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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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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석상(Moái)
제주 돌하르방
제주 동자석

석상(石像)은 을 조각하여 만들 동물이나 사람 따위의 모습을 한 것을 말한다.

한국에 흔한 벅수(장승)나 제주도에 많은 돌하르방, 묘 앞에 세워진 문무인석은 물론, 이나 절터에 남아있는 석불도 이 석상에 포함된다. 석상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지만 가장 가까운 남미에서 3,200㎞나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상에 있는 조그마한 이스터섬의 예가 대표적이다. 섬의 해안가에 2백여 개의 석상들이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데, 사람 얼굴을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큰 것은 높이가 10m 이상에 무게가 82톤이나 되며, 산의 암반층에는 만들다만 것들도 있다.

세계 거대 석상

모아이 석상

이스트섬의 석상 모아이는 그 만든 이유, 방법 등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높이가 최대 20m나 되는 이 상에 쓰인 돌은 어디서 왔을까? 600개 정도되는 두상들이 한쪽만 바로보고 있는데 아직 별로 밝혀진 게 없다. 이 모아이들은 서기 400 ~ 1680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11세기 경에가장 많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모아이들은 라노라라크 채석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큰 석상을 만들었고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렇게 큰 석상을 어떻게 운반했는지, 원시적 도구밖에 없는 이 섬에서 어떻게 조각했는지, 어째서 석상은 섬 주민들과 달리 커다란 귀에 곧은 코와 얇은 입술을 가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모아이는 뭍힌부분이 드러난 부분의 2~3배나 된다. 다만 최근 연구된바 의하면 실제로 돌은 현무암으로 가공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아이섬은 현재 칠레령이며 면적은 163.6㎢로 제주도의 8분지1정도 된다. 원주민이 라파누이라고 부르는 이 섬의 발견은 1722년 4월 5일에 네덜란드의 사령관 야콥 로게벤에 의한 것이다. 오후 5시가 될 무렵이었다. 섬을 발견한 것은 로게벤이 지휘했던 세척의 배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카안쉬 갈레이호였으며 이 날이 부활절이어서 이스터섬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연구에 의하면 1250년대 까지 이 섬은 숲이 울창했는데 그 즈음 이 석상이 대규모로 만들어 지면서 이에 따라 산림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모아이는 원래 모자가 있었고 눈이 있었으나 이 석상에 불만을 품은 원주민들이 이를 파괴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모아 산의 대통령 얼굴들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키스톤 러시모어 산의 미 대통령얼굴 조각상은 높이는 18m에 너비 9m되는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되어 있어 얼굴크기로는 엄청나게 크다.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위대한 민주국가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그리고 서부의 자연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운하 구축 등 미국의 지위를 세계적으로 올려 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등 네명의 대통령의 초상이 산정상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조각은 원래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고 처음 이 사업을 제안하여 완성시킨 돈 로빈슨은 처음에 그 지방의 인디언 추장인 레드 클라우드나 미 대륙을 횡단한 탐험가 루이스와 클락같은 지역과 관련있는 인물을 조각할 것을 제안했으나 조각가 거튼 보글럼(Gutzon Borglum)은 이 제안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며 역사적 인물로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인물들을 조각하자고 하여 4명의 역사에 남을 대통령을 조각하게 되었다.

조각은 1927 년에 시작하여 1941 년에 완성을 보았고 총 소요비용은 99만달러정도였으며 기간중 단 한명의 인명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 산의 원래 명칭은 라코타족의 여섯할아버지산이나 1885년 이 산을 탐험한 뉴욕의 변호사 찰스.E.러시모어(Charles E. Rushmore)의 이름을 현재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우데자이네로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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