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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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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書院)은 중국에서 발단 한자 문화권의 동아시아(일본 한국 베트남)에 파급된 전근대 학교로 사학의 한 유형이다. 북송 대 이후 국가의 관학에 대해 특히 민간의 사학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며, 유교의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유학에서는 교육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유학자들이 사재를 털어 서당이나 서재라 불리는 사립학교를 세워 지방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런 전통을 계승하여 설립한 사립학교에 선배 유학자들을 배향하는 사당의 기능을 추가하여 서원을 건립하였다. 통상 초시에 합격한 자들에게 입학자격이 주어진 지방의 사립 중등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개요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로 크게 나뉘어 있다. 오늘날의 지방사립대학교라고 볼 수 있다. 서원의 교장을 훈장(訓長)이라 하고, 학생회장을 장의(掌議)라 하였는데, 장의는 학생회장이면서 제자들 중 최선임인 대제자이면서, 문도들의 상벌을 담당하는 상벌위원장 역할을 하였다.

서원의 기원은 중국 당나라 말기부터 찾을 수 있지만 정제화(定制化)된 것은 송나라에 들어와서이며, 특히 주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열고 도학연마의 도장으로 보급한 이래 남송·원·명을 거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경상북도 순흥면 백운동에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이다.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이 지역출신으로 주자학(성리학)을 한반도에 처음 도입한 고려때의 유학자 안향(安珦) 선생을 배향(配享)하는 사당과 후진양성을 위한 사립학교를 함께 건립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이라 불렸으나 1550년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사액서원이란 국가의 승인을 받은 사립학교를 의미하며 사액서원으로 지정받으면 토지, 서적, 노비 등을 지원받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까지 부여받았다. 이런 특권 때문에 조선후기에 국가 경제를 어지럽히고 붕당정치의 온상이 되는 등 그 폐단도 적지 않았다. 1868년, 흥선대원군이 사액받지 못한 천여 개소의 서원을 철폐하고 납세를 명하는 서원철폐령이 실시되어 47개소만 남고 모두 철폐되기도 했다.

소수서원이 건립된 이후 많은 서원이 전국에 걸쳐 만들어졌다. 명종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개, 선조 때는 124개에 이르렀고,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 때 설치한 것만 300여 개소에 이르러 1도에 80~90개의 서원이 세워졌으며, 국가 공인(公認)의 절차인 사액(賜額)의 청원에 따라 사액을 내린 서원도 늘어나 숙종 때만 해도 130여 개소에 이르렀다.

초기의 서원은 인재를 키우고 선현·향현을 제사지내며 유교적 향촌 질서를 유지, 시정(時政)을 비판하는 사림(士林)의 공론(公論)을 형성하는 구실을 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였으나 증설되어감에 따라 혈연(血緣)·지연(地緣)관계나 학벌(學閥)·사제(師弟)·당파(黨派) 관계 등과 연결되어 지방 양반층의 이익집단화(利益集團化)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역할

서원은 성균관, 향교와 함께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교육 기관으로, 국립으로 전국 각 도시에 분배된 향교와 대비되는 사립학교로서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서원은 교육 기능과 교화 기능을 그 양축으로 삼고 있었다. 조선 중기 사대 사화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은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의 기능까지 통합한 서원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교육 기능에 대해서 살펴보면, 서원에서 교육의 목표는 인품이 훌륭한 성현을 본받고 그러한 관리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다른 교육 기관과 마찬가지로 소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사서와 오경을 모두 익힌 다음에는 가례, 근사록과 같은 성리학에 관한 책들을 익히도록 했다.

정치적 혼란으로 중앙 정계에서 물러난 학자들에 의해 대부분의 서원이 설립되었던 까닭에 '성현을 본받는다'는 교육 목표는 초기의 서원 교육에서 특히 중요시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학문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과 우주의 본질을 추구하고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그 뒤 서원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과거 준비를 위한 교육도 동시에 강조되었던 것이다.

서원의 또 한 가지 기능인 교화 기능은 주로 선현에 대한 제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제사의 대상인물에 있어서는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성균관과 향교의 문묘(文廟)에 배향된 인물은 공자를 비롯해 안회, 증자, 자사, 맹자의 사성과 그 밖의 십철, 그리고 우리나라 18현 및 송대의 6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서원은 사학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문중에 의해 건립되었던 까닭에 자신의 문중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배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배향 인물의 선택 폭이 국정인 성균관과 향교에 비해 훨씬 넓었다.

한편 국립 교육 기관과 마찬가지로 서원에서도 봄과 가을에 걸쳐 일 년에 두 차례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일은 성균관과 향교에서 봉행하는 석전(釋奠)에 비하여 그 격이 낮았던 관계로 그 날짜를 석전보다 뒤로 하였다. 즉, 석전이 상정일(上丁日)에 봉행되는 데 비하여 서원의 제사는 중정일(中丁日) 또는 하정일(下丁日)로 잡아 거행함으로써 그 격을 구분하였다.

이외에도 서원은 다양한 기능을 담당했다. 지방의 인재들이 모이는 집회소였으며, 학생들의 학문을 위해 다양한 도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의 기능과 책의 출판 기능도 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서원에는 장판각 또는 장판고라는 서고가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서원은 지방의 풍속을 순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서원에서는 그 지역의 여론을 이끌어 나갔음은 물론, 각 지방별 향약을 기준으로 효자나 열녀 등을 표창하고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성토하는 등의 직접적인 교화 활동도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건립)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성리학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이다.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걸쳐 위치한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되어 한국의 모든 측면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성리학을 널리 보급한 성리학 교육기관으로서 탁월한 증거가 되는 유산이다.

서원의 향촌 지식인들은 학습에 정진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유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학습과 배향, 상호교류는 서원의 핵심적인 기능이었으며 이는 건물의 배치에 잘 드러나 있다. 서원은 그 지역 지식인들인 사림이 이끌었으며, 사림의 이해관계에 따라 향촌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번성했다.

서원의 위치에 가장 크게 고려되는 요소는 선현과의 연관성이다. 두 번째 요소는 경관으로, 자연감상과 심신단련을 위해 산과 물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서원에서 누마루 양식의 개방적인 건물은 그러한 경관과의 연결을 더욱 원활하게 한다. 학자들은 성리학 고전과 문학작품을 공부했으며, 우주를 이해하고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고인이 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을 배향하고 강한 학문적 계보를 형성했다. 나아가 서원에 근거한 다양한 사회정치적 활동을 통해 성리학의 원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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