의 재산과 토지를 왕정으로 이관하였다. 또한 헨리 8세 때부터 영국은 본격적인 해상무역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1559년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올랐고,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 이후 왕조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유럽 대륙 열강들의 위협과 경제문제, 종교 갈등을 해결하고, 기존 유럽에서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시 영국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월터 롤리와 같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항해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은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항해 기술과 해상전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영국은 1588년 스페인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 기간은 문화·사상·예술의 발전이 이뤄지던 르네상스 시기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예술적으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이 활동하였다.
스튜어트 왕가와 통합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하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James VI)가 제임스 1세로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 왕실은 영국 왕실에 통합되었다. 그는 가톨릭과 청교도를 억압하여 국교회로의 개종을 강요하였고, 가톨릭과 청교도의 양극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며 가톨릭과 청교도의 반감을 샀다. 즉위 2년 후, 가이 포크스가 이끄는 극단주의자들이 의회의 개회에 맞춰 폭탄을 터뜨리려는 시도하였지만 무마되었다. 현대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를 영국 왕실의 탄압에 맞선 저항운동가로 평가하며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ukes Day)로 정해 기념한다.
이 사건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분열이 심화 되었고, 1625년 즉위한 찰스 1세(Charles I)는 전체주의적인 의회 운영으로 의회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왕당파와 청교도(Puritans)와 연합한 의회파로 갈라져 영국 내전(The English Civil War)이 발발하였고, 전쟁에서 패배한 찰스 1세는 의회에 의해 참수되었다. 이후 청교도인 올리버 크롬웰은 1653년부터 1658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이 내전에서 청교도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영국의 내전은 '청교도 혁명'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크롬웰이 이끌었던 공화정의 독재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한 후 영국은 왕정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1688년에는 의회를 중심으로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고 윌리엄 3세가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 사건은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정권을 교체한 최초의 혁명으로 명예혁명으로 불린다. 이어서 1689년 윌리엄 3세는 의회의 권한 강화 요구로 인해 의회가 왕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장전을 제정하였다. 1702년에 영국은 공식적으로 연합법(Union Act)를 통해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왕국이 성립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왕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이 서로 몇 백년 동안 반목을 거듭한 끝에,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가 통합법을 가결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됨에 따라 두 왕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8세기에는 첫 총리로 로버트 월폴이 취임하였고, 의회내각제에 기반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자코바이트의 난이 터지며 신교를 믿는 하노버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튜어트 왕가를 복구하려 시도하였으나, 결국 1746년에 대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설립한 영국의 식민지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건국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에 인정하였다. 이후 영국의 관심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 영국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주도하며 1662년과 1807년 사이에 수많은 선박들을 이용하여 거의 33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들은 보통 북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에 있는 거대한 플랜테이션 등으로 강제적으로 옮겨갔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으며 사탕수수나 목화 등을 재배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였으며, 노예상인들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노예무역의 반인륜적인 실태가 갈수록 폭로되자 결국 여론의 압박을 받은 의회가 1807년에 노예무역을 금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또한 이후에는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들도 노예를 거래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인 '반노예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 183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하노버 왕가와 대영제국의 탄생
권리장전에 의해 계승자로 정해졌던 앤 여왕이 1714년 사망하고, 제임스 1세의 증손자인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이때부터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계 신교도였던 조지 1세는 정부 및 신하들과의 의사소통에 능하지 못했고, 그의 즉위 중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내고 행정은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를 총리로 선임하여 권한을 위임하였다.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는 영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하노버 왕이었고, 그는 1756년부터 1763년 벌어진 7년전쟁 기간 중 왕위에 올랐다. 7년 전쟁은 슐레지엔 영유를 둘러싸고, 영국ㆍ프랑스ㆍ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 등이 참여한 대규모 전쟁으로, 유럽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인도,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도 전투가 발생하였다. 영국ㆍ프랑스 양국의 오랜 싸움의 일환이기도 했던 7년 전쟁을 끝으로, 영국은 대식민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763년 파리조약을 통해 북아메리카 13개의 식민지와 인도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였고,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으로, 미국은 1782년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1797년부터 1815년까지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항하였다. 1803년 프랑스는 영국 본토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해군의 열세로 인해 실패하였고, 1805년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함대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1815년 영국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7년 전쟁 이후 두 번째로 유럽 전역과 세계 각지를 무대로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었다.결과적으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의 승자가 되었지만, 전쟁 기간 동안 약 약 22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내부적으로 영국은 1800년 제정된 연합법(Union Act with Ireland)을 통해 영국과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하였다.
'유나이티드 킹덤', 즉 'UK'라는 국명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서로 통합을 결정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창설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명으로 결정되었다.
1837년 국왕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당시 18세의 조카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즉위하였다.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던 시기로, 이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도 불린다. 빅토리아 시대 동안 영국은 176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이후 석탄·철강·방직 등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1830년까지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경영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통해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정치적으로 영국은 1832년 선거법의 개정으로 투표권을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하였으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표권을 가지지 못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1830년대 후반부터 1850년대 초까지 투표권 획득과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이 발생하였다.
19세기 영국의 주요 무역 중 하나는 청나라에 대한 아편 판매였으며, 아편 금수 조치를 단행한 청나라와 두차례에 걸친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 아편 전쟁의 결과 영국은 청나라와 난징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898년 홍콩을 포함한 신지에를 99년간 할양받게 된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과 아일랜드의 독립
19세기 말 독일과 미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영국이 가졌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은 사라지고, 이러한 후발주자들에 의해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873년에는 공황과 경제 불황이 잇따라 발생하며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고, 수출 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졌다.
1914년에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영국은 1917년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타격을 받았고, 러시아가 연합국에서 이탈하면서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뒤늦게 참전한 미국의 도움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고,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마감되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으나, 이때부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식민지 지역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1921년에 독립을 요구하던 아일랜드가 임시정부를 세우고,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을 선포함으로써 기존 영국의 영토인 아일랜드섬에서 북부 지역만이 북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남아있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독립과 더불어 영국은 1922년에 국호를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변경하였다.
국내정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에서 노동당(Labour Party)이 창당되었고, 1926년 총파업과 사회운동을 통해 1928년에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일한 보편적 참정권이 부여받게 되는 등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은 세계 정세를 일변시켰다. 미국은 사회자본의 개발로 공황을 극복하였고, 영국은 영국연방 국가들과의 경제블록을 결성하여 이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공황으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군국주의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1930년대 독일에는 나치스 정권이 집권하여 독일의 팽창정책이 또다시 노골화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1940년 윈스턴 처칠 총리가 거국일치 내각 구성으로 전쟁을 타개하고자 하였으나 전쟁 초기 프랑스가 항복하게 됨으로써 전황은 영국에게 갈수록 불리해졌다. 그러나 1941년의 독일·소련 간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따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급변하였다. 미영 연합군은 1943년 이탈리아를, 1945년 독일·일본을 항복시킴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전쟁의 승리를 업고 노동당은 전후 선거에서 처음으로 절대 다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 시기동안, 영국은 미국, 소련, 중국과 함께 세계의 4대 강대국 측에 들었다. 이들은 전후에 세계평화와 신세계질서 구축을 위하여 국제연합을 창설하였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었다. 또한 IMF, 세계은행, 북대서양 조약 기구 등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들을 설립하였다. 영국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경제재건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이 끝난 이후 노동당이 이끄는 정부가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펼쳤고, 사회 전반을 바꾸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주요 산업들과 자원들이 국유화되었고, 복지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국민복지제도가 설립되었다. 한편 해외 식민지들 사이에서는 점차 민족주의가 대두하였고, 한창 영국이 전쟁으로 약화된 틈을 타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결국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고, 1947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어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국의 지원 하에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영국 주도의 코멘웰스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심지어 영국 국왕을 최고 국가원수로 모시기도 한다.
영국은 핵무기를 가지게 된 3번째 국가였다. 다만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56년에 일어난 제2차 중동 전쟁에서 자국의 약화된 국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초강대국이 아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눈치를 보는 국가로 위치가 격하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50년에는 노동력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영국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언어가 통하는 커먼웰스 국가들에서 막대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은 역사상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섞인 국가가 되었고, 사회 변동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까지 영국은 경제가 꽤나 발전하였으나, 프랑스, 서독, 일본과 같은 경쟁국들에 비하면 딱히 좋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전후 몇 십년 동안 유럽 통합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던 차에, 영국은 1960년에 유럽 자유 무역 연합의 창립 회원국으로 참가하였으나, 1973년에는 유럽의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하여 탈퇴하였다. 이후 EC가 1992년에 유럽 연합으로 전환되자, 영국은 12개의 창립 회원국들 중 하나로 참여하였으며 2007년 조인된 리스본 조약에서 유럽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 지방은 불안정한 치안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1998년의 벨파스트 협정이 조인되면서 이도 끝났다. 1970년대에 점차 경제가 위축되고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 주도의 보수당 정권은 규제 완화, 대규모 자본 투입과 같은 정책들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 이후 1984년부터는 북해에서 뽑아낸 석유를 팔아 얻은 대금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며 영국의 경제는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21세기
영국은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 논쟁은 영국의 해외 군사 배치의 일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둘러쌌다.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2010년에 연립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막대한 양의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 투표에서 55.3%의 주민들이 독립을 거부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2016년에는 약 51.9%의 영국 국민들이 유럽 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국은 2020년 1월 31일까지만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았고, 이후에는 유럽과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코로나19 범유행은 2020년과 2021년에 영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교육에 큰 지장을 초래했으며,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9월 8일,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오래 재위한 영국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왕 사후, 그녀의 장남인 웨일스 왕자 찰스는 찰스 3세로 영국 왕좌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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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영국〉, 《위키백과》
- 〈영국〉, 《나무위키》
- 〈영국/국호〉, 《나무위키》
- 〈영국/경제〉, 《사이트명》
- 〈영국〉, 《두산백과》
- 〈영국의 지형과 지질〉, 《두산백과》
- 〈영국의 기후〉, 《두산백과》
- 〈영국의 식생과 동물〉, 《두산백과》
- 〈영국의 역사〉, 《위키백과》
- 〈영국/역사〉, 《나무위키》
- 〈영국의 역사: 고대의 영국〉, 《두산백과》
- 〈영국의 역사: 로마 및 앵글로색슨의 지배〉, 《두산백과》
- 〈영국의 역사: 노르만족의 지배〉, 《두산백과》
- 〈영국의 왕위계승시대〉, 《두산백과》
- 〈영국의 튜더왕조와 통합왕조시대〉, 《두산백과》
- 〈영국의 역사: 스튜어트 왕가와 통합〉, 《두산백과》
- 〈영국의 하노버 왕가와 대영제국의 탄생〉, 《두산백과》
- 〈영국의 역사: 제1·2차 세계대전과 아일랜드의 독립〉,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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